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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평점 :

한 사람을 위한 글밖에 쓸 줄 모르는 나는 어쩌면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오늘 편지를 쓴다. 그날, 그때, 내 마음이 떨렸던 눈부신 순간들이 하나든 둘이든 당신에게로 가닿기를 바라며.
이토록 좋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서.
당신과 함께.
P. 6 _ 시작하며 (작가의 말)
이런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면 우리는 마음이 떨리고 행복해질 것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서 오늘 자신이 마주친 작은 행복의 순간들을 정갈하게 적어 건넨다면 누구라도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런 행복을 누군가에게 건네 준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문득 부끄러워진다.
얼마든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오늘 내가 발견한 행복의 모습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나이를 먹어 갈수록 무심해지고 나태해지는 기분이다.
저자는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른임에도 나보다 더 젊게 느껴진다.
아직도 젊은 감각과 젊은 마음들이 하나도 나이 들지 않은 것만 같다.
놀랍도록 반짝이고 아름답다.
심지어 세심하고 섬세하기까지 하다.
무던하게 지나친 오늘이라는 시간을, 저자는 섬세하게 결을 매만지며 그 속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러고는 그 순간들을 기꺼이 함께 나누기를 청한다.
이렇게 마음까지 꾹꾹 눌러 담아.

마쓰우라 야타로는 <생활수첩>의 편집장이고 일본 셀렉트 서점의 선구자이며 수필가인 동시에,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프로페셔널이라고 한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 채 책을 읽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왜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을 장을 덮으며 나 또한 이렇게 존경할 만한 어른이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시간이 가져다준 강제의 선물이지만, 제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자신의 나이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쩌다 시간에 등 떠밀려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마쓰우라 야타로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감당하며 제대로 나이 든 멋진 어른의 표본으로 보였다.
누구보다 젊지만, 누구보다 '어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
나이를 먹어도 나답지 않은 것을 계속 발견하고, 배우고, 경험하자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실패할 용기다.
P.173
끝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어느 한곳에 정착한 채 고여있지 않도록 늘 새로움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
그런 용기를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험을 기꺼워하는 사람.
닮고 싶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을 읽다가, 그것도 에세이를 읽다가 누군가를 존경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공감과 위로의 글이 에세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이 책은 전혀 다른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본받고 싶은 어른, 닮고 싶은 어른,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어른.
그런 어른을 만났다.

나 이외의 사람은 모두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그 사람이 어떤 분야의 스승인지는 내가 발견해야 한다. 스승을 발견하는 것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P.152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 나갈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매번 상대에게 바라는 것만 많고, 섭섭한 것만 많은 부족한 우리들에게 너무 와닿는 문장이다.
상대방을 깊이 바라보고,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해 내고, 그 사람만이 가진 최고의 것들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는 자세로 누군가와 만난다면 우리의 관계는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까.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근거리는 설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고, 지치고, 피곤했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지나쳐 사람을 만나는 일을 피하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장점만 가진 사람은 없다.
장점만큼의 단점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의 단점들 또한 넘치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의 단점이 내게 강펀치를 날릴 때마다 참는 일이 점점 힘들어져 가고 있었다.
싫은 것들은 마치 돋보기로 보는 듯 점점 더 크게 보이고, 좋은 것들은 자꾸만 잊혀져 갔다.
그렇게 사람에게 지쳐갔다.
이 문장을 마주치고 반성하게 된다.
내게 이런 기꺼운 마음이 있었다면, 상대방을 스승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면, 분명 그 관계에서 덜 힘들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어쩌면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나 보다.
아직은 누군가에게서 스승을 발견하는 눈이 내겐 없다.
하지만, 꼭, 그런 눈을 갖고 싶어진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존경할만한 점을, 배우고 싶은 점을, 그 사람만이 가진 위대한 부분을 반드시 찾아내고 싶어진다.
그런 눈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사귀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사귀지 않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니 지금부터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과 까치발을 들고서라도 사귀어보자.
사람이란 아무래도 즐거운 인간관계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안에 계속 머무르는 이상, 얻는 것이 없거나 막혀 있는 상태를 돌파할 수 없다. 안이한 생각이나 습관과 감각이 어떤 지점에서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자신의 성장을 방해한다.
_ P.187~188
무엇이든 안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내게 그의 말들은 전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같이 여겨진다.
과연 열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설레인다.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그 세계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문을 열지 않는다면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영원히 멈춰진 채로, 흐르지 못한 채로,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평온한 나의 하루하루가 사실은 성장을 멈춘 나무의 마지막인 것은 아니가 싶은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주위에서 새로운 것을 하라고, 무엇이라도 도전해 보라고 나를 재촉하지만, 익숙한 오늘을 벗어나기가 싫었다.
이렇게 산다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왜 다들 자꾸만 새로운 것만을 강요하는지 불편하기만 했다.
그냥 나는 지금이 좋다고, 늘 말해왔다.
그런데 처음으로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저자는 내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그저 자신의 삶을 들려주었을 뿐인데, 내가 그 삶이 궁금해진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살아보고자 한 적도 없는 삶을 향해 손을 뻗고 싶어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내가 아는 나는 낯설고 새로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답지 않게 살아가는 일에 열심이라는 저자의 말에 나답게 살아가려고만 노력한 내 시간들이 미련하게 여겨졌다.
나다운 게 뭔데?
내가 나를 스스로 규정짓고 그 틀에 나를 가둬두고 있었던가 싶어서 헛웃음이 난다.
익숙한 것을 탈피하고, 규정된 틀을 벗어던지고, 끝없이 새로워지려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게 강요된 새로움 보다, 그저 삶으로 그것을 보여준 저자의 움직임이 훨씬 더 깊이 와닿았다.
아직 새로운 문을 열기엔 나의 용기가 좀 부족하지만, 문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어제와 다른 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당신이 삶이 나에게도 분명한 자국을 남겼다.
좀 더 다른 사람이 되어 보기로 나도 결심했으니까.

