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된지 벌써 이주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러다간 계획한대로 독서하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 보관함에 모아둔 목록을 풀었다. 대체로 전집류에 해당되는 책들이 많다. 그러고보니 민음사에서 발행한 전집 류가 꽤 된다. 역시 출판도 자본으로 밀어붙이기가 먹히는군. <세계문학전집>과 <모던클래식>. 그리고 열린책들에서 펴낸 Mr.Know 시리즈는 절판되고 개정판으로 내면서 <열린책들 세계문학>으로 명칭이 변경된 모양이다.
소설류를 읽을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보관함에 담아두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읽고 싶은 책들은 자꾸 쏟아져나오고 그러다보면 신간들에 밀려 어느새 묵혀진 책들. 그 중에서 품절 혹은 절판 직전에 살아남은 책들을 골라내는게 이번 보관함 정리의 목표. 그런데 책이 너무 많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세일즈 포인트가 그리 높지 않은 책들은 당분간 살아남으리라 보고 일단 잘 팔리고 있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클릭, 클릭, 클릭....몇 번 하니 올 겨울에 사려고 생각했던 스니커즈 한 켤레와 부츠 한 켤레가 사라졌다. 올해도 몇 년전에 샀던 운동화와 부츠로 보내야할까 보다.
소설읽기에 앞서 카밀로 호세 셀라가 한 말이 인상에 깊이 남는다.
-물론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내 영혼의 설사다.-
나는 이 문구를 <파스쿠알 두아르테 일가>가 들어있던 작품집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그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나는 그대들의 "영혼의 설사"를 탐하러 동면에 들어가겠다.
1.<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첫 작품이 <사볼타 사건의 진실>이라고 한다. <경이로운 도시>와 <구르브 연락없다>는 처녀작을 읽고 나서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읽어도 좋지 않을까?
-잉에보르크 바흐만은 <삼십세>로 유명한 작가. 그녀의 시집을 한 권 읽은 기억이 있고 ...언어철학을 전공해서인지 철학에세이를 읽는 것 같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어떨지.
-아이리스 머독은 여러 작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것을 읽기는 하였으되 실제로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 나름 진지하게 접근해볼 참이다. 훗. 그런다고 내가 평론을 쓸 일도 없거니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충실하게 노력해보겠다는 정도.이 작품을 읽고 괜찮으면 <파도를 헤치고>도 시도해보려 한다.
-되블린의 책은 예전에 학원사판으로 읽었고 영화로도- TV영화로 나왔었기 때문에 14부작. 비엔날레 당시 며칠동안 나누어 상영되었던-보았지만 책으로 읽었던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영화로 볼 때는 너무 심각해서 두 번 다 깊이있게 즐기지 못했다는 느낌. 굉장히 유명한 감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는데 감독 이름이 가물거린다.그저 나오면서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울며 "뭐, 이래? 이럼 안 되는 거잖아?" 그러면서 나왔던, 그로 인해 한동안 소설 읽기 금지행위를 유발시켰음-새로운 번역과 커다래진 활자로 다시 시도하련다.
-포크너의 작품들은 단편도 제법 읽고 <팔월의 빛>,<내가 누워 죽어갈 때>를 읽었다. 포크너가 천착했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인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찾아나선다.
-조지 엘리엍의 책은 <미들마치>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에 보니 페이퍼백으로 구입했던 원서가 너무 낡아서 종이가 따로 굴러다니기에 하드커버로 한 권 구입하는 김에 그녀의 다른 책들도 함께 읽어보려고 검색하다가 당첨. 그녀의 다른 작품 중 번역된 것은 <미들마치>, <아담 비드>, <사일러스 마너> 등이 있는데 <아담비드>는 현대문화센터에서 나온 판본(2권)과 나남출판본-한국연구재단 학술번역총서 시리즈-이 있다. 나는 분권된 책을 싫어해서 나남출판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있다(양장본이기에 비상시 목침대용). 제인 오스틴과 달리 극적인 전개를 해나가는 과감성이 마음에 든다. <미들마치>는 지만지에서 나온 것이 있지만 완역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원서를 구입해서 보는 것이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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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스의 책은 학원사 판 <여로의 끝>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허무적이면서도 군데군데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선상 악극단>도 함께 실려있어서 나는 그의 작품은 원래 다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해설을 보니 그의 초기작이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존 바스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포착 불가능의 연결되지 않는 파편'이라는데 동의하는 면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이번에 그의 작품을 통해 그것을 충분히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라셀라스>와 <시르트의 바닷가>는 이전에 구입해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책이라 함께 읽기에 투척.
2.<모던 클래식>
한동안 소설 읽기에 무심했기에 새로운 작가가 눈에 많이 띈다. 영미권 뿐 아니라 제3세계권 작가들로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게 <모던 클래식>의 강점같다. 메인스트림이 아닌 것도...
-일단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을 고른다.비교적 최근에 새로 한 권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흥미롭게도 그의 처녀작이다. 일단 문명이 알려지고 난 후에야 그작가의 책을 무더기로 쏟아내는 것이 마케팅에 혈안이 된 우리나라의 출판사답다. 그나마 출판해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은 모두 읽고 한 번 전체적인 느낌을 페이퍼로 갈무리해도 좋으리라.
-스웨덴의 작가인 레나 안데르손이 뚱뚱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덕 시티'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해서 자본이 만들어낸 정크푸드로 살찌운 체중을 다시 자본이 운영하는 다이어트 산업을 통해 조절해가면 서서히 노예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단다(오~예! 재밌겠다).
-톰 울프라는 작가는 이름과 작품 명때문에 흥미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의 작가인 토머스 울프와 이름이 비슷한데다 또 다른 작가 대커리의 <허영의 시장>과 제목이 비슷. 출판사 소개를 읽으니 제목 그대로 <허영의 시장>과 비슷한 플롯인 모양이다. 잔뜩 기대된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어떤 것들에서 갑자기 거부당하는 경험을 그렸다고 하는데 결국 다양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아야겠지. 읽고난 후의 소감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담과 에블린>은 잉고 슐체의 작품이라는데 어떨지....
-치아만다 옹고지 아디치에(이런 발음이...)의 작품은 <숨통 the thing around your neck>이라는 작품때문에 낯설지 않다. 검은 피부의 손바닥위에 놓인 파란 날개의 나비의 표지디자인이 인상적이었는데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그린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소공의 <마교사전> 역시 흥미가 가는 작품.
-'대체로 낯섦'이 그들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선입견. 그래서 실제는 어떨지 더 기대가 된다.
3.마지막으로 열린책들에서 건져낸 책들
-다행스러운 것은 초기에 나왔던 작품들 <거장과 마르가리따>, <적의 시대>, <우주만화>, <백년보다 긴 하루>, <소립자> 등은 이미 구입해서 읽었다는 것일까? 대체로 비주류와 비주류 사이를 헤매는 경계에 있는 문학작품류인데 솔직히 나는 이런 작품들에 더 끌린다. 그래서 sf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만.
-어윈 쇼의 작품은 <야망의 계절 rich man, poor man>이 유명한 작품, 이것말고도 <감당할 수 있는 손실 Acceptable losses>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번역되어 나왔을거다. 아마도.
이미 도착한 책들도 있고 지금쯤 배송되기 위해 어딘가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애들도 있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라, 애들아. 내가 너희들을 모두 내 품안에 받아들여 주마.' 라고 속으로만 부르짖고 있는 내 심정을 그대들은 알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