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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선후보를 선택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투표를 꼭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며칠 전 어느 국회의원이 대선 후보 아내 두 분을 비교하며, 출산 경험이 없는 아내보다 슬하에 자녀 두 명이 있는 아내가 영부인으로 더 적합하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에혀. 바로 그날 외계의 과학자 ET 일행이 지구를 방문했다. 그들이 착륙한 곳은 바로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 외계의 ET 일행은 실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고.


*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여의도 공원을 지나 한강에서 산책을 자주 한다. 공원과 강변 코스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아직 남아 있는 단풍과 푸근하게 쌓인 낙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다. 동시에 곧 쇠락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괜히 쓸쓸하다. 그래서 가을 풍경 감상은 짧게 끝내고, 대신에 책을 펼치고 읽으며 산책한다. 이른바 ‘독서 산책’ 또는 '산책 독서'이다. 산책 독서는 '현장 독서'와 비슷하지만 명백히 다른 개념이다. 나름 즐겁다.


(현장 독서는 책 속에 나오는 장소를 직접 방문하여, 바로 그곳 ‘현장’에서 읽는 것. 예를 들어 윤후명의 소설집 『강릉』을 강릉의 정동심곡에 가서 읽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눈 속의 시인학교>를,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강릉의 어느 문학관을 방문하여 읽는다면 아주 근사할 것이다. 특히 그날 눈보라까지 몰아친다면 이 단편의 미학이 두 배나 더 충격적으로 독자의 심장을 움켜쥘 게 분명하다.)




    소설 미학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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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산책은 일반 도로에서는 위험해서 권장하기 어렵다. 인파가 거의 없는 이른 아침의 공원이나 강변 산책로에서는 매우 안전하기에 추천할 수 있다. 최근 고전소설을 주로 읽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에 빠져 지냈다. 이 작품은 1819년에 세상에 나왔는데, 배경은 1190년 십자군 원정이 있던 시기이다. 유럽을 강타한 베스트셀러 역사소설이지만,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명예와 관용과 용기, 기사도 정신과 로맨스가 완벽하게 미화된 이 과거의 시대는 순전히 문학 속에서만 존재하며 오직 작가의 상상에서 우러났다고 한다. (고전 명작을 소개한 『클라시커 50 고전소설』에 나오는 해설 참조.)


어린 시절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영화로 보았기에 이미 다 알고 있는 줄거리라고 여겨서, 처음에는 별로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클라시커 50 고전소설』에서 이 책에 대한 해설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다. 게다가 에나 번스의 『밀크맨』에서 밀크맨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주인공 여자아이가 걸으며 읽던 책이 바로 『아이반호』였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한번 산책하며 읽고 싶어졌던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곤 이내 깜짝 놀랐다. 100쪽을 넘기면서부터는 책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마다 아쉬울 정도로 흥미로웠기에. 이미 진부한 것으로 여기던 기사도 이야기에 이토록 감동하다니!




로망과 액션의 품격



명쾌하고 돋보이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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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토요일 오후, 집안에서 오랜만에 현대 소설을 읽는 중이다. 어제 퇴근길에 재빨리 서점에 들러 산 책이 바로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이다. 인도의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디파 아나파라의 데뷔작이다. 인터넷 사이트 <알라딘>에서 신간 소개 책들을 살펴보다가 이 책에 대한 소갯글을 읽고 책 구입을 참을 수 없었다. 우선 존경하는 이언 맨큐언이 “눈부시도록 찬란한 데뷔작”이라고 칭찬했다. 뉴욕 타임스는 “천재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소개 문구는 키커스리뷰의 “위트, 감동, 그리고 비애로 가득한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NPR, 가디언이 선정한 '최고의 책'도 눈길을 끌었다. 서점으로 달려갈 수밖에.


