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조영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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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쇼윈도에서 마네킹 사이에 진짜 사람이 하나 진열되어 있는 상황. 길을 가던 사람들은 저 마네킹이 사람일까 아닐까 궁금하기 짝이 없고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된다. 많은 눈길을 받는 디자이너의 옷이 더 많이 팔리는 건 당연한 일. 이 일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 디자이너가 진짜 모델로 데뷔시켜준다는 말에 혹해서 수시로 그와 밤을 보내지만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일 없는 우울하고 가난한 존재. (마네킹 24호)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해 집안에 틀어박혀 온 종일 가위로 이것도 오리고, 저것도 오리고, 나를 괴롭히고 두드려 패던 아이들 앞에서 금붕어를 손에 쥐고 그것도 오려 아이들을 기가 질리게도 만들고, 아빠는 잘 다니던 회사에서 이유 없이 해직당해 급기야 원양어선을 타게 되고, 엄마는 급격히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심방(尋訪: visit)오는 목사님 덕택에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만드는데, 명왕성은 더 이상 태양계의 위성이란 지위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자일리톨 껌은 대한민국을 평정, 나를 포함한 우리 식구는 영락없이 명왕성 꼴이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하루에 두 통 씩 자일리톨 껌을 씹어댄다.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반 지하 월세 방에 살지언정 여섯 살 어린 비린내 나는 청년이 내 외로운 밤을 달래주지만 실상은 무수한 인간들의 발 건강을 위해 하루 종일 이놈, 저년의 발을 주물러야 하는 신세, 간혹 발을 주물리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변태들은 젊은 아가씨가 자기 발을 주무르고 있는 와중에 팬티 속에 양 손을 쑤셔넣고 끙끙 신음을 해대기도 하건만 150 씨씨 오토바이를 사주지 않으면 날 떠날 애인을 위해 변태의 명함에 박힌 전화번호를 눌러야 한다. (굿 초이스)

 처음 세 단편의 내용. 모두 열편이 실려 있는 단편선. 조영아는 초지일관, 몽땅 궁상의 극치를 달리는 등장인물을 선택하여 책을 읽는 내내 시종일관 우울 모드를 이루는데 (자랑인지는 모르지만) 성공했으며, 대다수에서 숱하게 비정상적 상태의 주인공 또는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가족, 그것도 아니면 유난히 관심이 가 관찰하게 되는 인물로 설정했다. 비정상 가운데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조울증, 우울증, 정신분열 등 자살이나 심각한 자해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경우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곧 죽을 질환을 가진 인물의 남편이나 가족. 하여간 징글징글하다.
 지금 잠깐 내 서재 검색해봤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윤보인의 <밤의 고아>. 이거 다 문학과지성에서 찍은 거다. 여기에 이번에 읽은 조영아의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까지 포함해서 우연하게, 문학과지성에서 찍은 요새 작가들의 공통점은 가난하고, 외롭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 내가 읽은 요새 작가에 국한해서 하는 얘기니까 분명히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나도 안다. 원래부터 내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한국문학은 소설책이 됐든, 시집이 됐든 상당히 궁합이 잘 맞았었는데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영 그렇지 아니하다. 읽는 재미는 언젠가부터 소설판에서 사라졌거나 매우 귀해졌다.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언제부터 우리나라 소설판이 이렇게 심각한 국면(내용이 심각하다는 의미지 문학계가 심각하다는 거 아니니 오해 마시압. 거기야 항상 심각했으니까 말씀입니다.)으로 접어들었을까? 좀 읽는 맛이 나는 재미난 글을 쓰면 등단하는데 애로사항이라도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도나도 별로 다르지 않는 책을 쏟아내는지도. 완전 내 생각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실하고 다른 이야기일 거라는 점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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