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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심리학 -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공간의 비밀
발터 슈미트 지음, 문항심 옮김 / 반니 / 2020년 5월
평점 :

따스하고 온화한 빛은 격한 감정을 안정시키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가라앉은 기분을 밝게 끌어올려 준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가운데 자리보다는 창가의 책상에 더 끌리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기분에 유리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심리적으로 매우 유익한 반응이라고 요제프 빌헬름 에거는 설명한다.
P.203~204 _ 창가 자리가 사랑받는 이유
학교에 다닐 때 대부분의 친구들은 창가 자리에 앉고 싶어 했다.
지금도 카페에 가면 창가 자리를 가장 선호한다.
심지어 버스나 기차를 탈 때도 창가 자리를 선택하게 된다.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리가 좀 덜 답답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답답함이라는 것도 갇힌 공간에 대한 어떤 거부감에서 비롯되었던가 보다.
나의 선택은 오로지 나의 의지로 이루어진 듯이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는 DNA의 영향과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내가 하는 선택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면 나를 조종하던 공간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우리의 행동 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것을 과학적인 수치로 계산하고, 그 원인을 찾고자 했던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간이 우리에게 끼치는 심리적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행동 심리를 깊이 다루고 있다.
다양한 질문과 다양한 답변들, 여러 방면의 학자들이 내놓은 해석들을 읽으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행동 패턴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즉 공간이 바뀌면 태도도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부모님이 습득한 태도의 기준 역시 그들의 부모님이나 롤모델, 즉 자신이 속한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것이다. 이에 따르면 특정 장소는 특정 행동방식과 항상 묶여 있다. 학교 운동장이나 축구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괜찮은 곳, 교장실이나 병실은 그러면 안 되는 곳, 이런 식이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축제 때의 발걸음과는 다르며, 장례식장에서 색종이 조각을 날리거나 나팔을 불어 대지도 않는다.
P.115~116 _ 교회에서 저절로 소리를 낮추게 되는 이유
우리는 우리가 공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우리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이유, 자꾸만 산을 오르려는 이유, 사장실이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이유, 직위가 높아질수록 사무실의 창문이 커지는 이유, 침대를 방문과 대각선상에 놓는 이유, 식당에서 벽을 등지고 앉으려고 하는 이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옆자리에 가방을 놓는 이유….
쉴 새 없이 많은 이유들이 공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사람들을 알고 있을까?
어떤 것들은 너무 본능적이라 자신도 모른 채 행하게 되고, 또 어떤 것들은 그저 취향의 문제로 인식되고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 공간과 진화심리가 끼어들어 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행동 중 하나인 '의자에 앉을 때 옆자리에 가방을 두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탈 때 나도 늘 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타서 좌석이 점점 부족해지면 당연히 누군가 앉도록 가방을 무릎에 올리지만, 앉을 자리가 충분한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옆자리에 가방이나 옷 같은 것들을 놓기 마련이다.
은연중에 혼자 앉고 싶은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영역의 문제라고 한다.
'밀접 영역'이란 살갗에서 주변으로 45~50센티미터 지점까지의 보호구역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살갗이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공간을 의미한다.
대중교통이 아니라면, 타인과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거리는 아닌 것이다.
지나치게 친밀한 이 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부담을 느낄만한 거리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우리들은 모두 그 '친밀하고 지나치게 가까운' 영역을 강제로 내어주고 있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언제든 목숨을 위협당할 수도 있는 생존의 거리를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타인에게 내어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그 거리를 넓히고 싶은 것이다.
내 옆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지만, 나의 공간을 최대한 넓혀 그런 두려움이나 부담을 떨쳐내고 싶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본능들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선사시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존 본능은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튀어나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
그런 본능들이 우리는 조심스럽게 만들고 예민하게 만들어 우리를 지금에 이르게 했다.
수많은 위험들에서 살아남은 후예들이 바로 우리들이니까 말이다.
그런 본능과 공간이 만나 우리는 새로운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된다.
의자에 가방을 놓아서 사적인 공간을 최대한 보호받고 싶어 하고, 식당에 가면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벽을 등진 자리를 선택하고, 햇볕이 드는 환한 창가에 앉고 싶어 한다.
그동안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 속에서의 나의 본능적인 행동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공간이 때로는 나를 제약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난데, 공간의 힘에 반대로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난다.
그러라고 만든 공간들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나름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매우 많이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내게는 역시나 마지막 챕터가 가장 영향을 끼칠 것 같다.
그동안 읽은 다른 책에서도 산책의 중요성이나, 걷기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들 언급했었는데 이 책도 마지막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부가 안되면 밖에 나가서 걸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그 효과에 대해 이 책 또한 언급하고 있어서 좀 더 자주 밖에 나가 걸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기도 했다.
또한 몸과 뇌가 엄청난 공조를 하는 녀석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이 뇌에까지 우울감을 전염시킬 수 있다니 많이 걷고 움직이는 건 어쩌면 필수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딱히 앞부분부터 차례로 읽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
각 챕터별로 인간의 행동 심리에 관한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되고, 궁금했던 질문을 골라 읽어도 좋다.
저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읽으라고 일러주고 있지만, 나는 또 필요 이상으로 착실하게 1페이지부터 차례로 읽긴 했다.
앞부터 순서대로 읽는 게 내가 가진 본능 중 하나인가 보다.ㅎ
행동 심리가 궁금할 때, 공간 속에서 위축되거나 불안을 느끼는 이유를 알고 싶을 때, 이 책을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