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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평점 :

소금기 머금은 바람
입술 겉을 적신다
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알아
뱃노래 뱃노래
외로움을 던지는 노래
몇 고개 몇 고개의
파도를 넘어야 하나
악뮤, 「 뱃노래 」 가사 中 일부.
책을 읽기 전에 노래를 먼저 들었다.
이 책이 이번 앨범 '항해'의 모티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설명 없이 노래 그 자체로 먼저 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들은 앨범 '항해'는 지금까지의 악뮤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함이 남아있다 느껴지도 했지만, 훨씬 더 깊어지고, 사색적으로 느껴지는 곡과 가사가 가슴을 울렸다.
나는 악뮤를 좋아하지만, 재기 발랄한 느낌의 곡들을 들으면서 순간을 즐겼지 여운을 즐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순위권 안에 있는 노래들만 듣고 앨범 전곡을 꼼꼼히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한데, 이번 앨범의 '뱃노래'를 듣는 순간, '아... 나는 이 앨범을 사랑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혁의 사색적이고 아름다운 가사, 수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좋다'의 영역을 넘어선 무언가가 이번 앨범에는 있었다.
그동안의 악뮤 노래는 '궁금하다', '신선하다', '재미있다', '즐겁다'의 느낌을 유발했다면, 이번 앨범은 '사색적이고 깊은,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떨림과 울림을 오랫동안 남겨주는' 여운은 준다.
특히나 '뱃노래'는 수현 특유의 음색과 깊어진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듣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찬혁이 만들어낸 가사와 선율들이 수현의 목소리를 만나 더 깊이 공명하고 있었다.
나는 끝없이 끝없이 그들의 떨림에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어린 그들은 어디까지 가닿을 예정일까.
시간을 지나고, 세월을 건너, 삶의 나이테가 점점 늘어날수록 그들의 음악 또한 얼마나 더 깊어지고 넓어질 건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시간이 그들을 관통하는 동안, 그들이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스무 살이 되면 알아서 주어지는 어른의 이름 말고, 진짜 어른 말이다.)
누구보다 아름답게, 튼튼하게, 삶을 견뎌내기를.

이 책은 한 명의 예술가가 진정한 '나'로서 진정한 예술을 하고자 하는 여정이다.
예술이라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답이다.
그 속에서 악뮤의 '찬혁'의 마음속 길 또한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음악인의 길, 그가 소망하는 삶의 길을 엿보는 것은 마치 남의 일기장을 슬쩍 들여다보는 일처럼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몽환적이고, 사색적이며, 우화 같기도 하고 판타지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글을 어떻게 설명해낼 길이 없다.
읽어야지만 느껴지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은유의 세계를 풀어 말한 자신이 없다.
그저 찬혁이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을 뿐.
이번 앨범을 미리 들은 사람에게는 이 한 권의 책 또한 하나의 음악으로 와닿지 않을까 싶다.
음악 같은 소설이다.
그의 발걸음을 닮은 소설이다.
터벅터벅이 아니라 타닷타닷, 퐁퐁퐁, 발끝에서도 음악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십 대의 감성과 고민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한 폭의 그림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흔들리는 청춘들이 참 아름답다고, 오랜만에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아름다운 나이구나, 정말 빛나는 나이구나 하고 부러워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친구들의 세상 다 산듯한 글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아직 어리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나도 그 시기를 폭풍처럼 겪으며 지나왔음에도 살아온 시간만큼의 눈이 생겨버린 것이다.
맞는다고 믿었던 것들이 '아닌 것'이 되어 내 뺨을 후려치기도 했고, 옳고 그름의 분명한 잣대가 되려 무너져 흐릿해지기도 했다.
삶은 살수록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글은 이해는 되지만 나에게 울림을 주기에는 조금 모자란 느낌으로 읽혔었다.
오랜만에 젊음 그 자체로 찬란한 글을 읽은 것 같다.
삶에 대한 고민과 의문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싶었다.
삶을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시선을 나도 간직하고 싶었다.
때가 묻어버린 뻑뻑한 '어른'의 눈에 촉촉한 그의 눈물이 스며든다.
눈을 깜빡이는 일이 조금 쉬워졌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잊어버려. 그래서 아주 사소한 걸 두려워해. 예를 들면 자신을 따돌리는 아이나, 제시간에 마감하지 못할 업무 따위를."
… 중략 …
"이런 걸 보면 비로소 깨닫게 되지. 내가 두려워하던 건 이 거대한 파도 앞에 아무것도 아니구나. 심지어 내 죽음도 여기서는 너무 작은걸."
… 중략 …
"그래서 통제하는 거야. 윗사람들은 파도가 아닌 자신을 두려워하길 바라니까. 파도 앞에선 그들도 한없이 작아지니까.

