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들 대산세계문학총서 141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 지음, 장은명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로가 <월든>을 쓴 것이 1854년. <월든>이 세상에 나오기 한 세대 전 1823년에 등장한 이 책 <개척자들>. 작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가 쓴 이 책은 70대 모히칸 족 노인 존, 백인이지만 존과 같은 70대이며 인디언과 깊은 유대를 맺어 숲 속의 사냥꾼으로 곤고한 삶을 사는 수수께끼 늙은이로 레더스타킹(가죽으로 만든 긴 양말 또는 각반)이라는 별명의 내티 범포, 그리고 깍듯한 유럽식 예의와 수사를 사용하지만 인디언 또는 사냥꾼과 비슷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야릇한 젊은이 에드워드 올리버, 이렇게 세 명을 등장시켜 이들이 40여 년간 지켜오던 극도의 폐쇄적 경향, 특히 오두막에 다른 개척민들이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사연을 풀어내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과정에, 인디언들이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의 것을 자연에서 얻으며 안분하게 살고 있는 반면, 백인들이 저지르는 생명체에 대한 과도한 살육과 낭비,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위대한 영’이 인간에게 허어한 자연, 동물과 식물, 암석 등을 황폐시키는 걸 날카롭게 비판한다. <월든>보다 한 세대 앞서. 또 악역에 의한 거친 말과 비하를 제외한다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주 예외적인 일.
 미국 역사를 잘 몰라서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북부 (뉴욕 옆 지금의 올버리 부근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북부라고 해도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겠다) 쿠퍼스타운의 1793년 크리스마스 이브. 뉴욕 시에서 교육을 다 받고 이제 정착하기 위해 집에 돌아오는 엘리자베스와 그의 아버지 마머듀크 템플이 맹추위를 뚫고 흑인 하인 아가멤논이 말을 모는 마차를 타고 귀가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초장에 미리 밝힌다. 이 책을 나중에라도 읽어보실 분은, 서문을 합해서 책의 본문만 724쪽의 길고 긴 장편소설인데, 처음 100쪽 까지 읽는 일이 사람에 따라(바로 나 같은 사람을 일컫는 것인데), 고난의 행군이 될 수도 있다. 전형적인 19세기 초반의 고전소설. 작가가 상상하는 화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다 묘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말 콧구멍에서 흰 김이 어떻게 뿜어져 나왔으며, 엘리자베스 아가씨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어떠어떠어떠어떠어떠한 옷을 입었고, 아가씨의 친애하는 아빠 템플 판사께선 장갑 두 개를 겹쳐 꼈는데 첫째 장갑은 이런 모양이었고, 그걸 벗으니 속에 어떤 장갑이 나왔으며 때 마침 자기 앞 몇 로드 앞에 수사슴이 달려들어 어떤 방식으로 총을 집어 들어 어떻게 겨누었으며 총을 몇 발을 쏴서 결론적으로 사슴이 죽었느냐 말았느냐, 하이고, 숨넘어간다. 여기다가 번역한 장은명의 친절은 또 우리가 처음 보는 도량형 ‘로드’가 얼마나 긴 거리인지 가르쳐주기 위하여 20쪽에 고맙게도 각주를 달아 “길이의 단위. 1로드는 5.5 야드, 5.0292미터다.”라고 상세하게 일러주었으니 5.0292미터 = 5미터 2센티미터 9밀리미터 200 마이크로미터, 즉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우리의 템플 판사가 사슴에게 총질을 해댄 거리를 이렇게 상세하게 이해시켜주는 반면에, 그에 앞서 12쪽에선 “옷세고 카운티는 뉴욕 식민지의 내륙지역 대부분과 함께 남북전쟁 전까지 올버니 카운티에 속해 있었다.”