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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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일상의 평화로움 속에 숨어있는 민족적 폭력의 진실>



영화를 한다는 정보를 알기 전, 한수산 작가의 책이 있다는 정보를 알기 전에는 하지마섬 일명 군함도라는 곳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을 떠올려보니, 나카사키 항구로부터 19km 떨어진 타카시마 해저탄광 섬, 그곳에서 다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하시마 섬이 세계문화유산인 유네스코로 등재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무고한 징용자들이 희생을 당한 곳이기에 반대를 했지만 유네스코는 일본의 손을 들어 주었다고 했다.



 무한도전 하하팀이 2015년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지마 섬을 찾았다. 이때 서경덕 교수는 유네스코 등재를 막기 위해 21개국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들에게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영상을 각국 언어로 제작하여 관계자들에게 배포했다고 밝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zuwWncDoxAM)

 

한수산 작가는 1989년 일본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만난 뒤 원폭 피해자들과 군함도에서 일어난 가혹한 조선인 노동자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93년 중앙일보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료를 못하고 실패하고, 2003년 다시 <까마귀>라는 제목으로 5권으로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스스로 보기에 빙산의 일각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쓰기 시작하여 2016년 지금의 두 권짜리 책으로 만들어냈다.


 한수산 작가는 한국의 원로 작가이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90년대 초반에 고려원의 <성이여 계절이여>, 삼진기획의 <바다로 간 목마>를 읽은 것도 같다. 그는 오래된 작가였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기둥이 되어 주었지만 큰 빛을 받지는 못한 작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군함도가 세상에 나오지 전까지는.



 

어느새 72세의 고령 할아버지가 된 그가, 여전히 생생한 필력으로 군함도 2권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가 작가에게 안겨준 마지막 숙제라는 부담감, 책임감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을 맞이한 바로 그 다음해에 태어난 광복둥이다. 그가 태어난 그 시기, 역사는 혼란 속에 놓여 있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하지마섬에서는 책에서 신형폭탄이라고 언급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죽어갔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하지마 섬을 찾았고, “배가 고파요라고 탄광벽에 쓰여진 사진을 보았다. 사람들은 배가 고팠고 허기를 달래려 깻묵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는 책중 성식이로 나오는 사람의 실제 모델인 원폭 피해자 서정우 선생을 만났다. 서정우 선생은 열다섯 살에 끌려가 광부생활을 했다. 작가는 일본에 대한 민족적인 감정보다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어린 소년의 한 인생을 무너뜨리고 궤멸시킨 행위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았고, 피폭 희생자, 하지마섬 탄광노동자들을 만나고, 섬을 둘러보며 발품을 팔았다.

 

알려진 것처럼, 황정민과 송중기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군함도영화가 대히트를 치고 있지만, 이 책은 영화의 원작도 아니고 영화의 내용과도 많이 다르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고 예고편만 보았지만, 영화를 보고 이 책을 읽는다면, 영화의 스펙터클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 책 이야기는 조금 싱겁고 밋밋할 수 있겠다.

 

<군함도>는 친일파 자녀였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군함도로 징용되어 끌려가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는 친일이 아닌, 갓 결혼하여 아내(서형)가 임신한 상태의 남편인 지성의 이야기로 실타래를 푼다. 일본은 그만큼 패전 앞에 물불 가리지 않았고, 조선 땅에 남아 있던 남자들은 모조리 끌어모아 군수장비 만드는 곳에 보냈다.

