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가장 최근에 읽은 책 중에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어벤저>가 있다. 가장 최근이라고 해 봤자 지난 일요일 밤의 일이다. 월요일부터 이틀간은 그동안 미뤄뒀던 M.O.H 시즌 1과 2를 몰아서 보느라고 책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쯤으로 던져 버렸다. 

 
어쨌거나 <어벤저> 얘기나 조금. (스포일러 팍팍 있으나 읽어도 무방.)

 
Frederick Forsyth라고 하면 우리에게 그 유명한 <자칼의 날> <오데사 파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 소설의 장르는 한마디로 스파이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서스펜스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액션과 첩보, 추리와 밀리터리가 얽혀 있는 첩보소설의 하위장르라고 해야 하겠다. (하지만 첩보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하여간, 이번의 신작 <어벤저> 역시 기존의 <자칼의 날>과 동일하게 이 분야의 장르문법에 맞게 잘 씌여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계통의 장르를 싫어 하는 분은 이 소설 자체를 맘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한창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보스니아로 순진하게 구호지원에 나선 한 미국청년이 그 지역 세르비아 민병대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청년이 고만고만한 청년이었으면 역사 속에 아무런 흔적없이 묻혀버렸겠지만, 그 세르비아 민병대 대장(이 사람은 계속 테러리스트로 불린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청년의 외할아버지가 캐나다인 억만장자이며 미국의 유력한 상원의원과도 막역한 친구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상류층 자손을 건드린 셈이다. 뭐 당연히 보복 들어가게 된다.

 
우선 이 청년의 할아버지는 워싱턴의 상원의원을 통하여 미국 정보기관을 동원, 기본정보를 수집하고 자기 돈 들여(하긴 억만장자니깐) 사고가 일어난 보스니아로 사립탐정 파견하고, 자신의 외손자를 살해한 놈의 신분을 확인하게 된다.

 
다음은? 그놈을 잡아다 미국의 법정에 세우고자 중남미로 피신한 이놈에게 전문킬러(이 사람의 암호명이 바로 "어벤저"이다)를 파견한다. (예전같으면 이쯤되면 사적 복수를 실현하겠지만, 이제 프레더릭 포사이스도 미국의 법질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소설은 바로 이 어벤저가 놈의 은신처를 추적하고 잠입하고 적절한 액션과 위장을 통해 미국으로 이 세르비아 테러리스트를 압송하는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어벤저의 과거가 회상되고, 여기에 국제정치의 흐름에 대한 포사이스식 해설이 덧붙여진다.


사실, 소설의 백미는 어벤저의 액션이 아니다. (그러한 액션은 이미 수많은 첩보소설에서 재반복되었다. 나 역시 이 소설을 검토해본 결과 과거의 문제작을 뛰어넘는 그러한 참신한 점은 별로 발견되지 않았다.) 
 

이 소설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은 행간에 숨어 있는 혹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강대국 미국과 그에 수반되는 국제정치의 문제점과 그 해법에 대한 포사이스의 견해를 독해하는 데 있을 것이다. 

 
우선 CIA의 이인자 폴 데브루. 그는 미국의 상류층 출신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세속적인 힘을 통해 실현하기 위해 정보기관에 투신한 인물로 소설 속에서 일관되게 어벤저의 정의실현을 방해한다.

 
그가 어벤저의 정의실현(즉, 미국인을 살해한 범죄자를 잡아다 미국의 법정에 세우는)을 방해하는 것은 작은 악을 용인하여 더 큰 악을 징벌하기 위해서였다. 즉, 어벤저의 타켓이 된 그 세르비아인 조란 질리치는 미국에 강력한 적개심을 지닌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과 연결되어 있고 라덴을 잡기 위해서는 질리치는 어떡해서든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따라서 CIA의 폴 데브루는 어벤저를 제거하려고 애를 쓴다. 폴 데브루에게는 그게 진정한 애국심이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더욱 부유하고 강해져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의 거대한 물결을 통해 블랙 아프리카와 이슬람과 유럽의 좌익들은 미국을 맹렬하게 증오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것은 미국의 국회와 언론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데브루는 자신의 조국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은 실수를 저질렀고, 이따금 너무 많이 저질렀다. 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선의였고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나았다. (중략)

 

격렬한 반미시위와 미대사관 폭파, 불타는 성조기, 비난성 문구의 플래카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94쪽)

 

소설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내 호기심을 강렬하게 일으켰다. 다음은 그에 대한 데브루식 해답인데 다소 길지만 내용이 중요하므로 모두 옮겨보도록 하겠다. 

 
그것을 데브루에게 설명해준 사람은 60년대 말 런던의 한 클럽에서 만난 영국 간첩 우두머리였다. 베트남 상황이 날로 악화되어 가고 소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런 답답한 친구. 미국이 허약하다면 미움 받을 일도 없다네. 또 미국이 가난하다면 미움 받을 건더기도 없지. 미국이 1조 달러나 원조를 했는데도 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1조 달러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는 거라고." 

 
그 노회한 거물은 좌익정치가들과 턱수염 기른 학생들이 미국대사관을 파괴하고 있는 그로브너 광장을 가르키며 계속했다.


