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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ㅣ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고전을 읽고 싶지만 배경지식이 없어 힘들었던 사람, 어디서부터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어려운 용어만 보면 인상부터 써지는 사람, 지식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P.5~6 _ 들어가며
책을 시작하며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어머, 그거 나잖아!'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많지 않을까 싶다.
나부터도 딱 그런 사람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배경지식의 부족을 1순위로 꼽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사도 종종 헷갈리는 판에 세계사까지 제대로 알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세계사 관련 책들을 읽을 때도 있지만, 워낙 방대한 이야기라 서너 번 접해서 그 지식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알고 있는 지식들을 연도별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이야기별로 줄 세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면서도 그저 그 책 한 권을 간신히 이해했을 뿐(이 또한 제대로 된 해석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 책과 연계되어 파생된 이야기들까지 엮어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그게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남들이 그 책을 읽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해석을 해낼 때 나는 그저 감탄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부족함은 고전을 읽을 때 더 뼈아프게 드러났다.

이 책은 먼저 이 질문을 앞에 놓고 시작합니다. "유례없는 발전의 속도에 살고 있는 지금,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인류의 여정이 어떻게 꾸려져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방향성이라도 가늠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부터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들을 따라 여행하며 인류의 흐름을 살펴보려 합니다.
P.8 _이 책의 안내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한 권의 책에서 시작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부한 배경지식을 들 수 있겠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들을 따라 책이 진행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된 사건들이 다음으로, 또 그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책과 책 사이를 촘촘히 채워준다.
바로 그런, 책과 책 사이의 위화감 없는 자연스런 연대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앞에 언급했던 책과 뒤에 언급된 책이 전혀 다른 책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를 관통하거나 사람들에게 비슷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서로 맞닿아있는 부분을 발견할 때의 쾌감을 저자는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내 눈으론 보이지 않았던 연결고리들이 쏙쏙 발견될 때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고전을 알고 싶어 읽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세계사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은 배경지식이 중요한 이유를 정말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 너머의 것들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책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삶까지 낱낱이 파헤쳐 읽기가 쉽지 않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책들이 우리에게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책 읽기'라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깊이 읽기'에 대한 갈증은 점점 더 심해지는 기분이다.
과연 내가 책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날로 깊어진다.
책이라는 존재가 좀 그런 것 같다.
읽을수록 더 모르겠고, 읽을수록 더 어렵고, 읽을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그래서 이렇게 방황하는 우리를 위한 지도가 필요하다.
지도는 정확하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지도에 표기된 것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온전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지도의 존재가 절실함을 인정하게 된다.
이 책은 '책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길치들'을 위한 아주 좋은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나처럼 고전 앞에서 맥없이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에겐 더더욱 필요한 길잡이다.
그럼 이제,
과연 이 책 속에는 어떤 책을 통과하는 길이 담겨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이 책은 크게 레벨 1.'질문하는 인간', 2.'탐구하는 인간', 3.'생각하는 인간'으로 나뉘어 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담긴 책들을 다루고 있다.
때로는 과학적이기도 하고, 인문학적이기도 하며, 문학적이기도 한 다양한 책들이 등장한다.
워낙 유명한 고전들을 다루고 있어서 누구라도 제목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책들이다.
그럼에도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완독을 하지 못했거나, 읽었음에도 물음표가 더 많이 남는 책이었을 수도 있을만한, 그런 고전들을 좀 더 쉽고 간략하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
방대한 지식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책장을 덮었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찾지 못하거나 너무 희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여기 소개된 책들은 특히나 그런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 준다.
거기에 더해진 작가의 해석 또한 흥미로웠고, 책과 세계사를 너무 잘 버무려놔서 더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너무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지라, 모든 부분을 소개할 수는 없을 듯하고, 그중 몇 개만을 간단히 적어본다.

'레벨 1, 질문하는 인간'에서는 「사피엔스」, 「총, 균, 쇠」, 「그리스·로마신화」,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헤브라이즘 문화의 정수가 성경이라면, 헬레니즘 문화의 정수는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할 수 있어요. 성경을 보는 이유가 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는 이유는 인간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P.77 _ 역사 이전에도 사람이 존재했다 『그리스·로마 신화』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보고 싶으면 역사가가 기술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기술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 보통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역사에서 빠져 있는 것들이 왜 기술 되지 않았는지를 알면 그 시대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P.105 _ 기록과 해석, 그리고 필연적 진보 『역사란 무엇인가』

'레벨 2, 탐구하는 인간'에서는 「국가」, 「장미의 이름」, 「군주론」, 「리바이어던」, 「로빈슨 크루소」, 「법의 정신」, 「에밀」, 「월든」, 「자유론」, 「1984」를 다루고 있다.
기존 가톨릭의 폐해에 반발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와 결합해서 부자가 되어야 할 당위를 제공해주는데요, 이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이 가톨릭을 누르고 전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청교도적인 생활을 하면 심지어 무인도 같은 곳에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화가 바로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은 미국 건국의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지요. 지금도 미국은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청교도의 나라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부자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건 이러한 전래를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 그리고 신의 은총으로 부자가 된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을 어떻게 쓰든 그것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P.177 _ 무인도에 숨겨진 2가지 중요한 의미 『로빈슨 크루소』
혼란스런 사회상을 가르치려 애쓰지 말고, 그 상황 변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 상황이 변화할 때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자존감을 가르치라는 게 『에밀』의 교육론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오늘날 더욱 강한 울림을 줍니다.
P.209 _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혁명적인 생각 『에밀』
법은 '진리'가 아닙니다. 법은 '규칙'입니다. 법은 대중을 가르치고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대중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규칙을 제공할 뿐입니다.
P.192 _ 신이나 왕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오는 것 『법의 정신』

'레벨 3, 생각하는 인간'에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기적 유전자」, 「멋진 신세계」, 「코스모스」를 다루며 이야기를 마친다.
돈을 더 지불하고 합의와 원칙 위에 서는 것, '내 돈 내고 더 편하게 이용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고는 곧 국민주권 국가의 기본 전제인 합의와 원칙이 때에 따라 무시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사회 계약설의 기본 토대가 깨지는 거죠. 이런 양태가 더욱 발전하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돈만 있으면 법에 대한 사면권이 발동할 수도 있겠죠. 종교개혁이 불러일으킨 면죄부 판매와 크게 다를 바 없는데요, 최근 들어 돈 있는 사람에게는 법조차도 관대하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이런 생각은 가상의 위험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P.256 _ 원칙과 합의도 돈으로 사는 세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로 시작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하던 두 권의 책이 저자가 놓은 처음의 징검다리와 마지막의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순간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연대의 기운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마치 당연하게 이어진 하나의 길처럼.
사피엔스는 얼마 전 구입했으니, 정말 엄두조차도 못 냈던 코스모스도 이참에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 담긴 모든 고전을 읽을 자신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그중 몇 권의 책들은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했다.
책이 책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줬으니, 나 또한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 보려고 한다.
아마도 여러 번 멈출 것 같긴 하지만, 지도를 장만했으니 그래도 모르는 길을 걷는 일이 좀 덜 무서울 것도 같다.
떠나보자, 고전 속으로!!
저자가 다음으로 출간할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 성장하는 인간 편』 또한 너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다려 달라고 하시니 더 조바심이 생겨 작가님을 닦달하고 싶어질 것만 같다.
우리나라 택배가 세계 최고의 속도라는 거 작가님도 아시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