 

군함도 희생자들은 어찌보면 우리의 위안부 할머니와 비슷하다. 그들은 끌려왔다.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지하에서 죽어나가면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섬을 탈출할 수도 없었다. 익히 예상하는 것처럼 탈출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책속의 주인공들은 노동파업을 일으키기도 하고, 탈출에 실패하여 죽기도 하고, 탈출에 성공하기도 하고(지성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일본 미쯔비시중공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 다른 탈출 성공자 우석 역시, 다른 곳에서 터널 공사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하지마섬을 탈출해도 그들은 살기 위해 결국, 일본의 노동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은 그들 모두가 19458, 미국의 집요한 공격과 최후 원자폭탄 앞에서 모두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았다. 원자폭탄은 동경과 나가사끼에 떨어졌다. 하지마섬에 있던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고스란히 원자폭탄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마섬을 탈출했지만 여전히 그 근방에 있었던 모든 조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조선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마섬이 유네스코 지정을 받게 된 것은,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의 과거에, 그리고 크기도 작은 그 조그만 섬에 고층 아파트, 학교, 상가, 목욕탕 그리고 유곽까지 갖추어 완벽한 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군함도의 아픔은 그래서 더 크다. 탄광만 벗어나면 그곳은 완벽한 생활이 가능했다. 그곳에는 일본인 노동자, 조선인 노동자, 그리고 조선인 징용자의 세 그룹이 혼재했다. 월급을 받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면서 어느 정도의 삶을 유지하면서 탄광일을 했다. 그러나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사에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끊임없는 박해와 매질과 폭력이 있었다.



 

군함도 1과 군함도 2의 표지는 군함도 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새냐, 비행기냐의 차이가 있다. 자유를 잃어버린 섬



군함도는 일본이 유네스코 지정을 받으면서 최근 관광지로 바꾸고 있다. 자신들이 원폭 피해자인 양 세상을 향해 거짓 눈물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에서 죽어간 수많은 조선인들을. 우리의 선조들을.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잊지 않기 위해. 27년 만에 세 번에 걸쳐 결국 이 책을 완간한 한수산 할아버지 작가에게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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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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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한다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선'은 낡거나 헌 '물건'을 고치는 것이지, 그 대상이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수선의 대상을 '살아있는 자'라고, 사람이 그 대상임을 명백히 하였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목을 붙인 것일까, 책 마지막 후기를 보면,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 “플라토노프”에서 빌려온 작품 제목이라고 설명한다. 희곡 “플라토노프”는 “피아노를 위한 미완성 희곡”으로 불리는데 구하기도 힘들고 내용을 잘 알아내기도 힘들다. 국내에서 무대에 오른 작품 설명을 보고 대충 내용을 이해했으나 장기이식과는 아무런 연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체호프의 작품 어디에서 그런 부분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 됐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도 타인의 제목을 가져와 붙인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내용이 직설적이고 감당하기 힘든 것을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랬다. 불편함. 인간으로서 인간의 육체를 수선의 대상을 삼고 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동감할 수밖에 없는 이 인간으로서의 형이하학적인 모멸감. 그러나 어찌보면 우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모든 과정이 수선을 받는 과정은 아닐까. 오래되어 낡아진 육체를 찢고, 잘라내고, 꿰매고, 깁고 새로 페인트를 칠해서 새 것처럼 보이게 하는 리모델링.

작가는 의도적으로 책 제목에 인간의 인간성을 배제하고, 철저히 사물 중심적인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출입구에서부터 독자들을 서성거리게 만든다. 물론 책을 펼치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는 책을 스토리 중심으로 흡입력 있게 독자를 이끌고 가는 형태로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현재형 시제를 사용해 독자와 '함께' 그 불편함을 안고 동행하도록 강요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의 부모 입장이 된다. 장기 이식을 사실상 강요하는 의사 앞에서 가부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의사 입장에서 이렇게 싱싱한 장기들을 그냥 불태워 없애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신선한 장기들로만 교체된다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 시몽이 어떤 결정을 더 좋아할지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내려야 했다. 좋아요, 한 번으로 최소 6명 가량의 환자들이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경제적인 효율성도 있지만, 그것은 선의 또는 악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거부할 수도 있다. 시몽이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 결정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결정은 전적으로 경제성을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섯 명이 살아날 수 있어,라는 수학적인 계산으로 바라본다.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판단될 거야, 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공기 속에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2001년에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라는 곳에 뇌사시, 각막, 장기, 조직 외에 시신까지 기증하겠노라고 서약을 하였다. 지갑에는 운전면허증이 아니라 시신기증등록증을 맨 앞에 끼워넣고 다닌다. 혹시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내 뜻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서.


