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이 책의 리뷰를 찾는 분은 주의하시길. 아니, 리뷰 보지 마세요(...). 저 막 리뷰 찾아 다니다가 스포일러 막 당했습니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인 반전은 물론 이중반전이고 뭐고 다 까발리면 어쩌자는 건지.
물론 제 리뷰는 믿으셔도 됩니다! 안심 안심!

 

   생소한 이탈리아 작가의 86년작이라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다지 매력이 없다.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동인은 이야기의 모티프가 된 [데카메론](혹은 [천일야화]) 이나 "사형 전날 밤의 진실 게임" 이라는 상황설정에 있을 것이다.
   왕의 폭정에 시달리는 19세기 초의 이탈리아. 민중 선동과 국왕 암살 미수라는 죄목으로 수감된 네 명의 죄수가 사형일을 하루 앞두고 하나의 제안을 받는다. "총잡이"라는 별명을 가진 왕당파 콘살보 데 리티스 사령관이 그들의 감방에 상자와 네 장의 종이를 놓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기에 너희 지도자인 '불멸의 신'의 정체를 쓰면 너희는 사면될 것이다. 너희 중 한 명이 털어놓아도 모두 사면이다. 그러나 모두가 침묵을 지킨다면 예정대로 아침에 참수형이 집행될 것이다."
   남작 콜라도 "디디모" 인가푸, 자칭 시인 살림베니, 군인 아제실리오, 그리고 학생 나르치스는 교묘한 덫이 장치된 리티스 사령관의 제안에 신념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역시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같은 방에 수감된 '대 도적' 치릴로 수도사. 그는 남작이 문득 "[데카메론]처럼 우리도 각자 하나씩 자기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하자 한번 해 보라고 그들을 부추기고, 현란하고도 박학하며 냉소적인 논평으로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윽고 그들의 짧은 밤은 각자의 스타일을 가진 네 가지 이야기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일까. 그 안에서 언뜻 존재감을 비추는 왕가의 적이자 선동자들의 우두머리 "불멸의 신"이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삶의 시간을 추억하는 그들은 결국 신념을 배신하고 명예롭지 못한 삶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승자와 패자가 엇갈리는 "이야기의 로망". 19세기 이탈리아 정치 상황이라는 배경 속에서 열정적이면서도 기만적이고, 고결하면서도 저속했던 인물들의 역정 이야기가 귀착하는 곳은 결국 그곳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찾다가 싸그리 몽땅 네타당해 버렸다. 뭐, 그건 그거대로 차분하게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역시 이 책은 정보가 적은 상태에서 보는 게 가장 좋다. 
   이야기 구조의 도식적 아름다움만 보자면 완전 내취향이라고 하겠지만, 번역의 한계 때문일까. 이 책의 문체는 딱 번역투랄까, 기계적이고 다소 과장되어 있어서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철학과 고전문학, 오페라의 네타가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나의 교양 부족으로 이렇다할 감흥을 느끼지 못해서 아쉽다.
   네 명의 죄수들이 말하는 것은 결국 인생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학생 나르치스는 풋내 나는 첫사랑에 대해 고백한다. 남작은 세콘디노라는 이름의 자신의 쌍둥이 동생에 대한 질투와 동경의 역사를 털어놓는다. 병사 아제실리오의 이야기는 이색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 이야기인데, 그 고백에는 어릴 적 남자들만의 수도원 생활에서 눈떴던 성적 쾌락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시인 살림베니는 무려 미망인과 그 아들 두 명을 낚는다(...).
   암울한 시대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누추한 감옥의 벽. 불도 밝히지 않은 감방 안에서 인물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황금과 주홍빛의 무늬를 그린다. 로맨틱하다. 여러 겹으로 장치된 복선은 고결함을 저속함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뒤집으며 아이러니와 위트의 감각을 부여한다. 마지막 장에 배치된 리티스 사령관이 왕에게 올리는 편지를 읽으면, 과연 가장 불쌍한(...) 건 누구일까, 하는 냉소가 떠오르게 된다. 끝까지 읽은 후에야 드러나는 함정과 함정의 교묘한 자리바꾸기.