막상 처음 100여 쪽을 읽을 때까지는 솔직히 그냥 그저 그랬다. 그러다가 150쪽 무렵부터, 특히 ‘교차로의 여왕’에 대한 사연과 그 뒤 전개에 이르러, 유머와 비애를 뒤섞는 작가의 솜씨가 비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래 영어 제목을 직역하면 ‘보라선 정령 순찰대’인데, 스모그 가득한 인도의 비참한 빈민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세계관이 놀랍도록 낯설고 매력적이며, 더 나아가 우리를 무척 신비한 모험의 정경으로 몰고 간다. (나중에 자세한 독후감을 다시 써볼 계획이다.)



위트와 비애, 신비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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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고전적인 ‘아이반호’와 현대적인 ‘보라선 정령 순찰대’를 심층적으로 비교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떤 요소들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지. 


19세기 작가 월터 스콧은 시대를 초월하여 읽히는 작품을 많이 썼지만, 그의 작품 속 여성 캐릭터는 19세기의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디파 아나파라는 2020년 여성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월터 스콧의 작품은 12세기가 배경이지만, 로망과 이상적인 기사도의 세계를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오늘날 등장한 디파 아나파라의 작품은 21세기가 배경이지만, 비애와 야만스런 폭력의 세계를 밀도 높게 묘사한다. 어찌 보면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작품이 동시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점이 조금 아이러니하다. 이런 게 바로 문학의 힘인가, 싶기도.  


(한편 21세기 대한민국 국회가 자주 드러내는 성차별 인식이나 사고방식 수준은 월터 스콧의 작품 속 12세기 시대보다도 훨씬 뒤진 털북숭이 부족시대 수준인 것 같아 창피하다. 이런 부적절하고 시대착오적인 인식의 찌꺼기가 나의 무의식 한 구석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봐 괜히 두렵기도 하다. ET 일행은 지구촌 명작 소설을 좀 조사하지. 하필, 저런 뉴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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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절기. 갑작스럽게 아침저녁 공기가 쌀쌀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집을 나설 때 제법 든든히 입는다. 호흡기관이 약한 나는 매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다. 올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돌아다니니, 독감의 손길에 잡힐 확률이 높지는 않다. 그래도 예방 주사는 맞아야 한다. 감기 바이러스와 기저질환인 천식이 연합전선을 펼치면, 나로선 속수무책 당할 게 분명하니까. 게다가 혹시라도 코로나바이러스까지 겹친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


어쨌든, 차가운 날씨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못 하게 되었다. 의사의 권유로 음식도 가려먹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는데 말이다. 운동을 위해 새벽에 가까운 공원에 가려고 하면, 독감이 두려워졌다. 반대로 방안에서 책이나 유튜브에 빠지려고 하면, 운동 부족이 걱정되었다. 고민 끝에 차선책으로 실내 운동을 하기로 했다. 신발장 앞에서 거실 끝까지 빠르게 걷거나 가볍게 달리기. 층간 소음 문제는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삼 층인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은 일종의 통로로 뻥 뚫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옆집의 경우 아래층에 사람이 산다. 우리 집 아래층만 텅빈 공간(길목)이다. 우리 집은 실제로는 삼 층이 아니라 이 층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아파트 복도를 따라 옆집의 옆집의 옆집으로 이동하면 그 집은 어느새 삼 층이다. 즉, 그 집 아래로는 두 채의 집이 있다. 경사진 언덕에 지어진 아파트이기에 이런 이상한 구조가 된 것 같다. 어쨌든 덕분에 내가 새벽마다 집안에서 달리기를 과감하게 거행해도 층간 소음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닌 셈이다.


30분 정도 거실 달리기를 하다가, 다시 30분 동안 거실 걷기를 한다. 그런데 그냥 걷기가 아깝다. 그래서 책을 한 권 들고 읽으며 걷는다. 읽는 동시에 걷는 건, 독서와 운동을 겸하려는 내 나름의 처방이지만, 솔직히 애나 번스의 장편소설 <밀크맨>의 영향을 받은 탓도 없지는 않다. <밀크맨>에서는 화자인 주인공 소녀가 걸어다니며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사회에서 ‘문제’로 인식된다. 밀크맨이 저지르는 스토킹이라는 범죄 행위도, 밀크맨의 잘못만이 아니라, 마치 책을 읽으며 걷는 소녀가 자초한 일인 것마냥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어쨌든 그 대목이 내게는 꽤나 흥미롭고 인상 깊었다.



