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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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유명한 쓰쓰이 야스타카의 꽤 신작 장편소설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될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짚고 있었는데, 이렇게 등장할 줄은 몰랐다. 올해 들어 해외 번역 SF소설들의 성적이 꽤 좋았지만(‘아작‘ 출판사가 견인했다), 그래봐야 영미권소설의 일이고, 일본SF의 감수성은 우리나라에서 보기에 좀 마니악하고... 뭐랄까 지나치게 미의식이 강하고 유희적인 게 아닐까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고 일본SF를 많이 본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봤던 게 대부분 ‘지나치게 미의식이 강하고 유희적인‘ 종류에 속한 것뿐이다.

어쨌거나 쓰쓰이 야스타카다. 생각해 보면 이 작가의 소설은 우리나라에 꽤 많이 번역되어 왔구나 싶다. 90년대부터 줄곧 말이다. 학술적인 성격이 짙은 이와나미문고에서도 간행된 <문학부 다다노 교수>라거나, <가족 팔경> <파프리카> 같은 대표작들이 꽤 나왔고, <최후의 흡연자> <사회학·심리학> 같은 단편집들도 판을 바꿔 가면서 꾸준히 번역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제외하면 일본에서의 명성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수수한 반향밖에 없었지 않았던가 싶다. 그랬기에 이 책의 뒤표지에 당당하게 들어간 헤드라인을 보면 약간 쓴웃음이 나온다.

<세상이 열광하는 희대의 엔터테이너 / 쓰쓰이 야스타카 50년 작품 세계의 집대성>이라는 헤드라인이다. 음. 윗줄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더라도, 이 아저씨의 반백년이나 되는 작품 세계를 집대성하든 말든 별로 우리나라에서는 상관없지 않나? 라는 느낌. 아예 불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작가의 평생의 집대성‘이라는 건 즉, ‘나랑 별 상관없고 잘 모르는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벌여놓은 거 같은데 결국 잘 모르겠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어떤 장르의 대가가 만년에 자기 세계를 종합해놓은 이야기란 그것이 유통되어 온 환경이나 사회와의 역사가 축적되고 맥락을 알지 못하면 즐기기 어렵다는 게 나의 경험에 의한 신념이다.

부정적인 소리만 줄창 늘어놓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도통 이해 못할 노잼소설이라는 건 내 요지가 아니다. 다만 뭐랄까, 어떤 SF 혹은 스릴러를 기대하느냐에 따라서 엄청 큰 실망을 할 수도 있겠다. 일단 이 책은 SF중에서도 사변물의 테마를 갖고 있고 그걸 스릴러 기믹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스릴러로서 구성을 막 타이트하게 잡은 물건이 아니다. 이건 쓰쓰이 야스타카라는 개인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은(내가 이제껏 해온 말은) 이거야‘라고 일필휘지로 에센스만 뽑아서 ‘뭐 스릴러 정도로 해볼까‘하며 처리하고 ‘이제 됐어‘하며 탁 마무리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개성이 굉장히 강하다. 결국 이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체험하는 건 쓰쓰이 야스타카라는 강렬한 개성이다. 혹은 이 사람의 정신세계라고 할까.

솔직하게 말해서 이야기로서는 엄청나게 파탄 나 있기에, 이 점을 지적하는 리뷰가(일단 일본에서) 드물다는 게 - 아니 사실 하나도 본 적 없다 - 이 작품이 이야기 자체의 질이 아니라 ‘쓰쓰이 야스타카라는 브랜드 제품으로서의 시그니처성‘에 기대 승부한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대가의 유머러스하고, 늙은이 주제에 실은 십대 소녀처럼 잔혹하기 짝이 없고, 방대한 역사와 지식과 정보를 가볍게 희롱하는 듯한 정신의 강도를 체험하는 독서다. 그것이 재미있고, 경이감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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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鳴傳 (講談社ノベルス) (新書)
講談社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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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괴상한 꿈을 꾸고 화들짝 놀라서 일어난 후 이 책을 읽어버렸다.
어떤 꿈이냐면, 이 책의 작가인 니시오 이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TV로 보도되는 내용이었다.
꿈 속의 뉴스에서는 니시오 이신을 가리켜 ‘신인류 문학의 기수로서, 사이코패스와 같이 주변에 공감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인물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유대를 쌓아간다는 테마에 천착‘했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신인류 문학‘ 운운하는 것부터 엄청 아재 냄새가 나지만 오히려 그 점이 국내 텔레비전 보도에서 있을 법한 일이어서, 꿈 속에서는 조금 놀라기만 하고 그냥 넘어갔다.
니시오 이신이 노벨문학상을 타다니 이런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지만 뭐 그럴 만도 하지, 라고 생각했다.
전혀 그럴 만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 꿈속에서 대표작으로 소개된 책이 바로 이 <비명전>을 위시한 ‘전설 시리즈‘였다. 모노가타리 시리즈도 헛소리 시리즈도 아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이 시리즈였던 건지 모르겠다. 사 놓고 몇 년 지나도록 안 읽었던 이 책이 무의식중에 신경 쓰였던 게 아닐까 싶다.
여하튼 간에 세계의 대문호 니시오 이신의 작품 리스트가 쭉 소개되는 꿈의 후반부에 들어서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고 곧 깼다.

이야기는 니시오 이신식 특촬 히어로물이다. 인류의 3분의 1을 절멸시킨 <지구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몇 년 후. 주인공 소라카라 쿠우 소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하고 그 무엇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죄악감을 갖고 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심리 카운셀링을 받은 일을 계기로 그는 비밀조직 ‘지구박멸단‘의 눈에 띄어 인류를 구할 영웅으로 선택된다.

