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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고양이와 문제아 - 제6회 푸른문학상 동시집 ㅣ 시읽는 가족 7
김정신 외 지음, 성영란 외 그림 / 푸른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만 미워하는 엄마 - 곽해룡
길을 가다 동생이
"엄마, 개미" 하면
"개미가 우리 미소랑 친구하고 싶은가 보네."
하며 동생 옆에 나란히 앉는 엄마
길을 가다 내가
"엄마, 지렁이" 하면
"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하며 눈을 흘기는 엄마
나뭇잎에 달린 빗방울 보고 동생이
"엄마, 나뭇잎에 눈물이 달렸어!" 하면
"나무가 슬픈 일이 있나 보네."
하며 동생 등을 토닥여 주는 엄마
방충망에 달린 노린재를 보고 내가
"엄마, 노린재가 나랑 놀고 싶은가 봐!" 하면
"너, 공부 안하고 뭐하니!"
하고 소리 지르는 엄마
들켰다, 너 때문에 - 김정신
엄마 몰래 숨겨 둔 시험지
동생 몰래 숨겨 둔 과자
친구 몰래 숨겨 둔 비밀
들킬까 조마조마
밥 먹으라고 문 여는 엄마 기척에
빨개진 두 볼아
호기심 많은 내 동생 서랍 열 때
쿵쾅거린 가슴아
내 눈 빤히 보는 친구 눈동자에
깜박거린 눈동자야
들켰다, 너 때문에!
복수
어느 날,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내 아이를 혼내지 않을 거야.
공부하라는 말도 안하고
반성문 쓰라고 하지도 않을거야
심부름도 시키지 않고
소리도 지르지 않을거야.
나같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어른들께 칭찬받으면
엄마가 나에게 물어 보겠지?
"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웠어요?"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할거야.
"민수 엄마 반대로 키웠죠."
다른 걱정
"또 빠졌어!"
머리 감는 아빠는 몇 안되는 머리카락이
또 빠져서 걱정
"또 빠졌어?"
밥은 하던 엄마는 비싼 발모제 때문에
돈 들어갈까 걱정
"또, 빠졌어?"
지켜보던 나는 숱 적은 내 머리카락이
언제 빠질지 몰라 걱정
중독 가족 - 조향미
밥숟가락 내려놓자
아빠는 담배 물고
밖으로 슬그머니
밥숟가락 내려놓자
엄마는 커피주전자에
물 받아 보글보글
동생은 숟가락대신
리모컨 거머쥐고
좋아서 헤벌쭉
쯧쯧쯧
집안 돌아가는 꼴이……
기분도 그런데
게임이나 한판 할까.
놀이터 - 박영식
집에 가도
불 꺼진 우리 집
엄마도 아빠도 아직 안 계셔
어둠이 덮어오지만
정말 집에 가기 싫어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조금만 더 놀아 줬으면
조금만 더 말동무 돼 줬으면 ……
자동우산 -정연철
비오는 날
엄마랑 단둘이
우산 쓰고
걸어갈 때마다
우산은
내쪽으로만 기우뚱
엄마 한쪽 어깨
한쪽 팔뚝
한쪽 다리
비 흠뻑 맞아도
우산은 모르는 척
자동으로
기우뚱
어느 날 든 생각 -이옥용
필리핀 바나나
미국 오렌지
중국 땅콩
노르웨이 고등어
이란 무화과
한국 쌀
나같이 여러 나라의 것을 먹는 애들도 있겠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먹는 게 같으면
나중에 만났을 때 알아볼까?
생김새가 조금씩 닮아 있을까?
"빨리 안 먹고 뭐 하니?"
"알았어요, 엄마!"
게임에게 따지다 - 한선자
널 몰라야 했어
널 아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금이 가기 시작한 거야
내가 널 몰랐던들
공부할 시간에 이러고 있겠니?
책이라도 한 장 더 보는 건데
문제집이라도 하나 더 푸는 건데
자전거라도 한번 더 타는 건데
엄마 심부름이라도 해 드리는 건데
너 때문에
나는 이제 그런 일을 다 잊고 살아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었어
지지리도 속 썩이는 아이가 되었지
틈만 나면 너를 붙들고 살아
아니 너만 생각해
이거 확실히 병 아니니?
나 어떡할래?
책임질 거야?
뭐, 내 잘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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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주변의 사물과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와 우리 가족,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온 것 같아 미소 지어진다. 나 같아서 유쾌하고 은근히 압박해오는 마음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