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4
E. L. 닥터로 지음, 정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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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글래스33라고 하는 개새끼, 너 기억나?”
 “…… 그리고 마까르시라고 하는 그 사악한 늙은이……”
 “…… 그 작자들은 공산주의자들 모두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고 난 확신해……”

 

 33 미국의 공산주의자로 소련에 미국의 원자폭탄 정보를 건넨 스파이 혐의로 아내와 함께 처형당했다

 

 

 위는 후안 마르세의 소설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377~378 쪽에 나오는 대사와 각주다. 첫 문장에서 나오는 그린글래스의 각주(33)는 매우 잘못된 정보다. ①“소련에 미국의 원폭 정보를 건넨 스파이 혐의”, 즉 스파이 활동을 해서 기소, 재판 사형집행을 받은 것이 아니라, ②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불법으로 공모했다는 혐의로 기소”, 재판, 처형됐으며, ③ 죽은 사람은 책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에서처럼 다비드 그린글래스가 아니고 ④ 그의 누나와 매형인 에델 그린글래스 로젠버그와 줄리어스 로젠버그다. 우리나라 유명 출판사의 엉터리 각주가 어제 오늘이 아니니 새삼스레 침 튀지 않겠지만, 좀 주의해서 각주 달아라, 창비!
 위 네 가지 사실을 소설적 시각으로 각색하여 죽은 로젠버그 부부를 책에서는 폴과 로셸 아이작슨 부부로 바꿨고, 그린글래스는 완전히 가공인물, 그러나 아이작슨 부부의 가까운 이웃인 치과의사 나이 많은 셀리그 민디시로 했다. 로젠버그 부부에겐 마이클과 로버트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나 <다니엘 서>에선 다니엘과 수전으로 변형시켰다(상세 내용은 책의 해설 450쪽). 그래서 책의 제목을 구약성경의 <다니엘 서 Book of Daniel>이면서도 죽은 자들의 아들 다니엘의 경험과 독백, 그리고 아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했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재구성 등이 가능하며 서로 연계가 되게끔 구성했다.
 책은 1971년에 나왔는데, 진짜 책을 쓴 것은 1969년부터 70년 정도 됐을 터이니, 사실상 60년대 미국소설 및/또는 미국문화, 정서 같은 걸 다 아울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쓰는 중에 미국 역사상 가장 컸던 대중 집회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이 있었고, 그 전 1967년에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학생, 지식인, 사회주의자 등의 진보주의자, 인종과 젠더 해방론자, 히피, 저널리스트들이 징집영장을 펜타곤에 반납하기 위해 집결하여 시위하고 행진하다가 조국의 경찰로부터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노먼 메일러, <밤의 군대들> 참조).
 로젠버그, 책에서 아이작슨 부부의 처형과 펜타곤 진격 사건과의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로젠버그의 실제 아들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행동했는지 진실은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아이작슨 부부의 아들 다니엘이 부모가 처형된 후 동생 수전과 함께 괜찮은 변호사 르윈 씨의 집에 양자 양녀로 입양되어 잘 교육을 받으며 성인이 된 후 참한 아가씨 필리스와 결혼, 독립해 아들을 하나 둔 상태에서, 수전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전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살을 실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수전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면서 다니엘은 친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고 거의 만나지도 못하다가 처형당한 사실이 수전의 인생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자각하면서 드디어 십 몇 년 전의 사건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 와중에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실제로 로젠버그 부부가 그랬듯이 작중 아이작슨 부부 역시 공산당원으로 설정했다)의 아메리카 침공을 극히 혐오했거나 두려워한 미국이 해당 사건에 모종의 음모를 깔아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스스로도 사회주의 또는 평화주의, 심지어 히피상태로 변해가며 문제의 1967년 펜타곤 진격의 앞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음모론 적 소설로 볼 수도 있겠다. 2차 세계대전은 세계만방에 미국의 힘, 특별히 전쟁 수행능력과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를 과시한 중요한 기회였으며 이후 미국은 (약간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해서) 자신의 뜻대로 세계적 질서가 만들어지기를 바랐으며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지구 유일의 경찰국가로 존재하기를 원했던 거 같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가장 강력한 상대국이 있었으니 바로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위협이 되기는 하지만 40년대 까지는 유일하게 거대 살상무기인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남태평양의 작은 군도 하나 정도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원자폭탄 시험발사장으로 거덜을 낼 수도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만들었다.