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2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집 근처에 있는 생태탕 집에 갔었습니다. 그 기간이 꽤 길었으니 그 가게에서일하던 분들은 저와 어머니를 기억했을 거예요.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그곳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시를 다시 읽으며 그 생태탕 집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맘 때쯤 올 사람들이 오지 않네,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생각했겠구나 싶었습니다. ‘결석‘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게되는 시입니다. 이제 박정희 시대로 갑니다. 밤에 초인종이 울리고 "누구세요?" 물었을 때 "안기부입니다" 혹은 "중앙정보부입니다" 하는 답이 돌아오면 큰일 난 겁니다. 그 사람들은 이유도알려 주지 않아요. 그대로 끌고 가고 그걸로 끝이거든요. 그런 시대를 버티고 살아남은 어떤 할머니의 사연을 박준 시인이 주목합니다. 구청의 사회복지사가 노인복지사업차 동네 치매 노인들을 방문해 치매 정도를 확인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사회복지사가 조사 대상인 노인에게 어제 뭐 드셨는지, 지금 사는 곳이 어디인지, 가족은 어디에 있는지 같은 것들을 묻습니다. 이때 치매 정도가 심하면 지원 시간이 늘어납니다. 그래서어떤 분들은 기억하지만 기억 못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기도하죠. 그래야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는 등급으로 확인되니까요 그런 상황입니다. 치매를 앓는 명자네 할머니는 구청 직원이 찾아오면 정신이 번쩍 돌아옵니다.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고 부르기를 그만두고 아들을 아들로, 며느리를 며느리로 불러요이 할머니는 "오래전 사복을 입고 온 군인들에게 속아 남편이 숨은 거처를 알려주었다가 혼자가 된 분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한밤중에 소리 소문 없이 잡혀 가서 이유 불문하고사라져 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던 그 시대의 이야기인 거죠할머니는 현재 아들을 아버지라 부를 정도의 치매 상태인데도 구청 사람들이 찾아오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안타까운데, 그러다 보니 할머니는 중증 치매인데도 제 등급을 받지 못해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슬픈 현실이 덧붙어 있습니다. • 구청에서 직원이 나와 치매 노인의 정도를 확인해 간병인도 파견하고 지원도 한다 치매를 앓는 명자네 할머니는 - P212
매번 직원이 나오기만 하면 정신이 돌아온다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 부르기를 그만두고 아들을 아들이라부르고 며느리를 며느리라 부르는 것이다 오래전 사복을 입고 온 군인들에게 속아 남편의 숨은 거처를 알려주었다가혼자가 된 그녀였다박준, <기억하는 일> 중에서 - P213
면 된다. 힘내라 하는 이야기가 들리면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나만 이렇게 아프고 힘든가, 내가 나약한 탓인가 싶고요그래서 듣기에 그 좋은 소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오히려 너무아픈 소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볼륨을 줄여도 좋겠다고 하는 것이고요. 여러 책에서 말씀드렸지만 저희 회사에 주니어 보드라는것이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각자 이야기를 준비해서 발표하는 ‘망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걸해보면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10대20대 시절에 우울증을 겪은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일상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이 프로그램을계기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꺼내 놓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 친구도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에 우울증을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이 친구는 라디오에서 위로를받았대요. 새벽 4시, 잠은 오지 않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나 빼고 다들 잘 사는 것만 같은데 라디오를 듣다 보면 어딘가에 본인처럼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한 친구는 자신의 친한 친구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있다는 걸 나중에 알고서 반성했답니다. 그 친구가 힘들 때마다 힘내, 괜찮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말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 알겠더래요. 누가 힘들다고 할때는 힘내라, 괜찮다. 잘될 거다, 파이팅, 이런 말보다 같이 밥먹으러 갈까? 영화 보러 갈까? 그런 말이 오히려 진정성 있는 위로였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생각해 보면 힘내라고 하는건해야 할 몫을 힘든 당사자에게 돌리는 거잖아요 밥 먹을까, 영화 볼까, 하는 말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것이고요그래서 힘내라는 말보다 그런 말이 상대를 동굴에서 한 발짝나오게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훨씬 진정성 있는 위로라는 거죠. 이것은 제가 오히려 20대 친구들에게 배운 것입니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려면 이런 시선이 필요한 것 같아요<귀천>은 아마도 천상병 시인의 시 중 가장 잘 알려진 시가아닐까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 구절은 참 아름답죠 그런데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 구절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놀랍고 가슴이 아립니다. 말씀드렸듯이 그는 터무니없이 중앙정보부에 잡혀 가서 전기 고문을 당한 - P232
했고 그 이후 심신이 망가진 채 거의 폐인처럼 살다가 떠난분입니다. 가진 게 없어서 여기저기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살았고 명절에 여비가 없어서 집에도 가지 못했던 사람이고요. 그랬던 사람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시인은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도 있어요.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새벽이 오고 태양이 뜨면 곧 사라질 이슬 같은 우리 삶을 이야기한 것이고, 그 뒤에 이어지는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도 같은 문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죠. 덧없는 삶도 더불어 손을 잡고 생을 다하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지난 생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거라는거예요. 삶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천상병 시인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잘못된 정보로 잡혀가서 전기 고문을 당하고 삶이 통째로 망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어서 하늘로 돌아가면서 이 삶이 아름다웠더라고 이야기하겠다고 해요.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 P234
