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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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영원한 고향 알제리에서부터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은 파리를 거쳐

마지막 거처인 루르마랭까지

카뮈의 자취를 따라가다

 

 

"한마디로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존재는 하찮지만, 그 사실을 명징하게 의식하면서 이 순간에 온 힘을 다하라는 것이다. _ 최수철" 

 

 

 

 

독서를 하면서 보통 작품에 집중하는 편이지 작가의 삶에 별로 관심 가져본 적이 없다.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의 삶이 작품만큼이나 훌륭하기도 어렵고, 그런 작품을 썼다는 게 의아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언사나 납득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간 예술가들 또한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냥 작품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편이 더 좋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때론, 작가의 삶을 전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작품이란 게 꼭 그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작품에 작가의 삶이 녹아있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 작가의 삶을 한 번은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작가 중 한 명이 내겐 카뮈다.

 

이 책에 명시된 작품 제목으로는 『시시포스 신화』, 내가 소장 중인 책 제목으로는 『시지프 신화』인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 카뮈를 알게 되었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카뮈를 처음 만났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런데 나는 사실 『결혼·여름』이라는 책으로 처음 카뮈의 책을 읽을 마음을 먹었고, 어쩌다 보니 실제로 처음 읽게 된 책은 『시지프 신화』였다.

절반쯤 읽다가 '철학'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 책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한두 줄을 읽고 멈춰서 생각하고, 또 한두 줄을 읽고 멈춰 생각하고... 그렇게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사유하며 책을 천천히 읽다가 결국 완독을 하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어쩌자고 나는 남들 다 읽는 『이방인』을 두고 하필 이 어려운 책을 선택했을까 한숨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꼭 읽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고, 깨닫고 싶었다.

 

그렇게 멈춰진 책을 다시 읽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카뮈의 생을 먼저 들여다 보기로 했다.

 

아르테에서 출간되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처음부터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 작가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현대의 작가가 지나간 그의 삶과 작품을 더듬으며 그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는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처음 팟빵으로 들으면서 과연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참 궁금했었다.

그 후 몇 권의 책을 구입해두고는 어쩌다 보니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벌써 16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렇게 미루다 처음 읽게 된 책은 결국 『카뮈』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던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책들이 이미 출간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출간된다니 참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이다.

이렇게 한참 지나고서야 나는 그 이야기들에 동참하는 첫 발자국을 찍어본다.

최수철 작가와 함께 카뮈의 생을 들고서.

 

 

 

 

 

장 폴 사르트르는 일찍이 카뮈에 대해 인간과 행동과 작품이 한데 결합한 탁월한 사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한 '탁월한' 삶이 돌연한 죽음을 맞은 끝에 이제 카뮈는 '지중해의 태양을 품었다'라거나, '아프리카인의 기질을 타고났다'라거나, '신중한 용기와 긍지가 결합된 투우사의 영혼을 지녔다'라는 수식어를 단 신화적 아이콘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늘 일상의 나태와 마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한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를 떠올린다.

_ P. 024

 

 

 

카뮈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뮈의 생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책의 시작부터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나는 아주 단편적이고 소극적으로 카뮈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카뮈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은 것도 아니고, 카뮈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 마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백지에 가까운 상태로 카뮈를 만난 것이다.

(이방인은 워낙 유명해서 읽지 않고도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그래서 최수철 작가가 해석하고 들려주는 카뮈의 삶과 작품이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일상의 나태와 마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라고 서술된 최수철 작가의 문장에서 '독의 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최수철 작가가 말하던 삶의 방식 또한 카뮈의 생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쩜 이렇게 딱 맞는 저자를 만나 이 책이 쓰였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내가 카뮈를 잘 몰랐기에 최수철 작가와의 교차점을 미리 짐작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돌아본다. 지금 나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여행자다. 현재적 공간을 벗어나 시간을 넘나들며 카뮈의 글이 내 머릿속에서 펼쳐 보이는 환영을 쫓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현실과 환상 사이를 여행한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낯선 무대 위에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_ P. 030~031

 

 

 

이 책은 그냥 저자가 살던 곳, 활동하던 곳, 마지막을 맞이한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서가 아니다.

