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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ㅣ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왜 우리나라는 없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목차를 꼼꼼히 보지 않는 편인데, 목차 다음에 바로 등장한 지도 때문에 나도 모르게 깨닫게 되었다.
어? 한국은 없네? 왜?

이 책에는 30개 도시에 얽힌 역사가 담겨있다.
그 30개 도시 중에는 정말 들어본 적도 없는 도시 이름도 등장하는데, '세계사'임을 감안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면 한국이 빠지는 게 차라리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우리에겐 세계사가 아니라 한국사니까)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일본인인데, 본인의 나라의 도시인 교토는 들어가 있다.
거기다 중국의 도시도 들어가 있다.
한국을 잘 모르는 머나먼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집필한 책도 아니고, 누구보다 서로의 역사에 깊이 관여된 한, 중, 일인데 한국만 쏙 빠져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자꾸만 곱씹게 된다.
한국이 어제 갑자기 생겨난 나라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인데 정말 언급할 도시 하나가 없었을까?
나도 모르게 꽁해진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의 도시가 가진 아주 오래전 이름과 현재의 이름, 그리고 그 도시가 위치한 나라 또한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함께 알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땅은 그곳에 변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도시를 점령한 나라는 때때로 수도 없이 바뀌기도 했다.
한 도시에 여러 종교, 문화, 예술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 도시를 점거했던 민족이 여러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시에 남겨진 흔적은 그런 역사의 고통 덕분에 더 아름답기도 했다.
한 도시 안에 혼재하는 전혀 다른 문화와 종교의 흔적들은 예술적 가치로 남겨져 오늘날 우리들을 그 도시로 불러들인다.
이 책은 그런 도시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이야기부터, 각 나라의 패권 다툼 속에서 어떻게 그 도시가 살아남았는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를 알려준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꿋꿋이 버텨온 도시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사라져 기록에만 존재하는 도시도 있다.
외부 침략으로 무너지기도 하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도시는 끝끝내 살아남았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여기저기 묻힌 채 과거와 현재를 함께 끌어안고 오늘을 살고 있다.
어쩐지 남의 나라, 낯선 도시가 훌쩍 가까워진 느낌이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인 세계사는 한 도시에 대한 묘한 애정과 애착을 만들어 준다.
어떤 나라의 어느 한 도시로 존재했을 때 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느낌이 든다.
험한 시간을 살아낸 도시의 주름진 얼굴은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도시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아쉬운 점은, 담긴 내용은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재미를 보장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중학생인 아이와 함께 읽고 싶었던 책인데, 아이에게는 그냥 세계사 교과서와 비슷하게 읽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건을 위주로 펼쳐진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대로 대부분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것 같다.
한 도시가 살아낸 시간들이 어떻게 현재로 이어져 왔는지 '설명'에 충실한 글이다.
그리고 처음에도 말했듯이, 왜 한국은 없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외국 사람이 쓴 책에 한국이 없다고 투덜대는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기어코 굳건히 버텨온 도시가 한국에도 많다.
서울이 너무 발전해버려 역사의 흔적을 찾기가 아쉽다면, 천년의 고도 경주가 있잖는가.
저자가 한국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것인가?
책을 다 읽고 덮었지만, 나는 여전히 목마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