어느날 내가 <아이반호>를 읽으며 걷는데, 그 사람이 차를 타고 다가왔다. 나는 자주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그게 뭐가 잘못인지 몰랐는데 그게 나중에는 나를 향한 비난의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가 확실히 그 근거 목록에 들어 있었다.

...


형부가 말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처제는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경계를 안 하니 당연하잖아. 지난주 수요일 밤에 처제가 물밑의 힘과 영향을 전혀 인지 못 하고 위험스럽게 그 지역에 들어가는 사회적으로 미친 행동을 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조그만 독서등을 켜고 가더라. 그러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건 마치 - ”

...


그때 형부가 형부답지 않게 책 문제를 다시 꺼내며 나를 나무랐다. “그래, 책 말야. 그렇게 걸어다니는 거하고.” 그러고는 다른 각도에서 다시 나무랐다.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어둠의 끝까지 쫓겨나고 추방당하고 공동체의 상도를 벗어난 사람이 되어 배척당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걸으면서 책을 읽는 애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고 경고했다. 말도 안 돼, 나는 생각했다. 형부가 과장하고 상상을 보태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책 읽으면서 걷는 것을 관두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그만 독서등을 달고 다니는 것도 관두고 위험하고 무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오른쪽으로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다시 보면 행복해질 거라는 말이죠?” “행복하고는 상관없어.” 셋째 형부가 말했는데 그 말은 그때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내가 들어본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이었다.
















<밀크맨>의 영향으로, 나도 걸으며 책 읽기를 한 번 해보자, 했다. 그래서 날씨가 덥기만 하던 몇 달 전부터 휴일마다 관악산 둘레길 등을 걸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읽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데버러 러츠의 <브론테 자매 평전>,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등을 산책길에 들고가서도 읽었다. 길이 평탄하고 자동차나 자전거가 없는 장소라면, 읽기와 걷기를 쉽게 겸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하여 여의도 공원과 한강 강변을 거닐며 숀 캐럴의 <다세계>를 읽기도 했다. 이 책은 다소 난해하기에 걸으며 읽기에 적당한 책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대해 상당히 우아하고 흥미로운 설명이 많고, 그런 대목에서는 걷기를 멈추고 벤치나 간이의자에 앉아 읽기에 몰두했다. 조용하고 선선한 강변의 아침 독서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또다른 나를 만난 것처럼 신기한 기분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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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는 트리시 홀의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을 들고 다니며 읽기 시작했다. 아침에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읽었고, 저녁에는 버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읽기도 했다. 이 책은 작법을 논하기보다, 글쓰기와 편집에 관한 저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럼에도 일반 작법 책보다 유용하고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조언들이 많다. 심지어 살짝 감동적일 때도 있다. 저자는, 논픽션을 쓸 때에도 개인적인 아픔이나 상처 같은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더할 때, 스토리가 강력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글을 쓴다. 서점에서 아래 인용문을 처음 읽었을 때 심장이 잠깐 멈춘 듯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구입하지 않고선 도저히 서점을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 이들은 자신이 작가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느낀다. ‘운명’이라고 해서 더 나은 글을 쓴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남보다 일찍 깨닫는다는 점에서 이들은 글의 세계에 더 빨리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내 경우가 그랬다.