"난 이 동네 사람들이 매일 걸어 다니는 길을 청소해요. 그들은 자신이 아침에 길바닥에 껌 포장지를 버렸다는 사실을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까먹고 말아요. 왜냐하면 내가 이미 치웠으니까요. 자신이 버린 포장지와 마주칠 일도 없었을 거고 그래서 다시 기억할 일도 없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남편을 향한 분노 따위를 집 앞에 버리고 가요. 어떤 날은 학교에서 들고 온 시기와 질투 같은 것도 있지요. 나는 그들이 그렇게 표출해버리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을 주워 담습니다. 그럼 그들은 그 길을 지나면서 다시 같은 감정을 떠올리지 않게 되지요. 모든 걸 까먹은 채 집으로 들어가서 다시 예전같이 남편을 사랑해주는 거예요."
물 만난 물고기 _ p.113~114
이 작은 책 곳곳에 수많은 질문과 답이 숨어있다.
그런 질문들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숨을 고르고 고민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는 그저 그 질문들을 깊게 응시할 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자신의 답만이 옳음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그 질문들이 깊이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답 또한 그래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지도.
강요하지 않는 질문과 답변에는 늘 숨 쉴 공간이 있어서 좋다.
그 공간에 내 고민과 답을 뱉어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의 질문과 답, 나의 질문과 답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야말로 책을 읽으며 작가와 독자가 가장 깊이 숨을 섞으며 얽히는 순간이 아닐까.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바다를 더 사랑한다면, 그녀의 바다가 될 방법을 고민했다. 내가 그녀의 소원이 되고 싶었다. 소원을 이뤄주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가 얼룩말을 소원한다면 내가 그녀의 얼룩말이 되어 그녀가 날 원하게 할 것이다.
물 만난 물고기 _ p.132

삶과 죽음이 긍정과 부정의 의미로 나뉘는 것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오직 본능에 의한 것일 뿐.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삶의 끝'이 아니라면 그에게는 슬퍼할 이유가 없다.
물 만난 물고기 _ p. 166
죽음 앞에서 나는 늘 남겨진 누군가였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대해 늘 원망이 있었다.
자신에게서 삶의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삶을 움켜잡아 줄 수는 없는 건지.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내내 짊어져야 할 슬픔과 상실을 애달파 해 줄 수는 없었던 건지.
그 안타까운 죽음들이 내내 아픈 만큼 원망스러웠다.
한데 책을 읽다가, 어떤 죽음의 선택이 '절망'의 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마주치게 되었다.
절망에 내몰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들은 희망을 찾아 떠난 건지도 모르겠다고.
자살을 선택한 이를 질책했으면 했지 응원한 적이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낯선 의문과 마주했다.
너무도 낯선.
어쩌면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선택에 대한 조금 다른 시선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죽음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세상을 버리고, 나와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희망으로 걸어들어 간 것이라고 믿게 된다면, 남겨진 이들은 조금 덜 아프게 될까.
그의 낯선 시선이 어쩐지 감사했다.
우리는 매번 남겨진 사람들이라서.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찬혁.
그는 체념과 한숨이 발에 채듯 넘쳐나는 오늘을 희미하지만 사라지지 않은 희망으로 걷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희망이 분명해질 때까지,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끝없이 노래하고 싶은 건지도.
그 노래의 끝에 우리가 찾던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은 속삭인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건조한 이 시절을 그의 노래로 건너가고 싶다.
꿈이 잡히지 않는 이 서글픈 시절을 그의 노래로 꿈꾸고 싶다.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헤엄치듯이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