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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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연달아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른쪽……>을 다 읽은 지금 다시 말하자면, 괜한 걱정을 했다. 꽁뜨보다는 길고 단편소설보다는 짧은 스물네 개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 <왼쪽……> 독후감에서도 이야기했듯 성인들을 위한 우화, 손바닥 장掌 자를 쓴 장편소설. 스물네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빠짐없이 다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선과 악, 그 미묘한 경계이다. (솔직히 이럴 필요까지는 없지만)굳이 가져다 붙이면 이이의 <마크로풀로스 사건>에 나오는 에밀리아 마르티, 300년을 살아 인간의 선과 악에 달통을 해서 여간한 것으로는 전혀 감동하지 못하는 불운한 인간이 작가 자신, 즉 카렐 차페크의 시선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은 할 수 있다. 다만 희곡의 주인공으로 이제 다시 300년을 더 살 것인가 그냥 죽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 에밀리아 마르티, 혹은 엘레나 마크로풀로스와는 달리 48년 밖에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카렐 차페크는 비록 자신이 흉악범, 살인범을 묘사하고 있을지언정 그들 속의 다른 면모, “자신만의 엄격한 도덕률”이 있어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으며, 거짓말로 하지 않”는 선한 일면이 있음을 누차 강조한다. (따옴표 속은 56쪽에서 인용)
 고집쟁이에다 노랑이 장인을 도끼로 머리통을 세 번 내리쳐 죽인 사위에게 배심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판사는 법대로 사형 대신 “유혈 참사가 하늘에까지 미치니, 신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판결하노라. 피고 본드라체크는 그 두 밭에 사리풀(유럽산의 독초)과 가시덤불의 씨를 끝도 없이 뿌려야 하리라. 그리하여 죽음이 그대를 찾아오는 순간까지 이 증오의 밭을 끝없이 일구고 또 일구리라……”라고 신의 이름으로 선고를 하고 싶어 한다. (따옴표 속은 245쪽에서 인용)
 사실 스물네 개에 달하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절한 코멘트라고 생각하는 건, 선인과 악인의 이면, 그 경계의 눈썹만한 차이에 의하여 인간의 생이 결정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따라서 차페크의 <왼쪽……>과 <오른쪽……>, 다 합해 마흔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보편적 인간형이 모두 출현한다고 생각하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읽는 도중엔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지금 독후감을 쓰면서 이이의 장편소설 <호르두발>, 그 쓸쓸한 보헤미아 이야기가 떠오른다. 뼈골이 빠지게 아메리카까지 건너가 번 돈을 보헤미아의 아내에게 보낸 호르두발 집안을 둘러싼 악당과 주민들, 그리고 가족 이야기. 그러고 보니 <호르두발>에서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바람이 나고, 딸을 혼인시키려 하고, 죽어가고 했던 것이다. 그저 삶의 이야기. 언제나 곤고하며 즐거움이란 숨이 넘어가기 바로 전에야 드문드문 한 번씩 던져두는 삶. 그걸 살아내기 위해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범죄자와 살인자를 체포하여 징역형과 사형에 처하기도 하는 것. 열정 바로 옆에 죄악이 있을 수 있고, 사랑은 어김없이 무서운 질투를 동반하며, 행운이 살짝 눈초리를 비틀면 불행이 땅거미처럼 세상을 덮는 인간살이. 평생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적 없이 살아온 한 인간이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도 모르게 숱하게 저질렀던 남의 가슴에 못 박았던 행위. 나나 당신이나 다 그런 철길 위를 지나왔던 것이다.
 다만 조심할 것은, 책을 읽으며 내가 밟아온 자리를 떠올릴 기회, 그 섬뜩한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는 점.


 * 을유세계문학전집 87번째 작품,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란 제목으로도 출간했다.

 

다만 을유세계문학전집엔 <오른쪽……>만 실려 있고, <왼쪽……>은 아직 번역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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