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서 리뷰를 쓰려고 앉으니 머릿속이 하얗다.
장편의 글을 읽고 나면 어쩐지 재밌다 라는 느낌 말고는 할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세권에서 다섯권에 이르는 책들을 읽으면....읽으면서 소용돌이쳤던 많은 생각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마지막권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모양이다.
마치 헐리웃의 액션영화를 보고난 후 마냥....재밌다 라는 느낌만 남는다.
가슴에 남는 여운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나로써는 굉장히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권에 이르는 이 긴 이야기를 내가 느낀 감정만으로 써내리긴 힘들것 같다.
스토리를 다 적어버리면 스포가 되어 버리겠지만....특히나 이 책은 스토리로 이루어진 책이라서 어쩔수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
처음 시작을 보며 퓨전 사극인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지문이나 분위기는 정통 사극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던지 그들의 행동, 생각들은 현대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정통 시대물을 좋아하는지라.... 내겐 좀 가볍겠구나 싶은 생각에 실망이 살짝 들었다.
문체가 가볍고,어려운 문장이 한줄도 등장하지 않아, 사실은 가독성이 아주 좋은 책 중에 하나이지 싶다.
보통의 시대물들이 배경설명과 인물의 구도등을 설명하고 보여주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데 반해, 이 책은 처음부터 본론을 이야기 하고 나선다.
스스로 실종되어 버리는 조선의 세자빈.
민홍.
그녀는 어렸을적 부터 세자빈으로 자라난다.
조선에서 여인에게 주어진 갑갑한 담장 안의 생활.
그중에서도 그녀는 세자빈으로 내정되어 자란 덕분에 더욱 더 혹독한 잣대가 드리워졌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통해서 자유를 갈망한다.
공주자가의 꾐에 넘어가 혼인도 하기 전에 세자를 마주치게 되고, 그로인해 하룻밤 동안 놀라운 사건을 겪게 된다.
그와중에 둘 사이엔 연정이 쌓이게 되고, 그 깊이가 새록새록 깊어져.... 진짜 혼인으로 맺어지게 된 그들의 마음은 몹시도 깊고 단단한 연모의 정으로 뭉친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너의 하늘이 되어주고, 그 하늘에 나비가 되어 숨쉴 틈이 되어주는 것 뿐이었지만
세자 라는 자리가.... 권력의 핵심에 서 있는 그들의 위치가.... 궐이라는 무서운 공간이.... 그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홍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며 버티던 세자는 결국 노론과 허청의 음모에 휘말려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글에서 과거로 명명된 그들의 첫 이야기의 엔딩에서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떻게든 버텨서 세자의 쉼이 되고자 했던 홍은
권력에의 욕심도, 부에 대한 탐욕도 없었건만....그저 세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 하나로 그의 약점이 되어지고
오로지 사랑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음모의 핵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그저 사랑 말고는 바라는것도 없었는데....궐이라는 곳이,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 온것인지는 글 속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어쨌든 그들에겐 또 한번의 생이 주어졌고,
이제 그들은 그 생을 통해서 그렇게도 이루고자 했던 단 한사람의 하늘이 되어주고, 그의 나비가 되어 자유로운 사내와 여인이 되고자 한다.
그렇게 그들의 진짜 여정은 2권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 책이 다른 책과 좀 달랐던 점은
회귀물에서 보통은 주인공 혼자 되돌아 오거나....비슷한 인생이 주어지는 반면, 이 글에서는 세명의 인물이 모두 과거로 되돌아 오게 되고
그로 인해 사뭇 다른 상황들이 펼쳐지고, 전혀 다른 경험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하고, 자결을 하려했던 자국이 손목에 남아 있기도 하고....그로인해 더더욱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사실감이 살아 있어서 좋았던것 같다.
1권의 많은 부분을 과거의 이야기로 할애해서 어쩌려고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되돌아 온 삶이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아마도 일부러 그 과거의 모습들을 자세히도 보여줬었나 보다.
그렇게 이야기는 3권에 이르며 절정으로 치닫는데
개인적으로는 3권에서 가장 몰입하지 못했던것 같다.
다른 리뷰들에서 3권에 울었다는 리뷰가 많아서 잔뜩 긴장했었건만...이기적이기만한 휘서와 허청의 사랑에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어서 전반에 흐르는 절절한 분위기에 젖어들지 못했다.
어째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이리도 하나같이 안타깝고 불쌍한 분위기만 풍겨대는지.....;;
첫등장부터 심상치 않던 허청의 오라비인 사림은 그냥 그 불 속에서 죽었다 라고 나오는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다시 살아난게 어거지스러웠고,
천한 신분과 가진것 하나없이 오로지 몸뚱이 하나뿐인 허청을 본부인까지 밀어내고 정실로 맞아, 나쁜짓만 일삼는 그녀를 세자가 되어서도 내치지 않는 휘서를 보면서도 사랑이 아닌줄 알았다고 벅벅 우겨대는 허청에겐 정말 화밖에 날게 없었다.