그러나 이 결정으로 내가 선한 사람이 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고, 장기기증을 서약하지 않은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곤란하다.

나는 죽어서 이 세상에 내가 기억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육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가령 시신이 의학대학에서 인턴들에게 경외를 받지 못한 채, 실습도구로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진다 해도, 물론 그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 지구상에 0.001%의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다. 살아서 기여하지 못한 부분을 죽어서라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결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일부 종교들은 시신을 화장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또 다른 책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어보면, 시신 기증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거룩하거나 존경을 받는 행위가 아님을, 책을 읽고 나서 장기기증을 포기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역시 시신을 기증한다는 것이 남겨진 자,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압권은 6개의 장기를 적출해 간 각 병원에서 특히 심장을 적출해 간 병원에서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해 넣는 수술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생생한 묘사는 실제 수술실에 들어가서 관찰하는 것만 같다.

장기 기증과 수증의 의미에서 저자는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개념 하나를 정리한다. 즉 장기 기증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녀가 생각한다. 이런 일에 있어서 기증자라는 건 없어. 그 누구에게도 기증을 하려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312쪽)

이런 일에 있어서는 그렇다. 왜냐하면 뇌사상태에 빠진 젊은이는 생전에 결코 그 의사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식해준다는 장기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수증자가 아니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선”이라는 의미의 방점은 심장을 이식받는 환자의 생각에서 찍힌다. 그녀는 자신의 진짜 심장은 어떻게 처리될까?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결국 자신을 살아있도록 지탱했던 그 심장은, 수선도 되지 않아 폐기처분 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실존적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번역자는 이 책이 참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숨이 가빠 올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과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문장들의 어지러운 갈마듦, 현학적이고 전문적인 어휘들과 일상어 혹은 비속어들의 혼재, 문장의 흐름을 툭툭 끊어 놓으며 복잡하게 가지쳐 나가는 무수한 연상의 난입, 서핑이나 카누 제작에 대한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심장 이식 수술과 관련된 전문적 지식의 나열 등으로 점철된 텍스트의 번역 작업은, 어순이나 어휘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어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번역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 다가올 정도였다.” (346쪽)

번역자의 이 글에서, 이 책의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쉽게 호르륵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참고 읽어나가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켜 준 작가와,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시, 영혼의 육체의 경계에서 실존의 의미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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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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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우 소설 <우리의 남극 탐험기>

 

한 줄 평 황당함을 무기로 사용한 소설그래서 나도 한번 남극에 가고 싶다꿈을 가지게 만드는 소설남극에 가서절대로 만날 수 없는 곰순이도 만나고하늘을 나는 펭귄도 만나는 꿈을 꾸게 하는 소설한 걸음 더 나간다면새클턴 경도 한번 만나면 좋겠고. (한 줄 평이 좀 길어졌다.)


반가운 소설이었다독서록을 살펴보니 김근우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읽은 때는 작년 1월이었다그런데 놀랍게도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책이었다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하루에 한 권은 잘 나오지 않는 기록인데놀랍게도 이날은 김근우의 날로 다 읽었었나 보다그랬던 김근우였으니 얼마나 반가웠던 책인지 더 말해 무엇하랴.


우리의 남극 이야기인데남극은 책을 반 정도 읽어가는 150쪽을 넘어가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한 마디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처럼, ‘남극을 팔아먹은 봉이 김근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식으로 하면하면서 혼자 씩씩댄다도대체 남극은 언제 나오는 거야언제 떠나냐고?


