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속임수와 거짓말, 위협과 루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가도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게 됐다.
프롤로그 _ P.23
실제의 사건이 바탕이지만 그 위에 작가의 허구를 두껍게 펴 발라 매혹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한 글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책을 펴고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실제의 사건을 최대한 사실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한 논픽션이었다.
문장마다 꼬리표처럼 달린 숫자들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 진실에 가닿으려고 노력했는지가 느껴졌다.
진실을 찾아 헤맨 작가의 모든 걸음걸음이 이 한 권의 책에 녹아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연사 박물관을 턴 '깃털 도둑'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다.
그는 왜 자연사 박물관의 죽은 새 표본을 훔쳐야만 했는가.
그는 어떻게 그런 죄를 짓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는가.
그가 훔친 새들은 어떻게 세상에 흡수되어 플라이의 재료가 되었는가.
그들은 왜 새의 깃털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물음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져 새로운 물음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이 책은 '도둑질'로부터 시작되지만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깃털'의 존재는 너무도 깊고 무겁기만 하다.
깃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과학사에 중요한 표본 중 하나이고, 인간의 탐욕과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지적이고 탐구적인 시선이 가닿으면 깃털은 과학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고,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 어린 시선이 가닿으면 깃털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장식품이 되고,
탐욕스러운 욕망의 시선을 투영시키면 비싼 값어치를 지닌 부의 축적물이 된다.
바라보는 사람이 욕망하는 것에 따라 깃털은 다른 의미를 지닌 채 우리 곁에 있다.
학자의 눈을 버리고, 장사치의 눈을 버리고, 갈망과 욕망의 눈마저 버리고 나면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깃털을 바라보게 될까.
한때는 살아 있었고, 어디선가 여전히 살아있을 깃털의 진짜 주인인 새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깃털은 생명이다.
지식도 아름다움도 탐욕도 아닌, 존중받아야 할 생명.
그 생명들은 어떻게 해서 사라져갔고, 어떻게 해서 사람들의 집착의 대상이 되었는지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만 한다.
바로 우리의 손으로 그런 일들을 행해 왔기 때문에.
당신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듣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번 더 자연의 모든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책은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가 299마리의 새 표본을 훔친 에드윈 리스트의 사건을 궁금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뛰어난 플루트 연주자였고, 동시에 플라이 타잉에 매료되어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힌 플라이 타이어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왜 자연사 박물관에서 죽은 새를 훔쳐야만 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서 잠깐,
플라이 타잉은 연어 낚시를 할 때 쓰는 가짜 미끼인 '플라이'를 만드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보통은 연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플라이 타잉을 하는 게 일반적일 것 같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나는 동안 플라이 타잉은 연어낚시와 상관없이 별개의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취미 생활이 되었다.
실제로 플라이 타잉을 하기 위해 박물관에서 새를 훔친 에드윈 또한 연어낚시를 위한 타잉이 아닌 오로지 그 자체로서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위한 플라이 타잉을 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연어낚시를 위해 필요했던 플라이는 사람들의 욕망의 움직임에 따라 어느 순간 예술적 작품으로서의 가치에 치중하는 독립된 객체로 변화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물건의 쓸모마저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변질되고 마는 현실이 어쩐지 씁쓸하게 여겨진다.
어쨌든 그 시작이 연어 낚시인 것인데 연어가 사실은 플라이의 종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날 뿐이다.
그러니까 플라이가 화려해지고, 진짜 깃털을 사용하고, 보호종의 아름다운 깃털을 탐해야만 하는 이유는 오로지 사람들의 탐욕과 허세, 남들보다 더 우위에 서고 싶은 인간의 욕망의 표출일 뿐인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에드윈은 플라이 타잉에 필요한 깃털을 왜 '훔쳐야만' 했을까.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하고 더 뛰어난 플라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플라이 타이어들은 모두 희귀 깃털을 열망한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집념은 무섭고도 강하다.
죄를 짓고서라도, 혹은 그 죄를 눈 감고 침묵하고서라도 깃털을 손에 넣기를 소망한다.
그 강한 열망은 옳고 그름의 경계마저도 무너뜨려 자신이 밟고 선 땅이 선인지 악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희귀하고 구할 수 없는 깃털에 대한 욕망은 희귀본에 대한 모든 인간의 소유욕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다.
특정한 한 분야가 아닌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소유욕을 들어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초판본에 대한 소유욕, 절판본을 향한 갈망, 한정판에 열광하는 심리.
출발은 어차피 똑같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는 일이 아니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은 지탄받지 않을 뿐이다.
욕망이 꼭 나쁜 것이라고만 규정짓기도 어렵다.
욕망하는 마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을 안다.
단지 그 욕망이라는 마음이 어디까지 좋은 것이고, 얼마만큼 차올라야 임계점에 이르러 변형되어버리고 마는 것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무언가를 향한 우리의 갈구의 마음이 탐욕과 섞이고 집착으로 변질되어 마침내 넘지 말아야 할 그 임계점을 넘어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내 안의 욕망이 내내 아름답고 건강하도록 말이다.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들이 인간에게 살해됐다. 박물관 때문이 아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 바로 여성들의 패션 때문이었다.
모든 일은 플라이 타잉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플라이 타이어들이 구하지 못해 안달인 멸종 위기종인 새들의 깃털.
그 새들은 왜 멸종 위기종이 되었는가.
자연의 선택이었는가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는가.