허청을 지키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열심히 덮어주고 묵인하고 형에게 뒤집어 씌워가며 자기 사랑만 귀한줄 알고 내내 변명만 늘어놓던 휘서는 도데체 갑자기 왜 성군이 된걸까.
어디에 그런 세자의 모습이 숨어있던 걸까.
담을 통해서 보이던 모습들은 결국 스스로의 비열함과 자기합리화에 능했던 모습들은 쏙 뺀....그저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만 바라본 모습이었건만... 그게 그사람의 진짜 모습이었다고?? 그리 믿어야 한다고??
하아.....
결국 그럼으로 인해서 가장 가슴아픈 엔딩이 주어졌던 휘서와 허청이었지만.
미안하다 나는 너희들을 도저히 품지 못하겠다.
자기변명 일색인 너희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건지도 나는 모르겠다.
이 두 인물 때문에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모든 사건들이 흘러 가는 것이니 ... 이 책 속에서 두 주인공 보다도 더 큰 역할을 하는 인물들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 때문에 나는 마지막에 가서 맥이 풀려 버렸다.
종국에는
호월산의 나비가 아닌
청으로 건너가 그저 한 사내와 그의 여인으로의 삶을 살게 되는 둘.
권력을 내려놓은 그들의 어깨가 몹시도 가벼워 보였지만
사실 나는 이담이 참 좋은 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휘서가 역사에 남을 좋은 왕이 되었다고 했으니 그 미련마저 버려야겠지만.
전체적으로 글은 어려운 곳이 없이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건위주의 이야기라서 머뭇거림없이 읽어 낼 수 있는 글이지 싶다.
너무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독자에겐 더더욱이 좋을 글일테고
나처럼 묵직하고 무게감 있는 글을 선호한다면 좀 가볍다 느껴질 만한 글이 될 듯 싶다.
읽는 내내 작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맴맴 돌았는데 작가후기를 보니 역시나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다보면 그런 글들이 종종 있는데.....대체로 들어 맞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연륜이라던지 삶의 깊이라는건 어떤 삶을 살았으냐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살아온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구나 싶어진다.
++++ 책 속 딴지 걸기++++
남장 여자가 나오는 글에서는 대부분 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전개되기에 (아주 대놓고 여자처럼 행동하는데 다들 못알아보는 ;;;;) 그부분은 대충 넘기고....
담장안에서만 갇혀살던 그녀가 그 험한 길을 마구 걷고 산을 넘고 그러는데도 체력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데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운동이란건 해본적도 없을테고, 참한 규수로서 방안에서 지낸 시간이 반이 넘을텐데....남자들보다 체력이 좋아보이니 원.
심지어 말을 처음타는데...그걸 타고 산을 향하다니...ㅎㄷㄷ
승마가 그렇게 쉬운거라고...누가 내게 말해다오.ㅠ_ㅠ
게다가 조선시대라는데 여기나오는 애들은 왜이렇게 스킨쉽에 관대한건지.ㅠ_ㅠ
심심하면 껴안고 어루만지고 ...남장 하기전에도 그러더니...남장한 뒤에 결국 여자라는게 밝혀져는데도...사림이나 오라버니랑 어쩜 저렇게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하는지...ㅠ_ㅠ
퓨전이라 그런거라고....최면 걸면서 읽었던 부분. ㅠ_ㅠ
그리고 꼭 걸고 싶은 딴지가 있다.
이 글은 전반적으로 조사가 잘못 씌여있다.
한두 문장이 아니라 너무 많은 문장에 씌인 잘못된 조사들이 문장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고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
가독성이 아주 좋을수 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서도 내겐 글 읽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조사의 잘못된 사용이었다.
차라리 맞춤법이 틀린게 더 낫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준 글.
맞춤법은 틀렸다 보다 하고 넘길수도 있는데 조사가 잘못 씌임으로 인해서 사람이 행해야하는 행동이 물건이 행한 행동이 되어버리기도 하고....세개의 문장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도데체 무슨 말인건지 세번을 읽어도 못알아 듣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대놓고 잘못된 문장은 차라리 낫지...미묘하게 잘못된 문장들은 자꾸만 어색해서 읽는 속도를 저하시키고 종국에는 멈춰서 도데체 어디가 이상한건지 골돌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 한번 빨라지기 시작하는 칼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지비했고, 그 속도는 가히 점점 더 빨라져 갈 뿐, 투덜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내뱉는 숨결은 그야말로 편안해 보였다.>
< 그때, 덜컥이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쿵쿵 울리면서 이내 그녀앞에 멈춰 서서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목아의 숨통을 움켜쥐었다.>
미묘하게 껄끄럽고 이상한 문장들의 예시인데....
혹시 나처럼 문장자체의 어색함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글 읽기 좀 힘들지 않을까?
스토리에 홀릭하는 사람에겐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만한 사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스토리보다는 문체와 문장에 집중하는 인간상인가 싶다.
이왕이면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님이 문장까지 잘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글에서는 좀더 매끄러운 문장을 가진 작가님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 표지가 몹시 몹시 몹시~~ 고급스럽고 이쁘다. 금박이 그냥~ 번쩍 번쩍.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