   요즘 감각으로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랬더라면 고전적인 로맨틱함은 줄어들더라도, 스마트함과 잔인함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이 책의 기계적인 문체를 매끄럽게 바꾸고 제멋대로 어레인지해 본다. 이 책은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여러가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도 높이 살 만 하다.
   현대 이탈리아 소설은 거의 읽은 적이 없는데, 간만에 그럴듯한 독서를 했다. 이런 종류의 테마에 혹하시는 분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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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서와 사랑하는 폭탄 - Extreme Novel 싸우는 사서 시리즈
야마가타 이시오 지음, 김용빈 옮김, 마에시마 시게키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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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리즈의 배경은 인간이 죽으면 그 인생이 하나의 "책" 이 되어 "도서관"에 수납되는 판타짓한 세계다. "책"이란 흔히 보는 종이책이 아니라 돌 같은 형태로, 광산에서 발굴된다. 옆 책 표지의 소년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책"의 조각이다. "책"에 닿는 순간 그것에 기록된 인생이 읽는 사람에게 흘러들어오기에, 읽을 때는 맨손으로, 다룰 때는 장갑을 낀다.
  책이 보관되는 "도서관"은 "신립 반트라 도서관"이라 불린다. 이 세계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신이 있는데, 그 중 과거신 반트라가 신화시대에 세운 도서관이 그것이다. 신화시대에 "책"을 관리하는 것은 "사서 천사"들의 임무였으나, 현재는 "무장사서"라 불리는 인간들이 위임받고 있다. 무장사서는 이 세계 최고의 문무겸비 엘리트로서, 이들의 능력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마법의 계발에 기초하며, 그 수준은 죠죠의 스탠드들이 인간화한 걸로 보면 된다(...). 이 무장사서의 톱이 "관장대행"(도서관장은 과거신 반트라) 하뮤츠 메세타다. 옆 표지의 나이스한 누님.
  무장사서들이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공식기구라면, 사악한 악의 총본산을 대표하는 "신익교단"이란 무리도 있다. 무장사서와 신익교단 간의 싸움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줄기로서, 이 사이를 넘나드는 트릭스터 "라스콜 오셀로"라는 수수께끼의 존재가 거의 언제나 사건의 계기를 마련하거나 인물들간의 의지를 잇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이 구도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점 의혹에 싸이고, 최근작들에선 충격적인 기믹이 밝혀질까 말까 하고 있다(?).

  1권 [싸우는 사서와 사랑하는 폭탄]이란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우와..미묘. 뭐야 이 책은."이란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내용을 잘 압축해버린 제목이다. 싸우는 사서와 사랑하는 폭탄이다. 사서는 싸우고 폭탄은 사랑한다. 
  악의 무리 신익교단은, 사람들을 납치해 "고기"라 부르며 기억과 자아를 잃게 하고 사육하여, 인체 실험에 쓰거나 인간폭탄으로 만들어 왔다. 이 인간폭탄 중 하나가 이 책의 주인공 소년 콜리오다. 콜리오는 신익교단의 세뇌에 의해,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폭탄일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인간이야말로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가치로운 존재이며 '나의 기쁨이 곧 신의 기쁨'이라는 것이 신익교단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신익교단은 콜리오를 비롯한 다른 인간폭탄들을 토앗트(도대체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광산 마을로 풀어놓고, 그곳에서 반트라 도서관 대행 하뮤츠 메세타의 목숨을 노린다. 그러나 하뮤츠는 무려 인류 최강의 여자. 풀어놓으면 도시 하나 정도 반경은 커버하는 '촉각실'이라는 정보수집기(랄까, 오감이 실의 이미지로 몸으로부터 길게 뻗어나오는 듯한 인상이다)에, 역시 한번 던지면 도시 하나 정도 안에서는 당연하게 명중해버리는 심플 이즈 베스트 '투석기'라는 사기적이랄까 무지 비겁한 전술을 쓰는데다가, 전법 제외하고 순수하게 전력만 따져도 사기급. 이런 여자에게 도대체 인간폭탄 따위로 어떻게 대항할 거냐 악의 자코야, 라는 기분이 들어버릴 정도다.
