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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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가 현재 이 사회에 일어나는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명쾌한 솔루션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을 겪고 나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렇게 존재하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프로젝트의 의의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p.268 / 방과 후 _ 의현의 글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유튜브 조회 수 300만 '왕따였던 어른들' 무삭제판

 

고민고민하다가 읽게 된 책이다.

가끔 나는 그렇게 고개 돌린 방관자가 되곤 한다.

못 본 척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파서, 똑바로 바라는 보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 감고 싶어지곤 한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도 내가 당한 일 같이 여겨지는 시간들이 있어서, 직접 눈을 맞추고 깊이 바라보고 싶지 않은 상처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얼마나 깊은 상처들이 새겨져 있을까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팠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꼭, 바라봐야 하는 상처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짐작만으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시간들과 고통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때, 나 또한 그런 고통의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은, 나의 우려와는 달리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들의 상처의 깊이에 비해 내가 느끼는 고통은 현저히 적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 한 걸음씩 두 걸음씩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 흘리며 고통을 울부짖지 않고, 담담하게 지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현재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어코 견뎌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에 나 또한 그 상처의 시간들에 대해 조금 더 담담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되려 지난 괴롭힘의 시간들과 상처를 간직한 지금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면서 선명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은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서 빛이 났다.

견뎠고, 살아있고, 살아가기를 선택한 그들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 고통의 시간들을 건너, 살아 있음으로.

 

 

 

 

희경 _ 누구는 경찰이 됐고, 누구는 소방관이 됐고. 이런 얘기를 들으면 진짜 너무 화가 나요. 화나서 잠도 안 왔어요. '네가? 그랬던 네가? 경찰서에 잡혀가야 하는 사람인 네가…사람 목숨 하나 죽일 뻔했던 네가?'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울먹이며) 가해자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었으니까요.

 

p.51 / 3교시 _ 가해자와 방관자

 

 

 

그것이 참 무섭다.

'가해자'는 그냥 '악인'이면 좋을 텐데, 누가 봐도 아주 나쁜 사람이고 천하의 빌어먹을 놈이면 참 좋을 텐데, 사실은 그냥 평범한 너와 나라는 것.

너무 평범하고 흔하고 어디에나 있는 누구라는 것.

'피해자' 또한 마찬가지로 어디에나 있는 너무 평범하고 흔한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무서우면서도 슬프다.

누가 우리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편을 나눠,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로 만들어 놓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아주 깊은 상처를 받고 나서 나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상이 망가지고 정신이 무너져 숨 쉬는 것조차 힘든데 나를 상처 준 그 사람은 너무 좋은 사람으로, 너무 잘 살고 있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너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내 삶은 이토록 피폐해졌는데 어떻게 너는 웃을 수 있는 건지, 어떻게 너는 여전히 사랑받으며 빛날 수 있는 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멱살 쥐어잡고 나한테 왜 이러냐고 악을 쓰고 싶어진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물리적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똑같은 질량의 똑같은 상처를 똑같이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들을 괴롭히는지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영 _ 똑같은 왕따를 겪었다고는 하지만 그 상처와 깊이는 제각각 다 다르기에 "나도 왕따를 당해봤으니까 잘 알아"같은 말은 함부로 못하겠어요. 그래도 같이 나눌 수 있고 울어줄 수는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어른이 된 우리는 이렇게 버티며 자라 여기에서 서로를 토닥이고 있으니, 그 아이들도 미래에 커서 그래 줬으면 좋겠고요.

 

p.96 / 6교시_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렇게 상처 입고, 고통스러워하며, 때로는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쪽으로 한걸음 발을 옮겨본 적도 있는 그들의 말들은 너무 깊고, 다정하다.

누구보다 성숙하고 반듯한, 다정하고 배려 넘치는 말과 생각들을 만날 때마다 되려 내가 부끄러워졌다.

감히 '안다'고 말할 수조차 없었다.

