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사서와 사랑하는 폭탄 - Extreme Novel 싸우는 사서 시리즈
야마가타 이시오 지음, 김용빈 옮김, 마에시마 시게키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시리즈의 배경은 인간이 죽으면 그 인생이 하나의 "책" 이 되어 "도서관"에 수납되는 판타짓한 세계다. "책"이란 흔히 보는 종이책이 아니라 돌 같은 형태로, 광산에서 발굴된다. 옆 책 표지의 소년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책"의 조각이다. "책"에 닿는 순간 그것에 기록된 인생이 읽는 사람에게 흘러들어오기에, 읽을 때는 맨손으로, 다룰 때는 장갑을 낀다.
  책이 보관되는 "도서관"은 "신립 반트라 도서관"이라 불린다. 이 세계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신이 있는데, 그 중 과거신 반트라가 신화시대에 세운 도서관이 그것이다. 신화시대에 "책"을 관리하는 것은 "사서 천사"들의 임무였으나, 현재는 "무장사서"라 불리는 인간들이 위임받고 있다. 무장사서는 이 세계 최고의 문무겸비 엘리트로서, 이들의 능력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마법의 계발에 기초하며, 그 수준은 죠죠의 스탠드들이 인간화한 걸로 보면 된다(...). 이 무장사서의 톱이 "관장대행"(도서관장은 과거신 반트라) 하뮤츠 메세타다. 옆 표지의 나이스한 누님.
  무장사서들이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공식기구라면, 사악한 악의 총본산을 대표하는 "신익교단"이란 무리도 있다. 무장사서와 신익교단 간의 싸움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줄기로서, 이 사이를 넘나드는 트릭스터 "라스콜 오셀로"라는 수수께끼의 존재가 거의 언제나 사건의 계기를 마련하거나 인물들간의 의지를 잇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이 구도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점 의혹에 싸이고, 최근작들에선 충격적인 기믹이 밝혀질까 말까 하고 있다(?).

  1권 [싸우는 사서와 사랑하는 폭탄]이란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땐 "우와..미묘. 뭐야 이 책은."이란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내용을 잘 압축해버린 제목이다. 싸우는 사서와 사랑하는 폭탄이다. 사서는 싸우고 폭탄은 사랑한다. 
  악의 무리 신익교단은, 사람들을 납치해 "고기"라 부르며 기억과 자아를 잃게 하고 사육하여, 인체 실험에 쓰거나 인간폭탄으로 만들어 왔다. 이 인간폭탄 중 하나가 이 책의 주인공 소년 콜리오다. 콜리오는 신익교단의 세뇌에 의해,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폭탄일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인간이야말로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가치로운 존재이며 '나의 기쁨이 곧 신의 기쁨'이라는 것이 신익교단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신익교단은 콜리오를 비롯한 다른 인간폭탄들을 토앗트(도대체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광산 마을로 풀어놓고, 그곳에서 반트라 도서관 대행 하뮤츠 메세타의 목숨을 노린다. 그러나 하뮤츠는 무려 인류 최강의 여자. 풀어놓으면 도시 하나 정도 반경은 커버하는 '촉각실'이라는 정보수집기(랄까, 오감이 실의 이미지로 몸으로부터 길게 뻗어나오는 듯한 인상이다)에, 역시 한번 던지면 도시 하나 정도 안에서는 당연하게 명중해버리는 심플 이즈 베스트 '투석기'라는 사기적이랄까 무지 비겁한 전술을 쓰는데다가, 전법 제외하고 순수하게 전력만 따져도 사기급. 이런 여자에게 도대체 인간폭탄 따위로 어떻게 대항할 거냐 악의 자코야, 라는 기분이 들어버릴 정도다.
  한편 콜리오 군은 광산의 야매 노점상에서 산 "수백년 전 공주님의 책"을 손에 넣어, 그것을 읽고, 책의 주인공인 '고양이색의 공주'를 사랑해 버린다. 그가 본 공주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늠름하고 고귀한, 그야말로 "인간"이어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색의 공주는 알고 보니 신익교단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선천적인 강력한 마법으로 예지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금 현재에서 진행중인 신익교단의 음모가 바로 고양이색의 공주의 예지가 알아낸 무엇에 의한 것이다. 신익교단의 이번 계획 입안자이자 실행자인 시걸은 공주가 예지한, 바로 지금 현재 이곳 토앗트 광산 마을에서밖에 쓸 수 없는 조건을 이용해 세계최강의 괴물 하뮤츠를 절체절명의 고비로 몰아넣는다. 그동안 콜리오는 고양이색의 공주의 책을 읽으며, 그 책과, 책이 연결해 준 인연에 의해 조금씩 변화해 간다. 그리고 콜리오가 공주의 진실을 알고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알았을 때, 콜리오 역시 '그녀와 함께' 싸움에 몸을 던진다.