우 비교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대다수가 말하는 과거의 삶이 그렇듯, 나 또한 끔찍할 때가 많았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읽었다. 펜실베이니아 주 동북부의 어느 비포장도로 위에 내 부모가 직접 지은 단층 주택에서 책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가 길 건너편에 살던 내 친구 프레드의 엄마와 캘리포니아 주로 떠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내가 여덟 살 무렵까지는 그곳에 살았으니 분명 그 집에서도 책을 읽긴 했을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우리는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외할머니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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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시간, 직장 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는 것마냥 덜컹거린다. 그리고 너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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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한 파묵의 책에 나오는 짧은 글을 하나 읽다가 미소짓는다. <책 표지에 관한 노트>라는 글이다. 인터넷으로 책 주문하기를 꺼리고, 직접 서점에 가서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어 살피다가 슬그머니 내려놓고 다시 이리저리 서성이는 나같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말들이다. 몇 개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 모든 위대한 독서 경험과 희열은 이후 추억 속에서 그 책의 표지와 뒤섞인다.

          ● 표지를 보면서 책을 사는 독자들 그리고 그런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들을 경멸하지 않는  비평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

          ● 집필하는 책의 표지를 상상하지 않는 소설가는 감정 교육을 마친, 성숙하지만 자신을 작가로 만든 순수함을 잃어버린 작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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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수도원>을 읽고 반해버린 날, 서점에 가서 제인 오스틴의 책을 몇 권 더 사기로 했었다. 민음사, 문학동네 등 제인 오스틴을 번역한 출판사 책들이 있었는데,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웅진씽크빅에서 출간한 펭귄클래식이었다


펭귄클래식의 고전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 주석이 충실하다. 둘째, 해설이 마음에 든다. 셋째, 표지가 매력적이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선택할 수가 있다는 건, 적어도 내 경우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출판사인 웅진씽크빅에 불만이 없진 않다




이번에 구매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 세 권 중 <이성과 감성>에는 해설도 없고 주석도 없다.알라딘에 올라온 펭귄클래식 원서의 목차와 비교했더니, 원서에는 각주와 해설이 버젓이 있는데, 번역판에는 아예 단 한 줄도 없는 것이다


펭퀸클래식의 번역판을 구매할 때는 이런 경우가 있다는 걸 알아둬야 한다. 몇년 전에도 어떤 작품에서 (지금은 정확히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원서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명쾌한 주석과 명품 해설이 번역판에는 전혀 수록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참고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에 또다시 속았다는 느낌에 솔직히 배신감과 짜증이 난다. 물론 구매하기 전에 자세히 살펴보고 사야 했는데, 급한 걸음이기도 하고 해서 표지만 보고 사놓곤, 인제 와서 물려달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이성과 감성>의 표지 하나만큼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한편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 번역자가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경어체로 번역이 되었다. 단편 소설도 아닌 장편 소설을 경어체로 읽어야 한다는 건 상당히 피곤할 것 같다. 책을 구매하기 전에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다른 출판사의 번역판을 골랐을까? 상당히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표지는 여전히 펭귄클래식이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표지들은 원서의 표지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만약 우리나라 출판사가 원서의 표지마저 다른 디자인으로 바꿨다면, 단호하게 맹세하건대, 다시는 국내 펭귄클래식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점이 그럭저럭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

 





 <에마>의 경우, 해설도 주석도 모두 온전하다. 위의 두 권은 그날 방문한 서점에서 책을 찾을 수 없어서 알라딘 중고서적으로 가서 구입하였고, <에마>만 유일하게 대형서점에서 구매했다.


어쨌든, 오르한 파묵의 짧은 글 <책 표지에 관한 노트>는 모두 옳은 말이다.

다만, 책의 다른 면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을 때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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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스럼없이 새 길을 여는 앤솔로지 1
트임9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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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경력 없이 이 책에 참여하신 정경진 님은 이 책 발간되고 며칠 뒤에, 다른 작품으로 올해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등단을 축하합니다! 평범하지만 특별하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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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얼마나 기이한 존재인지를 내게 알려준 책은, 1993년에 처음 번역·소개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교양을 키우려는 의도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나는 가난하고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주식투자를 해보려고 했다. 우선 서점에 갔다. 처음에는 주식투자에 관한 실무적인 내용의 책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 지닌 나는 나도 모르게 투자에 관한 지혜나 철학이 담긴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바로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이라는 책이었다. 책의 저자는 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인간과 세상을 보는 넓고 깊은 시각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토록 근본을 중요시 하다니! 저자는 내가 감동한 순간을 놓치치 않고 곧바로 과학, 인문학, 심리학, 문학 등의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다. 


