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鳴傳 (講談社ノベルス) (新書)
講談社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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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괴상한 꿈을 꾸고 화들짝 놀라서 일어난 후 이 책을 읽어버렸다.
어떤 꿈이냐면, 이 책의 작가인 니시오 이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TV로 보도되는 내용이었다.
꿈 속의 뉴스에서는 니시오 이신을 가리켜 ‘신인류 문학의 기수로서, 사이코패스와 같이 주변에 공감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인물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유대를 쌓아간다는 테마에 천착‘했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신인류 문학‘ 운운하는 것부터 엄청 아재 냄새가 나지만 오히려 그 점이 국내 텔레비전 보도에서 있을 법한 일이어서, 꿈 속에서는 조금 놀라기만 하고 그냥 넘어갔다.
니시오 이신이 노벨문학상을 타다니 이런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지만 뭐 그럴 만도 하지, 라고 생각했다.
전혀 그럴 만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 꿈속에서 대표작으로 소개된 책이 바로 이 <비명전>을 위시한 ‘전설 시리즈‘였다. 모노가타리 시리즈도 헛소리 시리즈도 아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이 시리즈였던 건지 모르겠다. 사 놓고 몇 년 지나도록 안 읽었던 이 책이 무의식중에 신경 쓰였던 게 아닐까 싶다.
여하튼 간에 세계의 대문호 니시오 이신의 작품 리스트가 쭉 소개되는 꿈의 후반부에 들어서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고 곧 깼다.

이야기는 니시오 이신식 특촬 히어로물이다. 인류의 3분의 1을 절멸시킨 <지구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몇 년 후. 주인공 소라카라 쿠우 소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하고 그 무엇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죄악감을 갖고 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심리 카운셀링을 받은 일을 계기로 그는 비밀조직 ‘지구박멸단‘의 눈에 띄어 인류를 구할 영웅으로 선택된다.

지구박멸단의 적은 인류를 절멸시키려 하는 사악한 ‘지구‘. 이 행성은 오랜 옛날부터 인류를 싫어하여 위협하고 공격해 왔고, 지구박멸단은 이를 저지하고 역공해 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극히 공허하고 무감각한 소라카라 쿠우는 가장 이상적인 ‘영웅‘이라고 한다. 소라카라는 보통 사람이 보면 미쳐버리는 ‘괴인‘의 본모습을 동요 없이 포착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라카라는 히어로 수츠 ‘그로테스크‘의 힘으로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성스럽고 아름다운‘ 괴인의 본모습을 포착하여 필살 ‘그로테스킥‘으로 살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괴인‘은 사악한 적 ‘지구‘의 수하. 그러나 그들의 평상시 모습은 광학미채와 감각 조작 같은 원리로 보통 인간이나 다를 바 없고, 그들 본인도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소라카라의 행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살해, 학살에 지나지 않는다. 소라카라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아무런 감흥도 받지 않는다. 애초에 그는 지구박멸단에 스카우트될 때 가족 전원과 학교 친구들 등 관계자들을 모두 참살당했지만, 그 사실을 그저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소라카라는 자신의 가족을 형체도 없이 참살한 장본인인 ‘실패한 히어로‘ 소녀 켄도 켄카와도 별 마찰 없이 지낸다. 소라카라의 앞길에 장애가 된 것은 그 자신은 물론 조직조차 예상치 못했던 요소들이다.

너무나도 뛰어난 현실 수용 능력과 빠른 계산능력, 제로나 다름없는 감수성. 니시오 이신이 초기작 헛소리 시리즈부터 줄곧 그려 왔던 주인공상이 소라카라 쿠우라는 인물에 이르러 가장 순수한 상으로 맺혔다는 감상이 든다. 기존의 주인공들은 속성이나 그려내는 방식에서 불순물이랄까, 이것저것 첨가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라카라 쿠우에 가장 근접한 건 <소녀불충분>의 유우, 세계 시리즈의 쿠시나카 초시 같다. 다만 유우는 피해자 속성이 강하고, 쿠시나카는 반대로 가해자 속성이 강하달까. 사이코패스 계열이라도 니시오 이신이 말하려는 건 곁에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이 세상에 승인받는 사이코패스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간관계의 피해자나 가해자의 위치가 아닌 소라카라 소년이야말로 니시오 이신의 테마를 순수한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잔혹하고, 순수하고, 비극적이면서도 무척 신선하고 아름답다. 설마 니시오 이신의 글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을 느낄 날이 올 줄이야.......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 돌아오면 이 이야기를 보고 기분이 어떨까. ‘인간으로서 잘못된 그대로 행복해진다.‘ 중점은 ‘잘못됐다‘가 아니라 ‘행복해진다‘다. 사이코패스를 주인공 삼는 문학에서도 독보적인 테마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헛소리 시리즈, 세계 시리즈 같은 초기작들을 보면 냉소와 허무주의가 굉장히 두드러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00년대 당시의 니시오 이신 주인공들은 2010년대 지금의 ‘요즘 젊은애들‘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에서 주인공의 살해당한 히로인에 대한 태도라거나, 사람에 대해서 별생각 없이 갖는 혐오감이라거나 상관없다는 태도, 그런 스스로에 대해 자포자기하고 냉소하는 듯한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카타나가타리나 바케모노가타리 쯤을 기점으로 냉소와는 조금 다른 태도를 가진 주인공들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뭐 이건 <비명전>과는 별 상관 없는 감상이지만.

뭐 그랬다. 감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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