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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콜린 더브런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베리아 자체는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땅이었다. …저쪽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조금 더 얇아지고 너무 춥거나 넓어서 이 세상 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을 뚫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 한번 들어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긴장감 같은 것이 나를 업습한다. 이곳에 오기로 한 것이 나의 뜻은 아니었다. 나는 금단의 세상의 광대한 지역이 갑자기 열린다는 사실에 압도되었다. ─콜린 더브런,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11-12쪽.

어려서 나에게 시베리아라는 이름은, 유형지라는 낱말과 동의어였다. 러시아 동화에서였던가, 혹은 청소년판 러시아 문학전집이었던가, 그 당시 나는 젊은 시인이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얼어붙은 동토로 추방당한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상상을 더 확장하여 그 시인은 거기서 얼어붙은 호수를 깨고 물고기의 내장에서 기름을 짜내어 그것으로 불을 밝히고 검은 석탄가루를 물에 개어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과연 어린 나이에 상상한 그것은 현실성이 있었던가? 어쩌면 물고기의 내장으로 등잔을 밝힐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석탄을 물어 개어 글을 쓴다는 것은 역시나 현실성이 없으리라.
하여간 나에게 시베리아라는 낱말은 어떤 종류의 근원적인 죄를 저지르고 쫓겨가는 추방지였던 셈이다. 그렇지만 그곳은 정말로 낭만적인 추방지였다. 페치카에 장작을 던져넣고 갓 잡은 물고기 따위를 쇠솥에 넣어 부글부글 끓이면서 밤새도록 도스토예프스키나 숄로호프, 혹은 파슬라프스키의 대하소설을 읽을 수 있는 곳. 물론 그렇게 추운 곳이니 밤에 보드카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으리라. 그리고 어린 내가 상상한대로 밤새도록 미친듯이 인간 정신의 어떤 형태에 대하여 참회하며 쓰고 또 쓰리라.
아무렴, 그곳은 모든 게 국영수 위주로만 돌아가는, 더불어 선생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딱 자기 수준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게 무언지도 모르는 수업을 하는 학교보다는 나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청소년기의 나에게는 있었던 셈이다. 하여 그 시절 나에게 시베리아는 추방지이자 유형지이며 도피처이자 순수한 구원의 땅이었다. 그야 말로 나는 사방 100평방킬로미터 안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외딴 오두막집에서 인간의 정신이 쌓아올린 죄악의 역사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 동토의 지하에는 십만년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을 맘모스가 털빛 하나 안 바꾼 채로 얼어붙어 있을 것이고, 나도 죽으면 그렇게 영원히 정신만 얼어붙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덧없이 흐른 후에, 나는 나만의 시베리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설이라고 부르는 땅이었다. 그리고 창작의 세계라고 부르는 그 땅은 자칫하면 작가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잡아먹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세계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제 갓 그 초입에 발을 들여놓은 나로서는 아직 그 소문의 진위를 밝힐 수 없지만, 그만큼 불온과 구원이 뒤섞인 미지의 영토는 나에게 새로운 시베리아로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밤, 어린 시절의 그 시베리아를 떠올리며 콜린 더브런의 여행기를 읽고 있다. 올 여름에 발간된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한 사람에게 단 한 권의 여행기를 추천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난 이 책을 권하리라. 그리고 누구나 이 책을 덮는 순간, 동토의 대지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꿈을 꾸리라.
오랫동안 서방인들에게 엄격하게 통제되었던 금단의 땅이 비로소 열리고 노쇠한 여행작가인 콜린 더브런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그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 여행기를 나는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다. 올해의 최고의 책이다. 뭔가 이런 기분은 오즈의 세계로 들어서는 도로시나 토끼굴로 빠져드는 앨리스 같다고나 할까. 혹은 잠수함 노틸러스호에 처음 승선하는 아로낙스 박사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기분 같다고나 할까.
어쩌면 소설이라는 게 그런 거 같다. 그래서 난 내 두려움이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난 내가 정말로 잘해 낼 수 있을 것로 생각한다. 야무진 뺨을 가진 아이, 도로시처럼 말이다.
Post Script
한국의 한 탤런트는 어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베리아에서 얼마간 생활한다. 방송이 끝나는 날 그이는 동상에 걸린 손으로 현지인들과 눈물을 글썽거리며 작별을 한다. 순박한 그 사람들은 그이를 형제라고 부르며 꼭 다시 오라고 말했던 이별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연출된 상황이었을까? 나는 방송을 보면서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뒷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종의 후일담이다. 사연인 즉슨, 한국으로 돌아온 그이는 이류 탤런트 생활을 접고 시베리아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이는 시베리아의 순수한 영토를 잊지 못하여 떠난 것일까. 십 년전쯤 일이다.
인도나 티베트에 대하여 미화된 수많은 여행담처럼 이 역시 일종의 미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우리가 담아둔 어떤 종류의 내면을 발견하기 위하여 일상과 분리된 먼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나는 시베리아를 마음에 담아둔다. 어쩌면 소설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어쩌면 그래서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소설을 읽는다. 누가 나에게 소설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터이다. 내게 있어 소설은 시베리아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