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요리 노트
최강록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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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날개 쪼림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바질을 곁들인..


한 때 저 밈이 엄청나게 유행했어서 거기서부터 관심이 생겨 마셰코도 챙겨보고 거기 나온 닭날개 고추장 조림도 따라해봤었더랬다.

지금도 요리할 줄 모르지만 그 때는 그야말로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어봤지 내 손으로는 밥 한번 안지어봤을 땐데도 만화를 보고 요리에 입문해서 우승까지 했다는 어수룩한듯 독특한 그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있어서 엄마 몰래 냉장고 뒤져 대추랑 파랑 찾아 레시피를 따라 요리한 기억이 생생하다.

내 기억속에 꽤 인상적으로 자리했던 그가 낸 요리 에세이라니 너무 궁금해져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고보니 이 책은 이번에 새로 나온 신간이 아니라 2015년에 출간된 <이건 왜 맛있는걸까>의 개정판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새롭게 재출간 된 것을 보니 그 전의 책도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었나보다 추측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요리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최강록이 다년간의 요리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고민한 내용들을 글로 엮어낸 '요리 에세이'이다. 나도 자취를 시작하면서 요리책을 여러권 모으게 됐고 인터넷에서 다수의 요리 레시피를 스크랩 해두기도 하지만, 요리초보자에겐 '재료의 이해' 자체가 부족해서인지 그저 레시피에서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왜 이 재료는 데치는거고 이 재료는 삶아 쓰는건지, 왜 여기선 약불을 써야하고 저기선 강불을 써야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유는 모르더라도 레시피에서 그런 과정 하나하나를 상세히 알려주면 어떻게든 그대로 따라해서 중간은 가보겠는데, 간략화된 레시피는 아예 써먹을 수 조차 없다. 최강록은 나같은 요리 똥손 초심자의 고충을 귀신같이 캐치했나보다. 이런 책을 출간해준걸 보면 말이다.


밥, 라면, 달걀, 채소, 두부, 고기, 생선, 김치, 육수, 기름, 소금과 설탕, 간장과 된장, 식초와 미림의 큰 재료로 나누어두고 각 재료의 성질과 손질법을 원리부터 차근차근히 설명해준다.

그냥 '물에다 이것과 저것을 넣어서 끓여서 육수를 내세요'가 아니라 강불에서 오래 끓이면 재료가 눌어 탄내가 나는 육수가 될 수 있고, 너무 낮은 온도로 끓이면 맛이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에 안된다며 실패하는 육수의 원인을 알려주니 원리가 쏙쏙 이해되는 듯하다.

'뚜껑을 열고 푹 끓이세요'가 아닌 육수를 낼 때 뚜껑을 닫으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주는 이는 거의 보지 못했기에 이 책은 가치있다.

독자입장에서는 그건 그것대로 서운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레시피 마저 챙겼다.

각 재료 이야기를 담은 챕터 말미마다 그 재료를 이용한 요리 두어가지의 레시피를 수록해주어

요리에세이 뿐 아니라 요리책으로서도 소장할 만 하다.

(무려 마셰코의 히트작 닭날갯살매운조림의 레시피도 담겨있다.)

오랜만에 닭날개 조림을 다시 한번 만들어볼까도 싶다.

이제 재료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나는 거의 십 년 전 그때보단 훨씬 나은 요리를 만들 수 있으려나.

#최강록의요리노트 #최강록 #촐판사클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요리에세이 #최강록 #서평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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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의 펜 드로잉 클래스 - 어색한 그림은 이제 안녕! 투시법부터 어반 드로잉까지 배우는 Collect 23
리니(이채린)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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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요즘은 책이나 유튜브, 클래스101 같은 온라인 강의가 잘 되어있어서

꾸준함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듣고 늘 결심만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엔 <리니의 펜 드로잉 클래스>가 있으니 정말로 첨부터 차근차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는 중.

펜드로잉의 기초부터 어반드로잉까지를 다루고 있는,

그야말로 펜드로잉의 처음과 끝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클래스 101' 펜 드로잉 부문 5년 연속 BEST★1위! 라는 문구가 나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펜 드로잉은 준비물이 거창하지 않다는 것이 특히 매력적이다.

아무 펜이나 사용해도 관계없지만 피그먼트 라이너 펜을 사용하면 균일하게 나오는 다양한 굵기의 선을 사용할 수 있고

물에 번지지 않아 채색하더라도 드로잉이 망가지지 않는다.

나는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와 사쿠라 피그마 마이크론을 둘 다 장만했는데 개인적으로 스테들러가 더 마음에 든다.


 


기초적인 선연습 부터 해칭 넣어 명암 넣는 법 등을 연습할 수 있다.

털선 긋는 습관을 버리고 정갈한 선으로 긋도록 하는것은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팁!

