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47
에밀리오 살가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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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고르는 방법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재미있게 읽은 책 속의 등장인물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선택하는 거다. 이 책 역시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주인공 얌보가 열광을 했던 책이라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고른 것이다. 이 책 <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 : 이하 “산도칸”>이 에코의 그 책을 읽고 선택한 마지막 작품이다. 속이 다 후련하다. 어찌됐건 이제 <로아나…>로부터 해방이니까.
 근데 이 책은 선택하는 데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로아나…>에는 늙은 얌보가 등장해 젊은 얌보도 아닌 어린 얌보를 회상하는 장면이 아주 길게 나오고, 그때 어린 얌보가 열광했던 책이 바로 <산도칸>이었던 거다. 어린 얌보가 자기만의 공간인 다락방에서 말레이시아 해를 무대로 무도한 해적질을 일삼은 가공의 폭력범 산도칸의 모험과 싸움과 전쟁과 사랑을 흉내 냈던 것을, 거의 50년 이상이 흘러 늙은 얌보가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에 <산도칸>이 있다는 건 벌써부터 알았던 터이며, 여러 경로로 그건 인생살이 오래 산 인간들은 별로 읽을 만하지 않다는 얘기도 벌써부터 들어왔기에 일찍이 목록에서 제외시켜온 책이었던 걸, 잠깐 미쳤었나봐, 잊었던 거였지 뭔가. 살다보면, 책 좀 읽다보면 이런 일도 생긴다. 본문만 418 쪽. 굳은 마음으로 딱 절반 209쪽까지 읽고 도저히 더 이상 읽어줄 수 없어 그냥 때려치웠다. 뭐 이딴 책을 내고 그래, 라고 출판사 열린책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는 장르를 불문하고 재미있을 거 같다하면, 말을 조금 바꿔 할 경우, 좀 팔릴 거 같다하면 별 생각 없이 시리즈에 포함시키는데 이게 가끔 대단한 매력이 되기도 하고 <산도칸>처럼 똥 밟기도 하고 그런 거니까. 다 그런 거지 뭐.
 책 속의 주인공 산도칸. 영국 군대에 의하여 부모 형제가 학살당해 가상의 나라를 뺐기고 피신한 그는 회교도의 미덕인 복수를 하기 위해 용감무쌍한 해적이 된 인물. 당연히 큰 키에 잘 생기고 피부색 조금 까무잡잡하고 용기 있고 힘 무지 세고, 돌격형 인물, 즉 앞 뒤 생각 안 하는 단순무식형 인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친한 친구, 포르투갈 사람 야네스의 현명하고, 유머있고, 재치까지 있으며 좌우 상황판단 빠른 조언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벌써 백여 번은 죽었어야 하는 주인공이다. 작가 에밀리오 살가리가 이탈리아 사람이어서 당연히 이탈리아 언어로 책을 썼기 때문에 규격적이고 엄격한 영국인 장군 삼촌 아래서 자란 ‘라부안의 진주’라고 불리는 여주인공 마리안나는 엄마가 이탈리아, 아버지가 영국인인데 조실부모하여 삼촌에 의탁, 말레이시아까지 흘러든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사랑은 흔히 초상화 한 번 보고 맛이 가게 반하는 거 등등 아주 우습게 사랑에 빠지는데 여기서도 진짜로 묘사를 했듯이 단도 하나 가지고 말레이 범을 때려잡는 우리의 영웅 산도칸은 라부안의 진주라 불리는 여성이 매우 아름답고 노랑대가리에 파란 눈알을 하고 있다는 말만 듣는 것으로 여자를 좋아할까 말까 심각하게 궁리하고 급기야 수십 명의 부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험을 하면서까지 기어이 여자를 만나, 마리아나 눈앞에서 <수호전>에 나오는 송나라 무송武松처럼 범을 때려죽임을 계기로 사랑을 얻고 만다. 아주 전형적인 소년 소설의 주인공들 아니냐.
 무수한 사상자를 낸 전투에서 오직 하나 살아남는 거, 산도칸을 포위한 수십 명의 영국 정규군을 유유히 따돌리고 탈출에 성공하는 건 말 그대로 껌이고, 무시무시한 태풍을 뚫고 항해하는 그런 이야기, 도저히 읽어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반 까지만 읽고 진도를 더 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했고, 딱 반 지점에 와서 책 덮었다.
 당신의 정신이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이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신중하게 생각하여 선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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