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하트 신드롬 - 개정증보판
심이령 지음 / 청어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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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나는 이미 책의 엔딩까지 알고 있었다.

훨씬 전 이북으로 출간되었던 글이었던데다가 워낙에 많이 회자되는 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었다고 해야겠다.

덕분에 리뷰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분명 읽는 내내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게 너무 당연한 소재의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로 글을 읽는 내내 나는 하염없이 생각하고 종종 번뇌했다.

그녀의 생각을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내내 종종걸음쳐야 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장면마다 나를 스쳐지나고 의문과 깨달음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놀랍게도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단한마디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 無의 상태에 이르렀다.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생각과 말들을 나에게서 양산해 냈던 글은 마지막장을 덮고나자 침묵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저 한권의 책으로 완벽하다.

나의 말 까지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냥 읽는대로 느끼고 느끼는대로 받아드이고 그렇게 지켜보는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글이다.

당신이 생각했던 로맨스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꿈꾸던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쯤은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사랑이다.

우리가 꿈꾸던 로맨스, 우리가 생각했던 빛나는 사랑의 또다른 그늘진 단면을 외면할 수는 없을것 같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찬란한 슬픔이 아닌, 공허하고 텅비어버린 독백같은 슬픔.

이토록 잔인하고 이토록 허무한 사랑이라니.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랑의 그 날카로운 파괴의 고통을 관통하는 이 글을 나는 사랑하게 될것 같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읽고 사랑의 허상에 매말라가던 은서를 보면서 느꼈던 그 공허감.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기고 갔던 그 글처럼 '브로큰 하트 신드롬'도 내게 한동안 벗어나기 힘든 허기진 여운을 남겨놓았다.

결국 다음 글인 '검은 센토르'도 구입했다.

아마도 이 작가는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사랑의 어두움이 할퀴고간 순간들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 어두움 속에서 이번엔 무엇이 튀어나올까.

나는 짐짓 설레이기 까지 하다.

그녀가 들려줄 사랑의 이면을 이번에도 나는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가로질러 관통해야겠다.  



 

< 이 글의 리뷰는 완전한 스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마도 서평단 도서가 아니였다면 나는 아예 리뷰조차 쓰지 않았을것 같다.

하지만 리뷰를 써야만 하는 나는 고민고민하다 꾸역꾸역 머릿속을 뒤져 책을 읽는동안 떠올렸던 수많은 말들을 꺼내 놓기로 했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이라 어쩌면 두서가 없어....리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지금부터 쓸 글에는 엔딩마저 완벽하게 스포 하는 만행을 좀 저질러야겠다.

스포따위에 글의 가치를 훼손당할 글이 어차피 아니기에 대놓고 스포를 쓰면서도 그닥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기도 하다.

스토리를 아는게 이 글에 무슨 영향을 미칠까? 애초에 스토리로 읽는 글은 아닐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꼭.

이미 책을 읽으신 분들만 밑에 리뷰를 보셨으면 좋겠다. 

스토리를 빼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나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좀 이해해주기를.​ >


 


어느날 갑자기 내가 기억에 조차 없는 성폭행의 피해자 라는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당신은 어떤 마음과 감정과 정신으로 살게 될까.

 

발딛고 선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허공을 딛고 선것만 같은 불완전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던 은수.

 

그녀의 인생은 내내 꽁꽁 얼어붙은 강위를 걸어내는 삶이었다.

얇은 얼음하나를 두고 언제 차가운 죽음과 조우하게 될지 모르는 삶의 연속 .

발 딛는 곳 어디가 쩍하고 갈라져 금이 가버릴지 모르는 얼음위의 불안한 걸음.

숨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힘있는 걸음 한번 내걷지 못하는 미끄럽고 불안하기만한 얼음위에서 그럼에도 살아내고자,

단단한 땅위에 닿기를 열망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고단한 그녀의 하루 하루가 안쓰러웠다.

 

그 안온하고 단단해보이는 대지를 그녀는 무형의 품속에서 보았던 것 같다.

찰라의 착각이거나 허상이었는지는 모르나 무형을 사랑했던 수많았던 여자들이 보았던 그것을.... 그녀들이 내내 열망하며 그 안에 들어가기를 소원했던 그 공간속에 분명 은수는 발걸음 했었었다.

단지 그 방의 주인이었던 무형이 그 사실은 지나치게 늦게 깨달았을 뿐.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허무로 으스러져버릴 수 밖에 없었지만, 불꽃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불나방같은 그녀들의 삶 조차 이해 될것만 같았다.