  한편 콜리오 군은 광산의 야매 노점상에서 산 "수백년 전 공주님의 책"을 손에 넣어, 그것을 읽고, 책의 주인공인 '고양이색의 공주'를 사랑해 버린다. 그가 본 공주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늠름하고 고귀한, 그야말로 "인간"이어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색의 공주는 알고 보니 신익교단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선천적인 강력한 마법으로 예지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금 현재에서 진행중인 신익교단의 음모가 바로 고양이색의 공주의 예지가 알아낸 무엇에 의한 것이다. 신익교단의 이번 계획 입안자이자 실행자인 시걸은 공주가 예지한, 바로 지금 현재 이곳 토앗트 광산 마을에서밖에 쓸 수 없는 조건을 이용해 세계최강의 괴물 하뮤츠를 절체절명의 고비로 몰아넣는다. 그동안 콜리오는 고양이색의 공주의 책을 읽으며, 그 책과, 책이 연결해 준 인연에 의해 조금씩 변화해 간다. 그리고 콜리오가 공주의 진실을 알고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알았을 때, 콜리오 역시 '그녀와 함께' 싸움에 몸을 던진다.


  슬슬 1권도 정발됐고, 싸우는 사서 시리즈에 대해 감상을 써 볼 필요성이랄까 의무를 (쓸데없이) 느껴버리고 마는데, 정작 뭔가 쓰려고 하면 머엉~ 한 상태가 되고 만다.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겐, "아아! 잘 읽었다. 참 좋은 책이야. 다음 권도 빨리 읽고 싶어." 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버리는 물건이라... 가타부타 긴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이 순수하게 멋진/잘 구축된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이쪽의 "취향"을 낚는 혹하는/와닿는 떡밥 같은 것은 희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적으로 말해 당 시리즈는 환타직한 세계관 안에서 전개되는, 죠죠러 티가 확확 풍기는 능력자 배틀물이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세계관을 중시하는 설정 페시티스트가 아니고, 능력자 배틀물에 대한 기호는 있지만 그것의 룰을 결코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능력치별 밸런스건 전투 상황에 따른 변수건 그 이전에 전투의 기초도 모름ㄳ). 따라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솜씨 좋은 작가가 이끌어 주는 대로 유순하게 나아가기만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와, 무지 재밌어. 그런데 감상은 별로 할 말이 없다" 상태에 봉착해 버린다.
  그렇다고 당 시리즈가 용어남발과 전투묘사에 미친 슈퍼테크니컬 하드 액션 배틀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액션과 드라마의 밸런스가 아주 좋으며, 굳이 따지자면 액션은 거들 뿐 서포트, 드라마 쪽이 의의와 의미를 갖는 종류다.(액션에 비중이 있는 걸 꼽자면 나인에스.) 문체 자체도 지극히 꾸밈이 없다. 라노베들이 곧잘 그러듯 현학적이지도 매니악하지도 현란하지도 설교적이지도 않고, 소탈하다기보다는 진중하다고 불러야 할까 싶을 정도다. 시리즈가 거듭될 때마다 아낌없이 죽어나가는(...) 인물들은 니시오 이신 같은 경우처럼 소비된다는 인상이 절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이야기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죽었다"는 느낌을 준다. 
  거대한 어둠의 배후세력 "신익교단"으로 대표되는, 부조리와 불행으로 넘치는 냉혹한 세계. 그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살아가고, 그럼으로서 타인의 이야기와 영향을 주고받는 개개인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놀랍게도(?) 단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테마를 압축시키자면 "인간찬가"다. 그것을 풀어가는 스타일이 '능력자 배틀'극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살아가기 위한(혹은 살아간다는) 싸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고전적이라 곤혹스러울 정도다. 그것이 별다른 장식 없이, 독자에 대한 애교도 없이 높은 완성도로 구현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타부타 말을 더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일단은 앞에 스토리 요약을 해 두긴 했는데...