책의 끝에 추천 도서 목록이 있었다. 그래서 어딘지-모르게-근본주의-성향을 지닌 나는 권장 도서를 읽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를 읽었다.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음으로 골라 읽은 책이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는데, 개인적으로는 당시 읽은 모든 책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안겨 준 책이었다.




지금은 너무 알려진 책이 되어 내용을 잘 아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읽을 무렵에는, 뇌과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지도 않았고 신경학과 심리학을 연결한 이론은 (나 같은) 무외한에게 생소하기만 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음악적인 재능도 놀라운 어느 지식인 남자가 뇌의 이상으로 사람들의 얼굴과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올리버 색스와 상담을 마친 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를 진짜 “모자”로 착각하고 아내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모자를 쓰려고...(책 제목을 일종의 비유로 믿다가, 말 그대로 진짜 사람인 아내를 진짜 모자로 착각했다는 것을 알고선 잠시 말을 잃었다.)


책은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임상 기록, 다양한 병리학적인 기록들을 엮은 것이다. 영화 메멘토에서와 같이 기억을 상실한 환자, 신체의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 환자, 갑자기 색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 환자 등등 기이한 사례들을 읽으며, 우리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의문에 빠지기도 했다. 환자에 대한 임상 기록이라 하여 전문용어와 딱딱한 기록체 문장의 책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올리버 색스의 위대함은 문학인이 아니면서도 큰 감동을 주는 문장을 쓸 줄 안다는 점이다. 이 점 역시 당시의 내게는 충격이었다. (환자를 환자로만 관찰한 게 아니라 자신과 다름 없는 소중한 하나의 생명으로 대한다면 이런 문장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거라고 나중에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바빠서) 뇌과학에 관한 책을 자주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0년 전 즈음 노먼 도이지의 <기적을 부르는 뇌>를 읽곤 다시 감동받았다. 뇌의 적응력을 의미하는 "뇌가소성"에 관한 여러 사례를 접하고, 다시 한번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요즘도 이 책을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읽는다. 뇌졸중과 자폐, 뇌성마비 등 불치의 뇌 질환을 스스로 치유하는 기적적인 사례들이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뇌 질환을 앓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나쁜 습관이나 여러 불필요한 중독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일상에서 활력을 잃고 매너리즘에 젖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변화의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내게 교양 과학의 세계를 권장했던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은 분실했다. 누군가 빌려 간 것 같은데,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새롭게 다른 제목을 달고 재출간되었다. 주식투자는 여전히 못 하고 있다. 그 당시, 나 대신 아내가 투자를 했다. 책을-멀리-하자-철학의 대표주자인 아내는 어느날 과감하게 20~30만 원을 동원하여 어느 주식을 4주 매입했다. 그 뒤 세월이 흘렀다. 그때 그 주식이 크게 올라 얼마 전에 액면 분할 했다고 한다. 그때 그 주식 4개가 지금 200주가 되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라던가 암튼 뭐라고 하던데…. 하하. 지혜와 성공의 길라잡이 같은 건 전혀 참조하지 않고도, 아내는 높은 수익률을 낸 셈이다.


나는? 나는 그 뒤로 암흑물질이나 양자 요동 같은 근원적이고 우주적인 고민에 빠져 지내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가난하다. 부자 아내와 사는 게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따금 아내가 잔소리할 때, 아내가 '고공행진하는 주식'이라고 믿으며, 가능하면 이런 착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


검색해 보니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은 제목을 바꿔서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으로 재출간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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