첫걸음부터 저자는 시간을 넘어 그 아득한 옛날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때의 카뮈를 눈앞에 그린다.

어린 카뮈의 발자국, 청년이 된 카뮈의 눈으로 본 풍경들을 그때의 카뮈가 되어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 서서, 같은 장소에 서서, 시간을 넘어 그때의 풍경과 그때의 바람과 그때의 시선을 상상하는 일.

설레면서도 놀라운 여행법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서서 최수철 작가는 어느 순간 문득 진짜 카뮈가 되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완벽히 똑같은 생각과 시선을 공유할 수 없었을지 몰라도, 분명 스스로 카뮈가 되어 그곳에 서보려고 시간을 거슬렀던 저자의 걸음은 남들과는 다른 깨달음에 닿았을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글에서도 진하게 전해지고 있다.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다. 그렇다면 부조리는 우리 삶의 장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다. 따라서 그러한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P. 142

 

 

 

 

'부조리'

카뮈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일 것이다.

카뮈 문학의 심장이 부조리가 아닐까 싶다.

나처럼 카뮈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마저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저 알고 있는 것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부조리에 대한 막연한 이해와 해석은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가지는 생각들과 이해들이 맞는 것인지조차 의문스럽기도 했었다.

 

이 책은 카뮈의 생의 길을 따라 걷고 있지만, 그 바닥은 모두 카뮈의 작품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밟는 걸음걸음마다 카뮈의 글들이 수놓아져있다.

저자를 따라 걸은 걸음의 수만큼 우리는 카뮈의 작품 또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최수철 작가는 카뮈의 생을 따라 걸으면서 뒤따라 걷는 우리를 위해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 작품을 쓸 때 카뮈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어떤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 우리가 더 가까이 카뮈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게다가 카뮈의 작품세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를 위한 해석도 놓치지 않는다.

카뮈의 언어가 어려워 주춤댈 때마다 뛰어난 통역사가 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 카뮈의 말들을 해석해 주고는 했다.

해석의 말들마저 때로는 철학적이고 깊어서 두어 번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음미하고는 했다.

그 순간이 굉장히 즐거웠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선 달리 어쩔 수 없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비로소 자유가 있다. 그러려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여 속속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안과 겉』에서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라고 했다. 죽음을 긍정할 때, 삶도 긍정할 수 있다.

_ P. 105

 

 

 

오래된 고전 문학을 읽을 때면 늘 불안하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나의 해석은 옳은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이해했는가.

수많은 의문들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너무 많이 읽히고, 너무 많이 회자되어 왔고, 너무 많은 해석이 존재하기에 더더욱 제대로 읽고 싶어지는 욕심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유명한 작품은 읽기를 꺼리게 된다.

나의 부족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알량함일까.

 

그런 순간에 이런 책들이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더 이상 카뮈는 내게 어렵고 멀고 낯선 존재가 아닌, 손잡고 이방의 나라를 함께 거닐었던 친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완벽한 해석을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저 카뮈의 글들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의미가 되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이미 저자가 내게 일러준 것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는 스스로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대지에 대한 변함없는 충실성을 지키겠노라고,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영생을 꿈꾸지 않겠노라고, 인간과 대지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어떤 것에 희망을 가지지도, 그렇다고 죽음 앞에 굴복하여 절망하지도 않겠다고.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감각을 최대한 확장하는 한편, 하늘과 바다의 다정하면서도 가혹한 침묵을 받아들이며 늘 명징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한다.