  "책"은 이 이야기를 성립시키는 키워드인 동시에 싸우는 인간들의 뜻과 뜻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각 권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액자형식이라고 할까,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사건이 있고, 그것에 개입한 인물은 그 사건과 관련이 있었던 누군가의 "책"을 읽음으로써 이야기에 그 책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형식이 자주 쓰인다. 1권에선 현재형의 토앗트 광산 사건과, 수백년 전의 공주의 이야기가 두 건에 모두 개입한 인물 콜리오의 시점에 의해 교호하게 진행된다. 즉, 인간의 의지와 소망을 담은 "이야기"가 다른 인간에게 "읽혀서" 계승된다는 장치가 쓰이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싸움"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쓰이고 읽히는 책으로 상징한다는 발상은 사운드 호라이즌의 것과 유사하다. 블랙 크로니클 앨범을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 읽어도 나쁠 것은 없을 듯하다.
  내 경우는, 고백하자면 그런 식의 매우 '성실한' 인간관/세계관이 조금 소화하기 어렵다. 읽는 독자 쪽에서도 성실한 리액션(고찰이라거나, 음미 등의)을 요구하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가타부타 하기 어려운 이유엔 그런 것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본토 서평계에선 꽤 고평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적 반응이 상당히 수수한 이유 역시 내 쪽의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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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얄의 추천 4 - Seed Novel
오트슨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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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에 모 뻘글에서도 썼었지만 얘네들 다 귀신크리. 특히 미얄은 완전 그거라 놀랄 정도.
   대대적인 감상을 준비하느라 3권까지 재독하며 미얄의 정체는 아마 독서감상부 ■■■■ ■■이 아닐까 생각했지만.....야 임마 이렇게까지 딱 맞아떨어지면 당혹스럽다고. 이제껏 미스터리 읽어오면서 그 흔한 범인(?) 한번 맞춰본 적 없는 나놈이 왠일로. 아, 두세번 한번 맞춘 적 있구나. 근데 그게 온다 리쿠 책이란 게 문제지(........................).

   뭐 이렇게 츤츤대며 시작했지만, 재밌게 읽었어요.
   컬러페이지에 곧잘 있던 본문 발췌문 인쇄가 전혀 없는건 의도된 건가요? 아님 인쇄 미스인가요. 덕분에 활자에 침범당하지 않은 일러를 감상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미얄의 추천]을 미스터리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게, 갑툭튀가 너무 많다는 거다. 랄까 이야기의 구조가 갑툭튀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4권에선 ■■인 줄 알았던 놈의 정체 같은 것이 아무런 복선 없이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하고 튀어나와 버린다. 야 이자식아 네놈이 그놈인지 어떻게 아냐 그놈에 대해선 이제껏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라고 독자가 대들면 그걸로 끝이다. 논리성을 중요시하는 독자는 그런 점에서 지대한 불만과 일말의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위기나 정서의 효과를 중시하는 감각적인 독자에게 미얄처럼 매력적인 이야기는 드물다. 논리성을 중시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여러가지 작위들이 제거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 "기이함" "의외성" "놀라움" 같은 느낌들이 잘 유발되는 게 신기하다.
