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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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씩 어긋난 인생이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도 내게 생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못다 한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는 삶이 고인이 바라던 삶이었을까. 인생의 유한함을 온몸으로 알려준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깊은 슬픔들은 바닥까지 내려간 존재에게 말한다.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것들을 잊지 말라'고.

___ P.86

 

 

 

부모님을 떠나보낸 자식들의 마음은 늘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져 있다.

철없던 시절의 행동들에 대한 후회, 자신의 생을 앓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부모님을 향한 미안함, 좀 더 다정하고 살갑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책.

부모를 잃은 자식들의 마음은 늘 그런 미안함과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잃지 않고도 소중함을 알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성숙하지 못했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남아 있는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 또한 없었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언제든지 죽음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에만 얽매이기엔 우리는 너무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인 초보 인생일 뿐이다.

허우적거리며, 동동 거리며, 생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에도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벅찼다.

결국,

지나버리고, 놓쳐버리고, 잃고 나서야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놓쳐버린 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우리가 놓치고 살아왔는지를.

 

나 또한 부모님을 보내고 참 많은 시간 앓았다.

어쩌면 지금도 아직 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좋았던 기억보다 못 해줬던 기억들, 눈치채지 못했던 외로움들이 더 마음을 찌르는 걸 보면 아직 그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시간이 나의 상실을 희석시켜 주기를 그저 묵묵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순간에 이 책을 만났다.

나와 똑같이 부모를 보내고 헛헛한 가슴을 끌어안고 살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의 생을 마주쳤다.

순간, 슬픔과 슬픔이 만나, 공허와 공허가 만나 내 안에 매달려 있던 슬픔의 풍경이 짜랑~하고 소리를 냈다.

맑고 처연한 풍경 소리가 한없이 가슴속에서 퍼져나갔다.

고요히 고인 채 희석되지 못한 슬픔들이 그렇게 흔들리며 울리고 있었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아직도 슬픔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서 안타까웠다.

 

내게 사랑을 남기고 간 사람들.

내게 오직 사랑만을 남기고 간 이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왜 여태 자책만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저 사랑만을 주고 갔는데,

내가 나를 탓하고, 내가 나를 미워하고, 내가 나와 화해하지 못한 채 슬픔에 잠겨 있었던가 보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었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을 품은 존재로, 받은 사랑이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아빠가, 엄마가 내게 준 사랑만을 기억하면서, 사랑받은 존재로 빛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 단순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 이별 앞에 한없이 무너져 울고만 있었던가 보다.

늘 깨달음은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

 

이제 그만 나를 미워해야겠다고, 이제 그만 나와 화해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슬픔이 아니라 사랑으로, 미안함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그들을 기억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책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음악을 듣다가 문득, 그렇게 문득문득 일상의 수많은 순간들에 저자가 떠올린 생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큰 슬픔을 통과한 사람은 그 만의 터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터덜터덜 걸어본 사람만이 가진 냄새가 있다.

그것은 슬픔의 냄새이기도 하고, 공허의 냄새이기도 하고, 눈물의 냄새이기도 하다.

작가의 글에서는 그런 터널의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기어코 그 터널 끝에서 마주친 햇볕의 따사로운 향기가 함께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터널의 끝에 빛이 있다고, 따뜻한 온기가 있다고 일러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된다.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애도하고

다정과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법』

 

누구에게나 후회와 자책을 남기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우리들에게 후회와 자책은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인 지도 모른다.

후회하고 자책하느라 허비해버린 시간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제대로 헤어 나오지 못해서 내내 무거운 후회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느라 한걸음 한 걸음이 너무도 힘이 든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애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제대로 애도하고 껴안아야 희망으로 건너 갈 수 있다고.

 

이 책은 어쩌면 그 '애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책과 후회를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다정한 애도의 시간.

 

'그래, 이제 인생이 이렇다는 걸 충분히 알았을 테지.

앞으로 너는 인생을 어떻게 살 테냐.'

 

이별과 상실로 무너진 우리에게 사실 생은 묻고 있었던가 보다.

이렇게 느닷없고 당혹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고.

뼈아프게 고통스럽고, 한없이 후회스럽고, 끝없이 추락해보니 이제 정신이 드느냐고.

느닷없이 후려갈기는 뺨따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아파하고만 있던 내게, 사실 삶은 이렇게 묻고 있었던 거다.

이제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차례인가 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이 내게 예상치 못한 변화구를 던지다 해도, 흠씬 두들겨 맞아 녹다운이 되어도, 나는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삶은 나를 벌하는 것이 아닌, 내게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므로.

정답을 알 수 없는 이 삶에 어떤 것을 나의 답으로 적어 낼 것인가를 나 또한 열심히, 치열하게 생각해보아야겠다.

꿋꿋이 오늘 하루를 버텨내면서.

 

 

 

 

내가 나로 사는 일은 늘 어렵다.

당신은 당신으로 온전히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확고한 믿음으로 '네'라는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엄마다.

세상에 나 혼자 홀연히, 어떤 계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아니기에 '오직 나'로만 사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어떤 날, 어느 하루는 온전히 나로만 살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나의 나로, 오롯하게.

 

당신의 무엇이라서 나는 행복했다.

당신의 무엇이라서 나는 감사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저 나로 존재하고 싶어지는 시간이 있다.

아마 당신도 그러하겠지.

 

 

 

 

 

우리도 모두, 때때로 서로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서 삶이 서럽고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있었으니까.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계속해야 하는 공부는 이게 아닐까 싶다.

나는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

___ P.286

 

 

 

감사하다.

아직 내게 사랑할 사람들이 남아있어서.

너무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도, 여전히 내게 너무도 사랑하는 누군가가 남아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놀라운 기적이다.

우리의 마음은 초 단위로 변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뿜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자가 말하는 제대로 사랑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당신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주고 있는 사랑이 당신이 받고 싶어 하는 사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혹시 내 방식대로, 내 사랑의 형태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믿는 사랑의 방식만이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아낀다고 말하면서, 나는 과연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제대로 주고 있는가.

 

그저 사랑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어떻게'를 사랑에 붙여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시간 한 사람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왔지만, 그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들이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제대로 돌려주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도록, 잘못된 사랑 방식으로 서럽고 고통스럽지 않도록,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며 살아가야겠다.

익숙해지고, 당연해지고, 무심해져서 사랑의 '본심'을 잃지 않도록.

늘 내 사랑의 올바름을 의심하면서.

 

 

 

 

『몸의 일기』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하나의 삶을 마치면 한편의 이야기가 남는다는 것. 그렇게 인간은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더 잘 살고 싶어졌다.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 또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___P. 327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남기는 존재가 될까.

내 삶이 끝나도 그들의 삶 속에 여전히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더 잘 살아야겠다.

 

내게 이 책은 조금 더 나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어 준 것 같다.

내가 내 삶을 좀 더 '잘' 살아야 하는 이유.

내가 내 삶을 좀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

잊고 있었던 이유들을 다시 눈앞에 데리고 와 잊지 말라고 말해 준다.

생활에 지쳐서, 슬픔에 잠식당해서, 잊고 있었던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고

내 마음대로 이뤄지는 일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많은 삶이지만

그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생을 끝없이 사랑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오늘 밤은 누구보다 다정히 나를 껴안아 주고 싶다.

눈물로 얼룩진 내 생을 껴안고 토닥 토닥 다독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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