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이울다
이영희 지음 / 청어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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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같은 글이다.

달리 뭘 덧붙일 것도 없이, 말 그래도 배꽃으로 가득 찬 글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봄인 글.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무한한 도돌이표를 세기며 다시 그 4월에 돌아오고야 마는 글.

마치 배꽃이 흩날리는 흙길 어딘가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글.

단정하고 잔잔한 글이다.

 

시골에서 자랐던 나에게는 그 모든 풍경들이 익숙해서 영상을 보는듯 눈앞에 펼쳐졌지만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느낌을 줄지는 모르겠다.

어릴적 거닐었던 오솔길과 온갖 들꽃과 배꽃들이 떠올라서 글을 읽는 시간 동안 향수에 젖었었다.

맞아 그 봄, 그 배꽃이 참 예뻤었지.

하얗고 순하던 배꽃이 참 고왔었지.

그 곁을 지키던 복사꽃도 어여뻤는데.... 배꽃을 닮은 앵두꽃도 앙증맞았는데....

책을 읽으며 나도 어릴적 그 시간들을 함께 더듬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좀 힘들었던 글.

감정 과잉의 글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

매번 감정이 과해 넘쳐흐르는 글을 읽으면 체증이 인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가며 조금씩 젖어드는 감정을 좋아하는데, 종종 시작부터 나는 모르는 그들의 감정이 절절한 경우가 있다.

이 책도 내겐 그러했다.

시작부터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감정에 도취되어 절절했다.

그들의 사연을 알 수 없는 나는 가득찬 감정들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 안에 같이 녹아들고 싶은데.....그들을 이해하기엔 나는 완벽한 타인일 뿐.

글의 문체는 시종일관 담담했고 담백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 감정의 넘침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특히 두 주인공은 유난히도 감정이 정갈한 사람들임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하나까지 애절하고 절절하기 그지 없다보니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그 절절함을 이해시키기엔 그들의 사연이 너무 단조롭고 짧았기에 ......... 사랑이라는게 찰나에 불과한 감정의 공유로 시작되기도 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마음한켠에선 '부족'을 느꼈나 보다.

어쩌면 내내 겉돌게 여겨졌던 그 감정과 눈빛들을 너무 이해해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열한살, 어느 배꽃 흩날리는 봄에 마주친 남자를 가슴속 연정으로 깊이 품고서 결국은 그와 결혼하게 된 지안.

계몽 운동을 하는 아버지의 딸로 친일파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강행할 만큼 그녀의 마음은 깊었으나

그 모든 마음의 길은 오해로 부터 시작되어 어긋난 인연의 실을 이어놓고 만다.

사랑하는 이가 천하다는 이유로 결국 잃고야 말았던 두현은 명문가 규수인 지안에게 못되게 굴며 상처를 주는데....

오해속에 숨겨져버린 또다른 인연 은 그것을 지켜보느라 내내 마음이 아프다.

다른곳을 바라보는 셋,

또한 서로를 외면 할 수 밖에 없었던 셋.

마음속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배꽃이 지천인 이곡리의 4월을 살아낸다.


경성에서도 내내 단이 그리워했던 이곡리의 배꽃.

만주에서도 내내 단을 살게했던 이곡리의 배꽃.

단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그 곳의 봄, 배꽃, 그리고 지안.


그 작은 동네까지 찾아든 나라잃은 설움은 내내 그렇게 희게 피어났나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거라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얗게 하얗게 피어났나보다.

그래서 이곡리에는 내내 봄만 있나 보다.

나라를 잃어도 사랑을 잃을 수는 없었다는 작가님의 후기처럼, 배꽃 흐드러지는 이곡리의 봄은 그렇게 사랑이었나 보다.


배꽃이 감춰준 사랑의 서성임들이 다시 찾아온 봄을 따라 너울너울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그 시절을 살아냈던 누구의 가슴에도.

반드시.



 


사실은 지나친 배꽃 타령에 좀 질리기도 했다.

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쓴 글이 아닐까 싶을 만큼, '배꽃 이울다' 라는 표현이 지칠정도로 많이 나온다.

문장 마디마디 마다 등장하는 표현이 처음엔 신선했다가 그다음엔 과해서 부담스러웠다가 나중엔 원래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나보다 하는 체념에 이르기까지 ..... 좀 과하다 싶었다.

물론 그런 표현들이 글을 서정적이고 예쁘게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나, 뭐든 넘치는 것은 모자란만 못하다는 옛말은 그른게 없다.

애초에 배경뿐 아니라 여주의 모습을 배꽃에 비유할꺼라고 예상을 했음에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 표현들 덕분에 지쳤다.

여주도 배꽃, 배경도 배꽃, 감정의 흐름도 배꽃..... 모든 곳곳에 배꽃 뿐이다.

아 남주를 표현했던 자운영꽃도 물론 여러번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튼 책 전체가 배꽃 잔치다.

작가님이 꽃을 몹시도 사랑하신다니....그 마음이 과하게 책에 투영되었던 모양이다.

 

몹시도 서정적이고 분위기있는 문장들이 자주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내내 구구절절 설명을 하다보니 (그게 감정이던 배경이던...) 묘하게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했다.

첫 작이라서 그런건지 강약조절이 좀 모자랐던 것 같기도 하고, 최대한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했던 욕심이 지나쳤던것 같기도 하고....;;;

여튼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꽤 있었는데 그 부분들이 좀 더 부곽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온천지에 다 고만고만한 색깔들을 모아두면 그 색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다.

적당히 낮추고 적당히 감추면서 반짝일 부분들은 좀더 드러내고 배경이 되어줄 부분들은 채도를 낮춰주었다면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글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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