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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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

 

한 줄 평 :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이 책이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가 쓴 책이라고 믿기까지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이 내가 좋아해서 책도 두 번이나 읽고, 영화도 두 번이나 봤던 <오베라는 남자>를 쓴 그 프레드릭 베크만이 썼다고? 놀랐지만 사실이었다.

 

작고 얇고, 책 속에 있는 글들도 그림 가득, 글 조금인 이 책은 오베를 만들어낸 프레드릭 배크만이 쓴 가장 최근의 책이었다. 책일까? 일기일까? 책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얇디얇은 이 책. 도대체 하루하루가 이별인 사람이 있기나 하는 걸까?

 

표지 그림은 다소 어지러웠다. 호수를 둘러싼 숲처럼 보이는 둥근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영어 글자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글자 때문에 그림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다. and every morning the way home gets longer and longer. 매일 아침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진다. 영어 문장과 한글 책 제목도 달랐다. 이별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인데, 하루하루 이별한다는 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않을까? 그런 책인가 보다.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주인공인 듯한 할아버지가 나오고, 역시 주인공인 듯한 아이가 나왔다. 그들은 아주 사랑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행복이 대화와 행동 속에 가득 차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행복이 찰랑거려 바깥으로 튈 것만 같았다. 노아노아. 아이의 이름을 꼭 두 번씩 붙여 부르는 할아버지 때문에 나도 책을 읽는 내내 노아노아,가 입에 붙어 버렸다.

 

이 광장이 하룻밤 새 또 작아졌구나.” (15)

 

단어로만 보면 모르는 말이 하나도 없는 쉬운 글로만 이루어진 문장이었지만, 뜬금없이 할어버지 입에서 튀어나온 이 말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고 비현실적인, 추상적이고 공허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 말이 이 책의 주제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하나의 문자이었다. 그리고 책 표지의 글자 뒤에 숨어 있는 호수 같이 보였던 그 그림이 바로 작아지고 있는 광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기억의 광장으로 날마다 가지만, 날마다 그 광장은 부피와 면적이 축소되어 갔다. 아이와의 교집합도 작아져 갔다. 그렇지만 아직 광장을 광장이라 부를 수 있고 인지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31)

 

죽기도 전에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 자신의 기억이 망각의 늪에 빠져들게 되면, 기억의 광장이 점점 작아져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면, 죽기 전에라도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잠시 요양원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가벼운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며 들어왔던 할아버지는 1년만에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족들이 면회를 와도, 사랑하는 부인이 면회를 와도, 맛있는 음식만 찾을 뿐 가족에게는 더 이상 개인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다. 그 할아버지의 광장은 더 이상 광장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씩씩하게 걸어서 들어와 음악을 틀면 흥겹게 몸도 흔들던 할아버지는 결국 휠체어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아야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의 광장은 황폐해져 녹이 슬고 쭈그러진 양은냄비처럼 되어 있었을까.

 

책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그래도 참 행복했다. 자신의 광장이 작아지는 걸 알고, 미리 준비를 하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 노아에게 말한다.

 

그래. 아주, 아주, 아주 끔찍하지. 왠지 모르겠지만 장소와 방향부터 지워지는 것 같아. 맨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잊어버리다 지금까지 어디를 지나왔는지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리고.” (107)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광장이 작아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위한 책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런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제는 광장을 공동으로 소유하지 못하는 남은 가족들을 위한 책일까? 아니면, 언제가는 그런 광장의 충격을 경험하게 될 불특정 다수를 위한 책일까?

 

프레드릭 배크만은, 아주 작고 얇은 책을 통해,

끔찍하다고 할아버지의 입으로 말한 그 증상을, 동화처럼 아름답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작가라는 능력을, 과대 사용한 혐의가 짙다.

현실은 끔찍한데, 그걸 가리려는 문학적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문학의 역할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에게 다가온 하나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면, 그는 평생 그것을 가슴에 안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광장의 효용성을, 보다 젋었을 때 최대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격려하는, 아니 사실은, 경고하는, 아름다운 그림과 문체로 젊은이들을 홀려,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 아직 광장이 존재할 때 소중이 가꾸라고 하는, 무언의 메시지다. 광장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조차 몰랐던 내게, 작가는 활자로, 그림으로,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아내, 할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로 내게 알려주었다. 나도 작별인사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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