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의 여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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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가 쓴 <귀향>을 읽고 나서 그의 이름이 머릿속에 콱 박혀버려 ‘베른하르트 슐링크’라는 작가의 이름이 뜨자마자 서슴없이 골라 읽은 책. <귀향>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소련군에 의한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우리가 생각하는 시베리아하곤 좀 다른 위치다. 우랄 산맥 서쪽이니까 중앙아시아 북방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의 집단 농장에 끌려가 거기서 가죽과 뼈다귀가 서로 붙어버릴 정도까지 굶주리며 서쪽으로 걸어서, 걸어서 탈출하는 얘기였는데, <계단 위의 여자>는 통일 전후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를 무대로 한 여자와 세 남자 사이에 신기하게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를 썼다. 즉,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책. 그래서 슐링크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책 읽어주는 남자>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씀.
 옮긴이 배수아에 따르면, 슐링크 자신이 법학교수이자 판사였다고 하는데, 그래 화자 ‘나’의 직업을 변호사로 설정해 ‘나’가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묘사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만큼 남의 일에 당연한 듯이 참견할 수 있는 신분도 또 없기는 하다.
 40년 전, 당시 그냥 신예 화가에 불과한 큰 몸집의 카를 슈빈트가 큰 부자 군트라흐의 요청,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이레네의 젊은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그녀를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아 황금빛 머리카락과 음모를 가진 이레네의 누드가 마지막 계단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그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여간 신들의 장난이란, 슈빈트와 이레네가 그만 정분이 나서 그림을 그려주고 둘이 살림을 합쳐버린 거였다. 난 화가들의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을 잘 모르는데, 군트라흐는 그림 ‘계단 위의 여자’ 허벅지를 일부러 불 가까이 댄 것이 분명하게 유화 물감이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변질시켰고, 그걸 안 화가 슈빈트는 마치 자신의 허벅지가 불에 덴 것처럼 안달복달, 그림을 정상으로 수정하기 위해 난리를 부린다. 바로 여기서 주인공의 한 명이자 화자인 변호사 ‘나’가 사건의 열차에 합승할 수 있게 된다.
 그래 변호사 나의 개입으로 그림을 제대로 복원한 슈빈트. 그럼 됐지, 라고 생각한 나를 또 찾아왔다. 그림이 자빠져 여인의 유방이 뭉개졌다나. 좋다, 다시 고쳐줬다. 이번엔 군트라흐가 작은 주머니칼로 그림의 음부 부분을 그어버렸단다. 그러면서 변호사 ‘나’에게 은근히 한 계약서 작성을 주문하는데, 어떤 계약인지, 그건 내가 알려드릴 수 없음.
 근데 비록 사건을 위임한 의뢰인과 변호사는 완전히 일을 매개로 해야 하겠지만 의뢰인, 또는 의뢰인은 아니나 의뢰인과 거의 유사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 매우, 매우 고혹적이라면 변호사는 아이고 하느님 왜 날 사내로 만들어놓으셨나요, 타령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새파랗게 젊은 변호사, 하루에도 스무 번씩 불끈 솟는 넘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20대 초중반 남성이 불행하게도 그녀를 보고 느낀 건 소위 말하는, 약 먹어도 낫지 못한다는 ‘첫사랑’임에야. 그리하여 변호사는 그녀를 위하여 모종의 범죄사건을 꾀하고, 그 행위가 자신의 독일 내에서 법조계 인생을 끝장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걸 무릅쓰고 성공적으로 범죄를 완성시켜주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안 알려드림.
 첫사랑은 무참하게 깨져버리고 그간 세월은 능률능률 흘러(최승자의 시에서 따왔는데 어떤 시인지는 생각나지 않음) 화가 슈빈트도, 군트라흐도, 변호사 ‘나’도 40년 동안 장가들고, 새끼 낳고, 새끼들이 또 새끼들을 낳고, 이렇게 여전히 화가로, 대단한 사업가로, 기업 흡수 합병의 귀재 변호사로 번창하고 있다가, 나의 오스트레일리아 출상 도중 시드니의 화랑에서 문제의 그림 <계단 위의 여자>를 발견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대 전기를 마련하며, 스토리 소개는 여기서 마친다. 지금까지가 총 3부 가운데 1부의 줄거리란 것만 밝히면서.
 매우 거칠게 줄거리를 써 놓았으나,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줄거리를 미리 아는 것이 책을 읽는 기쁨을 절대 훼손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건 스토리 속에 숨어있는 여러 가지 진실들. 남자가 여자를 보는 시각이나, 동쪽 독일에서의 삶의 효용성과 안분한 만족감,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걸친 독일 내 사회운동, 가족 간 사랑에 관한 진지한 논의,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속물성 등 이런 것들이 매우 설득력 있게 토의되고 있어서, 사실 이 책은 스토리의 전개보다는 속에 숨어있는 자잘하거나 굵직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나 싶다.
 처음엔 그렇지 않은 거 같다가 진도가 나갈수록 문명 비판적, 자본주의 비판적이기도 하고, 좋은 책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삶과 죽음에 관한 사색을 포함하며, 급기야 인생에서 뭐가 중헌디? 라는 근본적 의문을 던지면서 책을 끝마친다. 기대하지 마시라. 절대 안 알려드린다. 좋은 책이니 직접 읽어보시고 알아내시라.
 다만, 돈 많은 시공사답지 않게 자잘한 오자, 탈자가 약간 눈에 거슬리지만 책 읽는데 방해할 수준은 아니다. 비록 330 쪽에 달하지만 편집이 널럴해서(이 단어가 사전에 안 나온다. 신기하다. 근데 무슨 뜻인지는 아시겠지?) 반나절이면 다 읽는다. 그리하여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니 독후감이 재미없을 수밖에. 그만큼 독후감 쓰는 작자의 주둥이가 근질거렸다는 것만 이해 해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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