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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김근우 소설 <우리의 남극 탐험기>
한 줄 평 : 황당함을 무기로 사용한 소설, 그래서 나도 한번 남극에 가고 싶다, 꿈을 가지게 만드는 소설, 남극에 가서,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곰순이도 만나고, 하늘을 나는 펭귄도 만나는 꿈을 꾸게 하는 소설.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새클턴 경도 한번 만나면 좋겠고. (한 줄 평이 좀 길어졌다.)
반가운 소설이었다. 독서록을 살펴보니 김근우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읽은 때는 작년 1월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책이었다.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하루에 한 권은 잘 나오지 않는 기록인데, 놀랍게도 이날은 김근우의 날로 다 읽었었나 보다. 그랬던 김근우였으니 얼마나 반가웠던 책인지 더 말해 무엇하랴.
우리의 남극 이야기인데, 남극은 책을 반 정도 읽어가는 150쪽을 넘어가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처럼, ‘남극’을 팔아먹은 봉이 김근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하면서 혼자 씩씩댄다. 도대체 남극은 언제 나오는 거야? 언제 떠나냐고?
그랬다. 이번 책은 서론이 참 길었다. 구구절절, 몇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애간장을 태웠다. 제목에서 말하는 남극으로 떠난 ‘우리’가 누구누구인지를 아는 데 한참 걸렸고,-물론 딱 눈치 챌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 누구누구가 왜 남극엘 가야 하는지를 알아가는데 또 남극 가는 수고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책에는 남극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하여 돌아온 새클턴 경과 이름이 똑같은 시각장애인 박사 새클턴이 나온다. 이 시각장애인 박사 새클턴이 ‘우리’의 한 명이다. 나머지 한 명은 3류대학인 무광대학에 들어간 ‘나’다. 일인칭 소설로 전개되는 이 책에서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한국이란 사회에서 루저로 살아가는 꿈도 없고 비전도 없는 ‘나’와, 기적적으로 진짜 남극 새클턴 경의 계시에 의해 다시 남극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그래서 동료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된 박사 새클턴이 남극으로 떠나게 된다. 불법적으로.
이 책은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설정 속에서, 북극에서만 볼 수 있는 북극곰을 남극에서 만나는데, 이 북극곰은 말을 할 줄 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펭귄을 만나는데 이들도 말을 할 줄 안다. 치피라는 여자곰은 남극에서 화투도 배운다. 한국의 대단한 이야기꾼으로 칭송받는 성석제나 천명관과는 또 다른 허풍쟁이 소설의 최고봉을 보여준다. 게다가 덴마크 허풍작가의 “북극허풍담” 시리즈와도 차원이 다른 허풍을 보여준다. 그는 책 후기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4개월 동안 뻥으로 작성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래서 이 출판사에게 너무나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나무야 미안해”도 이미 독자를 대신해서 다 해버린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현실을 벗어나 남극을 끝도 없이 방황한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 먹는 기절초풍할 허풍이 전작이었다면, 이번에는 남극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곰과의 여행이 압권이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허풍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에는 작가가 어록처럼 숨겨놓은(알만한 독자는 다 알겠지만) 몇 개의 메시지가 드러나 있다.
첫 번째는 위치정체성에 대한 메시지다. 새클턴 장애인 박사가 일반초등학교 화장실에서 괴롭히는 친구에게 듣는 돌직구다.
“넌 여기 왜 있는 거야?”
결국 우리는 이 질문이, 사실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임을 깨닫는다. 그게 책을 읽으며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영적 재산이다. 결국 이 책은 정체성에 관한 책이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존재론적 정체성이 아니라, “너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지리적 정체성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본다면, 이 책은 1951년 독일의 프릿츠 펄스(Fritz Perls)가 만든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지금, 여기”, 지각심리학을 소설로 옮겨 놓은 것에 해당한다. 삶이란, 신체와 정신, 그리고 환경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서로 전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개인의 심리치료를 위해서 자신과 환경을 좀더 선명하게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 대한 지각을 함으로써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저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여기 있을까. … 그러니까 내가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여기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35쪽)
주인공인 “나”는 삼류대학에서 국문학교수에게 “넌 F다”라는 폭언을 듣고, 새클턴 시각장애인 박사도 공립학교 첫 시험에서 “넌 F다”라는 선언을 듣는다. 국문학과 교수인 강교수는 그에게 한번 더 사실을 주지시킨다. “내 말은 이 세상이 이미 너에게 F를 주었다는 거다.”
이 세상에서 이미 F학점을 받고 살아가는 3류 인생인 우리들에게,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남극으로 탐험을 떠난다. 그들은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탐험이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은 아마, 끊임없는 지금, 여기에 대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메시지는, 싸움의 때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 싸워야 하는가. 왜 싸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언제 싸워야 하는가가 핵심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싸움을 좋아하지 않지만, 작가의 이 싸움론은 마음에 든다.
“이길 수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이길 수 없다면 싸워야 하는 거야.” (60쪽)
그렇다. 이미 이길 걸 알고 있다면, 결코 싸워선 안 된다. 싸움이란, 내가 진다는 것을 알 때, 그때 싸워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극 탐험에 도전한다. 실패할 줄 알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성공할 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않은가?
마지막 메시지는, 살기 위해서는 썩은 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클턴 박사는 남극에서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차마 발가락을 자르지 못했던 나는 결국 하루를 더 보내고 나서야 도끼를 집어들고 박사의 발가락을 자른다. 물론 나중에 나도 손가락을 잃고 만다. 그들은 남극 탐험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었다. 끔찍하게 동료가 도끼로 발가락을 잘라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 위가 뒤집힐 것 같지만, 포기 하지 않으려면 도끼를 휘둘러야 했다. 박사는 자신을 살려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일부를 잃고 자신의 일부를 되찾았다. 신체의 일부를 잃고 자신의 위치와 존재 목적을 되찾았다. 자신이 자신인 것을 되찾았다. 세상이 자신에게 내려준 F학점을 내던지고, 자기가 자기의 학점을 매기는,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
결국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자기 탐험의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뻥으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준 김근우 작가에게 감사하며, 긴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