아직 선 연습 시간을 많이 쌓지 않아서 그런가 선을 그을 때 내 생각대로 곧게 그려질때가 적어서

나는 늘 선을 덧그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ㅠ


간간히 큐알 코드가 있어서 영상을 참조할 수도 있다.그냥 컨투어드로잉에 모델로 쓰인 스테들러 연필깎이가 내가 가진 제품이랑 똑같아서 반가운 마음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나는 같은 모델을 가지고 저렇게 그려지지 않았다....)

 



 


 

아직은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리니의 펜 드로잉 클래스>에서 기초부터 어반드로잉에 필요한 사물 그리는 팁까지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 책만 여러번 돌리다보면 자동으로 그림 실력이 쑥쑥 늘어날 것 같다.

지금은 사진 보고 한참 걸려 비뚤빼뚤 그려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사진 필요없이 현장에서 실물을 눈으로 담아 종이에 그려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리니의펜드로잉클래스 #리니 #동양북스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어반드로잉 #펜드로잉 #여행스케치 #여행드로잉 #그림 #실용서 #취미 #서평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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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니키 얼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생각정거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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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전 세계 모든 이의 대문 앞에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라 쓰인 나무 상자가 배달된다. 뉴욕 같은 대도시는 물론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오지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22세 이상의 모든 이에게 그 나라의 모국어로 쓰인 상자가 배송되고 상자 속에는 끈이 하나씩 들어있다. 끈의 길이는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나 자신의 죽을 때를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아직 22살이 되지 않은 사람들도 22살 생일을 맞음과 동시에 상자를 받게 된다.

대강의 죽을 날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죽음의 방식도 알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결과를 바꿀 수도 없는 이 '수명을 알려주는 끈'의 존재로 인해 사람들은 끈이 존재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

"사실은 좀 부끄러워. 난 이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는 것도 몰랐거든."

"그래서 벽에 걸어놓은 거야." 모라가 사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교훈을 주잖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법이 우릴 엿 먹일 때도 있지만 열정과 대담함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은 세상에 멋진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말이야. 중간에 있었던 저런 안 좋은 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_본문 중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그리고 내용을 읽으면서 떠올린건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지옥>이었다. <지옥>에서는 '천사'라는 미지의 존재가 무작위로 특정인에게 지옥행의 날짜를 고지한다. 어떠한 기준도 밝혀진 바 없고 고지받은 이가 왜 지옥에 가야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종교를 만들거나 단체에 가담하거나 타인을 단죄하는 방식 등으로 이해불가능한 상황을 납득하려한다.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있습니다>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감당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수용방식을 그리고 있다. 내 남은 살날이 얼마인지가 담긴 상자를 배송받은 후 어떤 이들은 상자를 열어 확인하고, 어떤 이는 끝내 상자를 열지 않음으로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을 거부한다. 짧은 끈을 받고 자신의 참담한 운명에 좌절해서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연인의 짧은 끈을 보고 이별을 고하는 이도, 짧은 생이나마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라면 이런 상자를 받았을 때 열어볼 것인가 상상해봤는데 처음엔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데 열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확인했을 때 짧은 끈이 나오더라도 의사의 시한부 선고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했고 만약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의사와 가족들이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채 다가올 죽음을 준비없이 맞는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일반적인 시한부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으로 인해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과 22살이 되자마자 병일지 사고일지 어떤 방식으로 죽게될지 전혀 모르는 채 남은 수명이 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현재 내 몸 어디에도 아픈 곳이 없고 에너지가 넘치는데도 미리 정해진 바꿀 수 없는 수명 때문에 앞으로의 내 모든 가능성을 차단당하는 것이니까.

어쩌면 상자도 그럴지 몰라요. 그 누구도 상자의 의미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고 그냥 우리가 원하는 의미가 되는 건지도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든 운명이라고 생각하든 마법이라고 생각하든. 길이에 상관없이 각자가 원하는 의미가 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끈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허가증인 거죠. 다이어트를 그만두거나 복수를 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거나 위험을 감수하거나 세계를 여행하거나. _ 본문 중

어쨌든 이 이야기는 무서운 설정에 반해 그리 끔찍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그려내고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드라마 <지옥>과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같지만 <이 안에 당신의 남은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는 그 보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달까. 주어진 운명을 수용하되 정해진 수명으로 생긴 한계를 극복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나 또한 긍정적인 사랑의 힘을 믿게 된다.

판타지스러운 설정이지만 인종, 성별, 긴 끈과 짧은 끈으로 서로를 분류하고 차별하는 소설 속 세계는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한 줄기 희망을 찾아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수많은 혐오 속에 지친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것 같다.