   하긴 미스터리 소설에서 느끼는 그 소름끼치고 뇌가 간지러운 '분위기'는 논리성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런 느낌들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비논리적인 '감각'이 중요하다.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단계가 되면 관건이 되는 것은 '정합성'이 아닐까. 어째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와야 했는가, 이런 식의 '진실'이 있어야 했는가의 필요성이 준비되어 있고, 그것이 작품의 세계를 해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
   이것은 미스터리의 전 단계, 모 뻘글에서도 썼듯이 고딕 로맨스에서의 내적인 논리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한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민화, 설화다. 고딕 소설에서의 "유령"은 비합리적인 존재이고 그들의 출몰도 논리성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인 한편, 소설 속에 숨겨진 '무언가(시대상부터 인물의 심층심리, 끝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진실에 이르기까지)'를 반영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민화나 설화에서 보이는 신화적인 인물이나 몬스터도 반쯤 초자연적이며, 반쯤은 숨은 무언가를 강하게 상징하면서,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독자적인 원리(신성 혹은 마성, 계시, 운명이나 저주 따위일지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미얄의 추천]의 이야기는 이 가려진 원리, 말하자면 "운명" 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미얄의 플롯은ㅡ플롯이라고 부르기 뭐한 느낌이 있다. 가려진 이야기의 전체상은 이미 설정되어 있지만(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르자), 그것에 대한 힌트(복선)은 없거나 당췌 알아먹지 못할 수준으로, 불가사의한 "전조"들만 횡행한다(3권 말에서 민오가 느낀 복통 같은 것. 미얄을 비롯한 인물들의 수수께끼스런 헛소리들도 여기 속할지도). 미얄에서는 "뭔가가 온다. 곧 일어난다" 는 느낌을 적절하게 불러일으키는 예언자의 포어사이트가 현재형의 이야기 속에 빈번히 삽입되어 있다. 현재형의 사건 자체도 불확실하며, 주인공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심지어는 자기가 뭐하는 놈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이야기구조이지만, 명탐정과는 달리 탐정 역의 미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끝까지 정확한(합리적인) 해설을 하지 않으며, 사실은 그 정체조차 불분명하다.

   미얄은 각 권 라스트에서 '운명'의 일부가 드러날 때까지 불길한 전조들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그 이미지는 생경하고 강렬하며 기발하다.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궁금한 한편, 이대로 영원히 이야기가 연장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에겐 영원히 흥미를 유발하며 끝나지 않는 이야기야말로 네버랜드이므로, 그런 감각을 맛보게 하는 이야기는 어떤 형태이든 매우 뛰어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독자가 막연히라도 '운명'에 대해 눈치채고 그것을 작가가 가공해서 드러내는 패턴에 익숙해지면 마력은 효력을 상실한다.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약점이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의 독자는 막연히 '패턴'에 의해 진상을 눈치채더라도 그 진상을 도출해내는 논리의 정교함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러나 미얄에서는 치밀함을 감상할 기회가 빠져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시리즈는 발상의 기발함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을 지탱하는 시스템이 약하다. 따라서 작가가 발상한 바를 직관하게 된 독자에겐 재미가 약해지는 것이다.

   내 경우는.............좀 운이 없는 경우였다. 남들 다 칭찬한 4권이 3권보다 김빠졌으니. 소설 초반부터 극중 주요 인물(■■, 석선생, 미얄, 이쯤되면 자동적으로 '노예'까지 OTL)과 관련한 기믹을 다 눈치채 버렸으니 뭐 말 다한거(....................).
   아마 시리즈가 더 진행되고, 작가의 스타일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늘면 운 없는 케이스는 얼마든지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더라도, 작가 고유의 문체와 쾌적한 템포,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대한 환상과 기이함이 감도는 묘하게 아름다운 분위기는 독자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중독성이라고 해도 좋다.
