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오만과 편견
이한월 지음 / 청어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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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거나, 읽었거나, (영화로) 봤거나, 들었거나 했을 만한 책.  『오만과 편견』
나도 영화로 이미 봤던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책을 사놓고 읽지 않고 뒀기에, 내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영화뿐.
그래서 문체나 문장을 비교하는 건 애초가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그럼에도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인 이 글이 너무도 궁금했다.
내겐 영화 속 눈빛과 표정으로 이 작품이 깊게 남아있기 때문에.

우선 '오마주'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사실 나는 '오마주'라는 것에 대한 아주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해석을 할 줄 모른다.
내가 읽어 본 '오마주' 작품은, '막스 티볼리의 고백' 단 한 권뿐이다.
그 책마저도 사실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 읽었었고, 추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이 원작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처음엔 내가 읽은 책이 원작인 줄 알고 표절인 거냐며 혼자서 흥분했던 흑역사가 있다. ㅠ_ㅠ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이며, 그의 단편 또한 유명하다는 걸 알고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 (진짜 쥐구멍에라도 찾아들고 싶다. ㅠ_ㅠ)

아직도 원작인 그의 단편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책은 '막스 티볼리의 고백' 한 권뿐이지만, 그냥 미루어 짐작하기에 짧은 단편인 걸로 알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책에 비해 몇 배는 두꺼운 장편인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뼈대와 스토리 라인은 같아도 원작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짧은 단편 속에서는 감춰져 있던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 같은 것들을 아무래도 두꺼운 장편 속에서는 좀 더 세밀하게 엿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마주'가 뼈대와 기본 설정들을 가져와 새로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게 그만큼뿐이라서.
한데 이 책은 뼈대와 설정을 넘어서, 에피소드와 대사, 지문까지 같거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엔 사실 좀 놀라웠다.
'오마주'라는 게 이런 것인가 보구나, 하고.

 

 

 

이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은 세계적인 명작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인 작품이다.
낯선 외국이 배경이었던 글을 좀 더 친밀하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로 끌고 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경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바뀐다.
집 밖 출입이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여자가 주인공이 되다 보니, 그들이 만나 오만함과 편견 어린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자유롭지 못했고, 함부로 여성을 희롱할 수 없었던 사대부의 남자가 주인공이 되다 보니 행동거지 하나까지 조심스러웠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비해 자유로웠던 외국의 그들의 첨예한 부딪힘을 과연 조선 땅에서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까.
영화 속에 등장했던 그녀의 당당했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는데, 조선의 아녀자가 과연 외간 남자를 바라보며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조선이 배경인 이 글이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부딪힘과 그들의 언쟁과 그들의 눈빛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성을 빌려 여행(?)을 왔던 그들은, 이 책에서 암행어사를 감추기 위한 외조모님 댁 방문으로 둔갑했고, 어려움에 처한 여주의 집 사정 또한 암행어사인 남주의 고함으로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어졌다.
기본 설정들은 같다.
곳곳에서 영화 속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맨 처음엔 너무 같아서 거부감이 살짝 일기도 했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조선을 배경으로 잘 어우러져서 이질감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문장 또한 담백하고 단정한 편이라 주인공들의 성격과도 잘 어울렸다.
글 전체의 분위기가 정말 조선의 선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다.

 

'나는 그 사람이 중전마마의 조카에 한양 양반이라는 것에 편견을 가졌고, 그 사람은 내가 가난하고 품위 없는 집안의 딸이라는 것에 편견을 가졌겠지.'
p.261 연리의 생각.

 

오만했던 중전의 조카이자 세도가 집안의 자제인 심도헌,
편견 어린 시선으로 도헌을 바라봤던, 청렴하고 바른 종친의 여식인 이연리.
그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편견이 눈을 가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다, 오해가 사랑이 되고 이해가 되어가는 과정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좋았다.
(애초에 원작의 가장 큰 묘미가 그것일 테니... 이것은 원작을 칭찬하는 말이나 다름없겠지만, 그것을 가져다 쓰는 사람의 어긋난 문장으로도 그 의미가 퇴색되기 쉬울 테니까, 원작뿐 아니라 이 책도 역시나 칭찬하고 싶다.)

