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상 위의 천사 1 세계문학의 숲 26
재닛 프레임 지음, 고정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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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 남섬의 정 많지만 무뚝뚝하고 완고한 철도노동자 조지와 시를 좋아해 틈틈이 시를 써서 잡지나 신문에 기고하길 즐기지만 전형적인 자기희생형 어머니 로티 프레임 부부는 1남 4녀를 두었는데 (딸, 아들, 딸, 딸, 딸) 다섯 중 딱 가운데, 그러니까 셋째가 재닛 프레임, 작가 본인이다. 재닛의 소녀시절, 행복은 이 가정을 빗겨 나가서, 여덟 살 때 오빠 브러디가 심한 간질 발작을 시작해 거액의 치료비를 지출할 수밖에 없었고(나중엔 뉴질랜드 국가시책으로 병원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지만), 5년 후 활달하고 조숙한 언니 머틀이 그 또래로는 자연스런 자잘한 사고를 잔뜩 치고 다니는 발랄한 십대 시절을 지내다가 암만해도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무시하는 바람에 놀라운 수영실력에도 불구하고 강에 빠져 죽는다. 재닛은 가난한 집안의 공부 잘 하는 아이로 성장해가며 특히 영어와 불어, 그리고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 언제나 우등을 차지해 아버지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집안의 어려운 살림과 수시로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오빠로 인한 긴장된 분위기 같은 것은 재닛으로 하여금 조용하게, 그리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복종하는 습관을 들이고 만다. 자신을 내보이기보다 주위에서 말하는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잘했다거나 착하다는 칭찬을 받는 분위기. 언제나 우등이라서 가난한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사범학교에 진학 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정, 했다기 보다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업이라 그렇게 된다.
 이 소리 없고, 수동적이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초보 여선생이 사범대학 졸업 후 임용을 받아 초등학교 교사로 가고, 드디어 정교사가 되기 위하여 여러 장학사와 교장 앞에서 공개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날 최초의 일은 터지고 만다. 도무지 견딜 수 있을 거 같지 않은 눈길들의 빗발 앞에서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두려워, 재닛은 교장에게 잠시 교실 밖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교문 밖으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의 생에 대하여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그러나 내가 이야기한 작가의 초기 생애는 별개로 하고, 곧이어 8년간 벌어질 지극히 불행하며 그리하여 남은 인생의 큰 굴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수난기와, 수난을 피하고자 행한 유럽생활과 극복으로의 귀환에 대하여 입을 다문 채로 독후감을 쓸 수 있을지는 솔직히 계산이 안 된다. 재닛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일컫는 20대에 경험했던 지독한 불운이 사실 책의 핵심이며, 그녀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경험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미리 밝힌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연 내가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받은 놀라운 충격과 인상과 감정 등은 오직 나만 향유하겠다는 이기심이라고 해야 하리라.
 책을 열면 제일 앞에 영화감독 제인 캠피언이 쓴 서문이 나온다(캠피언 감독이 책과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 상도 하나 받았다). 이것 역시 읽지 말고 곧바로 본문으로 들어가면 더 좋았을 뻔했다. 캠피언의 직업이 영화감독임을 감안하면 서문은 참 잘 쓴 글이다. 그러나 책의 성격상 서문에 두지 말고 차라리 발문으로 뒤편에 두어 다 읽은 독자들과 서로 감상을 나누는 역할을 했으면 어땠을까. 왜냐하면, 독후감의 스토리 소개도 앞부분에만 국한하고, 캠피언의 잘 쓴 서문도 발문으로 바꿨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고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소설책이 아니라, 난 진짜로 소설책인줄 알고 사서 읽었는데, 유명 작가가 쓴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종의 역사책을 읽는 셈인데 가장 충격적이고 결정적인 대목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살다보니 내가 다른 인간의 자서전을 읽는 날도 온다. 그렇다. 다 읽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자서전. 스스로 자기가 살아온 날들과 사건을 정리해서 쓴 책. 기억 속에 남은 유일한 자서전이 ‘카네기 자서전’. 내 아버지가 사셔서 읽으려 하다가 때려 치우셨던 기억이 난다. “도무지 잘난 척을 들어줄 수 있어야지.” 그 후 난 자서전에 관해 상당한 알러지 증상이 생겨 아마 이 책도 자서전이란 걸 미리 알았다면 틀림없이 구입대상으로 고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닛 프레임은 확실하게 문제가 있는 사회부적응자이며, 동시에 시인이기도 하고 가장 분명한 것은 소설가다. 시를 쓰고 싶어 했으나 소설가로 성공한 사람. 그래서 그런지 프레임의 문장은 정말로 시 같다. 아름다운 구절들이 곳곳에서 만발한다. 그러나 정원을 물들이는 강한 원색의 장미나 튤립이나 나리꽃이나 칸나가 아니라 제방에 자잘하게 핀 들꽃 또는 저녁 무렵 강물 위를 비산하는 빛의 반짝임 같다. 딱 그 지점에 박혀야 할 강렬한 단어의 찬란함 대신 프레임은 문장들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독자와 함께 글의 느낌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 든다고 하면 비슷할까. 그렇다. 강렬한 문장이나 단어의 발견은 젊음에나 맡기고, 이제 세월을 거진 살아 한가한 시골 소읍에 박혀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글은 분명 빛나지 않아서 오히려 빛이 나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자서전’이란 글쓰기에 매우 회의적인데, 기억이라는 것이 당연히 내가 바라는 장면만, 양보한다고 해도 (그게 좋은 것이었든 절대 추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든)기억하기로 결정한 장면을 위주로 구성하기 마련이라, 모든 장면은 지금 생각하는 당시 시절의 굴절된 모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닛 프레임의 경우, 자서전을 쓰기 위해 숱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시골 소읍에서 세 권으로 구성된 자서전을 일 년에 한 편씩 쓴 형태라서, 과연 이것이 객관적일까.
 천만의 말씀.
 이것은 문학작품이다. 그렇다고 픽션도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 작가가 스스로 말한다. 자신은 거울의 도시, 현실을 투영한 삶의 모습이지만 결코 진실한 현실은 아니었던 모든 모습을 만들어왔고, 물론 자기가 만든 많고 많은 모습에 다 조금씩 자신의 그림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결코 자신의 진짜 생김생김을 그려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현실이 투영된 거울의 도시와 거울의 도시 주민들을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강제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질곡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이제는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 ‘진정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 굳이 이걸 소설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고, 자서전이라 분류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한 문학작품. 이런 경우, 장르의 구분은 아무 소용이 없다.
 편편이 아름다운 글들이 담겨있는 아련한 이야기. 고정아의 번역도 교정 과정에서 조금의 실수와 어색한 점도 없지는 않으나(우리말에 생각보다도 ‘……된다’라는 표현이 드물다. 이런 표기는 대개 영어 수동태 문장을 그대로 번역하면 자주 생기는 듯하고 어째 난 그게 거슬린다) 참 애써서 작업한 티가 난다. 무엇보다 자주 등장하는 시의 번역과, 원문은 모르겠으나 그걸 한글로 만들어낸 솜씨에 갈채를 보낸다. 아름다운 글을 더 아름답게 만든 것 같다.

 

 * 오늘의 독후감엔 책의 내용과 정말 좋은 부분을 거의 대부분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갔다. 내가 좋은 책을 소개할 때 자주 이렇게 하는데 이런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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