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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평점 :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나는 고아가 되었다.
시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어떤 손들을 영영 잡을 수 없도록, 어떤 이름들을 영영 부를 수 없도록.
어른이 된다는 일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일인가 보다.
그렇게 어른이 된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
엄마를 잃은 시간들, 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낯선 타인이 건네주는 익숙한 '상실의 순간'은 우리를 울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멈추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지닌 동질감과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감정들의 이해가 우리를 위안하게 한다.
무너질 것 같은 슬픔의 순간들에 조용히 서로의 손을 잡아준다.

부모를 잃는다는 것.
누군가의 아들, 딸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번은 기어코 겪어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그 이별이 닥쳐온다고 해도 아프기는 매한가지.
전혀 다른 시간에 겪었던 두 번의 이별을 떠올려본다.
갑작스러웠던 죽음과 천천히 예견되었던 죽음.
다를 줄 알았던 이별의 순간은 결국 모두 슬픔과 고통과 상처로 남겨졌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기도 했고, 죽음 한가운데 주저앉아 한없이 그저 울고 있고만 싶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건너 간신히 희석된 아빠를 잃은 슬픔 위로 다시 얹혀진 엄마의 죽음은 아직 너무 선명하기만 하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주는 임종의 순간을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숨이 뚝, 멈췄다가도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다시 훅~ 깊은숨을 쏟아내길 반복하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
그 순간들이 와락 쏟아져내렸다.
아플 줄 알면서, 울게 될 줄 알면서 책을 읽었다.

우습지만, 같은 후회를 하고 있는 사람의 '그 이후'의 시간들이 내게 묘한 위안을 준다.
괜찮아 보이는 얼굴로 오늘을 살고 있지만 사실은 당신도 괜찮지 않았구나.
후회와 슬픔과 망각과 담담함이 뒤엉킨 하루를 당신도 살아내고 있구나.
다들 같은 슬픔의 조각에 찔리면서 굳은살이 박이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렇게 아프면서 묵묵히 일어서려고 하고 있구나.
슬픔을 견디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구나.
뜻밖의 위로와 쓸쓸한 깨달음.
나와 같은 울음을 울고 있는 사람의 낮과 밤을, 어제와 오늘을 지켜보는 일은 기묘한 경험이다.
내게서 발견하지 못한 얼굴을 마주하기도 하고, 나와 너무 똑같은 얼굴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았고, 글로 쓰여있지 않았던 무언의 말들 마저 나는 읽고 있었다.
공백 사이를 가득 채운 공허한 쓸쓸함을.
종이에 번지는 눅눅한 눈물의 무게를.

나의 죽음이 너의 페달을 밟게 한다.
나의 죽음이 너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_ P.158
이 책 속에 담긴 엄마의 죽음 이후의 시간들은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눈물을 그칠 다정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할 것이고, 참았던 슬픔을 쏟아낼 토닥임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아직 겪지 않은 어떤 시간들을 짐작해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당연했던 일상의 풍경들에 감사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이미 겪은 슬픔이든 아직 겪지 않은 슬픔이든, 어차피 우리가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이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당신과 내가 이 커다랗고 공허한 슬픔을 건너오는 동안 부디 무사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