_ P. 076~077

 

 

하지만 절대와 영원을 연상시키는 그런 형상이야말로 카뮈가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윤곽이 물렁거리고 당장이라도 발효와 부패로 이어질 듯한 상태, 스스로 더할 나위 없이 명증하고 자명한 태양, 그 태양의 가혹한 빛줄기를 받아 모든 것이 노골적으로 노출되고 짓뭉개져 소멸되기 직전의 상태,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절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_ P. 098

 

 

 

작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일과 매우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한 게 맞지만, 이토록 선명하게 와닿을 줄은 몰랐다.

카뮈가 살아온 생의 자국들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같은 빛깔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생을 통해 지키려고 했던 것, 그가 생을 바쳐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이 그의 작품에 녹아있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가 수첩』은 그의 사후에 출간된 책 중 하나다.

카뮈는 일기 대신 작가 수첩에 많은 것들을 글로 남겼는데,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그를 잃은 사람들에게 『작가 수첩』은 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카뮈의 생을 좀 더 가까이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메모들을 통해 그가 입을 열고 말하지 않았던 침묵의 이야기들도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카뮈로써는 과연 그것을 기뻐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세 권으로 출간된 『작가 수첩』 또한 내겐 궁금한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전에 『결혼·여름』을 먼저 구입할 생각이다.

내게 카뮈의 글을 읽고 싶어지게 했던 『결혼·여름』은 이 책 속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문장들로 등장하고 있다.

매번 그 책 속 문장들이 나를 유혹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 책과 나는 만나야만 하는 운명인가 보다.

 

게다가 이 책에는 카뮈가 『결혼·여름』에서 언급한 많은 장소들을 직접 가서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가보지 않은 이방의 나라의 모습을 막연히 글로 상상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워서 매번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곤 했었는데 그 사진들과 저자의 친절한 설명들이 내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카뮈의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역시나 그 배경이 등장하기에 앞으로 만나게 될 카뮈의 작품들은 좀 더 상상의 폭을 넓혀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두근거린다.

 

 

 

 

 

 

그는 계속해서 『작가수첩 2』에서 스스로 이렇게 다짐한다.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하다 해도 그것이 통째로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혼은 일생에 걸쳐서 이승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그 길고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출산의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 자신과 고통에 의해 창조된 영혼이 드디어 준비가 되면 바야흐로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P. 269~270

 

 

이 책 또한 카뮈의 작품들 만큼이나 많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카뮈의 삶과 작품만큼이나 최수철 작가의 문장 또한 깊이 와닿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카뮈와 최수철 작가의 생각들.

그 깊은 시선과 고민과 사유에 나 또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죽음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시선, 삶을 살아가는 깨어있는 자세, 그리고 부조리한 삶마저 사랑하는 것.

내가 카뮈처럼 세상을 살아낼 자신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삶을 또렷이 바라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앞으로 내가 읽게 될 카뮈의 작품들은 이 책 덕분에 훨씬 더 깊고 풍부하게 와닿게 될 것을 믿는다.

감사한 일이다.

 

 

 

 

카뮈의 생을 알게 되고, 그 생을 함께 더듬는 동안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던 카뮈가 나에게도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늘 나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여기며 지금에 왔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와 내가 기억하는 내가 너무 달라서 가끔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끝없이 변두리를 돌며 어떤 중심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항상 사람들에게서 한 뼘은 떨어진 곳에 혼자 서있었던 것 같은 고독이 나를 끝내 놓아주지 않았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의 존재인 것 같은 이질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카뮈를 통해 나는 내 속의 이방인을 대면한다.

그 아이에게 생은 누구에게나 이방의 낯선 세계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어쩌면 당신도 마음속에 그런 이방인을 품고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카뮈를 통해 당신의 마음속 이방인도 어떤 이해와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는 비참하면서도 위대한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야말로 부조리에서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믿는다. 거리낌 없이, 아낌없이, 남김없이 '사랑'한다는 것, 그 또한 최초의 인간이자 마지막 인간으로서 우리 각자가 삶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수행해야 할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한다. _ 최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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