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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하트 신드롬 - 개정증보판
심이령 지음 / 청어람 / 2015년 11월
평점 :
책을 읽기 전 나는 이미 책의 엔딩까지 알고 있었다.
훨씬 전 이북으로 출간되었던 글이었던데다가 워낙에 많이 회자되는 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다고 해야겠다.
덕분에 리뷰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분명 읽는 내내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게 너무 당연한 소재의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로 글을 읽는 내내 나는 하염없이 생각하고 종종 번뇌했다.
그녀의 생각을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내내 종종걸음쳐야 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장면마다 나를 스쳐지나고 의문과 깨달음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놀랍게도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단한마디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 無의 상태에 이르렀다.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생각과 말들을 나에게서 양산해 냈던 글은 마지막장을 덮고나자 침묵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저 한권의 책으로 완벽하다.
나의 말 까지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냥 읽는대로 느끼고 느끼는대로 받아드이고 그렇게 지켜보는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글이다.
당신이 생각했던 로맨스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꿈꾸던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쯤은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사랑이다.
우리가 꿈꾸던 로맨스, 우리가 생각했던 빛나는 사랑의 또다른 그늘진 단면을 외면할 수는 없을것 같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찬란한 슬픔이 아닌, 공허하고 텅비어버린 독백같은 슬픔.
이토록 잔인하고 이토록 허무한 사랑이라니.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랑의 그 날카로운 파괴의 고통을 관통하는 이 글을 나는 사랑하게 될것 같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읽고 사랑의 허상에 매말라가던 은서를 보면서 느꼈던 그 공허감.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기고 갔던 그 글처럼 '브로큰 하트 신드롬'도 내게 한동안 벗어나기 힘든 허기진 여운을 남겨놓았다.
결국 다음 글인 '검은 센토르'도 구입했다.
아마도 이 작가는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사랑의 어두움이 할퀴고간 순간들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 어두움 속에서 이번엔 무엇이 튀어나올까.
나는 짐짓 설레이기 까지 하다.
그녀가 들려줄 사랑의 이면을 이번에도 나는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가로질러 관통해야겠다.
< 이 글의 리뷰는 완전한 스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마도 서평단 도서가 아니였다면 나는 아예 리뷰조차 쓰지 않았을것 같다.
하지만 리뷰를 써야만 하는 나는 고민고민하다 꾸역꾸역 머릿속을 뒤져 책을 읽는동안 떠올렸던 수많은 말들을 꺼내 놓기로 했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이라 어쩌면 두서가 없어....리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지금부터 쓸 글에는 엔딩마저 완벽하게 스포를 하는 만행을 좀 저질러야겠다.
스포따위에 글의 가치를 훼손당할 글이 어차피 아니기에 대놓고 스포를 쓰면서도 그닥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기도 하다.
스토리를 아는게 이 글에 무슨 영향을 미칠까? 애초에 스토리로 읽는 글은 아닐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꼭.
이미 책을 읽으신 분들만 밑에 리뷰를 보셨으면 좋겠다.
스토리를 빼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나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좀 이해해주기를. >
어느날 갑자기 내가 기억에 조차 없는 성폭행의 피해자 라는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당신은 어떤 마음과 감정과 정신으로 살게 될까.
발딛고 선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허공을 딛고 선것만 같은 불완전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던 은수.
그녀의 인생은 내내 꽁꽁 얼어붙은 강위를 걸어내는 삶이었다.
얇은 얼음하나를 두고 언제 차가운 죽음과 조우하게 될지 모르는 삶의 연속 .
발 딛는 곳 어디가 쩍하고 갈라져 금이 가버릴지 모르는 얼음위의 불안한 걸음.
숨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힘있는 걸음 한번 내걷지 못하는 미끄럽고 불안하기만한 얼음위에서 그럼에도 살아내고자,
단단한 땅위에 닿기를 열망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고단한 그녀의 하루 하루가 안쓰러웠다.
그 안온하고 단단해보이는 대지를 그녀는 무형의 품속에서 보았던 것 같다.
찰라의 착각이거나 허상이었는지는 모르나 무형을 사랑했던 수많았던 여자들이 보았던 그것을.... 그녀들이 내내 열망하며 그 안에 들어가기를 소원했던 그 공간속에 분명 은수는 발걸음 했었었다.
단지 그 방의 주인이었던 무형이 그 사실은 지나치게 늦게 깨달았을 뿐.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허무로 으스러져버릴 수 밖에 없었지만, 불꽃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불나방같은 그녀들의 삶 조차 이해 될것만 같았다.
실제였던, 허상이었던, 그들이 원했던 것은 오로지 한사람만 담아 온전히 지켜낼 것만 같았던 그 공간에 대한 목마름 이었을 테니까.
불안한 우리들은 늘 실제하는지 알수 없는 그 완벽하게 안온한 공간과 무한한 자비를 꿈꾸며 살아가니까.
무형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 나도 그 심연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16살의 삶을 보상받고 싶었을지 모를 은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잔인한 순간들이 제게 일어났음을 인정하는 순간 발작적인 울음을 토해내며 무너져 내린다.
그 전의 삶과 그 후의 삶이 어찌 똑같을 수 있을까.
조금씩 변해가는 그녀는 더 당당해지려하고, 스스로의 매력을 더 드러내려 애쓴다.
자신에게 그런짓을 한 사람들 중에 하나인 승모(현남자친구)와 침묵으로 눈감아버린 무형(남자친구의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성폭행을 한 그 범인과 연인인 관계를 유지하며 참아내는 은수의 마음은 16살 그때보다 더 처참하게 난도질 되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자신을 더 많이 깊이 사랑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은수를, 가장 깊은 상처를 낼수 있기를 열망하는 은수를....우리는 이해해줘야겠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안타깝거나 애처롭더라도....그 잔인한 상처를 정면으로 관통해내려 애쓰는 그녀를 나는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받았을때
그 상처를 꽁꽁 숨겨두고 두번다시 돌아보지 않는것으로 잊으려 하는 사람도 있고,
토하고 토해내서 눈앞에서 바라보며 내내 스스로를 찔러가며 의연해지려는 사람도 있다.