사는 것이 좋았고, 삶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시인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지 삶에 다른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책은 쿤데라의 마지막 작품인데, 저는 제목에서 이미 할 이야기를 다했다고 봅니다.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것도 좋았습니다. 삶은 의미 없습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묻는 것은 두뇌가 너무 발달한 사피엔스들의 망상이에요 누구 말대로 "두뇌가 병적으로 팽창하여 미쳐버린 짐승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이야기했어요.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은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라고요 우리는그저 생명일 뿐입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풀은 삶의의미를 따지지 않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삶은 분명 축제입니다. 무의미의 축제. 쿤데라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죠. 지금 이 순간이 축제입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고 이 눈으로 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고 걷고 웃고 손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여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요. 이것이축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 외에는 의미 없습니다. 천상병 시인도 한때는 왜 내 삶은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왜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묻지 않았을까요? 그런 물음 끝에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이제 더는 의미를 묻지 않게된 것이 아닐까요 그 모든 시간을 거쳐 그저 살아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니오늘 나와 함께 태어난내 죽음도 쉰세 살내 죽음도 쉰세번째 가을어서 드시게오늘은꾹 참고 나를 보살펴준내 죽음과오붓하게 겸상하는 날이문재, <생일) 중에서생일을 맞는다면 어떻게 맞을까, 하는 시선을 시인의 관점 - P236
2024년에는 한발 더 나아간 것 같아요. 시위가 마치 축제와같이 긍정적인 힘으로, 공감과 연대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성당은 바람을 빚는 공장 두 손을 모으는 기도는 바람이 되어 견고한 벽들을 무너뜨리기도 하지" 이 시가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겁니다. 촛불 하나가 뭘 할수 있을까요? 촛불 하나 응원봉 하나가, 한 장의 투표 용지가뭘 하겠어요? 그런데 그 작은 힘이 벽을 무너뜨립니다. 두손을 모아 하는 이 작은 기도가 모이고 모여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 찍혀 있는 바람의 발자국을 보았다"라는 것도 사람들의 바람이 모이고 모여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바람으로바람이 불고 바람은 태풍이 되어 장벽을 뒤흔들어요<아Q정전>을 쓴 루쉰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편 전쟁의시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이런 이야기를했죠. "희망은 길이다." 맞습니다. 희망은 길입니다. 길은 한사람이 가면 생기지 않습니다. 10명이 가도 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틀 동안 100명이 같은 곳을 지나가면 흔적이 남습니다. 1만 명이 지나가면 길이 됩니다. - P243
습니다. 물론 최소화시켜야 하고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는 게제일 좋죠. 하지만 사상자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두면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다칠 수도 있습니다. 실수할까 봐, 다칠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슬픈 일일 거예요. 다음의 글은 전남진 시인의 시집 <월요일은 슬프다> 속<시인의 말>에 실린 글입니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그래서 가장 치열한 모습으로, 세상을 견뎌 나가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이 부끄러운 시집이 성냥불 같은 온기라도 되기를... 고사는 사람들에게 향수 뿌릴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치장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저 볼품없는 모습으로 치열하게하루하루를 버티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쓴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 보고, 그 사람들곁에서 자신의 시가 잠깐이라도 온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겁니다. 전남진 시인의 시 속에는 그런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전단 한장 받아줄 마음 한장 없이나는 살았구나가난보다 가난하게나는 살았구나시인은 자기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치열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볼품없는 모습으로 세상을 견더 나가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부끄러운 시집이 성냥불 같은 온기라도 되기를 바란다고요. 이 첫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폐지를 줍고 전단을 돌리고, 그렇게 하루 벌어 먹전남진, 뒤돌아보면 아프다) 중에서길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분들을 종종 마주칩니다. 이분들은 전단을 빨리 나눠 줘야 집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날 주어진 작업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에 이루어진 한 일간지 조사로는 전단을 300장 돌리고 1만 5천 원을 받는다고 - P249
해요. 90퍼센트의 행인이 그냥 지나쳐 가지만 가난한 노인들이 그 돈을 벌려고 전단 배포 알바에 나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 전단, 보든 보지 않든 받아서 버리면 되는데 대부분받지 않죠. 시인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전단 한 장 받아주지 못할 만큼 내 마음이 가난했다고요. 그런데 저도 여전히 길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분들을 봐도 받지 않아요. 저 역시 마음이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싶어요. - P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