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좀 부끄러워. 난 이 사람들이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는 것도 몰랐거든."
"그래서 벽에 걸어놓은 거야." 모라가 사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교훈을 주잖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법이 우릴 엿 먹일 때도 있지만 열정과 대담함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은 세상에 멋진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말이야. 중간에 있었던 저런 안 좋은 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_본문 중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그리고 내용을 읽으면서 떠올린건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지옥>이었다. <지옥>에서는 '천사'라는 미지의 존재가 무작위로 특정인에게 지옥행의 날짜를 고지한다. 어떠한 기준도 밝혀진 바 없고 고지받은 이가 왜 지옥에 가야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종교를 만들거나 단체에 가담하거나 타인을 단죄하는 방식 등으로 이해불가능한 상황을 납득하려한다.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있습니다>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감당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수용방식을 그리고 있다. 내 남은 살날이 얼마인지가 담긴 상자를 배송받은 후 어떤 이들은 상자를 열어 확인하고, 어떤 이는 끝내 상자를 열지 않음으로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을 거부한다. 짧은 끈을 받고 자신의 참담한 운명에 좌절해서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연인의 짧은 끈을 보고 이별을 고하는 이도, 짧은 생이나마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라면 이런 상자를 받았을 때 열어볼 것인가 상상해봤는데 처음엔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데 열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확인했을 때 짧은 끈이 나오더라도 의사의 시한부 선고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했고 만약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의사와 가족들이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채 다가올 죽음을 준비없이 맞는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일반적인 시한부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으로 인해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과 22살이 되자마자 병일지 사고일지 어떤 방식으로 죽게될지 전혀 모르는 채 남은 수명이 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현재 내 몸 어디에도 아픈 곳이 없고 에너지가 넘치는데도 미리 정해진 바꿀 수 없는 수명 때문에 앞으로의 내 모든 가능성을 차단당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