어차피 똑같은 상황 속에서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상처들이니까 말이다.

그냥 울컥했다.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왜 '가해자'들이 휘두른 폭력을 견뎌야만 했나.

무엇이 이렇게 빛나고 다정한 그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나.

왜냐고, 왜 그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네 맘에 안 들면 때려도 돼?

네 맘에 안 들면 함부로 대해도 돼?

네 기분이 나쁘면 욕하고, 무시하고, 경멸해도 돼?

누가 그래도 된다고 너에게 허락했니?

네까짓 게 뭐라고,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남을 짓밟고 군림하면서 웃었던 거야?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려도 되는 권한을 누가 너에게 줬어?

네 가치를 누가 정해줬는데?

네가 때리고 밟고 무시하고 괴롭혔던 아이들의 가치를 감히 네까짓 게 뭐라고 함부로 규정해?

'나'의 가치는 감히 나아닌 누군가가 판단하고 정해줄 수 없는 거야.

그런 당연한 것도 모르는 머저리들.

'피해자'가 잘못된 게 아니라 '가해자' 너희들이 잘못된 거야.

잘못은 너희들에게 있어.

가해자에게 참 한없이 관대한 이놈의 세상에 화가 난다.

 

 

 

 

가연 _ 없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느 집단이든지 정치를 하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꼭 1명 이상은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그 정치질이나 권력 행사의 이면엔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타인에게 "같이 싫어하자"고 강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요. 그런 과정에서 많은 친구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요. 가해자, 방관자, 피해자의 구조가 생기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는 사람이 한정적인 학교 안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내 사람'을 만들려는 게 시작되고, 그게 물 타기가 되고, 물 타기에 동조해야 내가 다른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학교나 사회에서 '두루두루, 다 같이' 노는 게 정답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더 청소년 왕따가 도드라진다고 생각해요.

 

p.112~113 / 7교시 _ 내가 꿈꾸는 나의 미래

 

 

학교든 회사든 사적인 모임에서든 누군가를 따돌리고 끼리끼리 뭉쳐서 한 사람을 공격하는 건 참 흔하고 흔한 일이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 걸까.

사람들을 선동해 누군가를 교묘히 따돌리는 다 자란 '어른'들을 볼 때마다 여전히 '여고시절'에서 못 벗어난 덜자란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아직도 그렇게 밖에 못 사는 불쌍한 '덜 자란 가해자'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도 많다는 것에 한숨이 난다.

집단이 형성되고 끼리끼리 뭉치게 되는 모든 곳에 그런 덜자란 가해자가 꼭 있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어도 현명해지지 못하는 서글픈 어른 아이들.

그렇게 밖에 관계를 형성할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편을 나누고 누군가를 배척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가난해질 것을 믿는다.

그렇게 끝없이 누군가를 따돌리며 상처 주다가 결국은 혼자 남게 될 것을 믿는다.

기어코 내내 가해자로만 살겠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런 아이들을 걱정하는 '왕따였던 어른들'의 마음이 참 고맙고 미안하다.

겪어서 지금에 온 사람들의 충고는 그래서 더 날카롭고 정확한 게 아닐까.

그들의 말들이 오늘 고통스러운 어떤 아이의 마음을 죽음에서 건져주기를.

살 수 있는, 견딜 수 있는 애처로운 지푸라기라도 되어주었기를.

또한, 그 울림이 커지고 커져서 더 이상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게 되기를.

그렇게 사회가 학교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를.

한 명씩 두 명씩 학교폭력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한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용기 있고 빛나는 모든 분들이, 꼭, 누구보다 행복해지기를.

너무도 아픈 상처를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털어놓은 순간, 더 이상 그것이 상처가 아닌 누구보다 굳건히 살아남았다는 빛나는 증거로 남아지기를.

꼭, 꼭,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살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은 무엇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잘못도 부끄러움도 모두 가해자에게 있으니까요.

멋지고, 빛나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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