은수는 아마도 그래서 무형의 앞에서 그토록 경악할만한 대사들을 툭툭 뱉어낸게 아니였을까.
너의 침묵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똑바로 쳐다보라고, 니가 무슨 짓을 한건지.
그 고통속에 서서 내가 스스로를 찔러가며 피흘리는걸 너도 똑바로 바라보라고.
그 과정의 어디쯤.....
어쩌면 그녀에겐 보이고 싶지 않았을...혹은 일부러 더 보여주고 싶었을 바닥이었던 순간중에 하나를 내보이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그 앞을 찾아가서 수줍게 웃어 보이던 은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어느날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버렸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난도질 당한것만 같던 그날, 나는 거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싶었던것 같다.
어쩌다 나는 이 암흑속을 걷고 있는지.
누가 나를 이 어둠속에 내팽개쳐두고 있는건지.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쌍욕을 마구 퍼붓고 싶었던 그날,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 눈부시게 밝은 아침햇살을 받으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이 하고 싶었다. 상처 받지 않은 척이 하고 싶었던것 같다.
감히 너 따위가 나를 상처 낼수 없다고.
상대방 보다도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것 같다.
자고 나면 잊어버릴만큼 내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을 떠올렸을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만큼 창피해졌다.
그사람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백치의 무뇌아 정도로 생각했을까?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 웃음이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당화 시켜준 꼴이 되어버려서 기막힌 웃음만 났다.
차라리 목을 조를 일이지.
진짜 나쁜건 너라고 소리를 지를 일이지.
그로인해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똑똑히 보여줄 일이지..... 비겁하게 나는 상처 받지 않은 척을 했다.
상처를 보여주는 일에 나는 왜 겁을 냈을까.
뻔뻔하지도 못한 주제에 치기어린 뻔뻔함을 애써 가장하며 글 속의 은수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날의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뻔뻔함으로 감추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도저히 글로는 설명해낼수 없을 것만 같은 복잡미묘한 그 순간의 감정이 은수를 통해 다시 되살아 났다.
그자리에 서 있는 은수가 그런 감정을 끌어 안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고.
물론 그녀는 표면적으로 '복수'가 그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지만....과연 오로지 그 감정 하나였을까.
..........정말?
끝끝내 그 감정의 잔재들을 하나의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은 작가님에게 슬쩍 눈을 흘겨본다.
글을 감싸는 모든 감정들의 이중성과 모호함에 대한 시원한 답변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만 의문으로 남아있는 것인가.
끝까지 이기적이었을 뿐인, 유일하게 모든 감정이 선연하게 내보여졌던 승모는
그렇게 이기적으로 죽어버렸고,
남겨진 무형을 결국에는 용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은수와 유일하게 '섹스'가 아닌 '연애'의 대상으로 은수를 생각하게 된 무형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불과 50페이지 정도를 남겨놓은채 진짜 '로맨스'라고 부를만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은수가 상처를 관통해 삶을 살아내려는 몸부림이 이야기의 4분의 3이었다면
'브로큰 하트 신드롬' 이라는 제목에 맞닿은 그 사랑의 이야기는 바로 이 몇장 남지 않은 뒷부분에 등장한다.
내내 '섹스'만 하는 남자 무형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무거운 남자이지만
그래서 더 잔인하고 더 무서운 침묵의 방관자이다.
자신을 열망하다 으스러져가는 여자들의 삶을 바라볼때도 무표정한 그가 유일하게 표정이라고 부를만한 감정들을 얼굴에 띄우는 순간은 늘 은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이었는데....그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사랑인채로 유지되기 위해 신뢰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방치된 사랑속에 버려진 은수는 또다시 침묵의 방관자에게 처참히 살해 당했다.
때론 진실보다 침묵이 더 큰 무게의 상처가 된다.
그 잔인한 침묵이 은수를 두번이나 죽게 만들었다.
망설임 없이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던 경쾌한 은수의 구둣소리는 무거웠던 그녀의 삶에 대한 가장 가벼운 인사가 아니였을까.
금이 가기 시작한 살얼음 위에서 유일했던 구원의 손을 잃어버린 은수가 결국에는 죽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낸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 아니였을까.
단지,
뒤늦게 깨닫게 된 단하나의 사랑을 잃어버린 무형이 선택한 죽음이 씁쓸했다.
그는 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텅비어있는 채로도 삶을 꾸역꾸역 살아 낼수도 있을것만 같았는데.....
역시나 애초에 없는 채로 살아가는것과 이미 가졌던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는것은 너무도 다른 것이었던가 보다.
잔인한 사랑의 이면이
고통과 허무로 점철된 사랑의 모습이
그래서 더....큰 파장을 일으킨다.
"복수를 하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듭니까?"
무형의 이 두번의 독백때문에 나는 끝까지 무형이 조금도 밉지 않았다.
그냥 '사랑'이 잔인했던 것이지, 무형이 잔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본다.
그들의 사랑이 당신에게는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가.
나는 궁금하다.
은수와 무형을 만났을 당신의 마음이.
p. 350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머리를 비우려 해도 절로 떠오르는 상념과 싸우며, 은수는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서 다만 버티고 있다, 생각했다.
사실 시간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죽은 시간이라고 말이다.
------------------------------------------------------------- 브로큰 하트 신드롬 中에서.
지금 이순간, 여전히 죽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곧, 치유의 시간이 시작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