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후 수술대에 눕힌 중국인들은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고 심문을 받다 최종적으로 해부 실습의 '재료'로 까지 오게 되었다면 몸에 멍자국이나 상처가 많을 법도 한데 깨끗했던 것이 유아사에게 인상적으로 느껴졌다한다. 사실 그 중국인들은 그저 밭일하던 평범한 농민일 뿐이었다. 죄수가 많고 사상자가 많아 포로가 남으면 해부한다(물론 이것도 끔찍한 잘못이다)가 아니라 실습에 필요하면 그냥 잡아오는 방식인 것이다.
피해자를 눕히고 곧장 몸에서 팔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 식도를 절개하는 수술, 고환을 적출하는 수술 등 사람을 실습의 재료로써 그야말로 알뜰하게 사용한다. 순식간에 사지를 잃고 목이 갈린 피해자는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다 한다. 실습이 끝난 후 마취제를 다량 주입해 사망시키는 것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의학 실습이 연 2회 가량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아사는 어떤 죄책도 느끼지 못했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많은 일본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아사는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에 재산과 가족이 있고 여기서 터를 닦았는데 일본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중국인들에게 했던 행동이 끔찍한 일임을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패전 후 태연히 중국에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사는 남았다.
체포되어 전범으로 관리되면서도 자신은 죄가 없어 풀려날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 중 죄는 군인이나 책임자들이 저지르는 것이지 자신은 의료인으로써 의료행위만 했기에 전범이랑은 관계없다 여겼다. 간수들은 이들을 학대하는 일 없이 중국인들은 배를 곯는 상황에서도 전범들에게 쌀밥을 지어먹이며 죄행을 모두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뉘우치고 반성하길 요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모두 밝힐 것만을 요구했다.
긴 시간 끝에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를 조금이나마 자각한 유아사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전쟁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난다. 유아사 처럼 자신의 죄를 대면할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 동료들이 의사면서 왜 전범으로 억류되어있었냐며 진심으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것을 보고 뒤늦게 유아사는 놀란다.
저자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죄의식이 지워지는지, 죄를 죄로 인식하는 능력이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옛말에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자신이 남을 때렸다는 사실 조차 인지 하지 못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죄를 숨기는 것에 앞장서 거짓으로 왜곡된 역사를 교육했기에 광복절에 태극기 프사(프로필사진)를 올리는 K-POP 아이돌을 보며 되레 '일본에 무례한 행동이다, 아이돌의 정치적인 행동은 전세계가 불편해 할 것이다며' 기분나빠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일본인 특유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사회에 과잉 적응해 타인과의 감정교류에 능숙하지 못하고 오로지 권위에 대한 순종이나 효율과 질서 추구 같은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자신의 죄책을 수용하지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도 박탈된 채 '전쟁이란 원래 비참한거야 승자도 패자도 없고 우리 모두 다 피해자일 뿐' 따위의 말로 합리화 해온 일본은 감정 마비의 깊은 병에 걸려있으며 이것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 전쟁을 겪지 않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되물림 되었다.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한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도 다르지 않다. 피해자의 고통에 절대 공감하려 들지 않고 그저 효율과 다수의 이익만을 들이밀며 피해자에게 조용히 입다물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일본과 같은 감정 마비의 병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