#이안에당신의수명이들어있습니다 #니키얼릭 #정지현 #생각정거장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서평 #독서 #책 #소설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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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죄책 -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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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던 책이다. 안락한 환경에서 그저 읽고 있을 뿐인데도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글이다. 전범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가를 고발하는 데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죄책의 감정을 저 편에 묻어둠으로써 인간성을 상실하고 경직되어버린 일본인들의 정신상태를 초점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간간히 묘사되는 범죄 양상이 너무나도 참혹했다.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것은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죄행을 고백하고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가해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한 1937년 부터 패전 때까지 육군 정신장애자를 진단, 연구하는 센터였던 고쿠후다이 육군병원의 환자기록 8000여건 중, 학살을 저지른 죄의식에 떨고 있다고 기술된 것은 놀랍게도 단 2건이다. 전범들은 잔혹한 일을 저지르곤 그것이 죄라는 인식조차 아예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전쟁이라는것은 원래 그렇게 비정하고 끔찍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려해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수많은 전쟁과 학살 속에 가해자들의 죄책 인식 수준이 이렇게 낮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일본인만의 민족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특수한 사례라는 것이다. 일본인의 어떤 특성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여러 전범들과 면담했고 그 중 한 명인 유아사의 경우 중국으로 징병됐던 의사였다. 그는 첫 실습에서 산채로 끌려온 중국인 2명을 보았다. 생체 해부 될 예정인 중국인은 당연히 두려움과 절망감에 떨고 있었겠지만 유아사에게는 그들의 감정을 공감할 능력이 없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용이한 수술 실습을 위한 물건으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마취 후 수술대에 눕힌 중국인들은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고 심문을 받다 최종적으로 해부 실습의 '재료'로 까지 오게 되었다면 몸에 멍자국이나 상처가 많을 법도 한데 깨끗했던 것이 유아사에게 인상적으로 느껴졌다한다. 사실 그 중국인들은 그저 밭일하던 평범한 농민일 뿐이었다. 죄수가 많고 사상자가 많아 포로가 남으면 해부한다(물론 이것도 끔찍한 잘못이다)가 아니라 실습에 필요하면 그냥 잡아오는 방식인 것이다.

피해자를 눕히고 곧장 몸에서 팔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 식도를 절개하는 수술, 고환을 적출하는 수술 등 사람을 실습의 재료로써 그야말로 알뜰하게 사용한다. 순식간에 사지를 잃고 목이 갈린 피해자는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다 한다. 실습이 끝난 후 마취제를 다량 주입해 사망시키는 것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의학 실습이 연 2회 가량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아사는 어떤 죄책도 느끼지 못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많은 일본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아사는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에 재산과 가족이 있고 여기서 터를 닦았는데 일본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중국인들에게 했던 행동이 끔찍한 일임을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패전 후 태연히 중국에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사는 남았다.

체포되어 전범으로 관리되면서도 자신은 죄가 없어 풀려날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 중 죄는 군인이나 책임자들이 저지르는 것이지 자신은 의료인으로써 의료행위만 했기에 전범이랑은 관계없다 여겼다. 간수들은 이들을 학대하는 일 없이 중국인들은 배를 곯는 상황에서도 전범들에게 쌀밥을 지어먹이며 죄행을 모두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뉘우치고 반성하길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모두 밝힐 것만을 요구했다.

긴 시간 끝에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를 조금이나마 자각한 유아사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전쟁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난다. 유아사 처럼 자신의 죄를 대면할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 동료들이 의사면서 왜 전범으로 억류되어있었냐며 진심으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것을 보고 뒤늦게 유아사는 놀란다.

저자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죄의식이 지워지는지, 죄를 죄로 인식하는 능력이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옛말에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자신이 남을 때렸다는 사실 조차 인지 하지 못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죄를 숨기는 것에 앞장서 거짓으로 왜곡된 역사를 교육했기에 광복절에 태극기 프사(프로필사진)를 올리는 K-POP 아이돌을 보며 되레 '일본에 무례한 행동이다, 아이돌의 정치적인 행동은 전세계가 불편해 할 것이다며' 기분나빠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일본인 특유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사회에 과잉 적응해 타인과의 감정교류에 능숙하지 못하고 오로지 권위에 대한 순종이나 효율과 질서 추구 같은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자신의 죄책을 수용하지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도 박탈된 채 '전쟁이란 원래 비참한거야 승자도 패자도 없고 우리 모두 다 피해자일 뿐' 따위의 말로 합리화 해온 일본은 감정 마비의 깊은 병에 걸려있으며 이것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 전쟁을 겪지 않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되물림 되었다.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한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도 다르지 않다. 피해자의 고통에 절대 공감하려 들지 않고 그저 효율과 다수의 이익만을 들이밀며 피해자에게 조용히 입다물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일본과 같은 감정 마비의 병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지.