 

"제가 소저의 집안에 대한 솔직한 말로 소저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지만 않았어도, 소저에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뻔했습니다. 제가 소저의 지체 낮은 집안마저 연모한다고 했어야 했습니까?"

"나리께서야말로 저같이 별 볼 것 없는 여인에게 청혼하게 된 것이 자존심이 상해 오만하고 거만한 청혼을 하신 것을 아시나요? 제가 나리의 거만함을 연모한다고 말하길 바라셨어요?"


p.231 첫 번째 청혼 /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이 글의 작가가 도입부에서는 책에 더 가까운 모습을 따왔다면, 청혼 장면은 아무리 봐도 영화 속 장면에서 가져온 게 분명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그들의 눈빛 덕분에 너무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 잊을 수가 없다.)


오만함을 내려놓고, 편견을 벗어던진 둘의 이후 모습들은 더없이 청렴하고 반듯하고 다정했다.
가장 아름다운 선비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 뒷이야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제 오만과 편견에서는 그 후 이야기라는 게 따로 없는데, 역시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는 에필로그의 든든함이 있다.
그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 깨알 같은 행복을 함께 나눌 기회가 주어주니 참 반갑다.
에필로그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또 오랜만이다.
늘 행복하게 잘 사는 주인공의 모습만 나오는지라.... 에필로그 보나 안 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원작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 그런지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처음 들었던 '오마주'에 대한 약간의 낯섬과 거부감 같은 것들이 책장이 넘어갈수록 희미해졌다.
'오만과 편견'에 너무 깊은 감명을 받으신 분이라면, 다른 듯 비슷한 이 작품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다른데?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조선판, 오만과 편견이라는 '새로운 글'로 이 책을 읽어낸 기분이 든다.
읽다 보면 다음 장면을 이미 알고 있을 때도 있고, 다음 대사를 유추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라는 새로운 배경이 주는 묘미와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또 다른 성격과 몸가짐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실제로 가끔 외국의 글이나 영화를 볼 때, 그들과 다른 정서를 지닌 내가 이해하거나 읽어내리지 못하는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생기곤 한다.
한국에서 내내 살아온 나는, 아무래도 한국의 정서가 더 익숙하고 편안한 것 같다.
그래서 '조선판 오만과 편견'이 내겐 조금 더 친절했던 기분이 든다.

비교를 해야지 하며 펼쳤던 글이었고, 실제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작품(영화와 책이지만)을 비교하기도 했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그저 각각의 작품으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원작보다 더 잘 쓴 글, 원작보다 더 부족한 글... 그런 것 말고, 원작과는 조금 다른 맛의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봉지 속에 들어있는 빨간 곰 젤리와 노란 곰 젤리처럼.
닮았지만 맛은 다른 곰 젤리 같은 글이었다.




원작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했던 모습들이 느껴져서,
'오마주'라는 표현방식이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욕먹기 십상인 장르라고 들어서,
이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좋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왠지 좀 관대해지고 싶은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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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세트 - 전2권
임윤혜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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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책을 읽었다.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묘한 책을 읽었다.

1930년대 뉴욕을 주배경으로 한 이 책은
그래서 특유의 음울하고 답답한 분위기를 짊어지고 간다.
주가 폭락과 대공황, 경기 침체, 극심한 빈부의 격차... 수많은 사회문제를 바닥에 깔고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이야기는 그래서 더 음울하고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무겁다.
그 때문인지 책 속에 나오는 다수의 인물이 불안과 무기력을 외투처럼 걸치고 '히스테릭'이라는 향수를 살짝 뿌린 느낌이 든다.

