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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0년 7월
평점 :

여름엔 누가 뭐래도 서늘하고 섬뜩한 스릴러가 제격이다.
하지만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잔혹한 스릴러는 좀 힘들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영상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지라 잔인한 장면들을 견디기가 어렵다.
그런 나에게 맞춤형 스릴러가 나타났다!
지적이며 우아한 심리 스릴러.
거짓 속에 내팽개쳐진 화자의 생각들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함께 혼란스러워지고, 날카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혼란스럽고, 헝클어진 시선들,
진실을 알 수 없어 더듬거리는 손,
당혹스러운 상황의 연속들.
모든 것들이 독자마저 그 혼돈의 상황 속에 내던져놓는다.
책장이 줄어들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진실.
나의 짐작들은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렸다.
그리고 맞았을 때 보다 틀렸을 때 더 큰 쾌감을 얻는다.
끝을 향할수록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보기 좋게 독자를 따돌리는 우아한 스릴러.
"테라피스트"

사라는 심리학자다.
그녀는 결혼한 여자다.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나러 간 남편이 실종된다.
친구들과 함께 있다던 남편의 마지막 메시지.
뒤늦은 친구들의 남편의 행방을 묻는 전화.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을 믿고 싶다.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고 말하며 등장하는 남편을 보고 싶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히스테릭해지지 않기 위해, 공연한 상상을 하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견디고 있다.
과연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가 미치기 전에 이 두려움에서 그녀를 구제해 줄 손은 누구의 손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모든 것이 헷갈리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기억에 집착하는 것만 같은 사라의 모습마저도 그 혼란을 가중시키기만 한다.
사라를 믿을 수 있을까?
그녀의 기억은 온전한가?
혹시....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유전병에 대해서 책을 읽는 내내 의심했었다.ㅋㅋ)
심리 스릴러라는 이름에 너무도 잘 어울리게 쓰여진 책이라, 피 한 방울 없이 독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어떤 일상의 시간을 읽으면서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공포영화의 특유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배경음악이 책 전체에 깔려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음악은 끊이지 않고 흐르다가 엔딩에서 비명으로 바뀐다.
긴장과 긴장의 끝엔 이완이 아니라 희게 질린 비명이 남겨질 뿐이다.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 때조차 전혀 사라지지 않던 긴장의 시간.
남은 페이지가 점점 줄어들수록 눈치채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테지만, '혹시~'하고 짐작했던 게 맞더라도 마지막에 느껴지는 서늘함은 여전할 것 같다.
북유럽 소설 특유의 서늘함과 만나 더더욱 스릴러의 맛을 한껏 높여준 작품이었다.
수없이 많은 평범한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무서운 건 이거다 - 평범하고 무료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해야 할 날들이. 그토록 무시무시하고 기나긴 날들이.
P.155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거짓말을 하고, 자기만의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그 거짓말과 비밀 사이에 조금씩 어긋나는 진실들.
어떤 진실들은 영영 어둠 속에 있기도 하다.
어둠 속에 걸어들어가 진실의 마지막 조각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