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모니카 마론 지음, 정인모 옮김 / 산지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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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슬픈 짐승>을 읽고 곧바로 보관함에 담아놨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마론은 동독 출신. 11세 때 서 베를린에서 의붓아버지 칼 마론을 따라 동 베를린으로 건너가 살다가, 1988년 함부르크로 옮겼고, 통일 이후 다시 베를린에서 살고 있단다. 작품이 나온 것이 2013년. 그러니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을 2012년 정도로 보고, 작품 속의 주인공 ‘나’ 루트의 그때 나이가 61세니까 실제 모니카 보다 한 열 살 젊은, 또는 덜 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이가 쓴 작품 가운데 한국말로 번역된 작품이 <침묵의 거리>라고 있다 해 검색해보니, 부산대학출판부에서 1995년에 찍었고, 지금은 품절이다. 뭐 그런가 보다.
 <슬픈 짐승>은 불륜 이야기. 여기다가 동서독일을 사이에 둔 연인들을 설정해서, 이게 당시 동쪽 독일 출신 작가들 사이에 유행했던 모티브 가운데 하나인가본데(이 말도 완전히는 믿지 마시라. 그동안 동독 출신이 쓴 소설들 좀 읽어보니 이런 유형이 유난히 많더라는 뜻일 뿐이다), 하여간 그런 연애 소설을 감각적으로 쓴 작품. 반면에 <올가의 장례식 날 생긴 일>에서 독일은 완전히 통일이 된 상태.
 물론 등장인물 대부분은 동독 출신으로 해놓았다. ‘올가’가 누구일까? 누구긴 누구야, 타티아나의 동생이지. 라고 대답하면 당신을 푸시킨의 열혈 팬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죽은 올가는, 제목이 ‘올가의 장례식 날’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올가는 이미 죽은 상태인데,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21세기, 손가락으로 스마트 폰의 앱을 눌러 사진을 찍는 시점에서 90세. 우리말로 소위 ‘호상’ 아니겠어? 그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적당히 한 보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으니 세상에나, 이렇게 부러운 죽음이 또 어디 있겠나. 근데 누구냐고? 주인공 루트의 전 시어머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시어머니 될 뻔 했던 노파.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올가가 젊었던 시절에 (아주 당연하게 올가도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잘생긴 남자 헤르만과 가약을 맺어 외아들 베른하르트를 생산했는데, 이 아기가 점점 자라 건장한 청년이 되자 우리의 주인공 ‘나’ 루트의 남편이 된다. 둘 사이에서 딸 파니가 태어나 이제 혼인신고를 해볼까, 싶어 남편네 집에 인사하러 가보니까, 무지하게 가부장적인 마초 헤르만과 올가가 시부모짜리였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뭐, 어차피 결혼한 다음에 같이 살 거 아니니까 별 문젠 없는데, 글쎄 베른하르트가, 대입 자격시험을 치루고 나자마자 시인 지망생 웨이트리스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뒀지 뭐야. 이름이 앤디였지 아마. 사랑하는 사이에 그 정도는 이해한다고 치자 이거다. 하지만 앤디는 어려서 자전거를 전속력으로 몰다가 트럭 돌출부에 이마 정면을 오지게 얻어맞아 평생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생활이 곤란한 상태인 걸 알자마자, 루트의 머릿속은 극도로 혼란한 상태에 이르러, 딸 파니는 내가 알아서 키울 테니 양육비 같은 거 필요 없고 그냥 헤어져주기만 하면 된다, 선언하고 결혼을 물려버렸던 것이다. 그 후, 베른하르트도 결혼하고, 나, 루트도 결혼해 서로 잘 살고 있으며, 특히 올가하고는 이제 친구처럼 가끔 만나서 차도 한 잔씩 하고, 뭐 서양 사람들 잘 하는 거,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올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루트. 불과 몇 주 전에 전화통화도 했고, 지금은 조금 몸이 안 좋으니 조만간에 좋아지면 한 번 들르라고 약속도 했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다니, 조금 황당. 그러나 나이 아흔의 상태에서 몸이 ‘조금’ 좋지 않다는 것은 언제나 죽음을 전제로 할 수 있는 것이라 그리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장례식, 올가를 드디어 땅에 묻는 순간 만일 자신이 그 자리에 없으면 비록 부활이란 걸 전혀 믿지는 않지만 올가가 행복해하지 않을 거 같아서 일단 참석하기로 작정을 하는데, 속으로는, 만일 장례식에 참석한다면 꼴도 보고 싶지 않은 베른하르트도 봐야 하고, 밥맛 없는 그의 법적인 아내도 만나야 하고, 무엇보다 내 딸 파니가 베른하르트를 아버지입네 하고 팔짱을 꼭 끼고 다닐 수도 있는 꼴도 겪어야 하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장례식에 가? 일단 가기로 결정을 하고 딸과 장례식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다. 몇 시에? 그런 거 없이 그냥 알아서 만나기로.
 그래서 루트가 장례식장에 정말 갔냐고?
 갔다.
 거기서 잘 지냈냐고?
 잘 지냈다. 장례식장엔 길을 헤맨 끝에 도착 못하고 대신 베를린 시의 모처에 있는 공원에 들어가서 개 한 마리와, 귀신 몇 명과, 악령 한 개와, 놀랍게도 지금 막 묻힌 올가를 만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루트가 귀신(들)하고 나눈 삶과 인생과(그게 그건가? 하여간) 생각과, 무수한 결정들과 옳고 그름 같은 것들에 대한 대화, 당연히 완벽하게 주인공 루트의 머릿속에 잠복해있던 사유의 결과물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유령과의 대화를 통해 나열된다. 정말이다. 그게 다다.
 지극히 개인적인, 미니멀리즘으로의 사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베른하르트와 결별 후 다시 결혼했다가 이혼한 전남편 서독 출신 헨드리크의 친구였던 알콜 중독자 브루노 귀신을 등장시켜 작가 마론이 체험했던 서독으로의 이주에 관한 단편斷片과 브루노와 헨드리크 사이에 있었던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창작물의 전용轉用 같은 따끔한 장면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200쪽도 되지 않는 짧은 작품에 대해 이런 배경 말고, 공원에서 만난 유령들과의 자세한 대화 같은 건 더 이상 소개하지 않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많은 면을 차지하는 2부가 공원에서 귀신 만나는 얘기, (1부는 도입이고) 3부는 결말이겠지, 싶었지만, 3부에 들어서도 귀신들은 마지막 페이지(또는 그 근처)에 이르러야 물러난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 이것도 너무 많이 힌트를 준 거 같은데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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