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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델라이언 ㅣ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평점 :
한 줄 평 : 민들레의 쌉싸르한,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주는 멋진 추리물
가와이 간지. 히가시노 게이고로 인해 일본 추리문학 장르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계보나 작품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에서, 가와이 간지를 만났다. 이미 그를 알고 있는 독자들은 <데드맨> <드래곤플라이> 등에서 팬의 자리를 확고히 한 듯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가부라기 특수반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이번 <단델라이언>을 반겼고, 또 아쉬워했다.
이야기는 16년 전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한 여대생이 16년이 지나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목축농가의 샤일로에서 공중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환경운동을 펼치는 대학교 동아리에 가입했던 여자 주인공 하니타 에미. 민들레를 좋아했고, 엄마로부터 들은 하늘을 나는 소녀, 민담에 빠져 진짜 하늘을 날고 싶었던 여자. 그러나 그녀는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16년 동안, 그렇게.
이 책은 일본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당이 폭력투쟁을 포기하면서 정치권 내로 들어서고, 그를 반대하는 극렬주의자들이 대학을 무무대삼아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적색에서 녹색으로 운동의 흐름을 바꾸고 명맥을 이어왔다. 국가는 그들이 언젠가 본래의 적색으로 바뀔 것이라 보고 예의주시해왔다.
원전 반대 운동의 도구로 민들레의 기형 사진이 이용되고, 사건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다. 사건은 그 중요성과 괴이함으로 인해 일반 형사가 아니라 공안이 담당하는 사건으로 바뀌지만, 주인공 형사팀은 예리한 추적으로 공안 담당자의 약점을 파헤쳐 그들과 함께 수사하게 된다. 그리고 셋으로 늘어난 사건의 결국을 모두 꿰어 맞추고 반전으로 사건을 종결시킨다.

민들레는 우리 민족에게도 참 익숙한 들꽃이다. 민들레도 토종과 외래종이 있는데 이 부분은 단델라이언 책에도 나온다. 그렇지만 단델라이언의 국적인 일본에서는 일본 토종이 되니 우리랑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흰색 민들레는 모두 토종 민들레이고, 노란색 민들레의 경우 토종과 외래종이 섞여 있는데 대부분 외래종이라고 한다. 외래종의 유전자가 더 뛰어나 토종과 결합하면 모두 외래종이 태어난다고 한다. 토종은 꽃을 떠받치는 총포가 위로 향하는데 외래종은 모두 아래로 향하고 있어 구분은 쉽게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기형 민들레 사진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 쓰나미 발생 이후 일본 원전 지역 주변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는 기형 민들레 사진이 대화현상(fasciation)의 일종이며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또 하나의 반전 키워드로 사용했다. 과학적 치밀함이 엿보인다. 대화현상을 검색하고 책에서 말한 맨드라미에 대한 부분도 확인했다. 다만,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가 사람에게 잘 발견되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원전에 의한 기형 식물이라고 광고해도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갔던 부분인데, 대화현상의 일종이고 일반적인 것이라고 치부하고 너무 쉽게 넘어간 것이 좀 아쉬웠다. 그렇게 일반적인 것이라면 사람들 눈에 많이 자주 띄어야 하고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고, 독자들을 흥미롭게 하고, 또 반전을 통해 독자의 궁금증을 과학적으로 씻어준다. 그 반전이 엉뚱하지 않고, 예상을 뛰어넘되 일어날 수 있는 장치들 안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작가의 천재적인 필력이 놀랍고 흥분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모든 서평이 그렇지만, 추리소설은 특히 더 이야기의 줄거리를 서평 속에 담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 책이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델라이언은, 개방형 밀실,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며, 단번에 그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밀실 사건은 당연히 모든 것이 막힌 폐쇄형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범인이 들어온 곳도, 나간 곳도 없는데 사건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두 개의 사건이 밀실과 유사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차이점이 있다면, 하늘. 범인이 하늘로 도망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만 빼놓고는 밀실형 사건과 동일하다.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정진리화하면, 이 책은 갑자기 오리무중에 빠진다. 그러니까, 이러한 장치는 장르소설을 의심케 하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이 판타지가 아니고 일반 추리물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이 진짜 하늘을 날 수 있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매우 성공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셈이다. 그래서 더욱 뛰어난 작품이다. 진짜 판타지가 아닌지는 직접 읽어보시길....
환경보호, 원전반대, 플라스틱 병뚜껑, 아프리카 아동 돕기, 민들레, 민들레의 꽃말, 민들레의 원어, 쌍둥이, 극좌세력, 공안경찰, 싸이펀 이론, 베르누이 이론, 식물의 대화현상, 기모노 소매의 비밀.
다양한 키워드가 책 속에서 펼쳐지고, 조합되고, 모이고 사라진다. 하나의 단편적인 플롯으로, 단편적인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주제들이 그저 건성으로 흉내만 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고 연출되며, 하나하나 사용되어 마지막에 독자로 하여금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 들판에 자라나는 민들레, 고들빼기 등을 아침마다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적이 있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두부와 함께 쌈으로 먹었다. 약간 썼지만 꽤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확 떨어진 경험도 했다. 그래서 책 도입부의 민들레 나라,라는 유토피아의 시작은 매우 흥분되었고, 기대가 되었다. 물론 그 기쁨은 더 배가되었고 마지막에는 책을 덮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약간 싱거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예술적 감각도 매우 뛰어나다. 만약 이 책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면, 내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하얀 민들레 홀씨(사실은 홀씨가 아니지만)가 하나둘 하늘로 날아간다. 하늘로 날아가는 씨앗 하나가 여주인공으로 변하고 여주인공은 나비처럼 사뿐사뿐 하늘로 날아 올라가 점이 된다.

민들레는 환경적인 키워드로도 사용되었지만, 하늘을 나는 키워드로도 사용되었다. 작가는 매우 복합적인 암시를 민들레에 부여했는데,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하늘을 나는’ 장치로도 민들레를 숨겨두었다. 봄이 되면 민들레는 온 천지에 날아다닌다. 무척 아름다운 영화가 될 것 같다. 날지 못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와이 간지 작가는 수많은 이론과 장치와 키워드들이 날줄, 씨줄로 얽혀 한 벌의 완성된 옷을 만들어 내었다. 2017년 여름이라면, 이 책, 당신을 시원하게 해 줄 한 권의 책으로 서슴없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