#전쟁과죄책 #노다마사아키 #서혜영 #또다른우주 #컬처블룸서평단 #컬처블룸 #전범 #군국주의 #집단범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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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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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이런저런 교양 예능 채널을 돌리다가 이상 시인에 대해 다루는 장면을 보았다.

오감도 같이 도통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를 시로 유명한 이상 작가의 작품들을 물리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워낙 난해하기로 유명하다보니 학교에서도 시인의 이름이나 시, 수필 한 두 작품에 대해 언급만 하는 수준으로 간단히 배우고 넘어갔었는데 이렇듯 문과의 관점이 아니라 이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이해할 수 있는 시라니 신선하고 재밌었다.

이후로 '궤도' 같은 과학 유튜버들의 영상들을 자주 접하면서 양자 역학에도 관심이 생기고 보니, 나는 21세기에 공교육을 이수하면서 현대 과학에 대해 어느정도 배웠음에도 암만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어려웠던 양자 물리학을 19세기의 사고 방식을 가진 이상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더욱 흥미롭고 신기하게 느껴져 좀 더 그의 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저 교양 과학 유튜브 몇 개 본게 전부일 뿐 물리학에 대한 조예라고는 1도 없기 때문인지 다시 찾아 읽은 이상의 시는 여전히 난해하고 어려웠다.

교과서에서는 그의 작품이 워낙 조금 소개되었던지라 이렇게 많은 시를 발표한 줄도 몰랐는데 그 중 (유일하게) 유명하고 많이 읽히던 오감도 시제 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같은 시는 순전히 내 추측이지마는 우리가 말로써 소리내어 읽을수나 있기에 그나마 알려질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책 속에는 숫자나 점 기호 같은걸로 가득한데 해석은 커녕 도대체 어떻게 소리내어 읽는 것인지도 모를 시들이 가득했다. 오감도 시제4호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 같은경우 당최 무슨 소리일까 궁금해서 뒤져본 결과 저 숫자들이 0으로 수렴하는 등비수열이라 죽음을 뜻한다는 해석을 찾았다. 꽤 그럴듯해 보인다.

역시 그의 시를 이해하려면 수학 물리학에 능통해야하나보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

삼차각설계도의 시 들을 보면 원자 양자 입체 방사 광자 질량 천체 같은 단어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서 왜 물리학의 시선에서 이상의 시를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게 1900년대 일제강점기에 쓰여진 시 들이라니 놀랍다. 물론 그 시기에 서양에서는 원폭 개발에 착수하는 등 물리학에 상당한 진척이 있던 때임을 알지만 지독한 수탈과 굶주림에 하루 앞을 생각하기 힘든 시기의 우리나라 지식인들도 그런 지식을 접할 여력이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이상 전 시집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이 어떤 것을 접하고 있었는지를 살짝 엿본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시 보다는 권 말미에 실린 이상의 수필과 소설이 내게 더욱 깊이 와닿았다. <날개> 같은 경우 수험공부를 하면서 많이 봤던 작품이지만 전문을 다 읽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부분만 읽었었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 즐겨 읽은 것이 아니라 수험을 위해 억지로 읽은 것이었다보니 당시에는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와 읽어보니 좋은 문장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보다 나이를 먹어서 더욱 와닿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십대 시절에도 전문을 읽었다면 이상을 좀 더 좋아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매춘을 하는 아내 곁에 기둥서방 노릇하며 붙어있는 화자의 삶을 그린 것이라 교과서에 실리기엔 부적합 해보이기도 한다.

일부러 져 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이욕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 '권태' 중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벌판에 벼락이 떨어져도 그것은 뇌성 끝에 가끔 있는 다반사에 지나지 않는다. 촌동이 범에게 물려가도 그것은 맹수가 사는 산촌에 가끔 있는 신벌에 지나지 않는다. … 그들에게 희망이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그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뇌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 '권태' 중

이상의 글들을 읽으면 일관되게 흐르는 감정들이 보인다. 권태, 무력감, 절망, 방황, 수치심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사회인으로서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은 찾을 길이 없고, 당시로선 치료할 수 없던 극심한 폐병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살며 그가 느꼈을 좌절감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다른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큰 고통 없이 그럭저럭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채 제자리에 주춤주춤 머물러 있는 것만 같고 무엇을 해야 좋을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막막한 심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 역시 느껴본 일 있다. 그런 절망감과 무력감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그의 글에 빠져들었다. 하물며 이상은 삭막한 일제강점기 속에 끔찍한 가난을 겪으며 살았고 건강 조차 좋지 않았으니 오죽했을까 싶었다.

소설과 수필을 읽고 다시 그의 시들을 읽으니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와는 조금 감상이 달라졌다.

낙관이라곤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과 다시금 덮쳐오는 절망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여전히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꼭 완벽하게 시를 이해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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