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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누가 봐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누가 뭐래도 특별한 사랑 이야기
우리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어디서든지 보이고 읽히는 사랑이 여기 있다.
조금만 더 깊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랑의 얼굴들이 불쑥 불쑥 눈 맞춤을 해온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들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사랑은 대체로 고결하고 아름다운 로맨스이기보다는 찌질하고 짠내나는 일상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 말이다.
사랑에 덧씌운 필터를 벗겨내고 보면, 원본 속 사랑의 모습은 일상의 자질구레함을 그대로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이 아름답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여기저기에서 짧은 소설들이 연달아 출간되고 있다.
단편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나 짧은, 시간의 단상들.
그 짧은 소설만이 가지는 독특하고 묘한 여운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글을 읽게 한다.
이번 이기호 작가님의 신작 또한 트렌드세터답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짧은 소설 묶음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영영 나이 들지 않는 청년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늘 트렌디한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작가님.^^)
기존의 작가님의 작품에서 느꼈던 경쾌함이랄지, 다정함 같은 것들이 '짠내'를 폴폴 풍기며 담겨있다.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안타깝고, 종종 찌질하고, 가끔은 난감하고 부끄럽기도 한, 사랑의 모습들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판타지 같고, 동화 같은 로맨스는 없다.
익숙하고 친숙한 어제와 오늘의 우리가 있을 뿐이다.
가끔은 그것이 사랑이었는지조차 잊고 지냈던 순간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내가 오늘 묵묵히 살아낸 하루 또한 사랑의 한순간이었음을 문득 깨닫게 되기도 한다.
뜨겁고, 설레고, 숨 막히게 벅차오르던 순간만이 사랑이 아님을,
그 시간들이 끝나버리고 나서 찾아온 일상의 순간들 또한 사랑의 시간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사랑은 남루한 일상에도, 서글픈 삶에도, 고단한 하루에도 빠짐없이 고여서 우리를 지탱해 준다.
부족하고 찌질한, 모자라고 성급한 우리들의 손을 꼬옥 잡아준다.
넘어지지 말라고.
무사히 삶을 건너라고.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 너무 애쓰지도 말고.
P.25
짧은 이야기들 속에 사랑 하나 담기에도 좁을 것만 같은데, 삶의 무게들도 담겨있어서 이 짧은 글들이 마냥 가볍지만도 않다.
경쾌하고 웃픈 마음으로 읽다가도, 순간순간 덜컥하고 마음에 돌이 날아든다.
초등학생인 아이의 첫사랑을 담은 짧은 글에서 나는 울컥하고 눈물이 날뻔했다.
그 아이의 풋내 나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삶이 무엇인지도 아직 제대로 모를 아이에게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가라는 엄마의 말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가 어려운 삶의 무게를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세상의 모든 엄마는 아이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려고 애를 쓴다.
공부하라는 말이 아이에겐 그저 잔소리겠지만, 엄마에겐 아이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낫길 바라는 기도 같은 것이다.
그런 엄마가 하는 '너무 애쓰지 말고' 살라는 말은 그래서 더 슬펐다.
풋내 나는 아이의 첫사랑마저도 이렇게 짠내나게 그려내고야 마는 작가에게 슬쩍 눈을 흘기고 싶기도 했다.
그래요,
우리 다들, 참 애쓰며, 짠내나게 살고 있네요.
그럼에도 다들 절망하지 않고 또 사랑을 시작하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장소든 시간이든 단어든, 아끼는 사람이 글을 쓴다.
작가의 말 _ P.230
작가님이 장소든 시간이든 단어든, 그리고 사람마저 아끼는 사람이라서 참 다행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작가님이라서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조금 더 다정한 눈빛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