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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오지랖 떨지 마!
걔가 너보다 잘 살아
_ P.35
배우 김수미.
어쩐지 세 보이고 강해 보이는 그녀.
역할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그녀는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우리의 속을 뚫어준다.
다들 눈치 보느라, 이미지 관리하느라 할 수 없거나 하지 못하는 말들을 그녀는 개의치 않고 뱉어낸다.
젊은 사람이 하면 불편할 수 있는 말들도 연륜이 쌓이고 나이가 많은 그녀가 하면 거부감보다 공감이 먼저 찾아들고는 한다.
요즘엔 '수미네 밥상'으로 새로운 국민 엄마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 그녀.
그동안의 국민 엄마는 푸근하고 다정하고 다 이해해 줄 것만 같은 만들어진 이미지였다면,
그녀는 할 말 다 하고, 등짝도 때려가면서, 욕을 애정표현처럼 들리게 뱉어내는 진짜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고상한 드라마 속 엄마가 아니라 생활 속 살아있는 엄마 그대로인 것이다.
입으로는 타박하면서도 따뜻한 밥, 맛난 음식을 먹이려고 애쓰고, 강해 보이지만 한없이 여린 '여자'를 함께 가지고 있는 그녀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뜨끈히 데워주고는 한다.
그런 그녀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시방 상담소>를 연재했다고 한다.
속 답답한 사연에 욕쟁이 할머니처럼 시원하게 정신 차리라고 욕해주고, 혼내주고, 다독여주고, 함께 걱정해 준 사연들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녀 방식의 위로와 다독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깊고, 따뜻하다.

뚱뚱하다, 살 빼라, 운동해라, 아빠가 하는 모든 말이 다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 애정 표현인 거야. 근데 말을 왜 저렇게 하냐 따지면 한도 끝도 없어. 그럴 땐 아빠는 외국인이다, 지금 다른 나라 말로 사랑한다고 하는 거다, 하고 생각해. 아빠가 구박하면 너도 봉쥬르, 니하오, 알로하 하고 그걸로 스트레스받지 마.
_ P.43
현명하다,라는 말을 생각보다 많이 쓸 일이 없었다.
많이 알고 있다, 똑똑하다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현명한 사람을 찾기는 은근히 어렵다.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김수미 선생님의 현명함에 눈앞이 환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알고 있다고 다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깨닫지 못해서 놓치는 것들 또한 너무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자신이 현명해지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오로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우리는 지혜로워질 수 없다.
그녀의 경험, 그녀의 삶, 그녀의 시간, 그녀의 생각들이 모두 쌓여 지금의 그녀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위로는 유쾌하고 즐겁지만,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롭다.
쉽게 뱉어 낸 것 같은 말들 마저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 짐작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들로부터 우리는 해방시켜준다.
눈앞이 암흑이었던 것은 우리가 눈을 감고 있어서 였음을 깨닫게 해준다.
때로는 따끔한 충고로, 가끔은 걸진 욕으로, 그리고 대부분 애정이 듬뿍 담긴 다독임으로.

정말 속상하지만 우리의 육체가 어리고 순수할 때 가끔 짐승이 와서 들이받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싸울 준비가 됐을 때 적을 만나는 건 아니야. 그냥 저건 뱀이야. 그래, 내가 뱀하고 상종할 수는 없지, 난 사람이야, 이렇게 한번 과감하게 털어 버리세요.
_ P.226
우리에겐 아직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경험한 '어른'의 지혜가 필요하다.
잔소리 같지 않고, 꼰대 같지 않은, 투박한 듯 보이지만 다정하고 애정이 담긴 타박이 필요하다.
등짝을 얻어맞으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고,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웃음이 나는 투박한 엄마의 목소리.
그 울림이 이 책 속에는 있다.
끝없는 참견에 지치고, 꽉 막힌 꼰대스러운 생각의 강요에 귀를 막아버렸던 우리들에게 필요했던 건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던가 보다.
그녀의 욕이 기분 나쁘지 않은 건 그 바탕에 깔린 두꺼운 애정이 너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는 일의 고단함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기에, 철없고 어린 청춘이라고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
'난 이미 다 살아봤으니 니 고민 같은 건 우스워'라는 고압적인 자세가 없다.
그 자리에 애정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고단한 삶에 대한 애정.
답을 몰라 애쓰고 있는 우리들의 동동거림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혼구녕이 나면서도 '고생했다, 여기까지 애쓰며 오느라. 더 정신 차려야지!'하고 응원받은 것만 같다.
지금은 잘못된 선택지를 들고 있더라도, 뭐든 괜찮아질 것만 같은 긍정이 솟아난다.
혼나고 주눅 들기는커녕 반대로 힘이 나는 호통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아주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아간다.
그럴 때 곁에서 단호하지만 애정 어린 목소리로 조언을 건네주는 이가 있다면 인생이 좀 덜 지칠 것 같다.
인생이 맛있어지려면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소금 한 꼬집, 설탕 한 스푼, 깨소금 적당히가 꼭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내게는 책이다.
오늘의 조미료는 '김수미의 시방상담소'를 추천해 본다.
김수미만의 목소리와 김수미만의 말들로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고민 해결서.
깔깔깔 웃다가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 마음이 말랑해지는 위로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