그랬다이번 책은 서론이 참 길었다구구절절몇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애간장을 태웠다제목에서 말하는 남극으로 떠난 우리가 누구누구인지를 아는 데 한참 걸렸고,-물론 딱 눈치 챌 수도 있지만아닐 수도 있으니까그 누구누구가 왜 남극엘 가야 하는지를 알아가는데 또 남극 가는 수고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책에는 남극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하여 돌아온 새클턴 경과 이름이 똑같은 시각장애인 박사 새클턴이 나온다이 시각장애인 박사 새클턴이 우리의 한 명이다나머지 한 명은 3류대학인 무광대학에 들어간 일인칭 소설로 전개되는 이 책에서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한국이란 사회에서 루저로 살아가는 꿈도 없고 비전도 없는 기적적으로 진짜 남극 새클턴 경의 계시에 의해 다시 남극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그래서 동료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된 박사 새클턴이 남극으로 떠나게 된다불법적으로.


이 책은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설정 속에서북극에서만 볼 수 있는 북극곰을 남극에서 만나는데이 북극곰은 말을 할 줄 안다그리고 하늘을 나는 펭귄을 만나는데 이들도 말을 할 줄 안다치피라는 여자곰은 남극에서 화투도 배운다한국의 대단한 이야기꾼으로 칭송받는 성석제나 천명관과는 또 다른 허풍쟁이 소설의 최고봉을 보여준다게다가 덴마크 허풍작가의 북극허풍담” 시리즈와도 차원이 다른 허풍을 보여준다그는 책 후기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4개월 동안 뻥으로 작성되었는지를 설명한다그래서 이 출판사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나무야 미안해도 이미 독자를 대신해서 다 해버린다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현실을 벗어나 남극을 끝도 없이 방황한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 먹는 기절초풍할 허풍이 전작이었다면이번에는 남극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곰과의 여행이 압권이다그렇지만 그저 그런 허풍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이 책에는 작가가 어록처럼 숨겨놓은(알만한 독자는 다 알겠지만몇 개의 메시지가 드러나 있다.


첫 번째는 위치정체성에 대한 메시지다. 새클턴 장애인 박사가 일반초등학교 화장실에서 괴롭히는 친구에게 듣는 돌직구다.


넌 여기 왜 있는 거야?”


결국 우리는 이 질문이사실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임을 깨닫는다그게 책을 읽으며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영적 재산이다결국 이 책은 정체성에 관한 책이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존재론적 정체성이 아니라, “너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지리적 정체성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본다면이 책은 1951년 독일의 프릿츠 펄스(Fritz Perls)가 만든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지금여기”, 지각심리학을 소설로 옮겨 놓은 것에 해당한다삶이란신체와 정신그리고 환경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으며그 모든 것이 서로 전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그래서 개인의 심리치료를 위해서 자신과 환경을 좀더 선명하게 알아차리고지금 여기에 대한 지각을 함으로써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여기가 아니라 저기에저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아무튼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여기 있을까… 그러니까 내가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여기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35)


주인공인 는 삼류대학에서 국문학교수에게 넌 F라는 폭언을 듣고새클턴 시각장애인 박사도 공립학교 첫 시험에서 넌 F라는 선언을 듣는다국문학과 교수인 강교수는 그에게 한번 더 사실을 주지시킨다. “내 말은 이 세상이 이미 너에게 F를 주었다는 거.”


이 세상에서 이미 F학점을 받고 살아가는 3류 인생인 우리들에게지금여기라는 시공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남극으로 탐험을 떠난다그들은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탐험이었다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는데그것은 아마끊임없는 지금여기에 대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메시지는싸움의 때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 싸워야 하는가왜 싸워야 하는가,가 아니라언제 싸워야 하는가가 핵심이다나는 천성적으로 싸움을 좋아하지 않지만작가의 이 싸움론은 마음에 든다.


이길 수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이길 수 없다면 싸워야 하는 거야.” (60)


그렇다이미 이길 걸 알고 있다면결코 싸워선 안 된다싸움이란내가 진다는 것을 알 때그때 싸워야 한다그래서그들은 남극 탐험에 도전한다실패할 줄 알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성공할 줄 알고 있다면그것은 성공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않은가?