   라노베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만약 이 작품이 '캐릭성'만을 강조해서 기획되었더라면 지금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은 대폭 감소했을 것이다. 캐릭터를 중시한 작법으론 절대로 이 작품처럼 히로인(?)은 물론 1인칭 화자(남자)주인공까지 정체가 모호한 소설은 나올 수가 없다. 이것은 작가의 개성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다. 물론 겉보기의 캐릭터성 역시 훌륭하게 구현되어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 되겠지만, 이 [미얄의 추천]은 라노베를 쓰려는 사람 혹은 쓰는 사람들이 라노베적인 것에 대해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자극받기에 좋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우리나라 토양에서 나올 수 있는 이례적이면서도 대표적인 라노베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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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의 심장 애장판
하기오 모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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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배경은 겨울, 독일의 한 기숙제 남학교. '아무르(사랑의 신)'처럼 누구에게나 예쁨받던 미소년 토마 베르나가 철도 위에 몸을 던져 죽는다. 소년의 죽음은 기숙사 전체를 술렁이게 하지만 누구보다도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은 유리스모르라는 학생이다. 생전의 토마는 유리스모르를 유혹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걸고 '내기 연극'을 했고, 그 계획을 안 유리스모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토마를 거절한다. 유리스모르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토마의 유서를 읽고 그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토마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유리스모르의 눈앞에 어느날 토마와 꼭 닮은 소년 에릭이 나타난다. 전학생 에릭은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서 토마의 모습을 찾는 것을 알고 토마의 죽음에 대해 흥미를 가진다. 필연적으로 에릭은 유리스모르에게 다가가고, 유리스모르의 어두운 비밀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풍문으로 이름만 계속 들어 온 전설의 명작 [토마의 심장]이다. 내가 이걸 한국어판으로 손에 들 날이 오리라곤 바로 어제 영풍에서 기웃거리기 전까진 몰랐다. 

   온다 리쿠 박순희로서 [네버랜드]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등과의 유사성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네버랜드]에 대해 리쿠 여사가 "토마의 심장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 버렸다"고 고백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라리 [보리바다]가 훨씬 닮았다. 클라이막스의 고백 부분, '사랑하는 소년'의 죽음의 그림자라는 요소는 네버랜드가 상당히 유사하다. 라스트 가까이 도서관의 책 속에 끼워  죽은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연출은 보리바다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소년의 죽음, 그에 얽히는 미스터리. 간단히 이야기의 방향성을 말하자면 그렇다. 옛날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세련돼서 낡았다기보단 고전적이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기숙사제 학교에서 비밀을 품고 죽은 남학생이란 것도 뭔가 하나의 영원한 테마가 아닐까. [사육계 리카]의 테츠 같은 변주가 있는가 하면, [K의 장렬] 역시 이 계통의 방계인 듯하다. 열거하라면 의외로 몇 개 떠오르는 게 없지만, 이 테마에는 아득하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성별이 없는 천사(혹은 타천사) 같은 아름다운 소년들의 청춘과 죄, 순진함과 잔혹함,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 정도로 절묘한 상황설정이 더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폐쇄된 공간에서 죽은 이의 그림자를 쫓는다는, 변형된 고딕-유령이야기로서의 딱히 집어낼 수 없는 기묘한 긴장감이 그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책 [토마의 심장]은 그런 불온한 아름다움의 원형질이 살아 있는 이야기다. 유리스모르-(토마)-에릭의 (삼각)구도는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성만이 갖는 깊은 맛이 있다. 여러가지 자기만의 내면과 역할을 가진 조연 소년들의 매력도 상당하고, 특히 유리스모르의 룸메이트 오스카는 정말 멋지다. 오스카가 등장하지 않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 녀석 언제 등장하나 기다렸을 정도로.

   하기오 모토의 팬뿐 아니라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하는 한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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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이건 별점을 떠나서 "전설"급이다.
  표지를 언뜻 보고 "웬 배트맨이 창문을 기웃거리지? 배트맨이 란포랑 무슨 상관?"이라고 갸웃거렸다.
  물론 저 검은 실루엣은 고양님이시다...

  재패니즈 미스터리는 내가 한창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인 90년도 초반에도 꽤 꾸준히 국내에 유입되어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해 왔다. 비록 정식계약작이 아닌 소위 '해적판'도 슬쩍 끼어들어 있었고, 기껏해야 매니아의 전유물 혹은 말초적인 삼류소설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재패니즈 미스터리의 위상이 크게 상승되었다. 근래의 장르소설 붐도 일조하여(혹은 붐에 일조하여) 재패니즈 미스터리는 손에 꼽히는 거물급 작가의 이름과 한묶음으로 일종의 브랜드네임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무려 '전단편집'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다는 것은 감히 '사건'이라 칭할 일이라 사료된다. 에도가와 란포는 재패니즈 미스터리의 시원임과 동시에 역사를 나타내는 아이콘이기에, 이를 수용한다는 것은 즉 그만큼 우리의 재패니즈 미스터리에 대한 수용의 깊이와 수준이 무르깊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로, 원색적 표지와 원색적 제목(대부분 번역 출판사 측에서 멋대로 바꾼)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책을 어른 몰래 보던 어릴 적과 격세지감을 느낀다.