 

 

 

 

1924년 어느 날,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글로리아는 술 취해 운전하는 엘레나의 차에 치이게 된다.
회생이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빠졌던 글로리아.
1930년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글로리아에게 주어진 건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새로운 생이 아니라, 잃어버린 6년의 기억이 지배하는 절망적인 삶이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글로리아가 결국 책임져야만 하는 지난 6년간의 삶.
그 시간을 글로리아 대신 살아낸 누군가.
그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냐고.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왜 나는 이렇게 미움받는 한가운데 서 있어야 하느냐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마도 직, 간접적인 스포가 많을 겁니다. 내용 없이 리뷰쓰기가 너무 힘든 책이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스포가 싫으시다면 적당히 스킵 하시거나 패스해주세요. 스포가 있다구요!! >




처음 글을 읽었을 때 문장의 미묘한 어설픔이 거슬렸다.
딱히 설명하기 힘든 어설픔이라 그냥 작가의 초기작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문장이 짧고,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낯설었다.
좀 더 매끄럽고 부드러운 문체를 선호하는 편이라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의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가자, 문득 이 문장들이 일부러 이렇게 쓰여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탈락된 조사, 최소한의 이음말을 사용하는 문장, 아마 그런 것들이 글의 분위기를 더 딱딱하게 만들어 이 글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게 아닌가 싶었다.
불안할수록 말은 끊어지고, 두서 없어지게 마련.
인물들의 불안감을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장치는 아니었을까.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은
살아있는 듯 느껴지는 입체적인 인물 묘사인 것 같다.
한 인물이 지닐 수 있는 여러 면들을 다각도에서 세밀하게 투시해 준다.
특히나 주인공과 조연들의 심리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흔들리는 심리 하나하나, 광기 어린 불안과 히스테릭, 결국 끝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야 마는 추락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내고 있다.
특히 2권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충돌이 그 정점을 보여준다.
스토리로 읽어야 할 글에서 심리묘사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 읽어야 하는 책으로 변신하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했고, 책의 다른 부족한 부분을 모두 상쇄 시켜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인물.
그렇다. 이 책은 인물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스토리가 가지는 묘미도 있지만 분명 입체적인 인물이 더 부각되는 글이었으니까.

첫 번째 인물은 에드윈 임페라토르.
침착하고 인내심 강하고 감정의 폭이 크지 않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결핍을 지닌 인물.
하지만 가진 자의 우월함과 계산적인 장사꾼의 기질을 감출 수는 없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상처 입은 짐승의 모습도 내보여준 인물.
의외로 로맨티스트!

두 번째 인물. 글로리아 민튼.
척박한 환경에서 말 그대로 척박하게 자랐고, 척박하게 살아온 인물.
가진 것 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쯤으로 여겨지는 느낌이지만, 상상할 수 없는 큰일을 겪으며 더 성숙한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춰야 하는 비밀 덕분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서서히 미쳐가는 모습을 보여 안쓰러움이 들게 한 인물.
놀랍게도 그 와중에 따뜻하고, 다정하고, 배려심마저 잊지 않고 보여준다.
어찌 보자면 현실에서 가장 동떨어진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 좀 더 히스테릭하고 분노하고 절망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으니까)

세 번째 인물. 이사벨라와 엘레나(에드윈의 여동생)
두 인물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끝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이 기가 막히게 닮아 있는 인물들이다.
남의 몸을 빌려 살아야 했던 광기 어린 이사벨라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아가는 부잣집 아가씨 엘레나가 왜 닮아야 했을까.
그들은 멈추는 법을 몰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남들이 져주길, 남들이 이해해주기만을 바랐던 두 사람은
결국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광기(엘레나는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만)가 그들을 같은 끝에 데려다줬다.