"미국에 대해 증오심을 품는 것은 미국이 그들의 나라르 공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증오심이 그들의 나라를 안전하게 지켜주기 때문이야. 인기를 추구하지 말게. 우월감을 갖거나 사랑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둘을 모두 누릴 순 없어. 미국에 대한 그들의 감정은 10퍼센트는 진정한 반대, 나머지 90퍼센트는 질투란 말이야."

 
간첩 우두머리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두 가지를 절대 잊지 말게. 자기 보호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은인에게 느끼는 혐오감보다 더 강렬한 혐오감은 없다는 것." 

 
그 늙은 스파이는 이미 죽은 지 오래지만, 데브루는 수십 개의 도시에서 그의 냉소주의에 담긴 진실을 목격했다. 좋든 싫든 그의 조국은 최강국이었다. 옛날 로마 인들도 그 미심쩍은 영광을 누렸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상대방의 증오를 무자비한 무력으로 응징했다.

 
백 년쯤 전에는 대영제국이 한창 잘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상대방의 증오를 시큰둥한 경멸로 대응했다. 이제 미국이 그런 상황을 맞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문하며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예수회 회원이자 비밀요원인 데브루는 일찌감치 결심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나중에 때가 되면 신께 용서를 빌겠다. 그때까진 미국을 증오하는 자들은 머나먼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295-296쪽)

 
한때 성직자가 되겠다고 했다가 미국을 수호하는 방법은 정보기관에도 있다고 생각한 데브루. 그가 결론내린 미국에 대한 미움의 원인, 즉 전세계가 미국을 미워하는 이유는 결국 질투라는 것이다. ⇒ 따라서 그들의 증오에는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 ⇒ 한데 미국의 세계정책의 근본적인 의도는 자잘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선의에 기반한 것이다. ⇒ 때문에 실용주의적 입장(현실정치적 입장)에서 그 본질적인 선의를 위해서 자잘한 악은 용인될 수 있다는 결론이 유도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양심상 떳떳할 수 있을까?' 그는 그래야만 했다. 작은 악보다는 더 큰 선을 위하여. (326쪽)

 
그는 그렇게, 미국 시민권자이자 정의를 실현하려는 암호명 어벤저를 죽이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가 생각하는 테러리즘의 본질(책 327쪽-329쪽)도 또한 이곳 블로그에서 언급하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생략하도록 한다.

 
너무 얘기가 길어졌으므로, 이 소설의 결론을 살펴본다. 우리의 주인공 어벤저는 CIA 폴 데브루의 방해를 물리치고 결국 미국인 청년을 살해한 질리치를 미국으로 압송하는 데 성공한다.

 
이쯤해서 작가인 포사이스의 의도를 추궁할 차례이다. 냉혹한 현실주의자 데브루의 방해를 물리치고 어벤저가 그의 활극을 성공으로 마무리지었다는 것은 아까 앞서 장황하게 나열한 데브루식 가치관을 작가가 부정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즉, 아무리 큰 대의명분을 위해서도 사소한 정의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혹은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정언명령 말이다. 


포사이스는 이러한 목적론적 윤리관을 설파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소설에는 아주 중요한 트릭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어벤저가 범죄자 질리치를 미국으로 압송한 그 시점이다. 어벤저가 정의를 실현한답시고 질리치를 잡아들이는 바람에 CIA의 데브루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잃어버리는 그 시점말이다. 그 날짜는 바로 소설의 맨 마지막 페이지의 맨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작은 손목시계를 다시 차고 소매를 끌어내렸다. 그러고는 날짜와 요일을 체크했다. 2001년 9월 10일이었다. (443쪽)

 
2001년 9월 10일. 그렇다. 이날은 바로 인류문명사에 역사적인(아마 천년이 지난 후에도 역사라는 과목과 세계연대표라는 게 존재한다면 틀림없이 빠지지 않을) 9.11 테러의 24시간 전이었던 것이다.

 
포사이스가 이 날짜를 제시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까. 옮긴이의 소감에도, 해설을 겸한 추천사에도, 그리고 출판사측의 광고카피에도 이 문제를 지적한 내용은 없었다. 

 
"작은 정의"가 실현된 2001년 9월 10일. 그로 인해 다음 날 미국은 대규모의 테러를 당하고 곧 전무후무한 문명의 대결을 일으키는 셈인 것이다. 포사이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작은 정의가 실현되었다. 그래 그건 좋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악을 제거했기 때문에 더 큰 선(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방지)을 저버리지 않았느냐. 

 
뭐 이런 "반어법"적인 의도 말이다. 이 소설의 독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의의 실현이 중요하다는 "반반어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9.10이라는 날짜가 주는 뉘앙스의 효과가 너무 크단 말이다.

 

 

Post Script

 
장르소설 중에서 밀리터리 분야와 마찬가지로 첩보소설 또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장르의 특성상 적과 아군을 뚜렷하게 구분짓기 때문이다. 이 장르를 접하는 독자들은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에 쉽게 용해될 수 있으므로 이들 장르가 가진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은 주의깊게 논구되어야 할 것이다.

(블로그 원문보기 : http://blog.naver.com/xenoblast/120041634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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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2007-08-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대단한 서평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간과된 부분은 시간 관계상 질리치의 압송과는 상관없이 9.11이 터졌다는 사실이며, 포사이드도 그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포사이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미국아, 모든 일은 순리적으로 풀어야 해.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이 없는 한 터질 일은 반드시 터지고야 말아. 이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