실제였던, 허상이었던, 그들이 원했던 것은 오로지 한사람만 담아 온전히 지켜낼 것만 같았던 그 공간에 대한 목마름 이었을 테니까.

불안한 우리들은 늘 실제하는지 알수 없는 그 완벽하게 안온한 공간과 무한한 자비를 꿈꾸며 살아가니까.

무형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 나도 그 심연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16살의 삶을 보상받고 싶었을지 모를 은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잔인한 순간들이 제게 일어났음을 인정하는 순간 발작적인 울음을 토해내며 무너져 내린다.

그 전의 삶과 그 후의 삶이 어찌 똑같을 수 있을까.

조금씩 변해가는 그녀는 더 당당해지려하고, 스스로의 매력을 더 드러내려 애쓴다.

자신에게 그런짓을 한 사람들 중에 하나인 승모(현남자친구)와 침묵으로 눈감아버린 무형(남자친구의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성폭행을 한 그 범인과 연인인 관계를 유지하며 참아내는 은수의 마음은 16살 그때보다 더 처참하게 난도질 되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자신을 더 많이 깊이 사랑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은수를, 가장 깊은 상처를 낼수 있기를 열망하는 은수를....우리는 이해해줘야겠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안타깝거나 애처롭더라도....그 잔인한 상처를 정면으로 관통해내려 애쓰는 그녀를 나는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받았을때

그 상처를 꽁꽁 숨겨두고 두번다시 돌아보지 않는것으로 잊으려 하는 사람도 있고,

토하고 토해내서 눈앞에서 바라보며 내내 스스로를 찔러가며 의연해지려는 사람도 있다.

은수는 아마도 그래서 무형의 앞에서 그토록 경악할만한 대사들을 툭툭 뱉어낸게 아니였을까.

너의 침묵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똑바로 쳐다보라고, 니가 무슨 짓을 한건지.

그 고통속에 서서 내가 스스로를 찔러가며 피흘리는걸 너도 똑바로 바라보라고.

 

그 과정의 어디쯤.....

어쩌면 그녀에겐 보이고 싶지 않았을...혹은 일부러 더 보여주고 싶었을 바닥이었던 순간중에 하나를 내보이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그 앞을 찾아가서 수줍게 웃어 보이던 은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어느날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버렸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난도질 당한것만 같던 그날, 나는 거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고 싶었던것 같다.

어쩌다 나는 이 암흑속을 걷고 있는지.

누가 나를 이 어둠속에 내팽개쳐두고 있는건지.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쌍욕을 마구 퍼붓고 싶었던 그날,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 눈부시게 밝은 아침햇살을 받으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이 하고 싶었다. 상처 받지 않은 척이 하고 싶었던것 같다.

감히 너 따위가 나를 상처 낼수 없다고.

상대방 보다도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것 같다.

자고 나면 잊어버릴만큼 내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을 떠올렸을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만큼 창피해졌다.

그사람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백치의 무뇌아 정도로 생각했을까?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 웃음이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당화 시켜준 꼴이 되어버려서 기막힌 웃음만 났다.

차라리 목을 조를 일이지.

진짜 나쁜건 너라고 소리를 지를 일이지.

그로인해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똑똑히 보여줄 일이지..... 비겁하게 나는 상처 받지 않은 척을 했다.

상처를 보여주는 일에 나는 왜 겁을 냈을까.

뻔뻔하지도 못한 주제에 치기어린 뻔뻔함을 애써 가장하며 글 속의 은수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날의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뻔뻔함으로 감추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도저히 글로는 설명해낼수 없을 것만 같은 복잡미묘한 그 순간의 감정이 은수를 통해 다시 되살아 났다.

그자리에 서 있는 은수가 그런 감정을 끌어 안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고.

물론 그녀는 표면적으로 '복수'가 그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지만....과연 오로지 그 감정 하나였을까.

..........정말?

끝끝내 그 감정의 잔재들을 하나의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은 작가님에게 슬쩍 눈을 흘겨본다.

글을 감싸는 모든 감정들의 이중성과 모호함에 대한 시원한 답변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만 의문으로 남아있는 것인가.



