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문장이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게 되는 시작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나는 '한 문장'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한 단락이거나 한 페이지 일 때도 있다.

어쨌든 내가 책을 선택하고 읽게 되는 시작점엔 어떤 문장들이 있다.

마음을 흔들고, 쿵- 내려앉게 만드는 문장의 힘.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더 굳건히 믿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 싶어졌던 이유도 인터넷을 떠돌던 책 속 문장들 때문이었다.

사랑에 관한 문장들에 홀려 그 어려운 책을 덥석 선택했고, 끙끙거리며 읽었다.

섹스를 한다는 것과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 말하던 발췌문에 홀려서 읽게 된 책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남겨졌다.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한 나의 무지로 인해 다시 읽어야겠다고 늘 생각하는 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러 번 다시 읽고, 매번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고민하고, 사유하라고 책이 그렇게 모호하게 감춘 부분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깊은 우물을 감추고 있는 책.

 

최근에 한 문장에 꽂혀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한 책은 『작은 마음 동호회』다.

페미니즘 책이 너무 쏟아져 나와서 어느 순간부터는 딱히 페미니즘 책을 골라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었다.

이 책도 그런 소개 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볍게 넘겨버렸던 책이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굿즈로 받게 된 독서대의 글귀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그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들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해

<작은 마음 동호회> _ 윤이형

 

 

나는 이 책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지만 저런 문장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기어코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어떤 상황에 저 문장들이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너무도 필요한 위로였다.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이 나를 가장 아프게 찌르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문장이라는 게,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한 권의 책보다, 때로는 한 줄의 문장이 훨씬 더 힘이 세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숨 쉬게 해주는 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절실한 문장이 아닐까.

 

그래서 전승환 님의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는 내게 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문장들을, 그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내게 위로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었던 문장들이 그의 글 속에서 다시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P.14 _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문장

 

 

하필이면 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의 한 문장.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저 단 한 줄의 문장 때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구입한 사람 중 하나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했지만, 나를 흔들고 움직이게 만든 것은 한 줄의 문장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책 또한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첫 줄을 읽고 벌써 좋았다.

같은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같은 문장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라니.

묘한 동질감이 기대감으로 옮겨갔다.

 

놀랍게도 저자의 취향이 나와 비슷하다.

이 책 한 권으로 저자의 독서 취향을 논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책들 중에 굉장히 많은 책들이 내가 이미 읽었거나 매우 좋아하는 책이었다.

보통 책을 매개로 하는 인문 에세이들은 고전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어려운 철학 책이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벽돌 책에서 인용구를 가져오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인문서와 철학 책 속 문장들 또한 책 속에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들은 문학작품 속에 더 많이 담겨있게 마련이라 그러한가 보다.

에세이나 시집, 소설에서 발췌된 글들이 많기 때문에 그 문장을 담고 있는 책을 찾아 읽으려고 할 때도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이 책을 통해 다른 책으로 건너가고 싶은 독자에게는 아주 좋은 브릿지가 되어 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좋은 문장들을 소개하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 어떤 마음들에 필요한 위로들.

지친 마음을 쉬고, 다시 힘을 내어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다독이고 응원하는 저자의 글들로 가득 차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 <인생이 문장들>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의 목소리를 찾아 들어보고 싶어졌다.

책에는 담기지 않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을지 궁금해졌으니까.

 

워낙 책을 좋아해서 독서 에세이들도 종종 찾아 읽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배우는 경험을 했을 뿐이다.

모르는 책, 안 읽은 책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고, 나는 몹시도 게으른 독자였으니까.

이 책은 내게 배움보다는 공감의 경험을 건네주었다.

선생님 같은 책이 아니라 친구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지친 날, 한 줄의 문장에도 마음이 뭉클하고 눈물이 쏟아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책이다.

 

혹은 지금, 그런 위로가 간절한 누군가에게 이 책이 가닿는다면

문장이 주는 조용하고 깊은 위로에 다친 마음이 조금은 낫게 되지 않을까.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다시 한번 살아가야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은 없으며, 모든 고통, 쾌락,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P.188 _ 니체의 『즐거운 학문』 발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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