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들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흐른다. 문장들 사이에는 더 깊은 골짜기가 흐른다. 글자와 문장 사이의 골짜기를 건너는 것이 읽는다는 행위다. 건너면서 내려다보는 골짜기는 사람만큼 다르다. 일부러 보지 않아도 보이고 마는 얕은 골짜기가 있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하고 캄캄한 골짜기가 있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골짜기라 그 골짜기는 곧 그 사람이다. 그러니 읽는다는 것은 곧 자신을 읽는 일이다. 그 골짜기에는 무수한 시간이 흐른다. 죽어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시간이 흐른다. 연민과 분노, 슬픔과 긍지, 회한과 쾌락이 흐른다. 그 골짜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런 일이다. -196쪽
조금 전 저자 강상중이 보내온 '한국어판 서문'을 읽었다.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내 안에서는 글자 하나하나가 다시 제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버려진 말들이 생기를 찾아 꿈틀거린다. 내 안의 시간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골짜기에 드러눕는다. 같이 운다.
강상중이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옮긴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가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 생각되어도, 인생이 끝나기 1초 전까지는 언제든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 같은 건 없다. 그리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다 보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댄 저절로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