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읽은 책들은 전부 '북적북적' 어플에 정리하고 있다. 올해는 60권을 읽었다. 올해 초에는 여행을 다니느라 거의 읽지 못했고 9월 이후부터 가열차게 읽었다. 60권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들을 기록해본다.
올해 읽은 책은 대부분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이 책은 전자책이 없다. 종이책을 구매해서 스캔한 다음에 PDF로 변환해서 읽었다. 올해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책이다. 그동안 비문학 위주로 읽었는데 이 책 덕분에 문학을 읽는 눈이 약간이나마 트였다. '왜 읽는가'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읽는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는 점이 참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책의 어느 한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흘렀다. 이 책의 주제와 별 관련이 없는, 아주 지엽적인 내용이었는데 왜 그 구절이 그렇게 마음을 치고 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서 한 번 더 읽고 싶은데 전자책 안 나오려나. 정말로 전자책이 나오면 좋겠다.
책 영업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는데 이수은 작가는 성공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고전을 찾아보게 되었으니까. 일단 내년에 <돈키호테> 읽는다. 전자책으로 사놨으니까 무조건 읽는다. 이 분의 건조하면서도 위트 있는 글이 좋아서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무조건 사서 읽을 거다.
<닥터 지바고>를 읽었다. 내가 쓴 페이퍼를 읽어보니 무려 20년 전부터 닥터 지바고를 읽으려고 몸부림쳤던 흔적이 있다. 그때 완독을 못 하고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크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읽다가 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영화까지 대여해서 보고 다시 책을 읽었는데도 그냥 쏘쏘했다. 영화 OST는 참 좋더라.
<어머니의 유산>을 먼저 읽고 <본격소설>을 읽었다. <어머니의 유산>이 좀더 재미있긴 했는데 <본격소설>도 상당히 좋았다. 소설에 저자 본인의 삶이 상당히 많이 녹아들어 있다. <본격소설>에서는 아예 작가 본인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런 게 일본의 사소설 전통인가.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서 신기했다. 이 작가가 쓴 또 다른 이야기들이 읽고 싶다.
어딜 보나 <도둑맞은 집중력>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서 나도 읽어보았다. 시립전자도서관에 예약 걸어두고 몇 달 기다려서 읽었다. 초반은 정말 재미있었고 후반에는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으나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읽고 하루 일과표를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루 동안 뭘 했는지 10분 단위로 표시하는 일과표를 내가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 충격적이게도, 내가 핸드폰을 너무나 많이 쓰고 있었다. 그동안 바빠서, 정신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쓸데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겨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거였다. 반성 또 반성. 내 시간을 뺏어가는 어플을 전부 삭제했고 책을 좀더 많이 읽기로 결심했다. 사실 내가 핸드폰으로 하는 일이라는 게 재미있는 글들 읽는 게 전부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유튜브를 봐도 하염없이 댓글을 읽는 나 자신을 보며, 글자로 된 뭔가를 읽고 싶은 거라면 책이 나을 것 같았다. 핸드폰에 크레마클럽 어플을 깔아서 핸드폰을 하고 싶을 때는 크레마클럽에서 빌린 책을 읽는다. 핸드폰을 만지고 싶은 충동도 충족시키고 덕분에 책 한두 글자라도 더 보게 되니 일석이조다. 하여간 이 책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링, 칭링, 메이링>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초반에 쑨원 얘기가 너무 많아서 제목을 <아이링, 칭링, 메이링 그리고 쑨원>이라고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었는데 그게 절대 쑨원 이야기가 지루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쑨원 나오는 부분이 진짜로 흥미진진하다. 자매들 이야기는 중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 시절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대단한 자매들인데 그녀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남편들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역시나 아쉬우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번역이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다고 느꼈는데 100자평에 다들 번역가를 칭찬하고 있길래 사람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이걸 사놓고 몇 년만에 읽는 건지. 영어 소설을 읽고 싶은데 도저히 그 구조를 모르겠는 문장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열흘에 걸쳐서 읽었다. 사실 설명은 짧고 혼자 하는 연습문제가 많아서 뒷부분은 날림으로 보기는 했다. 그래도 한 권 보고 나니까 아 그래그래, 이제 알겠다, 싶은 순간이 왔는데 이제는 단어가 발목을 붙잡는다. 영어 소설 읽으려니까 모르는 단어가 왜 그렇게 많은 건지ㅠㅠ지금은 단어 외우고 있다. 매일 100개 이상. 내년 목표는 원서 뽀개기다. 특히 고전 소설이 목표다. 오래된 영미권 소설들은 저작권이 없어서 인터넷에서 무료로 전자책 epub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너무 보고 싶은데 번역본은 전자책이 없다. 그런데 영어 원서는 전자책이 있다. 심지어 무료. 이러니 내가 영어 소설 읽고 싶어서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내년에는 진짜로 영어 소설 뽀개고 만다.
이 책 읽고나서 얼마나 바르셀로나가 그리웠는지. 이거 전부 시리즈로 산 거라서 아직 네 권 더 남았다. 내년에는 마저 읽어야겠다.
이거 전자책 아니었으면 못 읽었을 거다. 별로 안 두꺼운 책인 줄 알고 읽었는데 나중에 실물책 보니 두껍더라. 두께를 모르고 읽을 수 있다는 게 전자책의 큰 장점이다. 이 책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작가 나름의 견해로 열심히 상상하는 소설이다. 나처럼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특히 바오로에 대한 설명 중에 빵 터지는 부분들이 꽤 된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1925년경, 반(反)볼셰비키 투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한 백군(怕) 장교가 크렘린에 찾아와 스탈린에게 알현을 요청한다. 장교는 스탈린에게 설명하기를, 자신은 개인적인 계시를 통해 순수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접근하게 되었으며, 이제 자기가 그 독트린을 세계만방에 드날리고 싶단다. 이를 위해 스탈린과 공산당 정치국은 자기에게 전권을 부여해주어야 하지만, 자기는 그들의 권위를 따르고 싶은 생각이 전혀없단다. 자, 그림이 그려지는가?"
나는 치열하게 쓴 소설이 좋다. 물론 모든 소설은 작가 나름대로 치열하게 썼을 것이다. 당연하다. 이 짧은 페이퍼를 쓰는데도 썼다 고쳤다 난리부르스인데 책 한 권이 어찌 뚝딱 나오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쓴 티가 정말 팍팍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 소설이 그 중 하나였다. 솔직히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도대체 이게 뭔 말이야 싶은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치열하게 써내려갔다는 것, 쓰고 싶고 써야 할 말들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사놨는데 언제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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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매달 나만의 독파 프로젝트를 가동할 계획이다. 작가 뽀개기가 될 수도 있고, 한 테마를 잡아서 중점적으로 읽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 좀더 강제성을 띈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엠비티아이 대문자 P형이라서 조금이라도 강제적이지 않으면 책을 안 읽는다. 읽더라도 중구난방으로 읽는다. 내년에는 올해 세운 목표를 조금이라도 달성해보자. 2024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