  슬슬 1권도 정발됐고, 싸우는 사서 시리즈에 대해 감상을 써 볼 필요성이랄까 의무를 (쓸데없이) 느껴버리고 마는데, 정작 뭔가 쓰려고 하면 머엉~ 한 상태가 되고 만다.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겐, "아아! 잘 읽었다. 참 좋은 책이야. 다음 권도 빨리 읽고 싶어." 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버리는 물건이라... 가타부타 긴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이 순수하게 멋진/잘 구축된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이쪽의 "취향"을 낚는 혹하는/와닿는 떡밥 같은 것은 희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적으로 말해 당 시리즈는 환타직한 세계관 안에서 전개되는, 죠죠러 티가 확확 풍기는 능력자 배틀물이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세계관을 중시하는 설정 페시티스트가 아니고, 능력자 배틀물에 대한 기호는 있지만 그것의 룰을 결코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능력치별 밸런스건 전투 상황에 따른 변수건 그 이전에 전투의 기초도 모름ㄳ). 따라서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솜씨 좋은 작가가 이끌어 주는 대로 유순하게 나아가기만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와, 무지 재밌어. 그런데 감상은 별로 할 말이 없다" 상태에 봉착해 버린다.
  그렇다고 당 시리즈가 용어남발과 전투묘사에 미친 슈퍼테크니컬 하드 액션 배틀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액션과 드라마의 밸런스가 아주 좋으며, 굳이 따지자면 액션은 거들 뿐 서포트, 드라마 쪽이 의의와 의미를 갖는 종류다.(액션에 비중이 있는 걸 꼽자면 나인에스.) 문체 자체도 지극히 꾸밈이 없다. 라노베들이 곧잘 그러듯 현학적이지도 매니악하지도 현란하지도 설교적이지도 않고, 소탈하다기보다는 진중하다고 불러야 할까 싶을 정도다. 시리즈가 거듭될 때마다 아낌없이 죽어나가는(...) 인물들은 니시오 이신 같은 경우처럼 소비된다는 인상이 절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이야기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죽었다"는 느낌을 준다. 
  거대한 어둠의 배후세력 "신익교단"으로 대표되는, 부조리와 불행으로 넘치는 냉혹한 세계. 그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살아가고, 그럼으로서 타인의 이야기와 영향을 주고받는 개개인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놀랍게도(?) 단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테마를 압축시키자면 "인간찬가"다. 그것을 풀어가는 스타일이 '능력자 배틀'극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살아가기 위한(혹은 살아간다는) 싸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고전적이라 곤혹스러울 정도다. 그것이 별다른 장식 없이, 독자에 대한 애교도 없이 높은 완성도로 구현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타부타 말을 더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일단은 앞에 스토리 요약을 해 두긴 했는데...
  "책"은 이 이야기를 성립시키는 키워드인 동시에 싸우는 인간들의 뜻과 뜻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각 권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액자형식이라고 할까,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사건이 있고, 그것에 개입한 인물은 그 사건과 관련이 있었던 누군가의 "책"을 읽음으로써 이야기에 그 책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형식이 자주 쓰인다. 1권에선 현재형의 토앗트 광산 사건과, 수백년 전의 공주의 이야기가 두 건에 모두 개입한 인물 콜리오의 시점에 의해 교호하게 진행된다. 즉, 인간의 의지와 소망을 담은 "이야기"가 다른 인간에게 "읽혀서" 계승된다는 장치가 쓰이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싸움"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쓰이고 읽히는 책으로 상징한다는 발상은 사운드 호라이즌의 것과 유사하다. 블랙 크로니클 앨범을 좋아하시는 분은 한번 읽어도 나쁠 것은 없을 듯하다.
  내 경우는, 고백하자면 그런 식의 매우 '성실한' 인간관/세계관이 조금 소화하기 어렵다. 읽는 독자 쪽에서도 성실한 리액션(고찰이라거나, 음미 등의)을 요구하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가타부타 하기 어려운 이유엔 그런 것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본토 서평계에선 꽤 고평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적 반응이 상당히 수수한 이유 역시 내 쪽의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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