올해부터는 매달 나만의 테마를 정해서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내가 너무 산만하고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 거나 읽는 스타일이어서 '진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이나 작가를 읽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독파 프로젝트라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책을 읽어나가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뭐든지 혼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 혼자 독파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이번 달 테마는 '슈테판 츠바이크 읽기'다. 이 작가의 책을 두 권 사놨는데 아직 읽지 못했기에 이 기회에 사놨던 책도 읽고 안 산 책도 찾아서 읽어보려고 한다.
1. 『어제의 세계』
이 책은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종이책으로 갖고 있다가 생각보다 두꺼워서 못 읽었다. 나중에 종이책 전부 처분하고 전자책으로 다시 사들였는데 그 후로도 방치. 분명히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나의 산만함이 문제다. 이번 달에는 무조건 이 책은 읽을 것이다. 다른 책은 못 읽어도 이 책은 뽀개기로 결심했다.
2. 『광기와 우연의 역사』
이 책도 재미있어 보여서 전자책으로 사놨는데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작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가능하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 작가를 꽤나 좋아한다. 나치 독일을 피해 브라질로 갔다가 거기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이력 때문인 걸까. 아무튼 이 작가에게는 계속해서 끌리는 지점이 있다. 이 책도 주제는 그렇게 특색있지는 않지만 슈테판 츠바이크가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해서 샀다. 샀으면 읽어야겠지?
3. 『우체국 아가씨』
나는 예전에 슈테판 츠바이크가 전기 작가 혹은 비문학 책만 쓰는 저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소설도 쓴다. 다재다능함이 부럽다. 아무튼 이 책도 이번 달에 읽을 책 목록에 들어가 있다. 재미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4.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츠바이크는 전기를 잘 쓰기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딱 한 권, 이 책을 골랐다. 츠바이크에 대한 호기심도 해결하고 발자크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발자크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것에는 여러가지 계기가 있다. 이수은 작가가 쓴『평균의 마음』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서 이수은 작가는 발자크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간결한 문장이나 담백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발자크를 굳이 찾아서 읽어보지는 말라면서 어쨌든 자신은 발자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굳이 찾아서 읽어보지는 말라니까 더 궁금해진다. 그렇게 발자크에 접근해보려던 즈음에 알쓸*잡 프로그램에서(알쓸신잡인지 별잡인지 기억이 안 난다) 김영하 작가가 바로 이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에 대해 언급했다. 아니, 츠바이크가 발자크 평전까지 썼다니. 일단 이것부터 읽어보고 발자크에 접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이번 나만의 독파 프로젝트 시리즈에 넣었다.
다음은 안타깝게(?) 나만의 독파 프로젝트에 들지 못한 책이다.
5.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
츠바이크가 쓴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 소설은 늘 읽고 싶었는데 전자책이 없어서 못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가로 책이 나왔다. 이화북스의 츠바이크 선집 3권이다. 찾아보니 2023년 10월 출간이다. 아직은 전자책이 없는데 츠바이크 선집의 1, 2권이 모두 전자책이 있으니 이 책도 기대를 걸어본다. 전자책 나오면 무조건 구매할테니 제발 전자책을 출간해달라! 해달라!
6. 『초조한 마음』
이 책도 재미있다는 평이 자자한데 전자책이 없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전자책이 아주 띄엄띄엄 나온다. 같은 세계문학 전집이라도 민음사나 문학동네, 열린책들과는 전자책 정책이 확연히 다르다. 이 책도 전자책 나오면 바로 구매한다. 그러니 제발 굽어살피소서.
+번외
이거 페이퍼 쓴다고 『평균의 마음』의 발자크 부분을 다시 읽었다. 이수은 작가의 이런 문장들이 너무 좋다.
"발자크는 인간을 묘사하면서 문장 하나로 그를 천국까지 들어 올렸다가 다음 문장 하나로 지옥 바닥을 뒹굴게 한다. 저항할 수 없는 매혹으로 빠져들게 했다가 이보다 더 졸렬할 수 없는 나약함으로 무너지게 한다. 발자크의 묘사력이 힘센 이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는 감정들을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생생한 비유와 상징으로 되살려 코앞에 들이밀기 때문이다. 흑백의 희미한 윤곽으로만 머물던 세계에 발자크이 시선이 닿으면 그곳에 불이 들어오고 사물은 색채를 얻고 존재는 활동을 시작한다."
발자크를 안 읽었는데도 마치 내가 발자크를 열 권 정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흩뿌려주신다. 이래서 책에 대해 쓴 책을 좋아한다. 그 책을 안 읽고도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평균의 마음』은 그런 책 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페이퍼가 츠바이크에서 시작해 발자크로 끝나는 느낌인데 그렇다면 다음달 프로젝트는 발자크 읽기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단 이번달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마쳐보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우선 『광기와 우연의 역사』부터 시작해본다.『어제의 세계』부터 읽었다가 또 미룰까봐 겁이 난다. 그나마 쉬워보이는 책부터 발을 담그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슈테판 츠바이크를 시작으로 2024년도 가열차게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