 

끝까지 이기적이었을 뿐인, 유일하게 모든 감정이 선연하게 내보여졌던 승모는

그렇게 이기적으로 죽어버렸고,

남겨진 무형을 결국에는 용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은수와 유일하게 '섹스'가 아닌 '연애'의 대상으로 은수를 생각하게 된 무형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불과 50페이지 정도를 남겨놓은채 진짜 '로맨스'라고 부를만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은수가 상처를 관통해 삶을 살아내려는 몸부림이 이야기의 4분의 3이었다면

'브로큰 하트 신드롬' 이라는 제목에 맞닿은 그 사랑의 이야기는 바로 이 몇장 남지 않은 뒷부분에 등장한다.

 

내내 '섹스'만 하는 남자 무형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무거운 남자이지만

그래서 더 잔인하고 더 무서운 침묵의 방관자이다.

자신을 열망하다 으스러져가는 여자들의 삶을 바라볼때도 무표정한 그가 유일하게 표정이라고 부를만한 감정들을 얼굴에 띄우는 순간은 늘 은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이었는데....그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사랑인채로 유지되기 위해 신뢰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방치된 사랑속에 버려진 은수는 또다시 침묵의 방관자에게 처참히 살해 당했다.

때론 진실보다 침묵이 더 큰 무게의 상처가 된다.

그 잔인한 침묵이 은수를 두번이나 죽게 만들었다.

망설임 없이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던 경쾌한 은수의 구둣소리는 무거웠던 그녀의 삶에 대한 가장 가벼운 인사가 아니였을까.

 

금이 가기 시작한 살얼음 위에서 유일했던 구원의 손을 잃어버린 은수가 결국에는 죽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낸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 아니였을까.

단지,

뒤늦게 깨닫게 된 단하나의 사랑을 잃어버린 무형이 선택한 죽음이 씁쓸했다.

그는 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텅비어있는 채로도 삶을 꾸역꾸역 살아 낼수도 있을것만 같았는데.....

역시나 애초에 없는 채로 살아가는것과 이미 가졌던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는것은 너무도 다른 것이었던가 보다.


잔인한 사랑의 이면이

고통과 허무로 점철된 사랑의 모습이

그래서 더....큰 파장을 일으킨다.


 


"복수를 하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듭니까?"

무형의 이 두번의 독백때문에 나는 끝까지 무형이 조금도 밉지 않았다.

그냥 '사랑'이 잔인했던 것이지, 무형이 잔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본다.


 


그들의 사랑이 당신에게는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가.

나는 궁금하다.

은수와 무형을 만났을 당신의 마음이.



 


p. 350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머리를 비우려 해도 절로 떠오르는 상념과 싸우며, 은수는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서 다만 버티고 있다, 생각했다.

사실 시간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죽은 시간이라고 말이다.

------------------------------------------------------------- 브로큰 하트 신드롬 中에서.

지금 이순간, 여전히 죽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곧, 치유의 시간이 시작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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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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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그의 글은 언제나 떨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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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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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그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게 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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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자빈 실종 사건 세트 - 전3권
서이나 지음 / 청어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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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서 리뷰를 쓰려고 앉으니 머릿속이 하얗다.

장편의 글을 읽고 나면 어쩐지 재밌다 라는 느낌 말고는 할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세권에서 다섯권에 이르는 책들을 읽으면....읽으면서 소용돌이쳤던 많은 생각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마지막권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치 헐리웃의 액션영화를 보고난 후 마냥....재밌다 라는 느낌만 남는다.

가슴에 남는 여운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나로써는 굉장히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권에 이르는 이 긴 이야기를 내가 느낀 감정만으로 써내리긴 힘들것 같다.

스토리를 다 적어버리면 스포가 되어 버리겠지만....특히나 이 책은 스토리로 이루어진 책이라서 어쩔수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

 

처음 시작을 보며 퓨전 사극인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지문이나 분위기는 정통 사극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던지 그들의 행동, 생각들은 현대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정통 시대물을 좋아하는지라.... 내겐 좀 가볍겠구나 싶은 생각에 실망이 살짝 들었다.

문체가 가볍고,어려운 문장이 한줄도 등장하지 않아, 사실은 가독성이 아주 좋은 책 중에 하나이지 싶다.

보통의 시대물들이 배경설명과 인물의 구도등을 설명하고 보여주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데 반해, 이 책은 처음부터 본론을 이야기 하고 나선다.

 

 

 

 

스스로 실종되어 버리는 조선의 세자빈.

민홍.

 

그녀는 어렸을적 부터 세자빈으로 자라난다.