마지막 메시지는살기 위해서는 썩은 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새클턴 박사는 남극에서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썩어가기 시작했다차마 발가락을 자르지 못했던 나는 결국 하루를 더 보내고 나서야 도끼를 집어들고 박사의 발가락을 자른다물론 나중에 나도 손가락을 잃고 만다그들은 남극 탐험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었다끔찍하게 동료가 도끼로 발가락을 잘라냈다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위가 뒤집힐 것 같지만포기 하지 않으려면 도끼를 휘둘러야 했다박사는 자신을 살려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일부를 잃고 자신의 일부를 되찾았다. 신체의 일부를 잃고 자신의 위치와 존재 목적을 되찾았다자신이 자신인 것을 되찾았다세상이 자신에게 내려준 F학점을 내던지고자기가 자기의 학점을 매기는자신의 삶을 되찾았다


결국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자기 탐험의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뻥으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준 김근우 작가에게 감사하며긴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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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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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민들레의 쌉싸르한깊은 맛을 느끼게 해 주는 멋진 추리물

 

가와이 간지히가시노 게이고로 인해 일본 추리문학 장르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계보나 작품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에서가와이 간지를 만났다이미 그를 알고 있는 독자들은 <데드맨> <드래곤플라이등에서 팬의 자리를 확고히 한 듯했다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가부라기 특수반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이번 <단델라이언>을 반겼고또 아쉬워했다.

 

이야기는 16년 전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한 여대생이 16년이 지나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목축농가의 샤일로에서 공중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환경운동을 펼치는 대학교 동아리에 가입했던 여자 주인공 하니타 에미민들레를 좋아했고엄마로부터 들은 하늘을 나는 소녀민담에 빠져 진짜 하늘을 날고 싶었던 여자그러나 그녀는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하늘을 나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16년 동안그렇게.

 

이 책은 일본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당이 폭력투쟁을 포기하면서 정치권 내로 들어서고, 그를 반대하는 극렬주의자들이 대학을 무무대삼아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적색에서 녹색으로 운동의 흐름을 바꾸고 명맥을 이어왔다. 국가는 그들이 언젠가 본래의 적색으로 바뀔 것이라 보고 예의주시해왔다.

원전 반대 운동의 도구로 민들레의 기형 사진이 이용되고, 사건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다. 사건은 그 중요성과 괴이함으로 인해 일반 형사가 아니라 공안이 담당하는 사건으로 바뀌지만, 주인공 형사팀은 예리한 추적으로 공안 담당자의 약점을 파헤쳐 그들과 함께 수사하게 된다. 그리고 셋으로 늘어난 사건의 결국을 모두 꿰어 맞추고 반전으로 사건을 종결시킨다.




