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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평점 :

웃다가 찡
바람 잘 날 없는 식구 이야기
그렇다.
말 그대로 한 가족의 이야기다.
가족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지만, 에세이나 수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한 남자의
가족 이야기.
복작복작하고, 피식 웃음이 나고, 종종 코끝이 찡해지는 진짜 사는 이야기.
나는 여기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작가의
진짜 이야기라고 믿는다.
그맘때 아이들을 키웠고, 키우고 있는 엄마라서 그 이야기들의 진실이 너무도 잘 보였으니까.
(가족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기에 허구가 섞여있거나 각색되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진짜 우리들 사는 이야기가 다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짧게 짧게
엮어진 이야기는 가벼운 듯, 무겁고, 웃음이 나다가 눈물이 나고, 종종 가슴이 콱 막히기를 반복하며 나를 공감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가 된 지금의 우리, 아직 세상 때가 한참 덜 묻은 보송한 아이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보듬어 사는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
서툴렀던 육아에 지쳤던 순간들,
엄마가 되고 나이가 한참 들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부모님의 마음들,
돌이킬 수
없는 지나버린 시간들,
아이가 커가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들,
남녀가 아닌 가족이 되어 더 단단해진 부부애.
내가 지나온
많은 시간과 추억들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당신도 그렇게 살았구나.
당신도 나처럼 그렇게 서툴렀었구나.
당신도 우리들처럼
천천히 어른이 되었구나.
그것은 다른 방식의 위로였고, 따뜻한 다독임이었다.
이 작가가 엄청난 부자여서
타워팰리스 꼭대기에 살고 있고, 영어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조기유학을 준비하는 부모였다면, 아마도 내가 받은 감정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하더라도, 어쩐지 가슴 한켠에서 꼼지락대는 패배감 같은 게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에세이나 수필, 자기개발서 같은 책들을 읽다 보면 묘하게 상대적 박탈감을 이끌어내는 책들이 있다.
서울 한복판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면서, 준 재벌쯤 되는 사람들과 비교해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소도시에서 아파트 두 채를 사고도 남을
금액의 전세에 살면서 가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일 년에 두어 번은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 떠나면서 쉼 없는 일상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는 어쩐지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같을 때가 많다.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삶에 발목 잡힌
사람들에게 쉽게 여행을 떠나라 말하고,
꿈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한 인생들에게 꿈을 꾸어라 말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들을 이고
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책임에서 가벼워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 하기 힘든 것들, 그래서 우리를 조금은 허무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위로와 공감을 받기엔 내 일상과 그들의 일상이 서로를 비켜지나고 만다.
그래서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지
않는 작가가,
왁자지껄한 세 아이의 아빠인 작가가,
흙의 감사함을 알고 있는 순박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작가가,
아직도 부모의
마음을 배워가고 있는 중인 작가가 고맙다.
일상을 지나다 한 번쯤 마주쳐서 서로의 등을 토닥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작가가
고맙다.
우리는 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어쩐지 닮은 것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괜히 콧날이 시큰해지고,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지고, 내 이야기 같은 삶들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이 책 속의 가족이 그렇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흔한 가족의
모습이라서 더 그렇다.
그래서 더 반갑고, 더 웃음이 나고, 더 눈물이 난다.
길 가다 나와 똑닮은 눈빛을 마주친 것
같은 기분.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이해가 있다.
당신의 일상과 나의 일상을 이어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