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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자
임경선 지음 / 예담 / 2016년 3월
평점 :
'우리는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부디 우리 두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해주길 바란다'
작가의 말에 씌인 이 두줄의 문장 때문에 마지막 순간 머릿속이 뒤엉켜버렸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타인의 사랑이기 때문에 내가 함부로 재단하면 안되는 것인가.
그저 묵묵히 바라봐주기만 해야하는 것인가.
다른이들은 ‘지운’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가정이 있고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는
한 가정의 아내이고 엄마이던 소설가 지운은 어느날 느닷없이 사랑에 '빠져'버렸다.
불가항력적으로. 어쩔수 없이.
<나는 세상의 모든 형태의 사랑을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그 어떤 잣대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랑은 '하는'게 아니라 '빠지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이 있었다.
배우자가 있음에도 연애를 하는 것은 감기에 걸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감기니까 처음부터 계산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의도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라는 부분은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에도 지속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가 담긴 문제였다. 그들은 그 관계를 지속하기로 직접 '선택'한 것이고 그것은 전혀 '불가항력'이 아니였다.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연애하기로 했으면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다.> ________ p. 146
사실 나는 책의 절반을 읽는 동안 내내 이게 왜 사랑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한 여자가 남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였다.
그녀가 사랑이라고 느끼고 있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카페의 주인과 단골손님.
그 남자의 어느 부분에서도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저 여자 혼자 착각속에 도취되어 스스로의 감정에 북받쳐 미쳐있는것처럼 보였다.
남자의 행동, 웃음, 눈빛 하나하나를 스스로 유리한대로 재단하고 각색해서 우쭐해졌다가 분노했다가 질투를 하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처럼 여겨졌다.
이 글의 스토리가 자아도취에 빠진 여자의 외사랑인건가 싶은 의심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도 일상을 벗어난 일탈 그 자체를 더 즐기고 원하는것 같아 보였다.
정체되어 있는 일상을 지겨워하고 답답해하고 벗어나고 싶어했다.
출렁대는 감정의 일렁임을, 죄책감과 희열이 뒤범벅이된 자극적인 쾌락을 그녀는 분명 원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꼭 그사람이여야 하는 '사랑'이 아닌, 그날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해도 그녀는 분명 타인인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것만 같아 보였다.
내게 주어진 뚜렷한 현실이 아닌, 아득한 저곳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었으니까.
후에 결국, 단정하고 올바르게 보였던 남자마저 흔들림을 보였을때
나는 아마도 절망 했던 것 같다.
그냥 여자 혼자 미쳐있었던게 차라리 나았다.
감정의 일렁임을 참지 못하고 마지막 선을 넘어서 버린 그들을 보면서, 애처로움이나 안타까움을 느끼기보다 질퍽한 불편함을 느꼈다.
사랑의 절정의 순간
그것은 아름답고 빛나는 오르가즘이 아닌 질척이고 추한 욕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동시에 두 남자를 공유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고 건강한 관계는 아닐테니까.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만을 쫓고있는 그녀를 응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사랑이 꼭 도덕적이여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배덕한 사랑을 칭송하지는 못하겠다.
현실의 모든것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인 것인가.
죄책감도 책임감도 가족도 아이도.... 어떤 것도 잊어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인가.
사랑이라는건 도데체 어떻게 생겨먹은 감정인 것인가.
<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다 못해 잔인한 것은 자신의 외도 사실을 배우자에게 고백하는 일이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의 미덕은 이때만큼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상대를 깊은 혼란과 좌절 상태에 빠지게 만들 뿐이었다. >
놀랍게도 그녀는 결국 모두를 가졌다.
그토록 원하던 이상적이고 충족된 사랑도 손에 쥐었고 (심지어 정신뿐아니라 몸까지 전부)
안정되고 번드르르해 보이는 가정도 지켜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현숙한 아내의 가면을 뒤집어 쓴 채로 어떤것도 잃지 않았다.
내가 불륜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로인해 가정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당사자인 두사람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보호받아야할 아이와 아무것도 몰랐던 배우자와 결혼으로 인해 생긴 새로운 가족들이 모두 깨어지고 상처받게 되기 때문에.
그토록 이기적이고 날카로운 칼날같은 감정을 도저히 사랑이라고 명명해 주고 싶지 않았다.
불륜 말고도 수많은 이유들로 가정이 깨어지고 부부는 너무 쉽게 남이 되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의는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조각나버린 가족보다 더 잔인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차라리 가정을 버린 사람들은 이기적일지언정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었다.
가족을 버리고 욕망을 쫒은 사람들을 인정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그만큼 그녀의 이중성이 내겐 충격이었다.