민들레는 우리 민족에게도 참 익숙한 들꽃이다. 민들레도 토종과 외래종이 있는데 이 부분은 단델라이언 책에도 나온다그렇지만 단델라이언의 국적인 일본에서는 일본 토종이 되니 우리랑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우리나라는 흰색 민들레는 모두 토종 민들레이고노란색 민들레의 경우 토종과 외래종이 섞여 있는데 대부분 외래종이라고 한다외래종의 유전자가 더 뛰어나 토종과 결합하면 모두 외래종이 태어난다고 한다토종은 꽃을 떠받치는 총포가 위로 향하는데 외래종은 모두 아래로 향하고 있어 구분은 쉽게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기형 민들레 사진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 쓰나미 발생 이후 일본 원전 지역 주변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는 기형 민들레 사진이 대화현상(fasciation)의 일종이며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또 하나의 반전 키워드로 사용했다. 과학적 치밀함이 엿보인다. 대화현상을 검색하고 책에서 말한 맨드라미에 대한 부분도 확인했다. 다만,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가 사람에게 잘 발견되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원전에 의한 기형 식물이라고 광고해도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갔던 부분인데, 대화현상의 일종이고 일반적인 것이라고 치부하고 너무 쉽게 넘어간 것이 좀 아쉬웠다. 그렇게 일반적인 것이라면 사람들 눈에 많이 자주 띄어야 하고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고, 독자들을 흥미롭게 하고, 또 반전을 통해 독자의 궁금증을 과학적으로 씻어준다. 그 반전이 엉뚱하지 않고, 예상을 뛰어넘되 일어날 수 있는 장치들 안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작가의 천재적인 필력이 놀랍고 흥분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모든 서평이 그렇지만, 추리소설은 특히 더 이야기의 줄거리를 서평 속에 담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 책이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델라이언은, 개방형 밀실,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며, 단번에 그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밀실 사건은 당연히 모든 것이 막힌 폐쇄형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범인이 들어온 곳도, 나간 곳도 없는데 사건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두 개의 사건이 밀실과 유사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하늘. 범인이 하늘로 도망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만 빼놓고는 밀실형 사건과 동일하다.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정진리화하면, 이 책은 갑자기 오리무중에 빠진다. 그러니까, 이러한 장치는 장르소설을 의심케 하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이 판타지가 아니고 일반 추리물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이 진짜 하늘을 날 수 있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매우 성공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셈이다. 그래서 더욱 뛰어난 작품이다. 진짜 판타지가 아닌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환경보호원전반대플라스틱 병뚜껑아프리카 아동 돕기민들레민들레의 꽃말민들레의 원어쌍둥이극좌세력공안경찰싸이펀 이론베르누이 이론식물의 대화현상기모노 소매의 비밀.


다양한 키워드가 책 속에서 펼쳐지고, 조합되고, 모이고 사라진다. 하나의 단편적인 플롯으로, 단편적인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주제들이 그저 건성으로 흉내만 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고 연출되며, 하나하나 사용되어 마지막에 독자로 하여금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 들판에 자라나는 민들레고들빼기 등을 아침마다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적이 있었다깨끗하게 씻어서 두부와 함께 쌈으로 먹었다약간 썼지만 꽤 훌륭한 아침식사였다콜레스테롤 수치가 확 떨어진 경험도 했다그래서 책 도입부의 민들레 나라,라는 유토피아의 시작은 매우 흥분되었고기대가 되었다물론 그 기쁨은 더 배가되었고 마지막에는 책을 덮기가 아쉬울 정도였다솔직히 말한다면히가시노 게이고가 약간 싱거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예술적 감각도 매우 뛰어나다만약 이 책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면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하얀 민들레 홀씨(사실은 홀씨가 아니지만)가 하나둘 하늘로 날아간다하늘로 날아가는 씨앗 하나가 여주인공으로 변하고 여주인공은 나비처럼 사뿐사뿐 하늘로 날아 올라가 점이 된다.


민들레는 환경적인 키워드로도 사용되었지만하늘을 나는 키워드로도 사용되었다작가는 매우 복합적인 암시를 민들레에 부여했는데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하늘을 나는’ 장치로도 민들레를 숨겨두었다봄이 되면 민들레는 온 천지에 날아다닌다무척 아름다운 영화가 될 것 같다날지 못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와이 간지 작가는 수많은 이론과 장치와 키워드들이 날줄씨줄로 얽혀 한 벌의 완성된 옷을 만들어 내었다. 2017년 여름이라면이 책당신을 시원하게 해 줄 한 권의 책으로 서슴없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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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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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

 

한 줄 평 :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이 책이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가 쓴 책이라고 믿기까지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이 내가 좋아해서 책도 두 번이나 읽고, 영화도 두 번이나 봤던 <오베라는 남자>를 쓴 그 프레드릭 베크만이 썼다고? 놀랐지만 사실이었다.