그 진실을 알기 위해 19세기로 돌아간다.
놀랍게도 당시의 새들은 오로지 여자들의 치장을 위해 죽어야 했다.
모자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사용되기 위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새들이 희생당했다.
사람들은 만족을 몰랐다.
더 아름다운 새, 더 희귀한 새, 더 아름다운 빛깔의 깃털, 누구도 갖지 못한 새로운 깃털을 향한 열망이 결국 어떤 종의 멸종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아름다웠기 때문에 죽어야만 했다.
아름답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깃털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탐욕으로 인해 새들의 개체 수는 현저히 줄어들고야 말았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한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서 법이 만들어졌다.
얼마 남지 않은 멸종 위기종인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단체들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여러 나라들이 그 의지에 공감을 표함에 따라 그나마 남아있는 새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인간들에 의해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대량학살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일보의 발전은 아닐까 싶다.
동물을 보호하는 아름다운 법, 바로 그 법 때문에 자연사 박물관이 타깃이 되었다.
살아있는 새들을 죽일 수 없다면, 죽어있는 새들이라도 기꺼이 훔쳐야겠다는 마음이 결국 박물관 담장을 넘고야 만 것이다.
프리스 존스 박사와 애덤스는 세상이 이미 이러한 표본들에 지식이라는 빚을 졌다고 설명했다. 월리스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밝혀낸 것도 그 덕분이었다.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박물관에 있는 오래된 알 표본들을 서로 비교해 DDT 살충제가 쓰인 이후부터 알껍데기가 얇아지고 알의 부화율도 줄었음을 밝혀냈다. 덕분에 이 살충제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될 수 있었다. 좀 더 최근에는 150년 된 바닷새의 표본에서 뽑아낸 깃털 샘플을 사용해서 바닷물의 수은량이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그것 때문에 다른 동물들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는 인간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깃털을 "바다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박물관에 왜 그렇게 많은 새가 필요한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같은 종의 새들을 여러 마리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이 여유분의 새들을 내어준다면 살아있는 새들이 그만큼 죽지 않아도 될 거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에드윈.
그렇다면 박물관의 표본으로서의 새의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저자는 찰스 다윈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비슷한 시기에 발견하고 발표한 두 생물학자가 있다.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이 책에서는 두 사람 중 월리스의 생애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윈이 더 익숙하겠지만, 트링 자연사 박물관과 에드윈의 깃털과 더 가까이 닿아있는 인물이 월리스이기 때문이다.
그가 연구하고 표본을 만들어 수집했던 새들 중 플라이의 아름다움을 완성해줄 매혹적인 깃털을 지닌 새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을 바쳐 연구했던 새들 중 몇몇의 표본은 한낱 깃털로 플라이 타이어들의 손을 떠돌게 되고 말았다.
아름다웠고, 희귀했으므로.
잃어버린 표본들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은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표본은 지나간 시대를 압축적으로 기록한 일종의 역사서였다. 따라서 박물관에서 표본을 훔쳤다는 것은 전 인류에게서 지식을 훔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플라이 타이어들이 갖고 싶어 했던 것은 자신의 작품을 빛내줄 아름다운 깃털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열망과 오리지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었다.
그들에게 깃털은 딱 그만큼의 의미를 지녔을 뿐이었다.
하지만 박물관에 표본으로 소장되어 있던 새의 표본은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코앞의 아름다움에만 미쳐있는 사람들의 시선 너머, '아름다움'을 넘어서 자연의 일부로서의 존재가치와 무한한 정답들을 담고 있던 새의 표본들.
그 엄청난 과학적 지식과 시간의 기록들을 에드윈은 아무렇지 않게 해체하고 돈으로서 환산된 가치만을 좇았다.
그가 훔친 것은 정말 아름다운 새의 깃털이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내고 있는 표본들이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탐욕이 승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세상이 어쩐지 자꾸만 탐욕의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 책처럼 희망을 향한 발걸음 또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믿는다.
저자가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묻고 또 물으면서 알고자 했던 '깃털을 둘러싼 탐욕'의 민낯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에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인 것 같다.
누군가의 탐욕을 손가락질 하기 전에 나의 탐욕을, 내 안의 잘못된 욕망을 바로잡아야겠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수많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에 생명을 죽이고 얻은 피로 목을 축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향해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지,
멈춰서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주는 책.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다.
읽고 나서도 많은 생각들이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를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깨어있게 하는 책만큼 좋은 책이 있을까.
하지만 좋은 책은 나에게 너무 많은 질문들을 하고 그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지라 리뷰를 쓰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되려 너무 좋았던 책의 리뷰를 쓰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를 많이 흔들어 놓는 책일수록, 내 안에서 진동의 여운이 오래 남아 끝없이 퍼져 나가고 있으므로 그 물결의 끝을 나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이 책 또한 내게 그런 책 중 하나다.
한 번도 관심 가진 적 없었던 생물학과 멸종에 대한 이야기부터 박물관이 지켜내고 있었던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플라이 타잉의 세계 또한 흥미로웠고, 아스퍼거 증후군을 연기해 의사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저자가 해오던 일인 난민 문제마저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19세기로부터 시작된 깃털의 여정은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논픽션이지만 믿을 수 없게 흥미롭고, 재미있고, 쉽다.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좋은 책이 심지어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있다는 점이 가장 감사하다.
그래서 추천!
당신도 함께 읽고, 우리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