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미국의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완강한 보수정책과 반 소련, 반공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펴왔는데, 진짜로 미국이 그렇게 완강하고 공권력을 통 투입하면서 공산주의가 본토에 상륙할 수 있다고 믿어서 반공정책을 밀어붙였을까?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이어지는 의문. 공산주의를 미국이 혐오했던 이유는, 1917년 레닌이 소비에트를 만든 이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유구한 전통으로 자리 잡은 독재, 공포 정치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국체로 한 미국 입장에서 두려웠을까, 아니면 정통 공산주의 이론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상륙하게 되면 기껏 만들어서 유지하며 지금 한없이 향유하고 있는 소수의 부르주아들에게 몰락을 가져오게 될까 두려웠을까. 나는 두 번째라고 본다.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유럽에서 이민 온 백인으로 채워진 (비교적)신생국. 더하기, 유럽에서 항문이 째지게 가난한 하층계급으로 살다가 이제 갑자기 떼돈을 번 일천한 전통의 부르주아들의 집단. 여기에 가세한 높은 지능의 엘리트들. 이들 소수, 극소수가 거의 모든 방면에서 미국을 유럽보다 몇 배는 더 고집스런 보수국가로 만들었다. 불과 몇 대에 걸친 지독한 노력 끝에 자수성가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극소수”의 부르주아와 엘리트들에 의한 지도체제는 국가의 정치적 권력과 언론 등을 통한 여론형성과 일반 시민들의 의식까지 수정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혹시라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에게 뺐길 수도 있다는 지극한 공포에 대항했을 것이다.
 물론 세계대전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영국과 프랑스라는 유럽의 맹주가 많은 부분을 통제해와 전후 세계처럼 스스로 전 지구적 패권을 쥘 필요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어 세계 도처에서 촉수를 뻗는 공산주의의 뿌리를 파 없애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으며, 그리하여 미국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와 입법부는 그들이 한국과 베트남 등에서 벌이고 있고 벌일 예정인 전쟁에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을 언제나 심각하게 고려했다. 실제로 그랬고, 원폭투하를 반대한 맥아더는 한국전쟁 중에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로젠버그 사건, 즉, 이 책에서 아이작슨 사건이 일부 조작된다. 내가 ‘일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은 권력이 의회에서 나오는 나라이기 때문. 즉, 아무리 인도적 견지에서 맞지 않더라도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에선 하나의 규범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 엄연하게 존재했고 실제로 공산당이었던 아이작스 부부의 행동엔 스파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의식적으로 또는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불법으로 공모’했을 수도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했겠다는 얘기. 이 책에서도 아이작스 부부가 완전히 무죄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뢰가 가는 것. 다만 어떤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조금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것이 책을 쓴 1971년까지 국가기밀로 구분이 되어 작가가 여전히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든지, 아니면 기소장에 구체적 불법행위의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든지 할 터인데, 어떤 경우라도 명백한 불법행위를 밝히지 않는 것은 “필연적으로” 음모론을 만들어낼 충분한 가능성을 갖는다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그 문제를 파헤친 소설.
 문제는 정부권력에 의하여 부당하게 중범죄자가 돼버린 개인, 아이작슨 부부. 극소수 부르주아와 엘리트로 구성된 저 높고 높은 신들의 전당에서 조작한 공산주의에 의한 위협과 공포, 거부감들이 일반 시민 층에도 이미 충분히 전파되어, 아이작슨 부부는 독후감에서 제일 먼저 밝힌, 스페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벌써 악당, 개새끼니 사악한 늙은이니, 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아이작슨 부부, 몇 년 후 형 집행으로 전기의자에서 통구이가 되어 죽어간 부부에게 국한한 일일까? 그들의 아들과 딸의 이름으로 아직 시민들 옆에서 생존해야하는 다니엘과 수전. 20세기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주홍글자를 달고 전기의자에서 처형된 부모를 둔 남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부모를 경원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했던 우리에게 이 남매들의 삶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시절, 미친 시절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도상 가벼운 폭력이 남은 사람에게 던져주는 숙제. 이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
 조작된 음모론, 솔직히, 남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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