조선에서 여인에게 주어진 갑갑한 담장 안의 생활.

그중에서도 그녀는 세자빈으로 내정되어 자란 덕분에 더욱 더 혹독한 잣대가 드리워졌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통해서 자유를 갈망한다.

 

공주자가의 꾐에 넘어가 혼인도 하기 전에 세자를 마주치게 되고, 그로인해 하룻밤 동안 놀라운 사건을 겪게 된다.

그와중에 둘 사이엔 연정이 쌓이게 되고, 그 깊이가 새록새록 깊어져.... 진짜 혼인으로 맺어지게 된 그들의 마음은 몹시도 깊고 단단한 연모의 정으로 뭉친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너의 하늘이 되어주고, 그 하늘에 나비가 되어 숨쉴 틈이 되어주는 것 뿐이었지만

세자 라는 자리가.... 권력의 핵심에 서 있는 그들의 위치가.... 궐이라는 무서운 공간이.... 그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홍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며 버티던 세자는 결국 노론과 허청의 음모에 휘말려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글에서 과거로 명명된 그들의 첫 이야기의 엔딩에서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떻게든 버텨서 세자의 쉼이 되고자 했던 홍은

권력에의 욕심도, 부에 대한 탐욕도 없었건만....그저 세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약점이 되어지고

오로지 사랑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음모의 핵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그저 사랑 말고는 바라는것도 없었는데....궐이라는 곳이,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 온것인지는 글 속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어쨌든 그들에겐 또 한번의 생이 주어졌고,

이제 그들은 그 생을 통해서 그렇게도 이루고자 했던 단 한사람의 하늘이 되어주고, 그의 나비가 되어 자유로운 사내와 여인이 되고자 한다.

그렇게 그들의 진짜 여정은 2권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 책이 다른 책과 좀 달랐던 점은

회귀물에서 보통은 주인공 혼자 되돌아 오거나....비슷한 인생이 주어지는 반면, 이 글에서는 세명의 인물이 모두 과거로 되돌아 오게 되고

그로 인해 사뭇 다른 상황들이 펼쳐지고, 전혀 다른 경험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하고, 자결을 하려했던 자국이 손목에 남아 있기도 하고....그로인해 더더욱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사실감이 살아 있어서 좋았던것 같다.

1권의 많은 부분을 과거의 이야기로 할애해서 어쩌려고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되돌아 온 삶이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아마도 일부러 그 과거의 모습들을 자세히도 보여줬었나 보다.

 

 

 

그렇게 이야기는 3권에 이르며 절정으로 치닫는데

개인적으로는 3권에서 가장 몰입하지 못했던것 같다.

다른 리뷰들에서 3권에 울었다는 리뷰가 많아서 잔뜩 긴장했었건만...이기적이기만한 휘서와 허청의 사랑에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어서 전반에 흐르는 절절한 분위기에 젖어들지 못했다.

어째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이리도 하나같이 안타깝고 불쌍한 분위기만 풍겨대는지.....;;

첫등장부터 심상치 않던 허청의 오라비인 사림은 그냥 그 불 속에서 죽었다 라고 나오는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다시 살아난게 어거지스러웠고,

천한 신분과 가진것 하나없이 오로지 몸뚱이 하나뿐인 허청을 본부인까지 밀어내고 정실로 맞아, 나쁜짓만 일삼는 그녀를 세자가 되어서도 내치지 않는 휘서를 보면서도 사랑이 아닌줄 알았다고 벅벅 우겨대는 허청에겐 정말 화밖에 날게 없었다.

허청을 지키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열심히 덮어주고 묵인하고 형에게 뒤집어 씌워가며 자기 사랑만 귀한줄 알고 내내 변명만 늘어놓던 휘서는 도데체 갑자기 왜 성군이 된걸까.

어디에 그런 세자의 모습이 숨어있던 걸까.

담을 통해서 보이던 모습들은 결국 스스로의 비열함과 자기합리화에 능했던 모습들은 쏙 뺀....그저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만 바라본 모습이었건만... 그게 그사람의 진짜 모습이었다고?? 그리 믿어야 한다고??

하아.....

 

결국 그럼으로 인해서 가장 가슴아픈 엔딩이 주어졌던 휘서와 허청이었지만.

미안하다 나는 너희들을 도저히 품지 못하겠다.

자기변명 일색인 너희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건지도 나는 모르겠다.