고독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은 안다. 고독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마음이 생기고 다정해진다는 것도 안다. 그래,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하지만 고독에도 종류가 있어서 나를 한없이 끌어내리는 고독은 꽤나 괴롭다. 바닥까지 끌어내리면 그나마 낫지만, 그 와중에 일상이나 업무를 이어나가야 하는 고독은 가슴을 바싹바싹 쥐어짠다.
누구나 한두 번은 그런 적이 있을 것이다.
_ P.75
사실 이 책은 굉장히 섬세한 에세이다.
책을 덮고 나니 일상에서 내가 반드시 배우고 싶은 부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마치 인문 에세이처럼 서평을 쓰고 있지만, 책이 지닌 색감은 단정하고 다정하면서도 섬세하다.
책의 절반을 읽을 때까지 나는 저자가 여자인 줄 알았다.
너무도 섬세하게 감정과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저자의 글을 읽고 도저히 남자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나의 편견을 마주하고 헛웃음이 났다.
남자는 섬세하면 안 되나? 남자는 사려 깊으면 안 되나? 남자는 감성적이면 안 되나?
남자다움이라는 틀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글은 저자의 성별을 모르고 읽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것만 같다.
그만큼 문장의 결들이 섬세하고도 다정하다.
공감하며 읽은 부분들이 너무 많고, 마음을 조용히 흔드는 문장들도 참 많다.
문득 외로워지는 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다정함을 꿀꺽 삼키고 싶어진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 근사한 일은 없다.
누군가를 못 견디게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괴롭거나 쓸쓸하거나 슬플 때,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 존재만으로도 응원이 된다.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용기가 생긴다.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축되었던 마음이 눈 녹듯 풀린다.
_ P.41

띄엄띄엄하는 연습은 덧셈밖에 안되지만, 조금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연습은 곱셈이 된다는 말을 믿었다.
나는 법칙을 발견했다. 걸리는 시간과 성장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성장은 이차함수여서, 처음에는 느리지만 어느 지점을 넘으면 성장세가 증가하며 단숨에 뻗어나간다. 단조로운 직선 그래프가 아니라 곡선 그래프가 된다.
_ P.144
늘어질 대로 늘어진, 도대체 변곡점이라고는 없는 느슨한 나의 일상에 이 책은 확실한 악센트가 되어 주었다.
섬세한 문장들을 읽으며 조용하고 다정한 위로를 받다가 끝 날 줄 알았던 책은, 그보다 더 짙고 선명한 점을 찍어 주었다.
그 점을 향해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나의 걸음이 비록 빠르지 않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책을 통해 전해준 당신의 삶이 내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책이었던 것 같다.
다른 시간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나의 감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책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나답지 않은 나를 꿈꿔본다.

좋거나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호불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P.184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지는 책.
나다움을 깨트리고 싶어지는 책.
사람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얻게 되는 책.
단조로운 일상에 조용하지만 선명한 파문을 일으켜 주는 책.
『일상의 악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