  각설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저작들은 이전에도 여러가지 판본과 편집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주로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의 편집판으로, 개중에는 어린이용 책의 외장을 하고 거울지옥이나 우충 같은 단편을 끼워넣은 염치없는 판본도 있었다(아마 에도가와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섞인 미심쩍인 물건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전집이 정식 계약되어 출판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본서는 총 세권의 전단편집의 첫타를 끊는 1권으로, 본격추리를 테마로 원고지 200매 안팎의 작품을 선정했다(일본의 원고지는 400자 기준이라고 하니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400매인가? 아니면 번역자께서 이점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물리적인 부피도 상당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작품 역시 무려 22권으로 쾌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풍성하다. 게다가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 없는, 내지는 내가 이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작품들이라는 점은 커다란 매력 포인트다.
  걸작 "2전짜리 동전"이나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사건"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명탐정 제1세대 아케치 코고로의 능청스런(?)모습이 돋보이는 "흑수단"이나, 은근히 호러블한 "유령"(죽은 사람의 얼굴이 사진에 커다랗게 찍혀 있는 대목은 꽤 섬찟하다), 란포 본인은 실패작이라고 궁시렁거리지만 꽤 읽는 맛이 있는 아이러니컬한 단편 "무서운 착오", 역시 란포 본인은 개그글은 자기 본령이 아니라고 발뺌하나 반전의 유쾌한 재미에 충실한 "입맞춤", 희곡투로 쓰여져 묘한 긴장감에 넘치는 "낭떠러지" 같은 작품들은 실로 이제껏 숨어 있던 게 아까운 절품이다. 특히 "영수증 한 장" 같은 작품은 제목처럼 영수증 한 장으로 대사건(?)을 밝혀낸다는 촌철살인적 발상과 허를 찌르는 기발함에서 요즘 작품들과도 비견할 만한 세련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굳이 본서의 "백미"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기존에 소개된 유명한 작품들도 있지만, 나는 "석류"를 올리고 싶다. 맨 끝에 실린 본작은 분량도 다른 작품에 비해 두텁거니와, 란포다운 허를 찌르는 심리트릭은 물론 소설적인 재미도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새빨갛게 익어 터진 석류"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하필 '석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올린 데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찝찝함과 섬뜩함을 느끼며, 그것이야말로 란포 소설의 '맛'임을 새삼 인정하게 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충실한 '부록'이다. 역자의 작가소개 페이지는 물론이고 일어 초심자를 위한 히라가나 표까지 붙어있다. 뭐니뭐니해도 에도가와 란포 본인의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 점이 대히트다. 작품에 자부심을 표시하는 대목도 많지만, 탐탁찮은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 자신의 비교적 이지적인 본격추리물보다는 퇴폐적이고 환상적인 변격물에 더 호응하는 세간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에도 호감도 대폭상승이다. 나 자신 역시 변격적인 요소가 더 취향이라 그런 쪽에서 란포다움을 찾기는 하지만.
  문체와 연출 면에 있어서는, 물론 20년대의 작품인고로 큰 쇼킹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초심자와 일본 미스터리적인 '맛'을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본서에 대해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만하다. 물론 사람들은 많이 죽지만(....), 거창한 트릭을 구사하기보다는 인간 심리의 맹점을 교묘하게 찌르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말이 있다. 소위 '걸작' 역시 시간의 총애를 받는 아이라고 하겠다. 80년 세월에 걸쳐 사랑받아온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이 우리나라 독자의 시간 속에서도 영원히 사랑받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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