네 번째 인물. 바바라 허튼.
너무 가진 게 많아 삶이 무기력한 인물.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을 부가 인간에게 왜 이롭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나 동경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그 개인은 조금도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글의 마지막에 그녀에게 정말 필요했던 '그것'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가 들었다.
제멋대로에 넘치는 우월감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래서 더 외롭고 서글퍼 보였던 그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다섯 명의 인물이다.
그 외에도 로즈나 토마스 같은 인물들도 책의 전반에 등장하지만 내 눈길을 끌 만큼의 매력은 없었던 것 같다.
허영심을 적당히 두르고 있는 로즈나 게으르고 속물적인 토마스는 묻힐 만큼 다섯 인물들의 매력이 뛰어났으니까.
나머지 인물들은 이 다섯 명의 인물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으로써 더 많은 역할을 한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놀랍게도 주인공인 에드윈이나 글로리아보다 더 인상 깊었던 인물이 뜻밖에도 이사벨라와 엘레나였다.
글 속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두 인물.
결국 파국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두 인물.
왜 나는 주인공들을 두고서 이 두 인물을 더 인상 깊게 기억하게 되었을까.
사실 주인공인 두 사람은 어찌 보자면 뻔한 인물들일지도 모르겠다.
타락에 끝에서 멈춰 설 줄 아는 이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릴 만큼의 용기를 가진 이들.
여기서 멈추어야 서로가 망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둘은, 사랑하고 사랑하여도 일단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걸어가는 방법을 천천히 깨우쳐 나간다.
결국 선해야 하는 인물,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인물들.
그래서 너무 당연한 인물들인 반면, 이사벨라와 엘레나는 끝에 끝까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변함없다는 것은 대체로 좋은 뜻이지만, 그들만큼은 변해야 했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갑자기 참회하고 바르게 살기를 열망했다면, 그들이 지닌 인물의 힘과 매력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그저 악역이나 그 비슷한 주변 인물로 희미해져 버렸겠지.
끝에 끝까지 기어코 추락하고야 말았던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그려냈던 작가 덕분에 나는 놀랍게도 그 두 인물이 가장 선명하고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오염되어 그가 치를 떨며 싫어하는 인간 군상이 되어 있었다. 고집 세고, 무례하고, 게으르고, 몰염치하고, 감정이 메말랐다.
잠시 길을 잘못 든 것이겠지, 원래는 그렇지 않으니 방황하는 것을 잡아 주면 돌아오겠지 생각했는데, 그가 틀렸다는 것이 오늘로서 드러났다. 엘레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틀려 있었다.
2권 p.331 _ 에드윈의 탄식이 섞인 지문 中.


엘레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자였다.
출발한 이상 속도를 줄일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이 흐를수록 속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결국 어딘가를 들이받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는 한 그 차에서 내릴 수 없다.

고장 난 채 질주하는 자동차를 눈치채지 못했던 에드윈은 엘레나의 속도가 높아질 때마다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걱정하면서도 사랑의 이름으로 묵인했다.
끝없이 폭주했던 그녀의 차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도 멈출 수가 없었다.
절대로 굽힐 수 없었던 그 자존심 때문에.
결국 그녀는 그렇게 산산이 부서지고야 말았다.
스스로 차에서 뛰어내릴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끝끝내 자신을 멈춰주지 못한 모두를 원망하며.


 

"넌 날 이해해야 해. 내가 다 말해줬잖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두 말해 줬어. …<중략>… 내 이야기를 이해할 사람은 이 세상에, 이 시간 속에 오직 너뿐이야."
2권 p.199 _ 글로리아를 향한 이사벨라의 대사.

"나는 네가 불행했으면 좋겠어. 네게 이해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네가 망가졌으면 해. 나처럼 미치는 거야."
2권 p.209 _ 글로리아를 향한 이사벨라의 대사.

 

이사벨라는 말 그대로 이기적인 범죄자였다.
더 이상의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렇지만 2권 중반부쯤에 등장하는, 광기 어린 이사벨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순간 연민이 들었다.
그녀는 분명 글로리아에게 나쁜 사람이었다.
남의 몸을 6년이나 함부로 굴렸다.
글로리아의 절망과 분노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어느 날 눈을 뜨니 6년의 시간이 지나가 버렸고, 그 기억 또한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기억하지 못한 시간 속의 자신은 너무도 악랄하고 끔찍했다.
내내 글로리아의 시선을 따라갔기에 이사벨라는 더욱더 사악하고 못된 여자였다.
한데 이사벨라의 이야기 속 그녀는 한편으로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였다.
꿈 앞에 좌절하고, 사랑에 배신당하고, 살인자까지 되어서 결국 자살하고만 삶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까마득한 과거 속에 서 있었다.
2009년에서 1924년의 뉴욕에서 눈을 뜬 그녀는 심지어 가장 죽이고 싶었던 얼굴을 가진 채 살아났다.
현대의 지식은 되려 독이 되는 과거에서 낯설고 두려움에 떨며 내내 이방인인 채로 살았어야 했던 그녀에게 더 나은 삶을 왜 살지 못했느냐고 질책하는 게 옳은 일일까.
물론 분명 다른 삶을 살아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가 겪었을 두려움과 공황은 그녀로 하여금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 삶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은 게 스스로인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이 밀어버렸던 스테파니의 책임이라고 원망했을 그녀에게 글로리아의 얼굴은 점점 더 정신을 좀먹는 독약이었을 테다.