 

이 두 인물 때문에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모든 사건들이 흘러 가는 것이니 ... 이 책 속에서 두 주인공 보다도 더 큰 역할을 하는 인물들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 때문에 나는 마지막에 가서 맥이 풀려 버렸다.

 

 

 

종국에는

호월산의 나비가 아닌

청으로 건너가 그저 한 사내와 그의 여인으로의 삶을 살게 되는 둘.

권력을 내려놓은 그들의 어깨가 몹시도 가벼워 보였지만

사실 나는 이담이 참 좋은 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휘서가 역사에 남을 좋은 왕이 되었다고 했으니 그 미련마저 버려야겠지만.

 

 

 

 

 

 

전체적으로 글은 어려운 곳이 없이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건위주의 이야기라서 머뭇거림없이 읽어 낼 수 있는 글이지 싶다.

너무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독자에겐 더더욱이 좋을 글일테고

나처럼 묵직하고 무게감 있는 글을 선호한다면 좀 가볍다 느껴질 만한 글이 될 듯 싶다.

읽는 내내 작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맴맴 돌았는데 작가후기를 보니 역시나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다보면 그런 글들이 종종 있는데.....대체로 들어 맞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연륜이라던지 삶의 깊이라는건 어떤 삶을 살았으냐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살아온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구나 싶어진다.

 

 

 

 

 

 

 

 

++++ 책 속 딴지 걸기++++

 

남장 여자가 나오는 글에서는 대부분 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전개되기에 (아주 대놓고 여자처럼 행동하는데 다들 못알아보는 ;;;;) 그부분은 대충 넘기고....

담장안에서만 갇혀살던 그녀가 그 험한 길을 마구 걷고 산을 넘고 그러는데도 체력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데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운동이란건 해본적도 없을테고, 참한 규수로서 방안에서 지낸 시간이 반이 넘을텐데....남자들보다 체력이 좋아보이니 원.

심지어 말을 처음타는데...그걸 타고 산을 향하다니...ㅎㄷㄷ

승마가 그렇게 쉬운거라고...누가 내게 말해다오.ㅠ_ㅠ

게다가 조선시대라는데 여기나오는 애들은 왜이렇게 스킨쉽에 관대한건지.ㅠ_ㅠ

심심하면 껴안고 어루만지고 ...남장 하기전에도 그러더니...남장한 뒤에 결국 여자라는게 밝혀져는데도...사림이나 오라버니랑 어쩜 저렇게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하는지...ㅠ_ㅠ

퓨전이라 그런거라고....최면 걸면서 읽었던 부분. ㅠ_ㅠ

 

그리고 꼭 걸고 싶은 딴지가 있다.

이 글은 전반적으로 조사가 잘못 씌여있다.

한두 문장이 아니라 너무 많은 문장에 씌인 잘못된 조사들이 문장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고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

가독성이 아주 좋을수 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서도 내겐 글 읽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조사의 잘못된 사용이었다.

차라리 맞춤법이 틀린게 더 낫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준 글.

맞춤법은 틀렸다 보다 하고 넘길수도 있는데 조사가 잘못 씌임으로 인해서 사람이 행해야하는 행동이 물건이 행한 행동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세개의 문장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도데체 무슨 말인건지 세번을 읽어도 못알아 듣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대놓고 잘못된 문장은 차라리 낫지...미묘하게 잘못된 문장들은 자꾸만 어색해서 읽는 속도를 저하시키고 종국에는 멈춰서 도데체 어디가 이상한건지 골돌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 한번 빨라지기 시작하는 칼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지비했고, 그 속도는 가히 점점 더 빨라져 갈 뿐, 투덜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내뱉는 숨결은 그야말로 편안해 보였다.>

< 그때, 덜컥이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쿵쿵 울리면서 이내 그녀앞에 멈춰 서서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목아의 숨통을 움켜쥐었다.>

 

미묘하게 껄끄럽고 이상한 문장들의 예시인데....

혹시 나처럼 문장자체의 어색함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글 읽기 좀 힘들지 않을까?

스토리에 홀릭하는 사람에겐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만한 사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스토리보다는 문체와 문장에 집중하는 인간상인가 싶다.

이왕이면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님이 문장까지 잘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글에서는 좀더 매끄러운 문장을 가진 작가님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 표지가 몹시 몹시 몹시~~ 고급스럽고 이쁘다. 금박이 그냥~ 번쩍 번쩍.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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