라는 본문의 ‘남북전쟁’에 각주를 달아 “남북전쟁  1861~1865”으로 역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나, 이걸 어째, 책의 출판 시점이 1823년. 소설가 쿠퍼 선생께선 앞으로 38년 후 벌어질 노예해방전쟁을 벌써 예견했다고 주장한다.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려 했는데, 미국에선 노예해방전쟁 이전에 ‘남북전쟁’이라고 일컫는 전쟁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 그게 궁금하여 네이버 문학과지성사 포스트에 물어봐도 며칠이 지나도록 귀에 말뚝을 박았는지 입도 뻥긋하지 않는지라 심통이 나서 굳이 밝히는 바이다. 되게 웃겼지?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각주 달고 그래도 출판사의 명성엔 조금도 흠집 나는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메이저 중 메이저 출판사. 근데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맞다. 100쪽 까지 읽기가 고난이었다고. 왜 그러냐 하면, 이 얘기하다가 극도로 세부적인 묘사까지 얘기했다. 여기에다가 19세기 전반기에 일단의 배운 사람, 아니면 돈 많은 종자들이 쓴 말버릇을 그대로 직역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
 
 “그의 말을 듣는 두 사람의 시선이 무심결에 마주쳤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떠오른 홍조가 그녀의 눈에 나타난 차가운 표정과 모순되는 것이었다면 낯선 사람의 입 주위에 다시금 떠오른 모호한 미소 또한 그가 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데 동의할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자연은 마머듀크 템플보다 박애주의적 경향이 더 적은 사람의 마음조차 쉽사리 따뜻하게 해줄 만한 장면이었다.” (59쪽)

 위에서 얘기한 두 가지 이유, 극도로 세밀한 묘사와 낡은 수사들이 넘쳐나서 1793년, 1월에 루이 16세가 죽고 10월에 앙뜨와네뜨가 바통을 이은 그 해의 크리스마스 전날 오후부터 하여간 작가 쿠페가 주장하길 하루가 끝나는 시점까지가, 놀라지 마시라, 282쪽. 여기까지 읽었다면 첫째로 여태까지 읽은 게 아까워서, 둘째로는 이제야 비로소 사건의 진도가 팍팍 나가는 시점에 접어들어서 책장 넘기는 속도가 앞부분과 비교하면 광속이 된다.
 이 책, 암만해도 나이가 좀 든 다음에 읽어야 할 듯. 왜냐하면 초장의 지겨움을 21세기의 청춘들에게 견디라고 하면 그거 혹시 고문?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당신의 인내심이 400쪽을 넘길 수 있을 만큼만 굳세다면 이후로는 거 참, 책 재미나네, 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18세기 말을 무대로 한 개척자들의 이야기라고 인디언이 말 타고 활 쏘고 총도 쏘고, 위스키나 럼도 마시고, 백인들이 무리지어 살갗 벌건 인디언 잡아 죽이느라 존 웨인을 대장으로 모신 청색 군복의 기병대가 나팔 불며 출동하는 전쟁 씬을 기대한다면 천만의 말씀. 대신 크리스마스 날 아침, 99 야드도 아니고 101 야드도 아니고 딱 100 야드 떨어진 곳에 잘 생긴 칠면조 한 마리 가져다 놓고 목만 내밀 수 있게 앞에다가는 돌덩이로 가린 다음, 총 쏴서 대가리를 맞히는 사람이 칠면조의 소유권을 갖되 총 한 방에 6 센트 씩 내야하는, 이걸 뭐라 해야 해? 민속놀이? 하여간 그런 거. 하늘을 완전히 까맣게 덮어버린 철새를 사냥하기 위해 산탄대포를 쏴서 가장 가난한 집안의 식탁에서 내일 모레 늦어도 글피 저녁상에선 거들떠도 보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남획하는 백인들의 욕심. 그물로 호수 속 물고기의 씨를 말리다시피하는 일종의 축제. 이런 것들이 인디언들의 소박한 삶과 삶에 대한 철학과 대비되고, 일찍이 저 멀리 <녹색평론선집>에서 볼 수 있었던 숙고해볼만한 삶의 방식 같은 것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는 책.
 19세기 초반에 나왔으니 시대적 한계는 있어서, 나중에 밝혀지는 태생의 비밀 같은 거에 많이는 실망하지 마시기 바람. 우와, 너무 심한 거 가르쳐드렸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