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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집사 ㅣ 직분자 시리즈 2
박성규 지음 / 익투스 / 2024년 4월
평점 :
사실 처음 책을 볼 때는 그랬다. 책이 얇네.
표지를 넘기니 _____님께 _______드림. 이 나온다.
아하, 이거 교회에서 직분자들에게 선물로 주라고 만든 책인가 보다.
나쁘진 않네.
딱 이 정도 느낌이었다.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교회에서 선물하기 딱 좋은 책. 그렇다면 이런 책은 받긴 받으나 그냥 어딘가 책상 구석에서 먼지나 쌓이면서 졸고 있을 책.
그랬는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스티커를 붙이고 밑줄을 긋는 곳이 점점 많아졌다. 아, 이거, 그냥 쓴 책이 아니구나. 박성규 목사님이 작심하고 쓴 책이구나.
사실 나는 부산의 부전교회에서 유초등부와 대학 청년부를 다녔다. 부전교회는 내 모교회다. 한병기 목사님과 신예철 목사님을 거쳐 가장 현대적인 후임 목사님으로 오셨던 분이 박성규 목사님이었다. 나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었지만, 명절날 부산 집에 갔다가 주일이 겹치면 부전교회에 가서 박성규 목사님 설교를 듣곤 했다.
설교를 참 잘하셨다. 누구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교의 틀을 딱 가지고 계셨다. 그 설교의 틀이 이 책에서도 고스란이 느껴진다.
아니 '집사'라는 단어 하나로 어떻게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성경책에서도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논하고 있지 않은데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얼마나 많은 자료와 책을 인용하며 참된 집사에 대하여 강론하시는지, 하나도 놓치거나 버릴 게 없는 책이다.
가장 먼저, 우리가 계급처럼 인식하고 있는 장로와 집사의 차이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해 주신다. 장로와 집사의 차이는 은사의 차이지 결코 계급이나 직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집사를 해야 장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젊은 시절 서리집사로 진해 모 교회에서 섬기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 장로 후보로 추천하셔서 매우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목사님께서도 안수집사가 장로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하셨다.
장로와 집사는 기능과 은사의 차이입니다. … 바울은 장로가 되기 위해서 먼저 집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장로와 집사의 차이는 계급이 아닌 기능의 차이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르치는 은사와 행정의 은사가 있고, 디모데전서 3장 1~7절에 언급된 자질이 있다면 장로가 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가르치는 은사와 행정의 은사는 없지만 섬기는 일을 즐거워한다면, 집사가 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10)
그리고 집사라는 말은 명예직이 아니라 섬기고 돕는 봉사자라고 집사의 역할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집사는 명예직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집사라는 말 자체가 일을 잡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로 집사는 '디아코노스'로서 그 뜻은 '종', '돕는 자', '식사를 돕는 웨이터'입니다. 봉사해야 진정한 집사입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봉사해야 합니다. (14)
그렇다. 집사는 봉사하는 자리이다. 리더이긴 하지만 섬기는 리더다. 항존직 집사는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섬기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장립 집사는 시간과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성도를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얼마나 어깨가 무거워지는 말인가. 내가 집사로 교회를 섬긴다 할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헌신에 임했는가, 실로 부끄러워졌다. 저자는 나아가 집사는 사무(四無)의 삶이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 뜻이 없어야 하고, 자기 돈이 없어야 하고, 자기 자식이 없어야 하고, 자기 생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것이 바로 이런 사무의 삶이라고 하는데, 정말 오싹했다. 나는 정녕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저자는 카일 아이들만 목사님이 쓴 <거짓 신들의 전쟁>을 인용해 현대인이 음식의 신, 섹스의 신, 오락의 신, 성공의 신, 돈의 신, 성취의 신, 로맨스의 신, 가족의 신, '나'라는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왜 사무(四無)의 을 살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찬송하지 않으면 예수님과의 유기적 관계, 생명의 연합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더라도, 그때 주신 감동에 순종하지 않으면 유기적 관계, 생명의 연합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28)
또한 참된 집사는 예수님과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이를 통해 생명의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유기적 관계가 되려면 말씀, 기도, 찬송이 필연적이다. 이를 등한시하고 교회 봉사만 한다고 하면 이는 참된 집사의 모습이 아니다. 겉으로는 헌신적으로 보일지라도 영적으로 그는 부패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언젠가 그는 상처를 주거나 받거나 떨어져 나갈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집사의 출발점과 종착점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집사의 출발점은 가정이어야 하며, 종착점은 자신의 일터라고 말한다. 그래서 출발점인 가정에서 본을 보이지 않으면 그는 실패한 집사가 된다.
집사 사역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어디일까요? 우리는 교회에서만 집사로 살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사의 출발점은 가정이며 교회를 거쳐 일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즉 집사 사역의 종착점은 일터(직장, 사업)입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집사답지 못하다면 그의 사역은 반토막 사역이 될 것입니다. (144)
그러면서 집사가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영적으로 돌보는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고 경고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정말 가장 필요하고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정과 분리된 집사의 모습은 참된 집사가 아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회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다른 부모님 때문에 한창 방황을 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 그만큼 가정에서 본이 되는 모습이 중요하다.
가정에서 아내를 섬기고 자녀를 섬겨야 합니다. 그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가정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고 교회에서만 집사의 사역을 하는 것은 사상누각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자신이든, 아내든, 자녀든, 누군가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149)
우리 모든 성도는 이 땅의 청지기다. 하나님께서 집사의 직분을 주셨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속에서 언제나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평생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와 므나를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