지구박멸단의 적은 인류를 절멸시키려 하는 사악한 ‘지구‘. 이 행성은 오랜 옛날부터 인류를 싫어하여 위협하고 공격해 왔고, 지구박멸단은 이를 저지하고 역공해 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극히 공허하고 무감각한 소라카라 쿠우는 가장 이상적인 ‘영웅‘이라고 한다. 소라카라는 보통 사람이 보면 미쳐버리는 ‘괴인‘의 본모습을 동요 없이 포착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라카라는 히어로 수츠 ‘그로테스크‘의 힘으로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성스럽고 아름다운‘ 괴인의 본모습을 포착하여 필살 ‘그로테스킥‘으로 살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괴인‘은 사악한 적 ‘지구‘의 수하. 그러나 그들의 평상시 모습은 광학미채와 감각 조작 같은 원리로 보통 인간이나 다를 바 없고, 그들 본인도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소라카라의 행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살해, 학살에 지나지 않는다. 소라카라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아무런 감흥도 받지 않는다. 애초에 그는 지구박멸단에 스카우트될 때 가족 전원과 학교 친구들 등 관계자들을 모두 참살당했지만, 그 사실을 그저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소라카라는 자신의 가족을 형체도 없이 참살한 장본인인 ‘실패한 히어로‘ 소녀 켄도 켄카와도 별 마찰 없이 지낸다. 소라카라의 앞길에 장애가 된 것은 그 자신은 물론 조직조차 예상치 못했던 요소들이다.

너무나도 뛰어난 현실 수용 능력과 빠른 계산능력, 제로나 다름없는 감수성. 니시오 이신이 초기작 헛소리 시리즈부터 줄곧 그려 왔던 주인공상이 소라카라 쿠우라는 인물에 이르러 가장 순수한 상으로 맺혔다는 감상이 든다. 기존의 주인공들은 속성이나 그려내는 방식에서 불순물이랄까, 이것저것 첨가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라카라 쿠우에 가장 근접한 건 <소녀불충분>의 유우, 세계 시리즈의 쿠시나카 초시 같다. 다만 유우는 피해자 속성이 강하고, 쿠시나카는 반대로 가해자 속성이 강하달까. 사이코패스 계열이라도 니시오 이신이 말하려는 건 곁에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이 세상에 승인받는 사이코패스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관계의 피해자나 가해자의 위치가 아닌 소라카라 소년이야말로 니시오 이신의 테마를 순수한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잔혹하고, 순수하고, 비극적이면서도 무척 신선하고 아름답다. 설마 니시오 이신의 글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을 느낄 날이 올 줄이야.......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 돌아오면 이 이야기를 보고 기분이 어떨까. ‘인간으로서 잘못된 그대로 행복해진다.‘ 중점은 ‘잘못됐다‘가 아니라 ‘행복해진다‘다. 사이코패스를 주인공 삼는 문학에서도 독보적인 테마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헛소리 시리즈, 세계 시리즈 같은 초기작들을 보면 냉소와 허무주의가 굉장히 두드러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00년대 당시의 니시오 이신 주인공들은 2010년대 지금의 ‘요즘 젊은애들‘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에서 주인공의 살해당한 히로인에 대한 태도라거나, 사람에 대해서 별생각 없이 갖는 혐오감이라거나 상관없다는 태도, 그런 스스로에 대해 자포자기하고 냉소하는 듯한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카타나가타리나 바케모노가타리 쯤을 기점으로 냉소와는 조금 다른 태도를 가진 주인공들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뭐 이건 <비명전>과는 별 상관 없는 감상이지만.

뭐 그랬다. 감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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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오랜만 ㅇㅅㅇ)/

땡스북스 가서 복면사과 4G샀다.
하우스 오브 픽션 제본 안 된 거 갖고 만든 북아티스트들 작품도 봤다. 그중 하나가 너무 예뻐서 갖고 싶었지만 파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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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불의 연회 : 연회의 준비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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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의 시말 편의 번역서가 드디어 나와서, 조금 읽다 중단했던 이 책을 마음놓고 읽고 있다. 효스베라는 요괴에 대한 교고쿠도의 추리, 역시 대단하다... 요괴의 정체를 풀어가는 교고쿠도의 논지 전개는 뭐랄까 생소하면서도 박진감 넘쳐서 좋다. 요괴적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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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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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2009년작으로 국내 초판은 2011년이다. 원서나 번역판 발간 당시에는 시큰둥하다, 어제 중고매장에서 슥 눈에 들어와 충동적으로 샀다. 그리고 방금 한번 다읽었다.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이걸 어째서 관심 두지 않았던 건가, 자칫하면 영원히 읽지 않을 뻔했다는 데 현기증이 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세 명의 인물이 각자 한 챕터를 배분받아 대학교 시절 추억을 더듬는다는 체제인데, 각 챕터가 트레이싱페이퍼에 그려진 그림 같다. 한 장 한 장이 독립된 그림으로서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지만, 세 장을 겹침으로써 전체상이 완성된다. 트레이싱페이퍼의 겹쳐진 선과 색의 아련하고 모호한 질감, 여백의 맑고 섬세한 결, 그런 게 이 책을 읽고 떠오른 이미지다.

각 챕터별 구성의 묘도 인상적이다. 첫째 챕터는 세부만으로 변죽을 울리는 듯하면서도 뭐랄까 어디선가 들어본 듯, 편안한 수다 같은 느낌. 두 번째는 가장 스트레이트한, 좀 쌉싸름한 청춘소설. 세번째는 한 인물의 내면독백과 외면의 관찰이 번갈아 등장하는, 시나리오와 트리트먼트의 교차서술같은 구성. 이중주를 연상시키는 이 마지막 챕터가 가장 무겁고, 첫째 챕터가 가장 가벼운 터치. 회화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균형과 리듬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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