기함할 만큼 나쁜 년이라고 생각했던 이사벨라.
글로리아에게도 씻을 수 없는 시간들의 절망을 남겼고,
에드윈에게도 치유되기 힘든 강간의 기억을 새겨 넣은 악랄한 그녀.
사실 그녀는 이 글에서 미치광이 악녀 역할인지도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게 순간 연민이 샘솟았다.
이해할게 없어 이사벨라를 이해하게 될 줄이야.
분명 그녀가 했던 모든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그녀가 이해받기는 힘들 테다.
하지만 한 가지, 그녀가 왜 미쳤는지에 대해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모습을 연민하는지도 모르겠다.
잔뜩 망가져버린 그녀가 불쌍했다.
내내 차곡차곡 추락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바로 그 순간,
글로리아가 외쳤다.
당신은 미쳤어.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당신은 내내 다른 사람을 핑계로 당신의 죄로부터 도망쳤을 뿐이야.
당신은 추악하고 비열해.
난 당신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당신을 연민하지도 않아. 당신이 미워!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로리아의 시선에서 이사벨라의 시선으로 바뀐 순간, 나는 악마의 속삭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광기 어린 그녀의 이야기들에 속절없이 흔들렸다.
난 글로리아가 아니었으니까. 이사벨라가 내 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까.
낯선 곳에서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이사벨라의 목소리에 속아 넘어갈 뻔한 것이다.
한 톨의 연민이라도 허락했던 나를 글로리아의 외침이 깨어나게 했다.

그랬다.
결국 이사벨라는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이 죄로부터 도망칠 궁리만 했던 거다.
그들이, 세상이, 신이 자신을 그렇게 만든 거라고 변명하며 거리낌 없이 상대를 상처 입히고 나쁜 짓을 일삼았다.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외면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가끔 나는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한다.
이해할 필요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고야 만다.
책을 읽다가 악역이 분명한 인물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딱히 그들을 이해해보자고 노력한 일이 없는데도 간혹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들의 잘못과 악행을 배제하고 남은, 어떤 연약한 면들에 연민을 느낀다.
죄지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것이 나쁜 짓인 것만 같아서 마음 한켠에 찜찜함이 쌓인다.
아무래도 작가의 농간에 넘어간 것 같다. 작가의 계략에 말려들고야 만 것이다.
작가가 나에게 원했던 것은 누구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누구에 대한 이해였을까.


어쨌든 작가가 그려낸 인물은 악역까지도 매력적이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에드윈이 글로리아에게 빠지게 된 시점 정도?!
그런 일들을 겪고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너무도 쉽게 호감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의문스러웠다.
글로리아는 숨으려고 했고, 에드윈은 외면하려고 했던 시간들인데 어쩌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됐던 걸까.
조금 더 긴 시간과 조금 더 섬세한 심리묘사가 필요했던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가슴에 고인 분노를 토해내고, 빗속에 서서 결국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에드윈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가장 에드윈스러운 모습이었을지도.

덤으로,
글로리아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기어코 이별을 말하던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글로리아를 주인공으로 빛내게 해줬던 순간일 테니까.
광기로 미쳐가기 직전, 그녀는 멈추는 용기가 있었다.
사랑 앞에 돌아설 수 있는 용기는 흔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우린 가족이잖아. 어느 누구 한 명이라도 불행의 길로 걸어간다면 기를 쓰고 말려야 해. 그래야 했어. 아니면 모두가 불행해지니까."
2권 p.342 _ 언니 에밀리의 대사.

 

 

이 책에 중심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이 문장을 이야기하고 싶다.
책의 스토리와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가 넘쳐날 테지만, 사실 나는 에드윈을 보면서도 글로리아를 보면서도 또 바바라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가족'.
그들에게 간절한 것도 '가족'.
그들이 원한 것 또한 '가족'. 바로 그것이었을 테니까.
그들을 불행하게 한 것도, 그들을 행복하게 한 것도 바로 가족이 아니었을까.
내내 그렇게도 에드윈이 원했던 것, 그건 단단한 가족이었을 테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그렇게 불청객이었던 글로리아는 가족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유일하게 이 문장에 줄을 긋고 싶어졌다.

