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 결정으로 내가 선한 사람이 되고, 이타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고, 장기기증을 서약하지 않은 사람은 악한 사람이 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곤란하다.
나는 죽어서 이 세상에 내가 기억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육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가령 시신이 의학대학에서 인턴들에게 경외를 받지 못한 채, 실습도구로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진다 해도, 물론 그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 지구상에 0.001%의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다. 살아서 기여하지 못한 부분을 죽어서라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결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일부 종교들은 시신을 화장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또 다른 책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어보면, 시신 기증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거룩하거나 존경을 받는 행위가 아님을, 책을 읽고 나서 장기기증을 포기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책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역시 시신을 기증한다는 것이 남겨진 자,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를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압권은 6개의 장기를 적출해 간 각 병원에서 특히 심장을 적출해 간 병원에서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해 넣는 수술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생생한 묘사는 실제 수술실에 들어가서 관찰하는 것만 같다.
장기 기증과 수증의 의미에서 저자는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개념 하나를 정리한다. 즉 장기 기증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
그녀가 생각한다. 이런 일에 있어서 기증자라는 건 없어. 그 누구에게도 기증을 하려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312쪽)
이런 일에 있어서는 그렇다. 왜냐하면 뇌사상태에 빠진 젊은이는 생전에 결코 그 의사를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식해준다는 장기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수증자가 아니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선”이라는 의미의 방점은 심장을 이식받는 환자의 생각에서 찍힌다. 그녀는 자신의 진짜 심장은 어떻게 처리될까?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결국 자신을 살아있도록 지탱했던 그 심장은, 수선도 되지 않아 폐기처분 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실존적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번역자는 이 책이 참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숨이 가빠 올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과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문장들의 어지러운 갈마듦, 현학적이고 전문적인 어휘들과 일상어 혹은 비속어들의 혼재, 문장의 흐름을 툭툭 끊어 놓으며 복잡하게 가지쳐 나가는 무수한 연상의 난입, 서핑이나 카누 제작에 대한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심장 이식 수술과 관련된 전문적 지식의 나열 등으로 점철된 텍스트의 번역 작업은, 어순이나 어휘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어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번역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 다가올 정도였다.” (346쪽)
번역자의 이 글에서, 이 책의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쉽게 호르륵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참고 읽어나가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켜 준 작가와,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시, 영혼의 육체의 경계에서 실존의 의미를 고민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