 

작고 얇고, 책 속에 있는 글들도 그림 가득, 글 조금인 이 책은 오베를 만들어낸 프레드릭 배크만이 쓴 가장 최근의 책이었다. 책일까? 일기일까? 책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얇디얇은 이 책. 도대체 하루하루가 이별인 사람이 있기나 하는 걸까?

 

표지 그림은 다소 어지러웠다. 호수를 둘러싼 숲처럼 보이는 둥근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영어 글자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글자 때문에 그림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다. and every morning the way home gets longer and longer. 매일 아침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진다. 영어 문장과 한글 책 제목도 달랐다. 이별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인데, 하루하루 이별한다는 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않을까? 그런 책인가 보다.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주인공인 듯한 할아버지가 나오고, 역시 주인공인 듯한 아이가 나왔다. 그들은 아주 사랑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행복이 대화와 행동 속에 가득 차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행복이 찰랑거려 바깥으로 튈 것만 같았다. 노아노아. 아이의 이름을 꼭 두 번씩 붙여 부르는 할아버지 때문에 나도 책을 읽는 내내 노아노아,가 입에 붙어 버렸다.

 

이 광장이 하룻밤 새 또 작아졌구나.” (15)

 

단어로만 보면 모르는 말이 하나도 없는 쉬운 글로만 이루어진 문장이었지만, 뜬금없이 할어버지 입에서 튀어나온 이 말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고 비현실적인, 추상적이고 공허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 말이 이 책의 주제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하나의 문자이었다. 그리고 책 표지의 글자 뒤에 숨어 있는 호수 같이 보였던 그 그림이 바로 작아지고 있는 광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기억의 광장으로 날마다 가지만, 날마다 그 광장은 부피와 면적이 축소되어 갔다. 아이와의 교집합도 작아져 갔다. 그렇지만 아직 광장을 광장이라 부를 수 있고 인지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31)

 

죽기도 전에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 자신의 기억이 망각의 늪에 빠져들게 되면, 기억의 광장이 점점 작아져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면, 죽기 전에라도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잠시 요양원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가벼운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며 들어왔던 할아버지는 1년만에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족들이 면회를 와도, 사랑하는 부인이 면회를 와도, 맛있는 음식만 찾을 뿐 가족에게는 더 이상 개인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다. 그 할아버지의 광장은 더 이상 광장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씩씩하게 걸어서 들어와 음악을 틀면 흥겹게 몸도 흔들던 할아버지는 결국 휠체어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아야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의 광장은 황폐해져 녹이 슬고 쭈그러진 양은냄비처럼 되어 있었을까.

 

책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그래도 참 행복했다. 자신의 광장이 작아지는 걸 알고, 미리 준비를 하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 노아에게 말한다.

 

그래. 아주, 아주, 아주 끔찍하지. 왠지 모르겠지만 장소와 방향부터 지워지는 것 같아. 맨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잊어버리다 지금까지 어디를 지나왔는지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리고.” (107)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광장이 작아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위한 책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런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제는 광장을 공동으로 소유하지 못하는 남은 가족들을 위한 책일까? 아니면, 언제가는 그런 광장의 충격을 경험하게 될 불특정 다수를 위한 책일까?

 

프레드릭 배크만은, 아주 작고 얇은 책을 통해,

끔찍하다고 할아버지의 입으로 말한 그 증상을, 동화처럼 아름답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작가라는 능력을, 과대 사용한 혐의가 짙다.

현실은 끔찍한데, 그걸 가리려는 문학적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문학의 역할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에게 다가온 하나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면, 그는 평생 그것을 가슴에 안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광장의 효용성을, 보다 젋었을 때 최대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격려하는, 아니 사실은, 경고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문체로 젊은이들을 홀려,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 아직 광장이 존재할 때 소중이 가꾸라고 하는, 무언의 메시지다. 광장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조차 몰랐던 내게, 작가는 활자로, 그림으로,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아내, 할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내게 알려주었다. 나도 작별인사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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