모든 관계에서 내내 이중적이었던 그녀는 앞으로 삶 또한 철저하게 포장된 채 살아 갈것이다.
끝까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내 배우자가 다른 곳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충족된 애정을 가득 채운 채 집으로 돌아와
그 충만한 만족감으로 인해 내게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 혹은 아내의 모습으로 곁을 지켜준다면...
나는 차라리 죽겠다.
그냥 죽어버리고 말겠다.
내곁에 껍데기만 뉘어놓고 내내 허기진 마음과 정신으로 죽어가다가, 다른곳 다른이에게 삶의 의미를 인공호흡하듯 들이키며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기만과 소름끼치는 살인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다.
정말 나쁜게 무엇인지, 진짜 그녀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누군가 나에게 정신적 불륜과 육체적 불륜 중 꼭 하나를 선택해 어느것을 더 참을 수 없느냐 묻는다면
나는 두번 생각하지 않고 정신적 불륜이라고 단언하겠다.
두개 중 어느 것도 싫지만,
나는 마음 없는 삶을 살 수 없다.
애초에 그럴수 없게 프로그래밍 된 사람이다.
마음으로 나를 기만한 사람만큼은 절대 용서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되어버린 상대 배우자가 아니라
지운 그녀라면, 그녀의 입장에 내가 던져졌다면...
나는 아마도 불가항력적으로 사랑에 빠져버렸지만, 연애를 선택하지는 못할것 같다.
남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는데 그사랑이 식어버리고 또다른 사랑에 '빠져' 버린 내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물론 책 속 그녀보다 내가 더 심각한 사랑예찬론자이고, 누구보다 더 열열히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처럼 유치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저질러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닥치지 않으면 절대 알수 없는 것들도 있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다.
오래되고 익숙하고 손때묻은 것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나는
관계의 믿음과 신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철썩같이 믿는 나는
아마도 그 선을 넘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음에 바람이 불어오면, 그냥 그렇게 훑고 지나가 버리기를 잠자코 기다리지 않을까.
결국 나는 그녀는 책망해야겠다.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연애를 '선택'했기 때문에.
혹은
단한번도 남편 앞에 솔직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내내 남편과 집에서 가면을 쓰고 살았다.
현숙하고 자애로운 부인의 가면을 쓰고, 다정하고 모성애 넘치는 엄마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가장 솔직하고 민낯같아야할 가족앞에서 내내 연기를 하며 사는 인생이 답답할 수 밖에.
남편에게 충분히 싫다, 좋다, 말할 수 있었을텐데.
거절을 해도 되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됐을텐데.
저 부부는 내내 서로 가면 쓴 모습만 보여주며 살고 있으니 허허로울수 밖에.
현실에서 내동댕이 쳐지는 순간 그녀는 눈을 감은채 꿈 속 세상만을 동경하고 열망했다.
그녀가 지금 가진 그 꿈같은 세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나설테다.
자신의 욕망앞에서만 유일하게 솔직했던 그녀를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아직까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여러번 봤지만)
내사람에 대한 독점욕이 강한 내가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나와는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여자를 이해해보려고 애쓴것만으로도 대견스럽다 할만 하다.
모든 불륜 드라마나 책속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안타깝게도 이 글 속 지운은 내 이해의 범위를 비켜갔다.
이미 무언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려면 가지고 있는 하나는 내려놓아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다.
그녀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원하는 모두를 손에 쥔채 끝났지만
그 이야기 너머의 그녀는 진창같은 현실 구르다가 모든것을 놓쳐버리지 않았을까.
아니, 그러했기를 못된마음으로 바라본다.
결혼 12년차가 곧 시작되는 내게
여자로서의 삶이라던지, 잊고지냈던 설렘이라던지, 새로운 어떤 관계에 대한 떨림 같은것들을 환기시켜주고 공감하게 해줄꺼라고 기대했었는데
내 속에 숨어 있는 ‘여자’는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고루한 옛날 사람인 모양이다.
읽는 내내 가해자가 되지 못하고 피해자의 역할에 충실했고, 단 한순간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채 그 언저리 어디쯤을 비켜지나듯 걷는 조연이었다.
내가 솔직하지 못한걸까...내 삶의 주체가 온전히 ‘나’여야 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해서 일까.
나는 내가 솔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 속의 나는 겁많고 보수적이며 타인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였던가 보다.
욕망에 충실한 그녀와 사랑을 서로에 대한 신의라고 생각하는 나.
옳고 그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저 나는 내 시선과 신념으로 그녀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할밖에.
애초에 인간은 누구나 나 아닌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때론 나도 나를 잘 모르는 순간 허다하니.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미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