그렇다.
어느 누구 한 명이라도 불행의 길로 걸어간다면 우리는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내 삶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 가족.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행복하기를 기를 쓰고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소용돌이치고 부딪혀서, 리뷰 쓰기가 너무 힘들었던 글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제대로 쓰긴 한 건지, 내가 놓쳤던 부분들은 어디쯤인 건지,
짙은 여운과 깊은 무게감으로 남아있는 이 책을, 나는 제대로 읽어낸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분명 취향을 많이 탈 것 같은 글이지만,
여하튼 나는 추천해 본다.
충분히 취향을 넘어선 매력을 느끼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분이 읽는다면, 나보다 훨씬 더 좋은 해석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담아서,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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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X 456 Book 클럽
강경수 지음 / 시공주니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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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너무 재밌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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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지음, 김미성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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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하면 다들 무엇을 떠올릴까.
소행성 B612호, 바오밥나무, 장미, 길들임, 여우, 금빛 밀밭......
많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다.
그만큼 나는 어린 왕자를 사랑했고, 실제로 내 삶에도 내내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
내가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
그런 것들이 내 삶의 곳곳에서 꽃처럼 피어나, 나를 진심을 건넬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만들었고, 누군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의 가치를 잊지 않게 만들었다.
나를 길들이고, 내가 길들였던 내 다정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늘 노력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수많은 문장 중에서 나를 가장 흔들어 놓았던 문장이었으니까.

 

 

내 장미꽃이 그렇게 소중해진 건 내가 장미꽃에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우의 말을 되뇌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고 있어. 하지만 너는 잊어서는 안 돼. 넌 영원히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꿈 많던 십 대에 읽었던 어린 왕자,
그리고 청춘행 기차에 몸을 실었던 그때 읽었던 어린 왕자.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은 채 내 속에 머물러 있는 것들.
어린 왕자의 질문들, 여우의 대답, 그리고 어느 실종된 조종사의 신기루 같았던 사막에서의 시간.

순수했던 그때 만났던 어린 왕자를
청춘도 중년도 아닌 애매한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다.

 

 

나에게는 수집벽이 있다.
참 여러 가지 것들을 모았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책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왕자는 정말 여러 가지 판형으로 출판사 별로 다 사 모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점에 갔다가 새로 출간된 어린 왕자를 보면 무조건 사 오던 그때.
인디고에서 출간된 어린 왕자는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예뻤다.
(아, 정말 너무너무 이뻐서 흥분했던 기억이..ㅎㅎ 김민지 일러스트 작가님 사랑합니다!!)
실제로 정말 여러 권을 사서 선물하기도 했었다.
덕분에 인디고의 고전 시리즈를 사 모으기 시작하기도 했었고.

그러다 책이 너무 많아서..;; 같은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있지 말자는 나름의 다짐으로 여기저기 선물을 하고는, 현재 인디고의 고전 시리즈  중 하나인 어린 왕자와 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불어, 영어, 한국어 버전이 모두 담긴 책 한 권만 소장 중이다.
그러다가 다른 판형과 번역가가 바뀐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또 읽고 말았다.
어린 왕자를 외면하기엔 나는 너무 어린 왕자를 사랑한다.

보랏빛의 표지는 좀 더 엔틱한 느낌을 풍기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미가 담긴 일러스트에 두말할 것 없이 심쿵.
(사진은 어떻게 찍어도 실제 다크한 느낌의 보라를 잡아내지 못했다. ㅠ_ㅠ 내가 찍은 사진과 전혀 다른 보랏빛 표지라는 거.;;;;)
이로써 인디고에서 출간된 세 가지 버전 표지의 어린 왕자를 다 소장하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읽은 어린 왕자는 말할 것도 없이 다 번역본인데... (애초에 불어든 영어든 원서를 읽을 능력은 없으니;;) 사실 커다란 차이를 느낀 적이 없다.
연달아 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딱히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이다.
번역이 이렇게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게.
한국소설 말고는 어차피 죄다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같은 책을 번역자에 따라 여러 권 읽은 적이 없다.
많은 분들이 원서를 찾아 읽는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다르다.
맥락은 같지만 문장이 많이 다르다.
이렇게 차이를 드러낼 거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어느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같은 인디고에서 출간된 어린 왕자와 비교해도 확연히 다른 문체를 보인다.
심지어 내가 인상 깊게 기억하던 문장도 다르다.
물론 내용은 같지만.

묘하게 다른 문장을 가진 이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어색함(?)을 느껴 인디고의 다른 어린 왕자 책을 옆에 놓고 함께 읽었다. (첫번째 출간된 어린왕자)
다름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아는 분이 내가 읽어준 문장들을 들으시더니 기존의 어린 왕자가 좀 더 한국적이고(문장의 배열 같은 것들) 서정적인(예쁜) 문체를 사용하는데 반해, 이 책이 조금 더 원서에 가까운 번역을 한 느낌이라고 하셨다.
번역체 특유의 느낌을 풍긴다고.
(이를테면 '~라고 생각했다'/'내 생각엔~' 같이 문장의 배열 자체가 우리나라식으로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들의 차이 같은 것들.)

그렇다. 그래서 내가 처음 묘한 이질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아주 한국식으로 번역된 문장에 익숙했던 내게 원서의 느낌을 물씬 살린 번역은 조금 낯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번역이 다르니 나름 색다른 맛도 있었다.




자 그럼,
김미성 번역의 어린 왕자를 읽어보자.

 

 


"왕들은 소유하지 않아. 그들은 지배하지. 소유와 지배는 아주 다른 거야."

 

 ◈

"……말하자면 좀 따분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삶은 햇볕이 든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네 발소리가 다른 어떤 발소리와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다른 발소리는 날 땅속으로 숨게 만들어. 하지만 네 발소리는 음악처럼 날 밖으로 불러낼 거야. ....<중략>.... 부탁이야……. 날 길들여 줘!" 여우가 말했다.
.....<중략>.....
"어떻게 해야 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참을성을 길러야 해.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풀밭에 앉아 봐. 난 널 곁눈질해 볼 거지만,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해. 말은 오해의 근원이거든. 그리고 넌 매일 조금씩 다가와 앉으면 돼……."

 ◈

 

"같은 시간에 오는 편이 더 좋았을걸.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난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벌써 난 설레고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되는 거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찾아온다면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해." 여우가 말했다.

 

 ◈

 

"그래, 잘 가, 내 비밀을 말해 줄게. 비밀은 아주 단순해.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아."

 

 ◈

 

"별들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덕분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어딘가에 샘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어린 왕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은 채로, 영원히 어린 왕자 그대로.

가끔 밤하늘에 별이 보일 때면 소행성 B612호를 가늠해 본다.
길 가다 잔뜩 피어난 장미를 볼 때도 가시가 네 개 달린 어린 왕자의 장미를 떠올리곤 한다.
장미의 허영이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었음을 알고 나서부터,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와 당신의 모습들에 매번 어린 왕자의 장미가 오버랩되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어린 왕자를 애타게 기다리며 살아가는 장미인 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왕자'가 허구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텍쥐페리는 분명 그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을 거라고 믿는다.
그가 만났던 어린 왕자는 자기 별로 잘 돌아갔을까.
여전히 세 개의 화산을 청소하고, 새로 돋아난 새싹을 유심히 관찰하다 바오밥나무임이 분명해지면 얼른 뽑아내고, 새침하고 까다로운 장미에게 유리관을 씌워주고 있을까.
어떤 날에는 너무 슬퍼 의자를 옮겨가며 마흔세 번이나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여우를 떠올렸다. 길들여진다는 건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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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에서 이번에 리미티드판형으로 새로나온 어린왕자를 읽는 중이다.
한참 사모으다가 출간이 뜸해졌을때 멈췄다 안사고 있는데... 나머지 책들이 사고 싶어진다.
다음 시리즈는 또 어떤책일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작고 예뻐서 소장욕구를 미친듯이 올려주는 책들.
일러스트 정말 이쁘다!! ^^


우리집에 없는 책들.
그사이에 많이도 출간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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